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뚝

기어이 비가 또 오니, 내 블로그의 타이틀 보기가 민망하다.    

어찌 지우제(止雨祭)라도 지내야하나….

모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이 나이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요즘 이해가 안되는 일 중 가장 “피부에 와닿는” 건 내 방안의 모기다.
창문에 방충망은 물론이요, 모기향 퇴치 효과가 있다는 한살림 섬유 탈취제에, 홈매트 전자 모기향에, 피우는 모기향(이건 작년에 이화님께서 알려주신대로 베란다쪽 문앞에 피워 놓았다.), 뿌리는 에프킬라 까지 구비해놓았는데도 모기가 내 눈 앞을 경쾌하게 날아다닌다. 때로는 한쌍이 짝 지어 보란 듯이 신나게 곡예를 한다.
 
얼마 전 원터치 모기장을 장만한 뒤로 잠 잘 때는 피해가 없는데 문제는 깨어있는 시간.
일의 특성상 모기장 속에서 일을 할 수도 없다.
도대체 모기는 어디로 날아 들어와서 내 방안을 활보하는 다니는 것이며
어느새 지금처럼 내 몸에 생채기를 내버리는 것일까?
하긴, 어떤 튼튼한 방어 전략과 기제를 보유하고도 허술하게 뚫리고 마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 많지만)
그게 모기에 대해서 라는 건 좀, 기분이 좋지는 않단 말이지.
모기, 너마저… 이런 생각이 들잖어.

고개를 들어봐…

…….

“우리모두는 혼자”니까,

그러니 우리는 더 서로 사랑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요없이 끊임없이 말을건다

그렇게 따스하게 손을 건네는데,

성의있게 응답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from <시와 무지개>

안녕하신가요..


거미줄

                         손택수

어미 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 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꿈자리까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 한바탕 물난리가 이 땅을 휘쓸고 가니 무심히 지내던 이들이 건네오는 안부에 살짝 다정함이 실린다.
살살 조심해서 살자는 말에 애틋함마저 가미된다.
핏줄이나 오래고 가까운 인연 뿐 만이 아니다.
사무적으로 오가는 전화, 메일이나 문자 말미에도 훈훈한 인사 한 마디 덧붙어 있다.
순간, 개미처럼 페로몬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같고, 겹꽃의 세상인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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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lway

비가 그쳤다.

비가 그쳤고, 날이 개었다.
많은 삶의 터전을 할퀴어버린 “수마”가  지나가는 동안, 고작 벽에 스며든 물기를 날려버리고자(혹 누전같은 사태가 일어날까 싶어) 보일러를 틀어놓았던 나는 땀을 흘리며 잠이 깨었다.
한 지인의 블로그엔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얘기가 올라와 있어, 휴~ 큰 숨이 쉬어졌다.
신의 존재에 대해 그가 아내와 나눈 대화를 읽고 나자, 뜬금없이 어릴 때 읽었던 책의 한 귀절이 생각났다.
중학교 시절 교회에 다니던 내게 최초의 의문부호를 안겨주었던 소설의 말미에서 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나는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너희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라고.
신이 있어서이든 없어서이든, 있는데 침묵하고 있는 것이든 고통받고 있는 것이든 간에,
우리 삶의 기반은 (생각보다) 참 취약하기 그지없고,
갖은 다행과 불행이 여기 저기 널려있다.
그 이유를 신의 존재로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신이 있어서’ 보다는 ‘신이 없어서’인 것이 좀 낫지 않을까?
(신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경우가 꽤 있을 것이므로…)
   
 
* 책의 제목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위 문장을 써놓고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찾아보니,
아무래도 엔도 슈사쿠의 <침묵>인 같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가 삶의 일부분이었던 내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책인데, 디테일은 기억에 없다.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른지.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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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ickrock Mountain in Dublin)
어떤 약속 같은 거 없어도 좋으니, 이제 그만 무지개를 보여 주세요.

악몽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

내가 나 나자신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려 하려는데 꼼짝하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깨어났다.
뭐지, 이 기분 나쁜 꿈은?
지금 시각 4시 44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T.T
* 조금 늦게 일어났고, 몸이 찌부드하다 생각했고, 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서 이거저거 끄적끄적 손을 대다가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 생각했다가, 쓰다만 이 포스팅을 보았다.
아, 간밤에 잠깐 가위에 눌렸던 걸 잊어먹고 있었구나.
요즘엔 뜸하지만 예전엔 가위에 눌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체로 누군가에게 목을 졸리거나, 일찌기 생을 마감하신 분들이 나타나 같이 가자 잡아 끌고, 내 몸은 내 의지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노멀한 양상의 가위다.
그런데 오늘은… 이게 뭘까? 나의 적이 나 자신이 되었다는 의미? 내 탐욕이 나를 소진시키거나 소멸시키고 말 거라는 경고?  
꿈속에서 내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비대한 덩어리 같았다.
그 느낌이 참… 고약했다.
이게 내 안에서 보내오는 시그널이라면…
으~ ~ 뭘까, 이거.  T.T

Meow- The cat duet

다시 듣게 되는 묘한 울림이…. (들어보시라)

via unheim

천둥 번개

장대비다.

번개도 번쩍하고 천둥도 우르르꽝.
천둥과 번개. 어려서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번둥 천개’ 이래도 어감이 좋아서 자꾸 되풀이하다 나중엔 정말로 천둥 번개인지 번둥 천개인지가 헷갈리기도 했다.(정말이다, 해보시라) 내가 마법사가 된다면 주문으로 등록해주고 싶은 단어들 중 우선순위에 속했다.  
오늘 번쩍, 꽝 하고 천둥 번개가 세게 들이쳤던 시각에 나는 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순간 화면이 정지되었다 사라졌고, 내 고개는 시야 오른쪽에 있던 모니터로 향했다. 이전에 모니터가 번개를 맞아 기판이 홀랑 타버렸던 경험 때문이다. 그 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던 AS 기사는 다행히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손상” 이라며 무상으로 부품 교환을 해주었었다.
오늘 모니터에 떠 있던 건 오늘 반나절 작업을 한 명함 디자인. 안전하게 피씨를 끌까 하다가, 모니터나 피씨가 천재지변으로 사망하여 작업이 늦어졌다 말하면 이 클라이언트는 뭐라 말할까가 궁금해져 냅두었다. 물론 아직 멀쩡하다.
유년 시절에 천둥 번개 같은 말을 좋아했던 건, 그 단어들에서 마술적인 매력을 느꼈던 건 그리 순탄치는 못했던 환경과 관계가 있을 지 모른다. 그 나이로서는 꽤 버거운 상황들과 계속 부대끼면서, 세상을 다 끝장낼 것 같은 그 이미지에 매료되었으리라.
지금 그 이미지는 꽤 순화되었다. 비에 관련된 몇 가지 아련하고도 “물컹한” 추억들 때문이다. 그 추억들 속에서 비와 천둥과 번개는 그 순간을 더 정겹고 아쉽고 소중하게 만드는 백그라운드 뮤직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지금도 이 단어들을 좋아한다.
노르웨이 연쇄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가 MB를 만나고 싶은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는 뉴스는 꽤 착잡하지만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다. 진씨는 그 기사에 대해 “나라의 경사입니다.”라고 코멘트를 했는데, 누가 같은 말을 반어법이 아니라 온전한 제 의미로 썼다고 해도, 그런 사람이 있다해도 그리 충격적이진 않을 것 같다. 이 미친 세상에 일어나고도 남을 일,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래에 정말 벼락 같은 소식들을 계속 접하면서 이러한 충격적인 뉴스들에 점점 둔감해져가는 걸 느낀다. 순화가 아닌 둔화. 끔찍하고 충격적인 뉴스들의 축적으로 인한 감각의 무뎌짐은 꽤… (무섭고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껏 멜랑꼴리해진 감성으로 꿈꾼다. 충격 같은 건 천둥과 번개 같은 걸로만 오는 세상을, 그리고 그 충격으로 인한 손상이나 상처도 모니터 기판처럼 쉽게 복구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음. 냉장고 안의 캔맥주가 또 나를 부르고 있구나.
비오는 날의 유혹은 참… (비오는 날의 라면 유혹에 못지 않게.. -,.-)
* 헉.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장난 아니다.
내 방안에도 물이 새어 들어오고, 심히 안타까운 비피해 뉴스들을 들으며, 간밤에 천둥 번개가 좋다는 따위의 말을 지껄인 것이 계속 심히 맘에 찔린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겠다 반성하며, 별 피해 없이 모두 안녕하시길 마음을 모아본다.  
이 예기치 못한 폭우에 몸과 마음 자리 구석구석 잘 보살펴 건재하시길.

심리적 배후들

실은(물론, 인가) 나에게도 있다. 정혜신씨가 말하는 “심리적 배후”들.
그들이 기억하는 나를 떠올리는 바로 그 순간 내가 치유적 존재가 될 수 있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
그들은 조금씩 다르게 다른 부분에 있어 내게 “심리적 구루”가 되어주지만,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심리적 공중급유기”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오래 전 웹사이트 제작을 의뢰했던 관상학책 베스트셀러 저자의 말 대로라면, 이들로 인해 내 말년은 함께 정신적으로도 풍요롭고 평화롭고 행복할 거라 했다. 내 관상이 그렇다고 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노르웨이를 비롯해)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연이어 슬프고 안타깝고 끔찍한 뉴스들이 날라오는 세상(click->)을 살면서,
참 이기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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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의 소개로 알게 된 코스모스 사운드의 음악을 듣는다.
그의 말대로 “스무살 시절의 흔들림과 방황을 말하는 노래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투명한 울림”에, 그 아련하고 서정적인 파동에, 나 역시 서서히 흔들리고 잠긴다.

* 오늘도 일을 별로 하지 못했다.

무언가로부터 회복을 해야하는데, 거기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두고 나와야할 거기가 어딘지 파악을 못해서 이러한가.
속절없이 여름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