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게 무엇이더냐.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에 가까울 것인데 객관적인 잣대를 끌어들여, 너무 간단히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거나 한다.
사는 게 다 그렇거니 하면서 쉽게 위로받고, 사는 게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 간단히 상처 받는다.
그래서 행복하여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고, 불행하여도 꼭 불행한 게 아니기도 한다.
이러면서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은 점점 퇴화해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는 얘기들을 받아들여 체념하는 게 안쓰러워,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쉽게 포기하지말라, 고 간곡하게 얘기했었지만, 글쎄, 행복에 대해, 타인이, 내가, 무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아닌 타인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
이런 문제에 있어 타인의 조언이란, 그것이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정도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나,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건강해보인다.  
쓸데없이 몹시도 피곤했던 하루 혹은 이틀.

가끔씩, 뜬금 없이도, 놓아버리고 싶거나, 놓쳐버릴 것 같은 일상.
대체로 이런 때에 방심한 걸음으로 생겨나는 짜잘한 상처들로 대일밴드와 후시딘 한 통이 동이 났지만,
어느 새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가 흔적을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신통하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 ‘피로 회복제는 약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시딘도 대일밴드도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상처를 입는 것을 걱정하거나 낫지 않을까 조급해하지 말 것.

불타는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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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 찬란한 불꽃을 내며 타고 있는 이것의 정체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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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양파(스낵)!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고서 공짜로 끼워준 걸 주워먹다 옛날 생각이 나 해봤더니 여전히 잘 탄다.
얼마 전 술을 마시다 옛날에 기본 안주로 나왔던 양파링에 불을 붙이며 놀았다는 얘길 했더니 사람들이 안믿는 눈치였는데, 담에 만나면 한 봉지 남은 걸 들고가 보여줘야겠다.  
(소주의 불꽃도 괜찮다. 단 이건 노하우가 좀 필요하다. 뚜껑을 잘 달군 다음에 소주를 뚜껑에 붓고 그 위에 불을 붙여야하므로 그 뭐냐.. 가느다랗게 붙어있는 걸 떼지말고 손잡이 삼아 신중하게 해야한다. 불꽃 색깔이 잘 안보일 수도 있으므로 역시 주의!)

사실 ‘구운 양파’는 ‘좋은 원료를 써서 열풍으로 구웠다’ 해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 유탕? 식품인 원조 ‘양파링’ 에 비하면 불꽃이 좀 약한 감이 있다. 새우깡도 좀 약했던지 기억이 잘 안난다.
한 때 기본 안주로 나오는 새우깡 때문에 전국의 대학생들이 머리가 나빠진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는데, 요즘 다양해지고 훌륭해지는 기본 안주를 먹고 있는 총명해 보이는 학생들을 보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먹고 있는 건, 머거본에서 나온 “칼몬드”
멸치와 아몬드의 궁합이 정말 환상이다.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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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사년 전쯤, 로스엔젤레스 어느 거리의 쨍한 휴일 아침.
주인들만큼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개를 하나 둘씩 끌고 나오는 가벼운 옷차림의 선남 선녀들은 충분히 이국적이었는데, 2010년 대한민국 대학가의 여름은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발랄하고 세련되고 예쁜 젊음들로 넘쳐난다.
얼마 전 우연히 찾아낸 이 사진을 보고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저런 시커먼 개와 눈을 맞추고 사진을 찍다니.
개에게 두 번이나 물리는 안좋은 기억을 가진 탓에 도대체 왜 개들이 나를 만만히 보는지가 궁금한, 그래서 길을 다가가도 개가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긴장하기 시작하는 내가 말이다.
생각해보면 저 세련된 개들은 교양도 좀 배웠는가 꽤 순하고 친화성이 있었던 듯.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를 건네던 저네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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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더워지니 운동화가 갑갑해져 샌들을 꺼내 신고는 동네 까페에 커피를 사러 갔다왔을 뿐인데 발등에 벌겋게 상처가 났다.
삼사년 무탈하게 신었던 지라 이상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상처 부위와 만나는 부분의 가죽이 뻥 뜷려 있다.
내 발등에 쓸려서, 내 신체로 인해 내 상처보다 두 배는 큰 구멍이 난 신발이, 그 거친 면으로 세 계절 동안 운동화속에서 물러진 피부를 쓸어 순식간에 상처를 냈던 것이다. 유난히 그 부분의 피부가 얇아 못나고 작게 생겨먹은 내 발에 신발이 조금 커 마찰이 많았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문구류나 신발 같은 것들에 쓸데없이 어설픈 욕망이나 감상이 작동하는 내 뇌에 또 잡생각들이 빠작거린다.
나와 잘 맞지 않는 어떤 타인들, 세계와의 마찰로 내가 불편을 느끼거나 상처가 났다면 그 대상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었겠다는, 어쩌면 그 상처는 내가 낸 상처로 인해 내게 돌아온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후두둑 빗소리가 들린다. 비가 좀 내리면 이 후끈한 더위가 좀 가실까. 내일 거리 응원하는 애들은 고생 좀 하겠다.
** 동네 공원길을 산책하는데 저만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주인의 엄한 호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내 뒤를 따라왔다. 속으론 그러지 마, 오지 마, 를 외치며, 겉으론 짐짓 모른 체하고 내 갈길을 가는데, 내 발걸음과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오니 심장이 콩콩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주인에겐 마냥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낯선 사람을 만나 얼마나 공격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개를 풀어 데리고 다니는 주인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는데, 그 녀석이 저만치 서서 나를 지그시 착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갸우뚱한 채, 마치 나 나쁜 개 아니어요, 하듯이.  

티비를 장만하였는데.

선거방송을 아프리카로 보려다 계속 끊기는 바람에 열받아서 ‘작고 앙증맞은’ 복고풍 티비를 주문해버렸는데, 잘나오는지 테스트도 못하고 있다. ‘허술한 관악구가 아닌 체계있는 마포구'(동네주민 김씨의 표현)는 그냥 케이블선만 꽂아서는 영상의 잔상도 안잡히는데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티비에 달린 브이자형 안테나는 아무 역할도 못하고 있기 때문.

유료가입을 하려고 보니, 케이블방송, 디지털방송, IP TV, 스카이라이프까지 종류도 많고 비용도 세다.
일반적으로 가장 저렴하다는 케이블방송은 설치비가 44,000원이나 하는데 설치비 무료 이벤트 같은 것도 없다. 동네주민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씨엔엠이 독점이어서 그렇단다.  
불과 두어달 전까지도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나 다음팟 같은 데서 뉴스는 물론 드라마도 고화질 생방으로 볼 수 있었는데, 세상 참 빠르게도 각박하게 변한다. 서운타.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리하여 아직까지 제 사용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방한켠에 오두마니 놓여있는 13인치 티비.
좀 뚱뚱하긴 하지만 디자인은 참 이쁘다. 터치가 대세화되어가는 시대에 누르는 버튼도 아닌 돌리는 다이얼이라니. (물론 리모콘은 있고 다이얼도 방식이 좀 달라 장식에 가깝긴 해도)
딱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아이콘 형상에, 흑백모드도 있고 세피아 모드도 있다.
그나저나 웹디자인에서 쓰는 아이콘들도 곧 시효가 다할 것들이 꽤 있겠다. 티비 아이콘이 네모난 벽걸이 모양으로, , 필름이 디카의 시시디를 단순화한 형태로 대체된다면 좀 볼품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스치지만, 이또한 아날로그의 추억에 대한 집착일지도.  
이 씁슬한 기사를 보고 처음 떠오르는 건, 도대체 이런 못된 짓은 어떻게 배우는 거야? 였는데, 곧바로 따라오는 생각은 이거야말로 우리사회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것이겠다는 거.
그렇다 하더라도.. 순수하다며, 왜 배우는 거냐고..
** 작업하던 피시 사망.
작년말 신모델로 업그레이드하는 회사동료로부터 작업가능한 노트북을 넘겨받아 쓰고 있던 지라, 의연하게 마음을 비우고 안식을 주기로 하였다. 문제는 보드인 듯 하고, 나머지 장기 몇 가지는 작년에 말썽 부릴 때 교체해놓아서 꽤 쓸만하니, 필요한 곳 있으면 넘겨주면 좋겠다.  
책상이 좀 넓어졌는데도 온갖 사물로 어느새 빼곡해져버린 책상위와 각종 케이블과 전원장치로 어지러운 책상 밑.
단출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동경한다.

손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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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스캔해서 보여준 내 손금 분석.
잔선이 많은 것이, 그래도 인생의 쓴맛을 좀 겪어본 증거라고 주장해왔는데 상관이 없나.
그나저나 손금 좀 봐주겠노라며 좋아하는 여인의 손을 슬쩍 잡아보는 고전적인 ‘수작’ 방식은 사라질지 모르겠다.
네이버 지식인의 활약으로 박학다식을 무기삼아 여심을 얻던 유형이 사라져가듯. (아이폰의 등장은 확인사살?)

천안함 1번 글씨

투표하느라 수고한 당신을 위해 퍼온.

 

투표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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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러 가는 길.
투표소 문앞에서 마주친, 갓난 아가를 안고온 젊은 엄마가 어여뻐 보였다.
그녀는 아가의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지나치다 돌아보니 씩씩한 엄마의 어깨위 아가의 해맑은 얼굴이 사랑스러워 씨익 웃어주고 발길을 돌렸다.    
   
오늘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투표하는 사람과, 투표하지 않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