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Blues

 

Good Morning Blues –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 1937

Jazz.
어쩔 수 없는 비주류, 열패감을 담을 수 밖에 없던 음악이라 했다.(황덕호)
그래서인가보다.
그에 대한 선입견을 제껴 놓았을 때, 그 음악이 이리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흑인 사회에서 많이 불리는, 오지 않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좀 쓸쓸한 크리스마스 캐롤이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억이 내게도 있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십여년 전(벌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그 전엔 정말 기억에 없다.)
라퓨타 라는, 꽤 높은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곳에서 선물을 받고는 정말 마음이 라퓨타-천공의 성-처럼 붕 떴었지. 한참 동안 내 핸드폰 벨소리가 그 애니메이션 주제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벌써 12월.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군.
올해는 조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건 모른 척하고 나 자신에게 근사한 선물이라도 선사해볼까나..

박카스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갑작스레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며 정신이 멍해졌다.
함께 있던 이가 맥주 한 잔 하자는 걸 완곡히 거절하고 약국에 들러 상비약과 함께 박카스 한 병을 사서 나오는데,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라는 CF 카피가 떠올라 머쓱한 웃음이 났다.
박카스란 것이, 원기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원기를 쥐어짜서 한꺼번에 몰아주는 것이라 했던가.
이래저래 몸엔 별로 안좋다지만, 갑작스런 피로의 간편한 응급처치용으론 그만한 걸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쵸코파이와 같은, 딱 그 만큼의 정감어린 무언가가 박카스엔 있다고 느끼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박카스 CF로는, 막차 버스 운전사가 종점에 이르러 잠든 학생을 깨우고 박카스를 건네며 “학생, 공부 하느라 힘들지?” 라고 말하는 것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학생, 술 쳐먹느라 힘들지?” 라는 변형 버전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카스의 힘으로 무사히 집으로 귀환하여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나서 냉장고에 남은 카프리 한 병까지 홀짝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얄님의 블로그를 봤다. 눈과 마음을 가지런하게 해주는 이미지와 글을 따라가다, “ 오직 그리고 쓰는 일에 집중하려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고, 삶을 더 간편하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는 대목에 이르니, 순간 내 피로의 원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박카스로도 회복이 안되는 피로를 줄이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
생존의 방식, 삶의 모양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하는 전화들이 있으므로 따라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산만해지고 방만해진 일상으로 인하여 몸과 신경세포 곳곳에 누적된 피로를 줄이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러한 작정이 필요하다는 생각.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얄님에게 마음을 모아 건투를 보내고, 나 자신에게도 건투를 보냈다.

첫눈

블로그 좌측에 달아놓은 날씨 위젯을 보고 첫눈(내게는)이 오는 걸 알아차렸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빼꼼 내다보니, 아주 소박하게, 방만하게 날리는 눈발이 포착된다.
첫눈이 온갖 처음인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첫사랑, 첫 산행, 첫 일출, 첫 여행, 첫 비행기, 첫 카메라, 첫 자전거… 첫 이별, 첫 죽음… 처음이 될 또다른 어떤 끝을.

소녀시대가 뭐길래

소녀시대의 노래를 안듣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트렌드에 민감해야할 웹기획자로서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냐, 란 비난을, 클라이언트였던 까칠한 (낯술을 한잔 걸친) 출판사 기획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 압도적이던 소녀시대에 대한 열광에, 소녀시대가 대체 뭐길래, 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별 관심이 가지 않아 여태껏 “방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있어 <훗> 뮤직 비디오와 그에 관한 글이 흥미롭게 읽힌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글이다.
 
최근 <훗>이라는 ‘컴백앨범’을 발표하면서 다시 돌아온(?) ‘소녀시대’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오빠들의 판타지’를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지지지>와 <Oh!>를 거쳐서 <훗>으로 종결된 이 장정에서 ‘소녀’는 성장해서 ‘여자’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녀시대에 대한 관음증적인 섹슈얼리티는 노골적으로 강화되었다. 이 관음증의 실체는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지속시키는 하나의 기제이기도 하다…..  
– http://wallflower.egloos.com/3499286 

또 혼잣말이다.

뱉을 수록 공허해지는 말이 많아졌다. 혼잣말도 늘었다.
성능이 현저히 약해진 핸디 청소기를 분해해 종이가 걸린 걸 빼내면서 “막혀 있었구나. 말을 하지… 참 너 말을 못하지” 중얼거리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와 함께 일본식 우동집에서 먹은 튀김류의 음식이 체해, 내려가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걸려 있다.  청소기처럼 분해해 꺼낼 수 없으니, 나의 둔함과 어리석음을 탓할 뿐이다. 기름진 음식을 조심하라는 친절한 동네 의사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내게 안맞는 음식을 조심해야해. 다짐해 둔다. 그 음식점을 나오면서 들었던 아르바이트 제안은 잊기로 한다.

몇 가지 일이 몸에 맞지 않는 음식처럼 내 안에 턱 걸려 있음을 느낀다.
소화시키지도, 게워내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가는 것이… 이 상태에 갇혀버릴까 조금 두렵다.
내가 만든 쇼생크.

내일 아침엔 시원한 김칫국을 끓여 부대낀 속을 달래놓고, 탈출을 모색해봐야겠다.      
     

김씨표류기

희망을 얘기하는 데 거창한 수사가, 제스츄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건 당연한 거지만,
짜장면이 너무나 간절한 희망이 되고, 퉁퉁 불어 한데 엉켜버린 짜장면을 뜯어먹으며 그가 보낸 희망을 받아 먹는 대목에서 아, 감탄이 나오고 코끝이 찡해졌다. 진짜루!

김씨표류기. 디테일이 좋은, 재밌는 영화였구나. 놓쳐버린 앞부분도 챙겨봐야겠다.
동네에서 맛난 중국음식 배달점을 찾지 못했으니 (지난 번 시켜본 짬뽕은 정말 실패였다.) 짜파게티라도 만들어 먹어야겠다.
나 역시… 희망을 수신하고 싶단 말이지.  
어디 먼 무인도 혹은 외계에서 날아오는,
퉁퉁 불어버린 희망일지라도.
아사히 생맥주 한 잔에, 머릿속이 영화속 그녀의 방마냥 어질어질.  
비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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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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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 자전거.
갑자기 불끈 용기가 생겨 질러 버렸고, 시승을 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해죽해죽 웃음이 나왔다.
나의 지름에 든든한 빽이 되어준 이들에게 감사.  
배울 수 있을 때, 달릴 수 있을 때,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페달을 밟아주겠다.  

청바지 무릎팍에 구멍을 냈고, 넘어질 때 접혀진 팔이 조금 아리지만
도전은 역시 아름다운… 지는 모르겠으나 보람차고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는 듯. 
(지금이 자전거나 장만하고 좋아할 때가 아니야, 라는 말을 듣게 된 상황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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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산울림 소극장 맞은 편 골목길의 “꽃” 문앞에서 발견했던 안내 포스터.
보지는 못했지만 공연도 하는 모양이다.
내가 (많은 이들이 그렇듯) 동경해 마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여사장님이 노래도 한다했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나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은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것!! 가만히 두지 않갔어!!!” 라는 문구가 갖는
도발성을 생각하면.. 멋지다! ㅋ
(열심히 안하는 사장님이 마음 내키는 데로 문을 닫기도 한다니, 멀리서 찾아왔다간 헛걸음할 수 있음.)

Gon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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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phone 5478022042.mp3


                                                   Gone Again, Red Garland Trio <Groovy>

통통통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맑고 쨍한 딱 오늘 같은 초겨울의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해지기 전의 온화한 햇빛을 내다보다 살짝 머리를 기댔을 때 전해오는, 투명한 버스 유리창의 기분좋은 한기같은. 쿨해서 매력적인 그/그녀의 서늘한 이마같은.

재즈라는 스타일

노라 존스는 재즈가수인가, 라는 논란이 꽤 크게 있었던 모양이다. 재즈가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크게 성공한 그녀의 노래는 전혀 재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팻 매시니의 음악은 재즈적인 것인가. 탐 웨이츠는? 이런 논란 속에서 재즈는 사실상 스타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고, 이는 사진계에서 들리는 다큐멘타리에 대한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다큐멘터리(형식이라 해야할 지 분야나 장르라 하는 지는 모르겠으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큐멘터리적 스타일로만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전혀 이질적인 두 동네에서 보이는 논란이 참 닮아 있는 것이 흥미롭다 생각하고 나니, 그 밖에도 전체적인 이미지랄 지, 역사적 형성 과정이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행해왔던 역할 혹은 실천 같은 것들에도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P선생이 추천해준 에릭 홉스봄의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를 주문했다. 알라딘 중고코너에도 올라와 있었는데, 새 책과 가격이 같다. 알라딘 중고를 꽤 짭짤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유용한 책을 헐값에 사기도 하고 얼마 전 상태 좋은 책들을 되팔아서 십만원이 넘는 적립금을 받았다. ㅋ) 절판된 책이나 음반들이 두 배나 넘는 가격으로 올라오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예전에 폐기처분된 LP판들과 책들이 아쉬울 때도 있다.  

토요일이라 다음 주에나 올 책이 궁금하여 책 내용을 찾아봤더니 정작 재즈에 관한 언급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원제는 <Uncommon people>이란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영국 노동운동에서 시작하여 아방가르드 예술과 사회주의와의, 농민운동, 베트남전을 관통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재즈란 것과 연결되는 그 사유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