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

내 기타도 콜트.
의무감에서라도 이 영화 보아야할 터인데 영화관이 너무 멀구나.
상상 같은 데서 해주면 좋을 텐데, 안해주려나.
 
국립어학원이 오늘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단어들을 읽다가 갸우뚱.
짜장면, 맨날, 허접쓰레기, 개발새발, 먹거리, 아웅다웅, 오손도손, 맹숭맹숭, 손주, 뜨락, 눈꼬리, 묫자리, 내음, 택견, 찌뿌둥하다, 어리숙하다, 끄적거리다, 남사스럽다, 간지럽히다, 쌉싸름하다…
이게 다 표준어가 아니었다니. 놀랍다.
표준어가 아니란 걸 알고 있던 건 짜장면이 유일.
하긴 뭐… 내 신체 사이즈도 그렇고 사는 모양도 표준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게다가 탈코드가 요청되는 시대를 살면서 꼭 모니터링을 하면서 표준어를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
(이 바람직한 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자꾸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났다.
내 몸이 내 마음과 그렇게 소원한 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걸 주장하려는 것인지,
수해 전 내 몸을 치료해주었던 Nerve Specialist가 말한 “심장의 수축”이 재발된 것인지.
오늘 갑자스레 악화된 증세에 어찌할 줄 몰라하다 나를 잘 아는 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증상이 이러하니 처방을 좀 해달라고.
그래서 받은 답문자.
“좀 날씨가 덥긴 하지만 사진을 찍어봐요. 아니면 영화를 보러 가던지…”
길을 나서니 날씨가 너무 덥고 다리에 힘이 빠져 처방대로는 하지 못했지만,
처방전의 텍스트만으로 좀 편안해지고, 슈퍼에 들러서 맘 먹고 요리를 해먹고나자 증상이 신기하게사라졌다.
음식에도 이런 힘이 있구나, 라는 깨달음.(기억하자!)
그리고 처음으로 성공해본 고등어조림이 정말 맛있었다는 거.

일기장

알라딘 할인쿠폰으로 조조영화를 예매해놓고 배가 아파 가지 못했다. 반나절 쯤 지나니 증세가 호전되었다가 놓친 영화가 아까웠는지 다시 배가 아파와 하루종일 뒹굴뒹굴.

증세를 호전시킬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보았더니, 내가 주로 섭취하는 것들은 몽땅 피해야할 음식들에 속해있다.

이러니 나의 몸과 맘이 언제 다정해질 수 있을까.  
쇼핑몰에서 날아오는 생일쿠폰들이 문제다.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것들은 맘 먹고 기다렸다 지르기도 했지만 굳이 없어도 될 것들도 여럿.  
이 소비자본주의의 떡밥을, 미끼를 덥석 덥석 물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포스트잇에다 “생산적인 인간이 되자”고 적어 모니터 귀퉁이에 붙여놓고, 재미로 다운받은 “초딩일기장 어플” 반성란에는 “쇼핑금지”라고 적었다.
파인애플이 귀뜸해준 초딩일기장 어플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사랑의 학교>의 주제가를 흥얼거리게 만든다.
“오늘은, 이라고 쓰고서, 나는 잠깐 생각한다. 어떤 하루였나 하고. 점수를 주게 되면 몇 점일까?…” (훗. 이 기억력!)
단점이라면 글씨가 넘 커서 입력내용이 적다. 본문은 페이지가 넘어갈 수 있나 본데, 반성란은 안된다.
반성할 게 많은데…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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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것도 쇼핑한 목록에 포함이구나. 0.99불.
아무래도 지갑 분실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의연한 척 했지만…

스티브 잡스와 오세훈

스티브 잡스와 오세훈, 중요한 직책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사임한 이 두 사람은 서로 참 다른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편지는 간결하지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 편지는 애플의 단촐한 상품라인, 그리고 깔끔하고 깨끗한 디자인을 닮았다 (simple is more!). 오세훈은 이임사(서울시청 홈페이지에는 없다 –;)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동안 시민들에게 감사했다는 것인지, 선거가 무효가 되어 억울하다는 것인지,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가 걱정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난 1년간 … 고통스러운 싸움’을 싸워왔다고 호소하는 그가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종국에는 구질구질하고 찌질하다는 느낌만 남았다. 그의 이임사는 음…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를 닮았다.…….

–  <도구를 만드는 사람> from http://socialandmaterial.net
그러고 보니, 그가 이리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게 떠나고 난 뒤에도 그걸 닮은 서울과 한강을 꽤 오래 보아야 하는구나.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의 때깔이 빠질 즈음엔 우리의 감각이, 애플 디자인의 그것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오씨(나도 최종병신 훈! 이라고 써볼까나.)가 컴백을 못할 만큼만 세련되어질 수 있기를.    

라텍스 땅콩베개가 괜찮구나.

며칠 전에 장만한 라텍스 땅콩베개는 당당한 판매자의 단언대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내가 만약 라텍스 땅콩베개를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날마다 한 시간 이상씩 이불 속에서 뒤척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보다 개운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민투표가 끝난 다음 날 마음 편한 이들과 술자리에서, 그 수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과연 어떤 이들이 투표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끌려나온 어릴 때의 기억.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뭐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요술펜처럼 다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림이다.)
학급 급식 실적을 올리려고 혈안이 된 담임 선생앞에서, 급식비를 내지 못해 하교후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하고 있는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빳빳이 풀을 먹인 와이셔츠 위로 살찐 목이 접혀져 올라와 있던 탐욕스런 담임의 얼굴.
부잣집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들과 똑같은 급식을 먹는 것이 학급을 위하고 학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거라 강변하던 그는, 그 희생을 지지해 반대표를 던졌을까?
그런데 다시 호출해본 장면 속에서 안쓰러운 건 아이들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선생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그런 상황을 창피해하거나 굴욕감을 느낀 기억이 없는데,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거나 병약한 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 척박한 환경탓에 우리는 꽤 조속했고, 그래서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고 비관하는 대신 그 선생을 맘 속으로나마 한껏 경멸했던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그 부모들에게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인생이 어찌 저리 환멸스러울 수 있는지, 사는 게 뭔지 하며 약간의 동정을 했던 생각도 난다. (불쌍한 C선생!)
내가 열심히 촌지를 상납하던 부잣집 아이였다면, 어쩌면 쪽팔려 어쩔 줄 몰라하며 내 처지를 비관했을 지는 알 수 없다.
어찌 살았더라도 무상급식 반대투표 같은 거야 했겠어? 라고 말하지만 물론 그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투표율 60%를 자랑하는 타워팰리스에 살았다면 정말 쪽팔려서 당장 이사했을 거야, 라는 말은 그저 술 마시며 건네는 농담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 선생을 보며 환멸을 느낀 시간이 흘러들어와 나의 작은 일부가 되었다. 라텍스 땅콩베개의 도움없이 맞닥뜨려온 불면의 밤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듯이.
뭐, 그렇다는 얘기다. 내가 요즘 좀, 이런 식이다.  -,.-;;

일타쌍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2949.html



보수교회들, 역시나 감출 수 없는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구나.



어쨌거나 내일의 “일타쌍피”* (혹은 “설사”라든가?” – 고스톱 용어는 어려워…)를 기대한다.

그런데 일타쌍피, 발음하다 보니 참 맘에 드는 말일세.

(‘일타쌍피’는 무상급식에 시장사퇴를 말하고, 지가 내고 지가 쌌다는 점에서는 ‘설사’라고 할 수 있다는 거란다.)



*

@zookd: 노약자석 앞에 서 있다가 빵터졌다 ㅎㅎㅎ “오시장 저너마는 배수진을 거꾸로 친겨. 투표율 33% 넘어가면 사퇴하겠다고 했으면 무조건 성공했지 쯧쯧”


트위터에서 보고 나도 빵 터졌다. ㅋ





**
감출 수 없는 존재의 드러남, 에 대해 떠오르는 두 가지.



어제 친구와 친구의 클라이언트(예전의 나의 클라이언트였기도 한)와 함께 식사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지루한 대화 끝에, 친구가 투표를 할 거냐며 주민투표를 화제에 올렸다.

“아이들 한 끼 급식값이 이천 얼마인데 그걸 반대하는 오세훈의 평균 한끼 식사가 13만원이 넘었다잖아요. 공무원법으로 4만원 (정확히는 접대비인 경우가 4만원. 아니면 3만원)이하여야 하는데.”

“그러니까 법이라는 게 문제가 있어요. 물가가 인상되면 그런 식사비도 같이 올려줘야 하는데.”

럭셔리한 차이니스 레스토랑과 큰 건물의 여관을 소유한, 현물 재산은 그보다 엄청 많다는 사장님 말씀이다.



지난 달엔 사이트 업데이트를 해주던 곳에 일을 가지러 들렀다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국가 지원이 많다는 내 얘기에 나름 예술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는 그가 반가이 동의를 해주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사실 유명한 문인들이셨거든요. 그런데 그 시절엔 지원이 많았대요. 그러다가 김대중 정권 때 많이 줄고 노무현 정권 때는 그런 건 아예 없어졌다네요.”

(그럴 리가, 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어… 그래요?”

“제가 기억이 나는데요. 박정희 때는 빌라도 하나 사주었고, 해외 여행도 자주 보내줬어요. 갔다와서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얘기 좀 써주고 그러면 되는 거지요. 전두환 때는 아파트도 하나 사주었고. 그런데 지금은 뭐 암 것도 없잖아요?”

“어… 그렇군요.”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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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이국땅,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혼자 길을 잃었을 때 불현듯 찾아왔던 조용한 평화를 기억한다.

평화로운 기운이 따뜻한 바람처럼 부드럽게 휘감았을 때, 나는 어쩌면 내 삶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구상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완벽한 여행자가 된 양, 따뜻한 바람의 한 조각처럼, 혹은 먼 우주를 날아온 한 톨의 먼지처럼 가벼워지고 자유로운 느낌이 되어 셔터를 눌렀다.    
세상이 참 낯설게 아름다워 보였다.

반성하다

“난 지갑을 잃어버리면 패닉 상태가 되던데.” 라는 건 C삼촌의 이야기.

지갑을 읽어버리고선 잽싸게 마음을 비우고, 긴장을 너무 놓고 있던 벌이니 교훈으로 삼아야겠다고 헤헤거리던 내게 던진 말이다.
현금이야 많지 않았고 카드 신고도 다 해놓았으니 문제는 없지만 주민증과 카드를 다시 만들어야하는 번거로움과 애정이 많던 지갑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나 뭐 인연이 여기까지인 게지.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편안하게, 의연해질 수 있게 된 것에 왠지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가져본 것이,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긴 해도, 그마저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일이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살아가는 일 자체가 삶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늘 엠비씨 뉴스데스크에서는 최일구 아저씨가 피부 노화의 원인이 자외선 뿐만 아니라 뜨거운 열에도 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말했다. “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빨리 늙습니다.”
(사람 열 받게 해놓고 이리 말하면 정말 열 받지ㅋ)
그러니 전략적으로 맘 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성은 있어야하니. “건강한 강박”을 유지하기 위한 다짐들을 손꼽아본다.
그 다짐들,  반성, 대수롭지도 않고 나외의 타인들의 삶에는 별 의미도 없을 하찮은 것이긴 해도…
음. 가령 애플에게 계속 공격 당하면서도 어쩌지도 못하고 있는 삼성이 이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하청기업들에게 무소불위의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온 걸 반성한다면 그 반성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말이다.
허나 나의 반성은 치열하지만…뭐 반성만 치열하지만…   -,.-;;

더 즐겁게 살려고

http://blog.jinbo.net/neoscrum/521

꽤 오래 전에 정말 유쾌하고도 재미있게 읽었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의 저자 최세진의 블로그다.
오랫만에 문득 생각이나 방문했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 즐겁게 살려고, 5월말 서울 밖으로 이사했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포스팅을 읽었는데 종종 이게 생각난다.
“적게 벌고 최대한 안 쓸 예정입니다. 남는 게 시간이고, 좋은 게 공기고, 사방이 조용합니다.”를 비롯해
간결하게 적힌 “이사하며 바뀐 점 몇 가지”는 하나같이 꽤나 탐나고 멋지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야말로 언감생심.

저술과 번역을 하는 저자와는 달리 내가 일하는 터전은 아무래도 서울을 벗어나기가 어렵고 최대한 안 쓴다고 해도 내 능력으론 도저히 먹고 살 궁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뭐 함께 손잡고 하루 두어시간씩 산책을 할 짝꿍이 없는 것도 물론 안다.)

현재로선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새싹 채소나 키우면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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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 새싹은 장마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잘 자라준 듯.
그리 크게 자라지도 않지만 한꺼번에 우르르 싹을 터트려 서로 서로 다정히 의지해 키를 키워가는 게 무지 기특하고 보기에 예쁘다.
그런데 이걸 먹자고 하니 수확량이 너무 적다.
메밀은 기어이 실패했다. 키가 좀 크는 종이라 해서 머그컵에서 키웠는데, 씨앗이 커서 한꺼번에 많이 키울 수도 없는 데 그나마 하나 하나씩 몇 개만 싹을 틔우고 키도 들쑥날쑥하게 크니 수확이랄 게 거의 없는 데다, 성장속도가 느려 오래 담가놨더니 좀 시들시들하다 말라서 폐기하고 말았다.
장마라서 그런가 싶어 냅두려 하다 혹시나 싶어 아래 화분용 자갈을 깔고 다시 시도중인데 잘 자라줄런지.
똑같은 환경과 조건에도 먼저 싹을 틔우고 크게 자라는 놈도 있고 아예 싹을 틔우지도 못하는 애들도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나.

어머니를 기억하며.

이상한 날이다.
이제 막 리뉴얼 오픈한 사이트 때문에 늦게까지 작업을 마무리 하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가 클라이언트의 호출에 잠이 깨었는데, 이어서 최근에 작업한 모든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이 전화를 연이어 해댔다. 수정과 업데이트 요청건들, 담당자가 짤리고 인수인계가 안된 사이트의 이용 정보 문의건, 뭘 잘 모르는 쇼핑몰 관리자의 온갖 문의 등 내용도 가지가지.
마치, 당신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오, 라거나, 당신이 아직 생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오, 라고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그래서 이제야 숨을 돌리고 맥주캔 하나를 꺼내들었다. 호가든 맥주가 달다.

오늘이 어머니 기일인데 너무 정신없이 보냈다.
성묘는 주말에 미리 다녀오긴 했지만, 어머니의 짧은 생을 단 하루라도 마음을 모아 기억해드려야하는데 그리 못해 죄송한 마음이 스친다. 
이제서야 초 하나를 켜고, 음악을 틀고, 어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탓에 영원히 젊은 나의 엄마를.
들리는 음악은 파스텔 뮤직에서 만든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 – chapter3> 중 Herz analog의 “이별을 걸으며”다.

컨셉 컴필레이션 ‘사랑의 단상’은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 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져, 2008년에 첫 번째 앨범을 발표, 2장의 음반과 총 4회의 공연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지구 멸망 직전까지 계속될 ‘사랑’이라는 테마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2011년에 그 세 번째 결과물을 발표하게 되었다.
   – 알라딘 음반 소개 중에서.

만남은 찬연히 빛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사랑하는 사람은 추억 속에서 사랑의 행로의 세 순간을 단 하나의 순간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다만 ‘사랑의 눈부신 터널’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 <사랑의 단상>
“그 때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던가” 중에서

슬픔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대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 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대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는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중에서
* 나를 위해 슬퍼했던 이들과, 그들로 인해 내가 슬펐던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 존재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슬픔이 되어버린 누군가에겐 미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그도, 내가 그의 슬픔이 된 것을 기뻐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