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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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강력한 추천으로 느즈막하게 영화 <아바타>를 보았다. 안경을 두 개나 끼고 봐서 그런가,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서 조카들과 3D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런가는 몰라도, 지각의 발견이니 확장이니 떠들썩한  3D라는 건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재밌었다.(봉천동 멤버들과 영화 보기가 편한 건 대체로 우리가 영화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테크놀로지의 힘인지는 몰라도 캐릭터는 생동감 있었고, 썰렁한 유머도 종종 튀어나와 주어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했던 과거의 여러가지 영화, 만화, 전설, 인디언의 세계와 장자를 포함한 각종 이야기를 섞어놓은, 그 뻔하고 진부하다는 스토리도, 그들을 대자본에 의해 보게 된 건 재밌는 일이었다.
어떤 상업적인 방식이든 간에 그들에게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법한 이러한 영화가 제국주의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다는 게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최세진, 메이데이)에서 보았던 자유롭고 불순한 좌파적 상상력에 의한 신나고 발랄한 방식의 혁명이거나, 바리케이트가 불가능한 시대의, 지도가 아닌 ‘전염’을 전략으로 하는 혁명의 가능성(고병권)을 보여주는 것이면 좋겠지만… 물론 너무 순진한 발상임은 안다. 차라리 이 정도는 거뜬히 소화해내고 이용하는 공고한 자본의 논리, 힘의 과시가 아니겠냐 하든지, 자본의 순수한, 본질적인 의지의 작동이겠다 하면 좀 그럴 듯 할런지.
그래도 영화를 보면서 조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줘야겠다 맘 먹게 되는 건, (아이들이 재밌어할 요소들 외에도) 아직 머리가 굳지 않고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의 순수함은 이 허리우드적으로 요란하고 화려한 영화 속 간과할 수 없는 유효한 메세지를 찾아내고 품을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기대가 – 많이는 아니어도 – 생겨나기 때문이고 또… 어찌했거나 영화는 끝나고 제이크는 판도라 행성의 전사로 건너가 버렸어도, 암울한 현실의 초라한 우리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이든지 희망이든지 환상이든지 뭐라하든 간에 뭔가가.. 필요할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내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고 대자연과 교감하며 뛰고 나는 그들의 육체. 타인과는 물론이고, 대지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대상(특히 하늘을 나는 익룡 이아크)과 교감하는 장면은 어느 영화보다 에로틱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음식을 차려준 아주머니 두 분만 드라마에 빠져있는 휑한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허락하에 오래 오래 밥을 먹으면서 함께 본 종은과 함께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들의 육체는 정말 탐이 난단 말야. 인간의 육체로 돌아왔을 때 너무 초라하지 않냐. 탐욕스러워 보이고…. 해병대가 정말 대단해. 짱이야 짱. 총 쏘고 수류탄을 던지는 나비족 강력하잖어… 그러니까 허리우드가 아바타를 만드는 건, KBS에서 추노를 선택한 것(그래서 시청률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한  거일 수 있다는 거지.. 나도 정말 이아크가 갖고 싶단 말야…

Mary And Max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보게 된 독특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Mary And Max, 2009 , 아담 엘리어트作

외로운 호주 교외의 여덟살 꼬마 매리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뉴욕의 맥스가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해서 마침내 그토록 소망하던 친구되기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독특한 색감과 캐릭터로 그려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논리적이지 않은 것을 못견뎌하며 불안해하는 정신질환이라고, 함께 보던 책 편집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는데, 그녀가 국내 출판에 참여했고 최초의 아스퍼거 증후군인 작가가 썼다는  책은 흥미로웠다.)
매리와 맥스의 현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만큼 암울하고,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 여리고 약한 영혼의 그들이 친구를 만들기 위해 감내하는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의 강도는 엄청난 것이어서 영화는 시종 어둡고 무겁다.
그럼에도 모든 캐릭터들은- 애완견까지도-사랑스럽고, 클레이애니메이션의 독특한 움직임은 매끈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파장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공명한다.  
대체로 우리가 어느 정도는 –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매리와 맥스와 다르지 않은 것이 이 공감과 감동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들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외로워하기도 하고, 때로 불우한 상황을 견뎌내야 하며, 내 논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타인의 존재로 인해 괴로워하고 타인과의 감정소통의 장애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친구와 같은 교감의 대상을 욕망하는, 그런 약하고 여린 존재들이 아닌가 말이다.  
 


맥스가 매리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내가 널 용서하는 이유는 넌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야.
넌 불완전해. 나도 그렇고. 모든 인간은 불완전해. 내 아파트 밖에서 쓰레기 버리는 사람조차 그래.
내가 젊었을 때 나 이외에 누군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단다.
버나드 헤이즐호프 박사는 내가 만약 황량한 섬에 있다면 내가 아마 그 섬에 있는 모든 것들에 적응해야 했을 거라고 하더군. 나와 코코넛 말이야.
그가 그러는데 난 내 자신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한대. 우리의 결점까지도 모두. 결점들도 우리의 일부분이고 그걸 안고 살아야 한대.
하지만 우린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 그리고 난 널 선택하게 되어서 매우 기뻐.
버나드 헤이즐호프 박사가 또 그러는데, 모든 사람의 인생은 매우 긴 도로와 같대.
어떤 사람의 인생기리은 잘 포장되어 있지만 나같은 사람의 인생길은 갈라진 곳도 있고 바나나 껍질도 있고 담배꽁초도 있는 거지.
네 인생길은 내 것과 같아. 하지만 나만큼 갈라진 곳은 많이 없어.
다행히도 어느날 우리의 인생길이 서로 만날 때가 있다면, 우린 연유 캔 하나를 서로 나눠 먹을 수 있겠지.
넌 나의 최고의 친구야. 넌 나의 유일한 친구야.
너의 미국인 친구. 맥스 제리 호로비츠.

2003년 [하비 크럼펫]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감독은 영화가 틀에 박힌 전형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알코올 중독, 장애, 섹스, 정신병, 불안과 같이 애니메이션에 어울리지 않는 이슈들을 끌여들여 삶의 내밀한 부분까지 끌어내었다.감독의 분신이기도 한 메리가 성숙함에 따라 감독은 그가 즐겨다뤄온 주제, 즉 ‘서로를 인정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며 어린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며 하나의 인격체와 같은 캐릭터를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PIFF 소개글)

…..

지난 주말 부산에서 어리석게 무리를 행한 탓으로 이틀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이 지긋지긋한 두통만 없애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두통약을 털어넣으며,
약속을 미루고 또 미루고, 부탁을 거절하며,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하니, 정신은 퇴행을 시작하여, 참으로 유치하게도 통화중 상대방의 반응을 감별하는 센서가 작동된다.
아, 이 사람은 정말로 내가 아픈 걸 이해하고 염려하는구나. 이 사람은 내가 아프다는 건 안중에도 없구나, 정말 일적인 관계로구나, 뭐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하고.
퇴행은 계속되어 까무룩한 침잠속에서 나를 끄집어내줄 목소리를 아쉬워하고, 어린 시절 나의 배를 문질러주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의 감촉마저 그리워하고, 결핍으로 느끼기에 이른다.
멀미를 느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정신이 퇴행하는 걸 느끼고 있노라면, “자유의 신체성, 자유란 자유로운 정신의 문제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신체의 문제”(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中) 라는 단어들이 ‘신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변곡점, 터닝포인트가 속삭이는 귓속말을 귀담아 들어보세요..” 라는, 부산행에 동행했던 선배가 보낸 메시지를 귀담아 놓을 일이다.
몸이 아플 때나, 문상객을 맞을 때처럼 마음이 아플 때와 마찬가지로, 잊고 싶은 실수를 저지른 순간에도 내가 관계한 타인의 존재감은 감지된다. 여지없이 드러난 나의 엉성한 빈틈을 너그러이  보아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김어준, 각하

“왜 방이 점점 좁아지는 거지.. ” 중얼거리며 바닥의 신문을 집어들다가 그제 신문을 보며 또 낄낄거렸다.
오랫만에 복귀한 김어준이 날리는 글빨, 여전하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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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붙어 있던 아래 일러스트를 보며 나는 몇 번 일까 생각해봤다.
때로 1번이기도 하고 더러는 2번이나 3번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번외다.
얼굴을 돌려 딴 일을 한다. 소리만 듣고 그를 바라보는 일은 거의 없다.
무슨 형일까. 외면형?사용자 삽입 이미지» 각하는 대타 폴리틱을 사랑해.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오늘의 다짐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유난한 엄살 속에 맞이한 올해엔, 적당한 긴장과 건강한 강박을 유지하며 살아보리라, 허투루 빠져나가는 시간을 최대한 잡아 보리라 다짐하고 시간을 기록해보려고도 했는데, 몸에 배지 않은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려, 일기장에 적어본다.



삶의 메트로놈을 한 템포 빠르게 맞추고 , 오래오래 느슨하게 방치되어온 삶의 현을 조금만 더 팽팽하게 조율하여 좀 더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  



생업을 비롯한 해야할 일들은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미루지 말고 해치우고,

먹는 것을 가려 먹거나 마시고 (집에선 절대적으로 주식이던 라면과 빵 대신 밥을 해 먹기 시작한 지 벌써 1주일이나 되었다. 장하다! )

시간을 아껴서, 쌓아두기만 했던 책과 글들도 틈틈이 읽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조금씩 해보자. 결코 쉽진 않겠지만.  

헛된 욕망이나 관계들로 나의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나를 소진하는 것을 경계하고,

나의 코나투스(conatus)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의 기쁨과 나의 본질을 키울 수 있는 대상에 집중하여 그 방법을 찾아 지켜 가도록 하자. 조금은 이기적으로.



음. 써놓고 보니, 대략 비장한 느낌이 나는 거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한 번 살아보자. 올 한 해 만이라도.  



* 많이 걷기로 한 걸 빼먹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의 3분의 1쯤은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그 첫걸음을 내딛게 될 것 같다. 조금 먼 부산이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까지 355일.
마지막 장례 행렬조차 길었고, 추웠고, 눈이 왔다.
그래도 이만큼 날이 풀린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하면서도
정말 춥다, 라는 말이 자꾸 삐져 나왔다.
멀리서도 고단하고 창백한 얼굴이 역력한 유가족 대표분의 고맙다는 인사에,
미안함과 분노로 가슴이 먹먹했다.
어이 없는 죽음으로 큰 슬픔이 된 용산의 다섯 열사들.  
이제 좋은 나라에서 평화로운 안식 누리시기를.
그 분들이 살고자 했던, 그래서 품었던 소박한 꿈
이 땅에서 끝내 정의로운 이름으로 부활할 수 있기를.
그 기다림의 시간, 너무 길지 않기를.

까치

연이은 강추위에 기온이 조금 오르니, 몸에 닿는 햇볕이 따뜻하다.

엘에이에선 영상 5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생기더니, 사람 몸이란 게 참 신기하다.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보았던 까치는 뭐가 신이 났는지 혼자 깡총깡총 뛰는 모습이 퍽이나 예뻐 보여,
함께 있던 젊은 친구들과 까르르 웃어댔다.
하루 동안 까치를 네 마리나 보았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결혼식과 장례식

결혼을 알리는 문자와, 장례식을 알리는 문자를 또 받았다.

결혼소식은, 엘에이에서 잠시 앞방 살던, 소위 준재벌의 아들이라는 총각이 쑥쓰런 말투로 알려왔다.
애틋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지라 마음 속으로 응원을 많이 보냈는데,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완강한 집안의 반대를 잘 견디어내고 사랑을 지켜냈다.
기특하다.
그리고 장례식.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있어질, 선남선녀의 화사한 결혼식과 커다란 슬픔의 영결식 풍경이 머릿속에 교차한다.
날씨라도 좀 덜 추웠으면 좋겠다.
그렇더라도 두 풍경 속 그 엄청날 체감온도의 간극이 별로 줄어들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날씨는 정말 왜 이리 추운 것인지.

술을 마시고..

뮤지션들이 왜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지를 들은 적이 있다.

마약의 기운을 빌면 음악을 들을 때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파트별로, 혹은 특정 악기의 연주만을-말하자면 베이스만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진에 처음 빠져있을 때 내가 발견했던 건, 술을 마시면 내 앞의 대상이 아웃포커싱이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평소 맨정신일 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볼 수 밖에 없으므로.
어느 것이 내가 원하는 피사체인지, 내가 진실로 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늘 헷갈리면서 살아가는게 우리의 인생이므로.
용기가 필요했으므로, 격려가 필요했다.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위로도 필요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돌아와 방안에 들어서니, 어떤 감각이 선택적으로 예민해짐을 느낀다.
위로가 어디로부터 올 수 있는지, 나의 엄살이 어떤 곳에 가 닿아, 내게 위안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그래서 때로 알코올도 필요하고, 엄살도 필요하고, 마약도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것을, 알겠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이 아파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알겠다.
그래서 결국은, 가끔은 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만한 대체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인생이 쓸쓸한 것이라는 것도 알겠다.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술이 깨기 전에 얼른 잠을 자야겠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잠을 깨고서도 그 꿈이 기억나면, 로또를 사야겠다.  

나도 엄살이 싫지만..

일은 너무나 지루하고,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상심한 가슴은 조금 쓰라리고, 빙판길에 취약한 운동화 바닥이 서운하고, 앞으로도 빈약한 신발로 걸어야할, 그와 같이 춥고, 미끄럽고, 거친 길들을 생각하니 암울하고, 오래전 언젠가 누군가와 손잡고 걸었던 다정했던 길들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의 삶을 추동하던 반성되지 않은 전제가 나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는 그 전제를 바꿀 수가 있다. (강신주)
나의 2010년 다이어리 첫장에 이 문장을 적어놓으며, 나의 삶을 추동하던 전제들을, 내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바꿔보리라, 꽤 비장했었는데…
이런 저런 엄살의 발동으로 못나게도 우울하고 쓸쓸한 오늘은, 약간의 알코올을 내게 허하도록 해야겠다.  
아~ 쓸쓸해. 쓸쓸해. 쓸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