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October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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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10월의 마지막밤엔 반드시 좀 특별한 그를 만나야 한다고 연신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며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던 그녀는 과연 그에게 전화를 하게 될까.
노래는 길의 신청곡.

티티카카 워커

http://blog.naver.com/mulibuc?Redirect=Log&logNo=20087853773
자전거 전도사 고래씨랑 통화를 하다가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의 첫번째 자전거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찜해둔다.
이름하여 티티카카 워커. 초보자용으로도, 키가 작은 이들에게도 좋은, 생활밀착형 자전거란다.
이쁘고 가볍고도 견고해보인다. 칼라도 다들 맘에 든다.  
검은색도 괜찮아보이는데 2009년형을 중고로 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하나 언제 내 품안으로 들여놀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다.
성심성의껏 갈쳐주겠다는 이들이 아직 가까이 있을 때 질러야할 터인데. 추워지는 날씨가 조금 걸린다.  
며칠 간은 꼼짝없이 코박고 일해야되는데, 어제 마신 술을 속쓰리게 반성하느라 반나절 보내고도 미적미적 이러고 있다.

고단했던 하루.

수년 동안 세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있다. 인사동에서, 강남의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오늘 서초역 전철안에서.
내 입장에서 딱히 반가운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세 번째에 이르자 그는 대단한 우연이라며 내 전화번호를 입력해갔고, 나는 우연히 마주치는 이가 과연 누구였다면 내가 대단한 우연이라 여기며 기뻐했을까를 생각했다.

화사한 가을날들이 지나가도록 내 발길을 잡아놓은 네버엔딩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의 횡포로 내 인내심은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는데, 잘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던 그 클라이언트의 책출간 프로젝트는 이미 7년 동안이나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는 허탈한 웃음이 나와 버렸다. 안면이 있는 대필작가가 안쓰러워졌다.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내 일이 점점 버거워진다. 회사에 몸을 담고 있을 때는 나름 내 강점으로 인정되던 것이었는데,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할 수 있다면, 소통이 필요없는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이 일하고 있고 몸 담고 있는 분야에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해 보인다.
그 열정이 좀 과해져 그에 우호적이지 않은 것에 분노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한 사람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럽기도 하였다.

등 뒤로 무심하게 켜놓았던 티비에서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외모도, 노래도, 목소리도 꽤 원숙해진 가수 이적이 보인다. 오래 전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 하루가 전쟁이더군 …그 땐 그랬지” 라는 그의 노랫말을 들으며, 아니 고작 스무살에 뭘 안다고…라며 분개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의 그는 그 때의 노래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텅 빈 냉장고를 기억해내고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몇 가지 사가지고 들어오면서, 내가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무엇을 위한 수단 정도로 폄하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가령 장을 보고 나올 때면 “뭐 대단히 열심히 산다고 이렇게 많이 쳐먹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삶의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을 좀 더 솔직하게 인정하고 보살피고 즐겨야할 것인데.

꽤나 고단했던 하루.
길었던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으로 인해 밥도 못 먹고 좀 느끼한 비어드파파의 미니슈와 쿠키와 호떡(음. 많이는 먹었군)으로 채운 배가 조금 쓰린데, 피곤함으로 인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노곤하고 나른해지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도 오늘 처리하지 못한 세 가지 일쯤은 내일로 미루기로 한다.
이상하게 이런 날은… 별 의미 없고 쓰잘데 없는 넋두리가 주절주절 입안을 맴돈다. 왜 그럴까.

내린천 개인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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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방태산을 거쳐 당도했던 미산 선생님의 내린천 개인산방.
내가 방문한 건 고작 세번 정도였지만, 마지막일 그날 밤, 다리 위에서 아득한 그 절경을 내려다보다 깨달았다.
나의 “아름다웠던 한 때”가 그 곳에 있었음을.
도르레를 타고 강을 건너던 그 때의 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풍광과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이폰 볼륨을 키우고 노래를 들으며 따라 흥얼거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by 위연)

단체 사진. 뒤에 있던 선배가 안나올까 살짝 고개를 숙였는데 정작 내 얼굴을 찾기 힘들다.
내 신체적 조건을 내가 늘 과대 평가하는 게 드러난다.
그래서 어쩌다  아래 같은 사진을 보면 새삼 겸허해진다.  
(멀리 있는 지현의 요구에 응답해 올리는 근황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by 위연)

예전에는 이 모임에서 어디를 가면 내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참 많고(그래서 사람들 시선도 분산되어 있다), 장비도 좋고 잘 찍는다.
그 때는 필름이랑 인화비도 많이 들었고, 인화해서 분류해서 사람마다 나눠주는 것도 꽤 번거로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편리해져 간단히 웹에 올리면 되니, 세상 참 편리해졌다.

진심

그가 남긴 한 마디 말이 가라앉지 못하고 서걱댔다.
상식적 독법으로 받아들일 때 그 단어들이 너무나 빤하게 드러내는 기의는, 그가 말하고자 했을 진심과 꽤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대화가 잘 통한다 생각했던 그는, 유독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독해가 어려운 텍스트 같다.
그런데 참으로 곤란한 것은, 그 표면상에 드러나는 직접적인 의미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드러나는 것과 믿고자 하는 진심 사이의 간극이 아득히 멀어서,
판단을 중지하고, 아예 읽으려 하지 말고, 담아두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기로 한다.

‘(대화의) 도달 불가능점을 기어코 손으로 감촉하는 일이 이 세계에서 그나마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임을 수긍하고 실천’한다는 김혜리의 인터뷰집 <진심의 탐닉>을 읽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각되기를 바라는 가벼운 비밀을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진심과 진심에 대한 탐닉이 흥미롭게 읽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심을 알아주기 위해 필요한 건, 때로는 믿음이나 신뢰보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어느 정도의 ‘거리’일지도 모르겠다.  

모처럼만의 산행을 앞두고 오늘 받아온 일거리를 후딱 해치웠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놀러갈 일을 생각하니 일의 능률이 마구 올라서, 컴이 읽는 속도가 내 손을 못 따라온다.
방태산의 눈부신 풍광을 기대하며, 어여 잠에 들어야겠다.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망각하는 공부

… 예전에는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하는 생각에 잡혀 있었다면 그 후 몇 년 동안은 내가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내가 바뀌고, 주변이 바뀌는 것과 세상이 바뀌는 것을 어떻게 한 평면 위에서 사고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구요. 공부는 늘 이렇게 다른 문제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름들 덕분에 지금, 현재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수 있는 것 같구요. 그러한 매 국면마다 저는 ‘각자’였지만 동시에 관계한 모든 것들 속에 있는 ‘여럿’이기도 했고, 그 모든 것들이 모인 지금 ‘각자이자 여럿’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보다 빛나는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망각하는 공부, 새로운 문제를 삶 속에 끌어오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웹기획팀 정군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오는 인문 스트리트 매거진 “gblog”가. “철학은 직장인도 춤추게 한다”는 패셔너블한 제목을 달고 배달되었다. 철학공부를 하자고,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꼬드기는 내용이 발랄하게 진지하다.
전철안에서 스윽 흩어보다,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각자는 여럿“이라는 구절을 발견한 것으로 시작하는 이 진솔한 고백에 눈이 멎었다. 오늘 아침 내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 딱 부정적인 모든 것들의 망각, 그것이었으므로.

그렇다해도 문제는 언제나 시간과 체력. 그리고 그것들을 장악하고 있는 생계의 무게.
또한 무엇보다 이 천성적인 게으름.  

정체

도대체 정체가 뭐냐, 는 질문을 받았다.
내 사는 모양이, 정말 정체 모를 인간의 그것인가 싶었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환절기, 살짝 감기를 앓고 좀 더 살짝 마음을 앓았더니 눈 밑에 선명하게 새로운 주름이 생겼다.
몸과 마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가고, 정직해져가는 느낌.

네버엔딩 프로젝트에 붙잡힌 채로, 눈부신 가을이, 하루 하루,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적확한 남성형은 떠오르지 않는다.)처럼 스쳐간다. 언제부터인가 날씨가 너무 좋은 날엔, 뭔가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에 살짝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그런가, 단지 어제 잠을 많이 자서 그런가, 오늘은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픽스 기어

믿음이란 것, 신뢰라는 것에도 먹이가 필요한 모양이다.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먹이가 필요하듯.
열악한 상황에선 더욱.

픽스기어 자전거를 선호한다는 사람의 얘기를 어제 오늘 연속 들었다.
정직하게 페달질을 한 만큼 1:1로 나아가는 자전거라는데, 그걸 탄다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보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타는 자전거가 픽스기어는 아닐 것이다.
그 맛을 몰라서일 수도 있겠으나, 끊임없이 페달질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단한 일일 것인가.
종종 발을 쉬어도, 혹은 종종 페달질을 힘차게 해두면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 일인가.

내게 필요한, 때로는 절실한, 믿음에도, 희망에도,
가끔씩만  먹이가, 페달질이, 있어주면 좋겠다.
내 안의 시스템이 픽스 기어일리는 없고
기어도 아주 낮은 것 같지는 않으니,
그것으로 족할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마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저 하필 오르막길에서 기어 변속에 실패하는 것일 뿐일까.
쓰잘데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이 대목에서 자전거 배우다 넘어져 피흘리던 기억이… 떠오르고 만다.

참으로 고단했던 하루. 몸과 맘이 기진맥진해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