새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년 새해를 알리는 타종이 시작되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살맛나고 신명나는 세상으로 성큼 나아갈 수 있기를.
당신 마음 속 간절하고 뜨거운 것들, 아름답게 이루시길.
건강도 함께…      

소식

5174129315.mp3                                                       Carle King, You’ve got a friend

오늘 오전에 간만의 차이로 두 개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하나는 아는 분의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 하나는 누군가의 여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
형님을 잃으신 분께는 나중에 따끈한 정종을 대접해드리겠다 답장을 보냈으나,
딸을 얻은 선배에게는 아직 축하를 전하지 않았다.
딸을 얻은 기쁨이야 굳이 나 따위가 축하를 보태지 않아도 충분히 세상 다 얻은 듯 기쁘고 복되고 행복할 테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때문이다.
물론 슬픔을 맞은 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위로도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누군가처럼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들을 우선적으로 챙기게 되는 것 같다.
천성적으로 기쁨보다는 슬픔이라는 정서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관계라는 건 기쁨을 나누는 것보다 슬픔을 나누는데 필요한 거라는 생각이 있고,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지만, 그건 부피의 문제에 가깝고 밀도로는 또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뭐… 기쁨과 슬픔을 계량화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루시드 폴, 평범한 사람

6455152642.mp3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

너무나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 고래동생이 함께 듣자 보내온, 루시드 폴의 4집 레미제라블 수록곡.
   알라딘에서 마악 주문하려던 차에 문자를 받아, 그러한 우연의 일치가 더욱 반갑고 즐거웠던.

   평범한, 너무나 평범한 삶이란 건 결국 나의 것이고 너의 것이기에,
   평범한 죽음 역시 평범한 우리의 죽음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그러나 부드럽고 담백한 목소리로 나즈막히 젖어드는 노래들은
   멋지고, 아프고, 고마워, 코끝이 찡하다.  

눈이 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역주민 후배와 동네 영화관에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보고, 우리가 상상극장에 발을 디뎠을 때 맞닥뜨리게 될 우리 안의 욕망이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우리 자신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서도.
의식적 꿈과 무의식적 욕망의 불일치로 인한 비극을 다룬다는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 일화가 생각났다.

낙성대에 새로 생긴 비어 팩토리에서 이틀 연속 맥주를 마셨는데, 맥주맛이 괜찮다.
다음에는 꼭 샘플러를 마셔봐야겠다.
 
혼자 제주도에 날아간 바지런한 후배녀석은 새해맞이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고, 오랫만에 휴식의 시간을 마련한 S언니도 제주도로 떠나면서 인사를 보내왔다. 지정학적으로는 “태평양의 눈”이라는 제주도는 우리네 삶속에서는 대략 따뜻한 휴식과 충전을 꿈꾸게 하는 좀 특별한 공간이라는 생각. 내 안에도 제주도에서 보냈던 좀 특별하고 그리운 추억의 시간들이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09년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고. 언제나 그렇듯이,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좀 쓸쓸하다.
사실 올해는 유독 어느 때보다 긴장감을 느낀다. 어느새 곧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겠지만.
맛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다시, 울릉도 자전거 일주와 지리산행을 새해 계획으로 잡아놓았다.
작정을 하여 맘에 품고 나니 새해를 맞는 마음이 조금 덜 허전해졌다.

창문 밖으로 눈이 폴폴 내린다.
가늘지만 넉넉하게 내리는 눈송이들이 곱게 쌓여간다. 예쁘다.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 강가에서
                              안 도 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력하고 허무할 지라도.

피로가 스며든 눈덩이가 묵직한데, 간만의 황금연휴를 앞둔 마음은 가벼이 설렌다.
H양의 제주도 올레길 제안에 잠시 솔깃하다가.. 밀려 있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맘에 걸려 포기하고,
그래도 연말 연휴인데 싶어 주문한 책들이 여러 권 쌓였다.
시원한 바다나 산 바람을 맞지는 못하더라도
급한 업무와 벼르던 몇 가지 일들을 조금씩만 해치우고, 한껏 게으르게, 한가로운 평화를 만끽해볼 생각이다.
선덕여왕 마지막회를 보기 위하여, 퇴근하자마자 어제 방송된 걸 다운받아 봤다.
희망을 얘기하고 사람을 얘기하던 덕만이,
“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것이 이리 무력한 것인가, 사람 마음에 기대어 산다는 것이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
탄식하는 모습이, 그 흔들리는 눈빛이 짠했다.
때로 그리 무력하고 허무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음을 키워가고 사람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고 하는 건,
여하튼 살아가기 위해선 그게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 같은 것.    
때로 어쩌다가는 헛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지라도,
희망이 먹이를 필요로 하듯이 그렇게.  
* 방금 마지막회가 끝났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안쓰러이, 견뎌내라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짠하다.
한동안 잘 봤다, 선덕여왕. 이제 뭘 볼까.    
** 피디수첩을 보고 있다. 송년특집.
일년 동안 우리안에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엄청난 일들이 이리 많이 일어났고 또 진행중이라니.
그걸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안쓰러운 우리가, 슬프다. 아프다.

인연

미국에서 걸려온 왁자지껄한 전화.

짧은 인연을 소중하게 기억해주고, 나를 “식솔”로 생각한다는 그들의 솔깃한 제안, 혹은 강렬한 유혹.
새로 이사했다는 집의 옥탑방에서,
“뒹굴”거리며 보고 싶은 책을 보다가 해안선을 따라 함께 여행을 하고 오두막 “펍”으로 맥주를 마시러 다니고…
정말 그리 지낼 수 있다면, 천국이 따로 없겠다.
그나저나 “식솔”이란 말, 참 애틋한 것이구나.

염소 생각

염소 생각이 자꾸 난다.

전경린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고향과 같은 그리움 혹은 운명적인 짐승 그리고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존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키우기가 쉽다는 말 때문이다.
40대에 귀농을 해 염소를 키우면서 서평집을 낸 이의 자그마한 체구를 신문에서 보고 의아해서 염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가, 세상사 무슨 일이든지(컴퓨터에 관한 것만 빼고) 자신있는 대답을 꺼내놓곤 하는 회사 이부장님으로부터 염소 키우기가 방목이어서 별 신경 안써줘도 알아서 큰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가축을 키우는 일이 어찌 그리 쉽기만 하겠냐만은, 또 많은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겠지만,
방목을 하는 염소와 동거동락 하며 나 또한 (제한적일지라도) 방목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유혹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특히나 출근길 2호선 전철안에 구겨져 있을 때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가 눈에 어른거린다, 며칠째.      

날씨가 추워졌다.

날씨가 정말 추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려 하니 서리가 얼어버린 창문이 하얗게 견고했다. 과묵한 사람처럼.
정말 추운 날이겠다 싶어 두터운 장갑과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나왔다.
올해 겨울은 여러 모로 춥겠다 싶어 미리 장만해두고 뿌듯해하던 것들로 무장을 하니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히말라야 꼭대기에 산다는 새 처지를 잠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밤이 되면 추위에 떨면서 내일은 꼭 집을 지어야지 하다가
해가 뜨고 따스해지면 깜빡 잊어버리고 놀기에 바쁘다는 그  새.
닥쳐오는 추위를 견디는데 온 몸이 따뜻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큰 슬픔을 이기는데 꼭 큰 기쁨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처럼.
때로 작은 기쁨으로도 큰 슬픔을 감내할 수 있는 것처럼.

선택, 참 어렵다.

프로그래머를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로직. 입력이 같으면 마땅히 나와야할 출력이 나와주는.

경우의 수를 나누고 적절하게 처리해주면, 예측 가능한 명쾌한 결과가 나오는, 말하자면 코드화가 가능한 그들의 세계 말이다.

 

인생이 덜 지루하고 매력이 있는 건 그의 불가해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는 말에 전폭 동의하기는 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로직과는 거리가 있는 우리네 인생에서 선택은 종종 어렵다.

종종 아주 사소한 선택으로도 우리 인생은 어떤 길로부터 어긋나거나 비껴가고, 그에 따르는 회한이나 고통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경우의 수로 문제를 분해하고, 조건문과 예외문들을 만들고.. 그런 프로그래밍의 프로세스는 여전히 우리 인생에도 유효할 것이다. 아니, 저마다 나름의 로직을 가지고 문제를 분해하고 조건문과 예외문들을 만들고 처리하고.. 그게 우리의 나름의 인생, 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문제는 우리의 로직이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고, 인간마다 호환성이 너무 낮거나 제로이며.. 그걸 적용해야하는 우리의 세계와 인생 자체가 너무나 다양하고 불안정하고 우연적이라는 것. 예외문으로 처리해두기에는 너무나 많은 예외들이 이미 존재하고, 또 시시각각으로 새로 생겨난다는 것. 더 나쁜 건, 우리가 예측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에러가 나거나 디버깅이 필요한 , 때로는 치명적인 결함을 초래할 지도 모를 선택도 한다는 것.  



그래서 참 어렵다, 선택이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