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기로 했다.

충동적인 결정이긴 했지만, 다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자꾸만 숨어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그 때문에, 그에 반해 내린 결정이다.

그렇게 좀 더 세상속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사하는 거리 딱 그만큼만.
장차 멀리 달아나기 위한, 먼 후퇴를 위한 짧은 전진.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궁극적 지향의 측면에선 전진을 위한 후퇴다.

반나절만에 내린 결정이 잘한 짓인지 자꾸만 마음이 흔들려 이렇게 되뇌고 있다.

어차피 잠시의 거처인 것을, 너무 진지한 거 아냐? 라는 힐난도 보내고 있다.  

어쨌든, 담달에는 이사를 갈 것이다.

꿈이 버라이어티해진다.

어릴 때부터 워낙 꿈을 많이 꾸는 편이긴 했지만 주로 시각적으로만 감지되던 꿈이 점차로 다른 감각들을 깨우며 내 무의식을 끌어간다. 꿈 속에서 나는 촉각을 비롯하여 보다 확장되고 생생한 감각으로 풍경과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대화한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거리가 좁혀지고 서로 다정해지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이런 날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엔 가슴팍이 늘상 까슬거린다.
대개 너무나 사소한 입장과 의견 차이로 순간적으로 대화가 단절되면서 아득하게 멀어진 관계의 거리가 재빠르게 은폐되었다가, 그 균열이 복구되는 시간동안 일어나는 내 안의 반응이다.
그 반응을 들여다보면 참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까슬거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대개가 드러내기도 민망한 찌질함과 소심함이다. 꽤 오랫동안 따가워서 가벼운 처방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사안이나 관계의 특성상 대개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원상복구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당당해져야할 부분이 있다는 걸 안다.
그 균열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좀 더 의연해져야 한다. 나를 믿고!
이런 면에선 정말 닮고 싶어지는 누군가가 있다.
오늘 같은 날 꽤나 탐나는 그의 그러한 매력은 엊그제 만났던 K의 표현대로 정말 “쩐다”

바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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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홈페이지를 관리해주는 곳에 일을 받으러 가서 미팅을 기다리다 들여다본 내 열쇠고리.

그런데 두 개의 열쇠의 정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난 무엇을 걸어 잠그고 열 생각도 못하고 잊고 있는 걸까?
작업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USB 메모리에 데이타를 넣고선 얼릉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다행히 선물 상자가 없다. 명절 때마다 손에 쥐어주는 비누와 세제 선물세트가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더이상 인기가 없었나보다.
대신 회식 한 번 할 때 부르겠다고, 허리를 깊이 숙여 설인사를 한다. 아직도 쌓여 있는 비누와 삼푸 세트가 반갑지 않기는 했지만, 그 곳의 회식이라는 게 그닥 재밌을 거 같지는 않아 내키지는 않지만, 나름 회사대표의 깍듯한 태도와 명절을 챙겨주는 마음씀은 나쁘지 않다.  
(기어이 선물 챙겨가라는 전화를 어제 받았었는데 술마시고 있느라 받지 못했다. 명절 끝나고 받기루 했는데 이번에는 이왕이면 좀 다른 선물이길.)
명절을 앞두고 또 할 일이 쌓였다. 이상하게도 명절 때면 꼭, 바쁘고 가난하다.
일이 의외의 변수로 자꾸 어렵게 풀려간다.
바꾸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轉業, 我, 生하고 싶다.
(음 다 때려치고 싶다, 에 비하면 어찌나 건전한지…
)

wrong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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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야 하는 길이 있음을 알겠다.

외면해야하는 마음길이 있음도 알겠다.
잘못 떠난 길, wrong way-진입금지의 이정표 앞에서라도,
서성임 없이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돌아서 온 길, 까맣게 잊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리하지 못하여 슬픔속에 깜빡 잠기게 되더라도,
“슬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일임을 알겠다.
* 요가를 시작했다. 오래 전에 시도했다 포기했을 때에 비해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용쓰는 것이 안쓰러운데 마음은 차분해진다.
이번엔 제대로 몸에 익혀봐야겠다.
돌아와 착하게 반신욕을 하면서 들쳐본 책에서 시 한 편이 꽂힌다.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때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 최정례, <칼과 칸나꽃>중에서 / via 신형철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책읽기

“중학교 갈 때까지 책읽기를 강요하지 않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애들이 어른 몰래 책을 보고 ‘책을 맘껏 볼 열다섯살을 기다리며 사노라’라고 일기장에 쓰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씨의 말이란다.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걸 경쟁하듯 강박적으로 행하는 젊은 부모들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끄덕. 그리고 이 발상 ^^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에 책이 없었다.
어쩌다 생긴 열 몇권짜리 명작전집 하나. 그걸 아껴 읽고 나니 뭔가 읽고 싶은데 동네 도서관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으니 책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져 급기야 직접 노트에 동화를 끄적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 하나 정도는 어슴프레 기억이 나는데, 심히 꿀꿀하다.)
소설이나 위인전 같은 걸 보면 이럴 때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친척집이나 친구집이 등장하는데 내 인생엔 그런 것도 없었다. (이 대목은 좀 아쉽다. 그랬으면, 예를 들면 P선생 같은 사람을 친구로 만났더라면,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ㅎ)
원하는 걸 사달라고 조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아빠의 구두를 닦고 용돈을 받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 달째 되는 날, 문고판 책 하나 정도 살 돈을 받아 서점으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 날 듯이 가벼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서점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고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신중하게 골라준 책이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그렇게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의 구두를 열심히 닦고서 매달 월례 행사로 서점엘 달려갔다. 책을 고르는 안목도 제법 나아져갔다. 한 달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그 서점 아저씨가 생각난다. 워낙 어렸던 데다 몸집도 작아 눈에도 잘 안띄었을 꼬마의 소원풀이 월례 행사를 함께 해주었던 친절한 아저씨.
크리스마스엔 카드도 직접 만들어 가지고 갔다. 부끄러워 카드를 전해주고 후다닥 달려나오느라 아저씨의 반응도 보지 못했다. 꽤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를 좋아하기도 했나보다.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동네 길목에서였다. 누가 저기서 걸어오면서 나를 알아보고 씨익 웃어보이는데 나는 조금 놀라 웃지를 못했다. 아저씨가 다리를 꽤 절고 있는 걸 보았고 ‘아저씨는 틀림없이 저러한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서점 안에서 봤을 때는 내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는 게 그 근거였다. 그래서 아저씨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 물론 철부지 아이의 터무니 없는 오바. 장애에 대한 생각은 다니던 교회의 영향을 받았었을 테고. 어쟀든 내려다 보지 않으면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을 꼬맹이가 안중에도 없었을 터. ㅎㅎ
그리고 나서 이사를 갔고 들어간 학교엔 학급문고가 있어서 룰루랄라.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책을 숨겨놓고 읽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장래희망이 서점주인이었다. 서점을 차리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다른 서점 아저씨의 말을 듣고 좌절할 때까지.
그리하여 내 소원도 한 때 “책을 맘껏 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라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맘껏 책을 볼 수는…. 없다. 어른이 되었어도 뭔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한다는 게 쉽지 않으므로, 라는 건 또 게으름에 대한 핑계일 것이다. 확실히 어렵게 책을 손에 넣었던 유년시절이나 몰래 몰래 읽었던 학창시절보다도 독서량이 훨 적고 그 설레임과 흥분과 행복감도 많이 사그라졌다.
그래도 당장 손에 쥐고 빠져들 수 있는 책이 내 방안에 널려 있다는 건 즐겁고 다행한 일이란 걸 안다.
그것이 책을 맘껏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인디언식 이름

“날카로운 달빛의 혼”

나의 인디언식 이름이란다.
뭔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주술적 능력이나 예지의 힘 같은 것이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흐흐
그랬으면 좋겠네…

<인디언식 이름짓기>

태어난 년도 뒷자리 자신의 생월 자신의 생일
***0년생:시끄러운,말많은
***1년생:푸른
***2년생:어두운 →적색
***3년생:조용한
***4년생:웅크린
***5년생:백색
***6년생:지혜로운
***7년생:용감한
***8년생:날카로운
***9년생:욕심많은
1월:늑대
2월:태양
3월:양
4월:매
5월:황소
6월:불꽃
7월:나무
8월:달빛
9월:말
10월:돼지
11월:하늘
12월:바람
1일:~와(과) 함께 춤을
2일:~의 기상
3일:~은(는) 그림자 속에
4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5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6일:따로 붙는 말이 없음
7일:~의 환생
8일:~의 죽음
9일:~아래에서
10일:~을(를) 보라
11일:~이(가) 노래하다.
12일:~의 그늘 → 그림자
13일:~의 일격
14일:~에게 쫒기는 남자
15일:~의 행진
16일:~의 왕
17일:~의 유령
18일:~을 죽인 자.
19일:~은(는) 맨날 잠잔다.
20일:~처럼..
21일:~의 고향
22일:~의 전사
23일:~은(는) 나의 친구
24일:~의 노래
25일:~의 정령
26일:~의 파수꾼
27일:~의 악마
28일:~와(과) 같은 사나이
29일:~의 심판자→을(를) 쓰러트린 자
30일:~의 혼
31일:~은(는) 말이 없다

그림자

“어린 아이는 뜨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몸집이 작은데도 큼직한 그림자가 앞서가고 있다. 그것이 그의 미래인데, 입을 딱 벌리고 있지만 또한 납작하게 눌려진, 약속과 위협으로 가득 찬 동굴이다. …… 정오가 되면 해는 남중하고 그림자는 어른의 발밑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게 된다. 완성된 인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미래 같은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아직은 그의 과거가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등 뒤에 그림자가 생겨나서 점점 길어진다. 이제부터 그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추억들의 무게를 발뒤축에 끌고 다닌다. 그가 사랑했다가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보태지는 것이다. 과연 그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과거의 덩치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 자신은 점점 작아진다. 뒤에 달린 그림자가 너무 무거워져서 걸음을 멈추어야 되는 날이 온다. 그러면 그는 사라져 버린다. 그는 송두리째 그림자로 변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맡겨진다.’

                                                                                        – 미셀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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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나를 지키는 건 나 혼자 강해지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말할 때,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꽤나 상처받았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 대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해하고자하는 안간힘이, 현실로 인식된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시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모순된 진술 속에서 대상에 대한 양가 감점은 너무나 역력했고 그래서 가여웠다.

그런 그녀를 잠시 토닥여주다 돌아서서 든 생각.
그러한 격렬한 양가 감정. 그게 사실 타인에 대한 사랑의 본질인 거지.
그녀는 이제 아니라 말하지만, 초연해졌다 말하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갈망은 사그라지지 않은 게지.
타인에 대해 그만큼 분노하거나 상처받지 않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뭐 타고난 성향도 처한 입장도 좀 다르긴 하지만.)        
오늘 점심 약속으로 집을 나설 때까지 며칠 동안 모니터 앞에 틀어박혀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밥먹고 잠 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다, 뉴스를 들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전화를 받으면서도 일을 했다.
그 결과는…. 일이 정말 하기 싫어졌다.
어깨며 등이 아파 움찔거리면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나고, 한쪽 팔은 끝까지 올라가질 않는다.
으아악~ 혼자 짧은 비명을 내밷다 나의 귀책사유가 아닌 이유로 자꾸 엄한 일을 되풀이해서 만들어보내는 담당자에게 “저에게 자꾸 왜 이러시는 거에요?” 라는 하소연을 하고 나니, 이제는 먹고 살 걸 해결해주는 남자가 있으면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팻이라도 될 수 있겠다 했던 K선생 말이 생각났다. -,.-;;
 
사람이 무엇이라도 일을 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던 누군가의 말에는 정말 공감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 뿌듯한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무래도 천성적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녀처럼 일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게 부러울 때가 있는 것도 사실.  
일 멀미가 나는(진짜 멀미 증상이 난다. T.T) 지금은 잠시, 쉴 때가 되었단 말이지….

굿나잇

굿나잇,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이 생엔 너무 늦은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굿나잇!

디아민 잉크

할 일이 많다고 오전 내내 종종거리며 후다닥 후다닥 잡일을 해치우고 이제야 평상심을 되찮았다. 하는 일이 워낙 잡스럽게 많다보니 정신이 없을 뿐더러 보람이라든가 보상이라든가 성취감도 별로 없다. 특히 피할 수 없는 전화통화, 메일체킹 같은 것들만으로도 시간은 쑤욱쑤욱 잘도 빠져나간다.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상의 일들도 남들에 비하면 정말로 간소화시켰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뭔가에 집중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거절하기. 올해 모토 중 하나다.
그리고도 남은 일들, 하고 싶진 않지만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해야할 일들은 또 열심히 해야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일이든 삶이든 그 운영에 있어서 합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의 변화라고 해봤자 그 한계가 자명한 것이라도 해도.
사두고 열어보지도 못한 잉크병을 개봉했다. 플라스틱병이라 저렴하다 하더니만 양도 장난 아니게 적은 것이 앙증맞다. 디아민의 Poppy Red. 양귀비꽃색이다. 웹상에서 볼 수 있는 색상표가 저마다 달라 고민하다 이름에 꽂혔는데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게, 고혹스런 붉은 빛을 가졌다.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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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그 누구냐, 김선우나 박정대 같은 이의 뜨거운 시를 적어 보아야지.
바쁘다믄서? 라던 누구의 투정이 들리는 듯하여 좀 찔리지만,
바지런히 합리적으로 살자 비장하게 맘 먹는 게 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이니.
지금 하고 싶은 건 내 욕망을 촉발시킨 것에 제대로 매혹되어 보는 것, 그 욕망에 충실하게 취해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