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굿나잇

 

Dream sweet dreams for me Dream sweet dreams for you

Now it’s time to say goodnight good night sleep tight
Now the sun turns out his light good night sleep tight
Dream sweet dreams for me Dream sweet dreams for you
Close your eyes and I’ll close mine Good night sleep tight
Now the moon begins to shine Good night sleep tight
Dream sweet dreams for me Dream sweet dreams for you

자라지도 않고 늙어가기.

몇 년만에 전화통화를 하게 된 이선생님.
점이나 토정비결 같은 걸 볼 필요도 없는, 인생을 뻔히 알게 되는 나이로 늙어가고 있으시단 말에, 
“저도 많이 늙어가고 있어요.. ” 했더니 “넌 자라지도 않고 늙어가니?” 하며 웃으신다. -,.-
이런 저런 근황을 물으시는 말엔, “이전이랑 똑같은 모양으로 살고 있어요” 라고 대답을 하고,
“그럼 똑같이 이쁘겠네” 라는 말씀에, 나를 이쁘게 보아주셨던 십여년 전의 선생님 눈빛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 날씨는 넘 춥다. 으~)

재밌게, 즐기면서 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살아보니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바둥대는 거, 그거 별거 아니더라, 공허한 것이더라는 말씀.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타고난 열정을 소유한 부류이고 또 한 부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무언가에 집착해서 부족한 에너지를 가지고 아둥바둥대며 삶을 탕진하는 사람이란다. 그 중에서 당신은 후자라 했다. 그리고 그게…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보니 대략 헛헛하더라는 것.

돌이켜보면 십여년 전에 내게 해주신 얘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상당 기간 가까이서 작업하시는 걸 보고 같이 와인을 마시면서, 그러한 열병과도 같은 열정과 외로움은 늘 그분의 작업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기 위한 원초적 힘이고 동력일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었다.
두 부류중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내 과는 없는듯. 나는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올해는 이상스레 연말을 보내는 마음이 편안하다. 불안도 회한도 꽤 많아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랬던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신년의 토정비결이 꽤 좋아서만은 아닌 거 같고… ‘자라지도 않고 늙어가’는 나도, 이제 인생에 대해 뭔가 알아가고 있는 걸까.

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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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재즈라이프>를 보았다. 재즈평론가이자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 <Jazz it up!>의 저자 남무성이, “아무도 해주지 않아서 우리가 만들었다”는 영화다.
한국판 <부에나비스타 쇼설클럽>라는 타이틀을 걸었다지만, 영화는 그보다 소박하여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지는 대신, 한국의 재즈1세대에게 바치는 영화답게, 재즈 원년을 개척해온 노장들의 음악인생, 재즈 라이프에 보다 밀착해있다. 재즈연주가 묘기대행진에 출연(류복성)하는 척박한 한국의 상황속에서, 가난하고 춥고 외로웠지만 “재즈는 인생”이고 “음악을 잘해야 사람이 되는”(이동기) 것이며, 어려울 때면 “그래, 난 블루스를 더 잘 부를 수 있게 될거야”라고 다독이면서(박성연) 매 공연이 역사가 되는 생을 이어왔던 그들의 “마이웨이”(김준).
“재즈는 항상 새롭잖아. 재즈는 늙지 않아.”라고 외치는 그들은 그 열정으로 “아직 전성기”를 산다. .

그들의 온생을 버텨왔던 열정과 그를 녹여낸 음악만으로, 어떤 영화적 구성이나 기교없이도 재미와 애잔하고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비록 첫장면의 금연광고로 오인될 만한 담배연기 장면은 좀 쌩뚱맞았고,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장의 쓸쓸한 뒷모습 뒤로 신사복 아저씨가 오바이트하느라 허리를 꺽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왔지만  -,.-) 또한 한국의 재즈역사를 일궈온 노장들에 대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소중히 품고 가야할 귀중한 기록이라는 사실 또한 영화의 가치와 무게를 더한다.

마지막 나레이션은 그들의 열정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가지고 가지 말아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라 말한다. 젊은 후대의 재즈뮤지션들과 함께 하는 연주 속에서 과연 그들은 이제는 외롭지 않아 ‘보이고’ 행복해보인다.

피터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이동기 할아버지의 클라리넷 연주가 짠하게 다가왔고, 한국의 마일즈데이비스 연구가로 불린다는 강태환선생의 실험적이고 영적인 연주도(이건 한국 뿐 아니라 전체 재즈 역사상 한 획을 그을 수 있도 있는 사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트럼펫 강대관선생의 뒷모습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젊은 뮤지션 임인건의 피아노 연주 <강선생 블루스>도 인상적이었다.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음악으로 이렇듯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노장들의 삶의 애환이 촉촉하게 묻어나는 연주 뿐 아니라 , 함께 하는 한국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도 맛볼 수 있다.(맛을 볼 뿐이지만)

오는 28, 29일에 브라보 재즈라이프 콘서트가 있다는데 전석 매진이고, 12월 28일에 상상마당에서 관람을 하면, 추첨하여 10쌍에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콘서트 티켓을 준다는데, 아쉽게도 영화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음. 경품운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거기 좌석 그리 많지 않은데. 쩝.  
안보신 분은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 투박하고 다소 피상적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중음악 문화의 일부분을 온 삶으로 만들어온 분들의 이야기므로! 이왕이면 28일에 상상에서 보고 운좋게 당첨이라도 되면 좋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티비에선 온갖 달콤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는데,  오늘 신문 1면 헤드라인은, “GDP대비 복지예산 내리막길 / 보수단체, 조계사 난입 행패 / 소 13만3천마리 ‘구제역 백신’ 접종” 이고, 간밤의 한파로 베란다 수도관이 얼어 세탁기가 안돌아간다. (간밤에 환기 시킨다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았다 그냥 잠들어버린 게 더 직접적인 이유겠지마는. 어쩐지 춥더라… -,.-)

그래도 크리스마스.
며칠 간 동네 길거리에 가득가득하던 놀러나온 아이들, 젊은이들,(휴 어젠 약속 장소 나갔다가 커피 마실 좌석 하나 찾기 어려웠다는.) 몸살 안걸리기를, 그보다 추운 겨울이 더 추운 이들… 좀 덜 추울 수 있기를.
행복한 일터를 경작하길 꿈꾸는 당신… 그 꿈 꼭, 곧, 현실화될 수 있기를. (^^)
새로운 배움에의 도전으로 설레이는 당신, 그 배움으로 더 깊고 풍요로워지기를.
부러운 여행 이야기에 “끓”고 있는 당신 앞에, 더 멋지고 “엄청나게 즐거운” 여행길 곧 열리기를. (ㅋㅋ)
당신의 기다림이 당신 삶에 큰 온기를 선사할 수 있기를. 당신을 따뜻하게 지켜줄 수 있기를.
이젠 좀 웃으면서 살아보려해… 하며 엷은 웃음을 지어보이던 당신, 더 환하고 큰 웃음 지을 수 있기를.
오늘도 문 앞을 서성이는 당신, 더 큰 날개짓으로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기를.

촛불 하나 켜놓고 주섬 주섬 이런 저런 생각들에 잠겨보는,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곡 중에 이 노래가 있다.
어느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친구가 데려갔던 신촌의 <놀이하는 사람들>에선,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비틀즈의 노래를 죄다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 중 한곡.
그런 기억과 함께, 노래가 주는 분위기-  추운 날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행복한 기원,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가, 영락없이 크리스마스 느낌으로 이끈다.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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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심중에 자리하고 있던 문제와 관련되어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띈 김영민의 <공부론>
하던 일을 일단락 마무리해놓고 잠깐 들춰보려 했던 것이, 화장실도 안가고 그 자리에서 반 이상을 훌쩍 넘겨버리다, 허기가 심하게 느껴져서야 도서관을 나왔다.  
저자의 여전히 매력적인 문체는 그가 양식(typus)과는 구별되는 스타일에 대해 언급한 바처럼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느낌이고, 그 안에 담긴 선명한 사유는 나의 처지와 고민과 만나 폴폴 날아와 내게로 앉는 것 같다.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 는 것이 책의 부제이자 인문학 공부의 이치.

‘호의와 싸우는 유례없는 연대의 길'(동무)을 말했듯이, 다시 ‘알면서 모른 체하기'(공부)라는 오해많은 권면勸勉을 합니다. 그것은 당기되 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아는 것을 버텨 내며 그 온축(蘊蓄)의 숙성을 기다리는 것이고, 명중이라는 획지이추(劃地而趨)를 굳이 힘겹게 에둘러 시중(時中)을 찾아가는 것이며, 일상(日常)과 비상(非常)을, 체계와 개인을 동시에 지양하며 그 위태로운 사잇길을 걷고 또 걷는 것입니다. – 서문

그 공부의 권면은 생각보다 살뜰하다.

자기생각의 악순환 속에서 경화하는 짓은 그 모든 공부의 지옥인데, 그 지옥을 뚫는 길은 타자의 지평을 얻는 길 뿐이다. … 공부하지 않는 이들, 자기 생각과 경력의 오연(傲然) 속에 자의식의 깃발을 꽂은 이들, 싸워도 영영 죽지 않는 이들, 그리고 타자의 세계를 오직 자기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의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자기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 있는 관념의 덩어리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cognition)은 재인식(recognition)의 동화체계 속으로 내재화시키는 짓이며, 이때 타자는 자신의 거울방에 다만 그림자를 남길 뿐인 풍경이다.

문제는, 관념과 그림자의 거울방을 깨고 나가서 실전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묻는 일이다.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자기체계의 안정화가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에 기민하도록 탄력있는 긴장의 상태로 스스로를 부단히 조율해가는 일이다.

공부가 변화의 비용이고 그것이 결국은 몸의 주체적 응답의 방식일 수밖에 없다면, 공부란 삶의 양식을 통한 충실성 속에 응결한 슬기와 근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두커니 서거나 이드거니 걸으면서 현명한 인간, 혹은 공부하(려)는 인간은 물 속에 물을 담근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든 탓으로 혹간 몸에는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생활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며, 마침내 ‘변덕’이 범접할 수 없는 지경으로 ‘변화’하고 마는 것이다.

변화를 위하여, 슬기와 근기를 끌어 모아, 공부를 해야겠다.
언젠가는 깊이 잠들어도 편안히 호흡할 수 있다가 마침내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가 생기는 일을 꿈꾸며.


* 원어데이-하루 동안만 한 가지 상품을 대따 싸게 파는 쇼핑몰-에서 주문한 크리스마스 특집 <나초와  친구들>이 배달되어 왔다. 커다란 나쵸 4봉지에 치즈소스와 할라피뇨 홀빈캔 등이 푸짐하다.  
연말까지 오픈하기로 한 사이트를 얼릉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나쵸와 친구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대체로 구입하는 책들보다 빨리 읽게 되는 건 반납예정일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데드라인이 있는 것이다.
온 생애가 대체로 벼락치기였던 내게 데드라인이 없는(실은 없다고 오인했던) 일들은 죄다 뒤로 연기되었고, 그로 인해 사는 일이 꽤 번잡하고 버겁고 수고스러워졌다.
하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살아가야 하고…
데드라인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며,
한 해를 보내고 오는 새해도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나쵸와 친구들과 함께.

맥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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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떠나게 된 동네 주민의 호출로 망년회 겸 한 잔.. 이 아닌 20병.
마침 홈플러스에서 세일을 해서(수입맥주 무조건 5병에 만원.)평소에 가격 때문에 잘 못마시던 애들을 신나게 골라 담아 매서운 바람을 뚫고 사가지고 와서 신나게 마셨다.  
내 입맛을 제일 당기는 건 역시 에딩거. 오래 전 인사동에서 좋은 벗과 비싼 가격에 놀라며 천천히(비싸니까 당연히ㅎ) 음미하며 마셨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울라너도 굿. 다 나갔는지 기네스가 빠져서 약간 아쉬움.  
22일까지라니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라.

내가 거의 가는 일이 거의 없는 장소가 대형마트라, 어쩌다 일년에 한 두번쯤 따라가게 되면 그 왁자지껄하고 풍성한 먹거리들이 좀 낯설다. 세상에 먹을 것들이 이리 많다니! 끼워팔고 묶어파는 그 저렴한 가격에 슬쩍 눈이 가는 아줌마”적” 본능(진정한 아줌마의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여)이 감지되기도 하는 걸 보면, 차 없고 게을러 이런 곳에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게 다행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맛난 맥주나 와인 같은 걸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단 걸 생각하면 그게 조금 아쉽긴 하다.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게 맛난 술을 직접 담가 멋나게 마시는 걸… 해볼 수 있을까. -,.-

춥다

파랑색 잉크가 추워 보여서 브라운색 잉크를 주문했는데,
방금 도착해온 잉크병을 열어보니 팥빙수같은 얼음이 가득… -,.-
휴~ 날씨가 정말 춥구나.
맹추위에, 다들 안녕하신지.

방안에서 보일러 돌리고 자그만 전기히터도 약하게 켜놓고 두툼한 후드티에 패딩조끼까지 걸쳐입고
따뜻한 차 마시며 컴터 앞에 앉아 일하다가
문득, 어떤 이들의 안부가 염려스러워…

잉크와 이름

오랫만의 공원 산책길.
너무 오랫만이었나, 어느새 나무들이 나뭇잎을 다 떨구고 가리워졌던 배경이 훤해졌다.  
차분히 넓어진 느낌이 다정하고 넉넉해보였다. 황량하거나 쓸쓸해보이진 않았다.
오랫만에 시와의 <소요>를 들으며 걷다가 생각했다. 이름 정말 잘 지었군.

연말을 맞아 사용빈도가 떨어지는 펜 세 개와 잉크 세 병을 분양했다. 저가펜이지만 한정판으로 나왔던 라임색상과 까페의 기념각인이 있던 것을 포함해 모두 쉽게 새주인을 찾았다. 꽤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이걸로 화이트크리스마스 느낌이 나는 펜 하나를 영입하고 맘 잘 통하는 지인들과 술 한잔 할 정도의 차액이 남았다.

펜까페에서는 중고매매가 활발하다. 안쓰는 걸 팔고 필요한 걸 사는 차원을 넘어 서로 바꿔쓰고 돌려쓰면서 그 과정을 즐기는 이들이 꽤 많다
이런 영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린 쓰지 않는 걸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바꿔 쓰고 돌려 쓰는 게 이 무시무시한 자본주의의 욕망에 대한 소박하고 소심한 저항일 수 있으니.
어쨌거나 각종 장난감이 너무 많아졌고 우리의 장난감에 대한 욕망이 너무 디테일해졌다.

내보낸 잉크는 까렌다쉬 아마존, 제이허빈의 인디언 오렌지, 세일러 극흑이다. 다들 제 이름에 딱 어울리는 색을 가졌다. 앞의 두 개는 너무 화사해서 사용빈도가 적었다. 정말 깜깜한 극흑은 종이 뒤에 잘 비치지 않아 다이어리에 쓰기 좋아서 반 이상 썼는데, 어느 순간 그 먹먹한 색과 점성 강한 쫀쫀함이 재미없어져 흐름 좋은 오로라로 바꿨다.

잉크를 세 병 내보내고 나니 새로운 잉크들이 눈에 띈다.
농담이 멋지고 잉크병이 호사로운 몽블랑의 미드나잇 블루를 써보고 싶었는데 잉크치곤 너무 비싼 데다 잉크 보존 성분이 있어 만년필엔 안좋다는 얘기가 들린다. 방부제가 몸에 안좋듯이. 세일러의 시즌잉크들도 색상이 예쁜데, 일본 잉크들은 착색이 잘 된다는 우려가 있다. 세필에 최적화를 위해 잉크입자를 작게 설계한단다. 역시 일본답다는 생각이다.
 
파이롯트의 이로시주크 잉크색은 정말 환상적이다. 월야나 부유시(홍시) 같은 색들이 잠깐 눈에 띄였다가 럭셔리한 가격과 사용 가능성이 낮아 포기된다. 내가 쓰고 있는 프랑스 제이허빈의 “달빛 그림자”와 이 일본 제품 “월야”가 전혀 다른 색이라는 게 재밌다.  
아래가 이로시주크 잉크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by bestpen)

이로시주크란 단어는 색채물방울이라는 뜻이란다. 색상이 죄다 우수하기도 하지만 이름도 참 잘 지었다. 유사성을 근거로 하는 것이긴 하나, 더할 수 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색상에다가 월야니 산포도니 솔잎에 맺힌 물방울 같은, 낭만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이름을 붙이는 이 마케팅의 힘이란…  참 대단타.

“텅 빈 무정형”, “밑 빠진 총체성”이라 할 지라도… 이름이란, 어쨌든 “항구적으로 그리고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단 하나뿐인 개인을 지시할 수 있는 사회적 신원 확인의 표지”(Louis Marin)인 것이므로…
이름이란 중요한 것이다. 또한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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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처럼, 매 호흡이 의지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삶을 사는 일…

냉장고에 김치가 가득

대학 때 단짝이던 친구가 신랑과 함께 김치를 종류별로 싸들고 나타났다. 유난히 김치가 풍족한 겨울이다. 기껏해야 종갓집 김치, 농협 김치 정도를 먹던 내 혀가 호사중이고 밥먹는 게 늘었다. 냉장고에 가득한 김치가 뿌듯하기 그지없고, 김치에 딸려온 나물이며 된장국, 달래장까지 맛을 보고 나니 온 몸 가득 기분좋은 포만감이…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건재할 은행에서 승진가도를 달리던 친구 신랑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는 얘길 들었다. 일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살다보니 재미가 없어졌다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모르긴 해도 그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로 판단할 때 매우 의외의 결정이어서 그의 용기에 (더불어 그것을 지지해준 친구의 용기에도) 찬사를 표하고 축하도 해주었다. 대낮에 페퍼그릴 햄버거를 먹으며 맥주로 건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뭐냐 물었더니 기타를 배우고 싶다며 내 기타를 뚱땅거렸다. 정치적 성향도 그렇고 삶에 대한 가치관도 참 보수적이던 사람인데… 친구랑 참 많이 닮아간다는 느낌이다. 표정도 눈빛도 얼굴 생김까지도.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 대한 시선이 더욱 애틋해지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걸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커플. 좋은 파트너를 만나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건 참…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보았다. 우리 시대의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스승으로서, 온 삶을 통해 당신이 보여준 그 진정성과 치열함이 없었다면, 이 땅의 지식인, 스승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은 훨씬 어둡고 쓸쓸하고 희미했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