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춥다.
그리고 참 멀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눈과 커피와 찰떡 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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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예쁘게” 오고 밤이 되었다.

등산화를 신고 눈길을 헤치며 커피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커피가 떨어지는 게 불안해서다.
언덕을 엉금엉금 올라오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중독이야. 웬만하면 좀 참을 만도 한데 말야’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
‘중독이 이런 거구나. 역경을 무릅쓰게 하는 것.
나는 좀 더 많은 것에 중독이 되어야겠다.’

이왕이면 좀 좋은 것, 가치로운 것에 중독이 되면 좋을 것이다.
노년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집필에 매달렸다는 박완서 선생의 그것처럼 대단한 것은 아닐 지라도.
(예를 들면 기타!)
그가 남긴 말 한 귀절이 맘에 와 닿는다.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

노구에도 청춘인 상처를 품고 치열한 삶을 사셨던 위대한 문인, 그 분의 명복을 빈다.

방금 볶은 듯 윤기나는 원두가 예쁘고,
따뜻한 커피와 마시는 찰떡 아이스 맛이 기가 막히다.
패밀리마트에서 2+1 행사중이다.              

물이 안 녹아…

이상하다.
세탁기 안에 옷과 함께 꽁꽁 얼어버린 얼음을 녹이려, 강력한 선풍기 히터를 하루종일 앞에 틀어두고 있는데, 표면 주위만 살짝 녹은 상태로 아직도 그대로다.
열흘이 넘도록 빨래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망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호수를 빼고 여기저기 살펴보다 선풍기 히터로 녹이기도 소용이 없자, 월욜에 새 세탁기를 들여주기로 결정. 구십 몇년도 형이라 꽤 노후화되어 불편한 것도 있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문제는 안에 얼어버린 내 옷. 그걸 빼내야 하는 미션이 남았는데 이게 요지부동이다.
베란다 온도를 재보았더니 11도. 게다가 세탁기 몸체 바로 앞에 서 강력한 선풍기 히터로 표면이 뜨겁도록 달구고 있는데 어찌 얼음은 그대로 꽝꽝 얼어있을까?
빙점 영도를 넘으면 녹는게 아니었나?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처럼, 그 마음을 녹이기 위해선 얼 때보다 훠얼씬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한 것처럼, 그런 것인가?  

타자는.

이 귀절이 자꾸 떠올라 빠작거렸다.

타자의 세계를 오직 자기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의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세상은 오직 자기생각의 표상으로만 의미 있는 관념의 덩어리다. 그들에게 모든 인식(cognition)은 재인식(recognition)의 동화체계 속으로 내재화시키는 짓이며, 이때 타자는 자신의 거울방에 다만 그림자를 남길 뿐인 풍경이다.
                                                                                                             -김영민의 공부론 中

참으로 쓸쓸한 풍경이 아닌가.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아침에, 눈을 뜨기가 몹시도 싫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얘야, 눈을 떠야지. 눈을 뜨고 살아야지” 라고 혼자 달래듯 중얼거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전생에 돌고래였던 거 같다고, 매순간의 호흡이 의지적 노력이라는 돌고래의 체질로 태어난 것 같다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떤 기관 혹은 감각들이 자율신경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고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그런데, 하지 못했다.
이유는……
눈을 뜨고 살기 위한 일들을 시작하자,
압도적이던 그 느낌을 까맣게 잊어 먹었기 때문이다. 흐흐
어쩌면 이 망각이, 생존을 위한 자율신경의 작용일까.
자율신경이 존재한다는 증거일까.
 
맘에 꼭 드는 명함지갑을 선물로 받았다.
딱 내가 갖고 싶어하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주는 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으름 때문에 미루고만 있던 명함을, 급한 일 끝나는 대로 곧 만들어야지.
프리랜서 주제에 명함도 없이 다닌단 말도 들었고, 좀 불편하기도 했다.
원래 생각했던 디자인을 조금 변경해야겠다. 명함지갑에 어울리는 것으로.
명함지갑에 어울리는 명함 만들기. 재밌을 지도 모른다고…

토정비결

아이폰으로 공짜로 볼 수 있는 토정비결에서 올 한 해의 내 운세는 기가 막히게 좋다.
술자리에서 자랑을 했다가 ‘토정비결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듣기도 했지만
재물과 지위, 일에 대한 성취와  인간관계, 애정운에 이르기까지, 운세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말들을 죄다 끌어다 놓은 것 같다. 
좋은 말들이야 다 믿고 싶은 법이지만,
그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가장 믿고 싶은 건 이거다.

아픔이 있어도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인연이 많은 해이므로 위로하며 또 다른 인연이 나타납니다. 매사가 즐거운 해이니 시간이 가는 것도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멘”(그렇게 되기를 믿습니다, 라는 뜻이었던가)으로 화답하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무상급식과 사치

사람 이름 잘 잊어먹는 거야 십여년 전부터 그랬으니 염려말라고, 십년 넘게 나를 만나온 모군이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문득 문득 어떤 단어들이 낯설게 느껴져 의미를 헤아려보게 되는 건 아직도 꽤 낯선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아는 얼굴인데 내 기억 속 지형도 어디쯤 속해 있는 사람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친숙했던 단어가 놓인 맥락이 그 의미를 헷갈리게 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한다.
하긴 쇼핑문화라든가, 소비문화라는 말처럼 그 조합이 참 생경하다가 시간이 흘러 익숙해진 것도 많구나.

오늘 포탈뉴스 헤드라인으로 뜬 “무상급식은 사치”라는 말도 그렇다. 무상급식과 사치라는 단어의 만남은 아무래도 어색해서 사치라는 단어의 뜻을 헤아려보게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말이라는데, 설립 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삼성이라는 그 위원회의 이름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동반성장”하자는 사람이,  “재벌 총수 아들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을 하는 것도 좀 어색하지 않나. 왜 말이 안된다고 느낄까.
기억력의 쇠퇴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들의 ‘말’은 확실히 ‘나’ 또는 ‘우리’의 말과 다른 것 같다.

인상파, 파리를 그렸다고.

얼릉 자러 가야겠다고 후다닥 네이트온에서 나왔는데, 새로 나온 책소개에 낚이어 오랫만에 들른 이택광의 블로그에서 한참을 낄낄댔다.
정체가 모호한, 쥔장에게 집요하고 공격적인 드래곤워커라는 이의 댓글에 가하는, 다른 이들-쥔장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의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그러나 귀여운) 오독과 딴지들 때문이다. 사람들이 참…. 재밌다.
쥔장은 이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어떤 표정으로 읽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뭐 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 나온 김에 옮기는 책 소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allflower.egloos.com/3548613 
네이버에 연재를 하고 있었던 건 몰랐다.
뭔가 새롭고 때로 볼만한 것도 끊임없이 시도한다 싶은데도, 포탈에 대한 거부감이 작용하는지 잘 들여다보게 안된다.
이 사람이 쓴 미술책은 (그가 쓴 다른 책에 비하면 상당히 ) 쉽고 꽤나 재밌다.  
그의 말대로 “이야기책”처럼 술술 잼나게 읽히는 “그림책”같다.
책을 블로그에 소개해야지 하고 펴보았다가 계속 낄낄대고 책장을 넘기게 되는 바람에 왜 책을 폈는지 잊어버리고 포기해버린 적도 있다.
이번엔 인상파다. 기대가 된다.
부제가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 산책”

음. 정말 해보고 싶다.
뭐 굳이 인문학자와 함께 걷지 않더라도. 진짜로 인상파 그림을 산책하는 거.
책을 보면 그 욕망 더욱 거세어질 것인데. -,.-

” 인상파의 삶이 어떻게 당대의 세계에 밀착해 있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이런 일상의 파편들을 끌어들여서 모자이크를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라는 책의 일부내용.  

우리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배워야할 것들은 이제 하나의 고급 상품으로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겉모습이라기보다, 이처럼 당대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현재성의 예술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실천의 과정은 생각처럼 그렇게 화려하거나 멋있는 광경을 펼쳐 놓지 않는다. 드가처럼 여성혐오주의자가 있었고, 모네처럼 허세를 부리던 댄디도 있었다. 사생활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던 마네로부터 평생 가난에 시달리면서 모든 세상의 불행을 짊어진 것처럼 보였던 시슬레도 있었다. 그러나 피사로나 모리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파의 사명과 이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화가들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뒤랑-루엘 같은 불굴의 집념을 가진 화상도 인상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이 책에서 나는 화석으로 남아 있는 인상파의 삶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다시 되짚어보는 이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일 것이다. 이들은 결코 예술을 위해 몸 바친 순교자도 성자도 아니었다. 이들도 우리처럼 개인의 열정과 자본주의의 삶을 서로 조화시키고자 부단하게 노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모네를 제외하고 절대 가난과 이로 인한 만성 우울증에 끊임없이 시달려야했다. 후일 인상파에 영향을 받은 반 고흐와 고갱이 화가공동체를 꾸려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도 이런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겨울 나기

날씨가 정말 춥구나.
추위를 핑계로 방안에서 빈둥빈둥.
할 일이 많은데 진도가 안나간다고 일어나 어슬렁거리다
커피를 반통은 내려 마신 것 같고, 인터넷으로 주문해 채워두었던 냉장고도 표나게 비어간다.
냉장고가 너무 작은 게야, 라고 항변한다.

주원앓이가 대세라든가.
밥먹는 사이 켜놓았다가 보게 된 드라마속 남자는
목소리가 내 아는 이와 꼭 닮았다.
현실속의 그는, 물론, 목소리만 닮았다.
그런데도 추억이 어른거리는 걸 보면,
목소리가 일으키는 연상작용은 강력하다.
아니, 드라마의 환타지가 그러한 것인가.

ㅊ삼촌은 겨울이 좋다고 했다.
“겨울이 좋을 수 있는 건, 따뜻해질 수 있어서야. 그러니까 겨울은 따뜻해야 하는 거거든.”

겨울을 좋아하기 위해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고 전기히터도 수시로 틀고 따뜻하게 밥을 해먹고 따뜻한 커피도 수시로 마신다.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다 세일한다고 함께 들여온 전기 방석은 두어 번 틀어보곤 냅두었다. 너무 따뜻해서다.
전기세가 신경쓰이는 것도 있지만, 추운 겨울에 너무 따뜻하게 지내는 건 좀 찔리는 일이다.

베란다에 세탁기와 하수도가 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닥에 손이 안닿아 까치발을 하고 버둥거리게 하던 덩치큰 구식 세탁기는 옷가지 몇 개를 끌어안고 꽁꽁 얼어 있다. 이젠 간단한 건 손빨래를 해야한다. 손빨래 하는 게 싫어 니트류 같은 연약한 옷은 절대 안사는 나이건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추운 데서 찬물로 하는 거 아니면 손빨래도 할 만하단 생각이 든다.

자그만 방안에서,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고, 최소한의 반경으로 사고를 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박고 손가락만 까닥이며 다시 최소한의 일을 한다.
환기를 하려 잠시 창을 열었다 들여마신 바깥세상의 공기는 너무나 차가운데,
나는 ㅊ삼촌처럼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은가보다. 

*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영하 50~70도를 오르락내리락한다는 러시아 마을을 소개했다.
 뜨거운 물을 컵에 담아 허공에 뿌리니 바로 얼음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뿌려지고, 언 바나나는 망치로 쓸 수 있단다.
그 곳의 겨울이, 삶이 궁금해진다. (추운 겨울 나이테의 단단함, 촘촘함, 밀도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

시간

해야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시간을 다투는 일일 때, 시간은 너무나 빠르고 성급하게 달아나 버린다.
이럴 땐 우리가 감지하고 있는 시간이란 것이 정말 본질적으로 균질하게 수량화, 계량화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번잡한 일상에 치여 어~ 하고 있는 사이 허투루 우루루 빠져 나가는 시간의 뒤통수를 망연히 바라보다 생각한다.
휴~ 이 생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난 도대체 무얼 하고 살아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