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목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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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가 몇 늘었다.  새봄맞이 화분 네 개.

위의 건 홍페페. “풍성, 아름다운 날들”이란 예쁜 꽃말을 가졌다. 그에 맞춘 것인지 오색모래로 단장한 화분에 담겨왔다. 행운목과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히아신스도 하나씩, 예쁜 구슬이 담긴 유리컵에 담겨있다.
가장 기대를 받았던 건 우주목. 원래 사진엔 정말 슈렉의 귀와 똑같이 생긴 귀여운 연두빛 잎사귀를 달고 있었더랬는데, 막상 내게 온 건 이렇게 생겼다. 먼 우주의 소리를 들으려 귀를 쫑깃하다 길쭉해진 형상이다. 얘는 조만간 좀 큰 화분을 구해서 단단히 흙에 안착하도록 해줘야할 것 같다.  
꽃말은 없단다. “꽃말은 없으니 직접 지어주세요”라는 설명을 붙여놓은 판매자의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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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정화식물로 공기도 정화하고 눈도 시원하게 정화했으니, 마음도 그리할 수 있을까 시 한편 찾아 읽는다.

너는 내 운명
                                         이문재

예술가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가 없어서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이란 인류를 사랑하느라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성인이란 우주 전체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없앤 사람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풀 한 포기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공약

@duransh69 공지영-아이유코스프레 주진우-누드화보 이외수-삭발 김제동-한달내결혼 김미화-일주일동안일자눈썹 이정희-뽀글이파마하고 땐스 애국독수리-독수리5형제코스프레 유시민-보라색염색 조국-망사스타킹 심상정-살사댄스 노회찬-스타킹머리에쓰기 탁현민&김어준-둘이 딥키스

호, 이정도 공약이면?
울 동네는 낮부터 ‘모두가 침묵할 때 할 말은 하는’ 강용석 후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선거가 며칠 안남은 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 선거차량에 붙은 사진이 기이하게 코믹해서 사진을 찍어놀까 하다가 말았다.
“정치가 코메디를 그만 두어야, 코메디도 정치를 그만 둘 수 있다.” 라던 김제동의 말도 생각나고.
어쨌거나, 유쾌한 선거가 될 거 같은 즐거운 예감.
아주 오래 전 암울하고 비장했던 어느 때와는 사뭇 다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구나, 이런 분위기는.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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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동거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친구의 권유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가 내 처지를 직시하고 포기하면서 선택했던 실내화.

살아있는 고양이가 선사할 수 있는 정서적인 온기는 못 주지만, 난방가동시간을 줄이면서 차가워진 방바닥의 찬기운을 막아주는 고마운 녀석이다.
오른쪽엔 봄단장한 운동화. 작년에 아일랜드 아울렛 창고에서 사이즈가 없어 어렵게 찾아내 저렴하게 구입했던 것인데, 봄을 맞아 회색 운동화끈을 개나리빛으로 교체해줬더니 화사해졌다. 아래 고무창도 원래 하얀색이었는데 서랍에 굴러다니는 형광펜으로 칠해주자 나름 새끈한 디자인으로 변신.
이런 쓸데 없는 “딴짓”은 역시 할 일 많고 분주할 때 해야 제맛!
 
날도 많이 풀렸으니 나도 이제 좀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생각은 걷는 발의 뒤꿈치에서 나온다’고 니체가 그랬다는데, 이 뒷꿈치에서 칙칙하지 않은 화사한 생각이 튀어 나올지도 모르니.

냉장고

얼음이나 기껏해야 쵸코렛 따위가 들어있던 냉장고에 고등어 7마리, 작은 굴비 수십마리에 이어 멸치가…. 수백마리.

쿠팡에서 주문했더니 엄청난 크기와 양의 멸치가 통영바다에서 날아왔다.
너무 커서 생선인 듯하니, 이걸 손질을 해야하는지 통째로 먹어야하는지가 아리송하다.    

내 소유의 냉장고로서는 역대 최고로 화려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냉장고가 기특하고 뿌듯.
후라이팬에 살짝 볶으니 맥주 안주로서는 아주 딱일세.
낼은 고추장 넣고 빨갛게 볶아봐야지.
맥주캔을 홀짝거리며 본 드라마에서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음식을 하며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음식이야말로 인간이 사랑을 표현하거나 얻기위해 취할 수 있는 액션중에서 꽤나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육체와 쇠락과, 그에 따른 정신의 쇠퇴와 더불어 급속히 진화해가는 내 식탁.
멸치를 오물거리며 떠올려보는 시 한편.
멸치의 사랑 / 김경미

똥 빼고 머리 떼고 먹을 것 하나 없는 잔멸치
누르면 아무데서나 물 나오는
친수성
너무 오랫동안 슬픔을 자초한 죄
뼈째 다 먹을 수 있는 사랑이 어디 흔하랴
 
휴대폰 인증샷!
뒤에 갑갑해하고 있는 내 자전거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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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지난 밤에는 부탁받은 일을 늦게서야 끝내고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는 뭔가를 펼치기에도 애매한 시각.
모니터앞에 우두커니 있다가, 마우스를 딸각거리다가, 아무 생각없이 전에 본 유튜브영상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김제동, 이 사람이 가진 귀한 능력과, 그 능력의 원천을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삶의 경험에서 연유하는 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사, 그리고 자기 전에 주절주절.

오랫만에 반이정씨 블로그에 들렀더니 이사한 이야기가 맛깔나게 적혀 있다.


이사한 집의 구조도 내 방과 쫌 유사하고 (다른 게 있다면 일의 성격상 내 방안에는 무시무시한 케이블과 그에 연결된 각종 기기가 달려 있다는 거. 그래서 쫌 덜 깔금하고 덜 우아하단거. 이사할 때 저것들을 다 쓰는 거냐라는 힐난성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걔네들 각자 수행하고 있는 기능들이, 존재이유가 다 있다니깐’) 이사하게 된 주원인도 나랑 같고(나도 결국 층간 소음 때문에 1층에서 3층으로 이사함. ) 이사하면서 처치한 것들과 새로 이사해서  한 짐 늘어난 것도 같다. 이사할 때 창에서 내려다본 장면마저 어찌나 똑같은지. 결국 뭐 어떤 바운더리안에선 다 비슷비슷하다는 거지.
늘어난 것들은 가지가지여서 모니터앞엔 “쇼핑금지” 포스트잇이 붙었다. 혼자 살면서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하다니. 놀랍다. 자그만 사무용을 쓰다 조금 커진 냉장고안에는 고등어가 8마리, 자그만 굴비가 수십마리 얌전히 들어가 있다. 계란도 10칸이 다 채워진다. 두유, 미숫가루, 뮤즐리 같은 식량까지 합하면 전쟁이 나도 두어달은 먹고 살 것 같다. 이들을 포함해 세제, 비누, 생리대 같은 물품이 넉넉히 쌓인 건 50프로 이상의 할인을 마구 던져대는 쇼설 커머스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행태 속에는 확실히 뻔한 종류의 불안이 감지된다.  
정말 한심스러운 건 갖가지 시행착오.
이젠 밥을 좀 해먹고 살겠다 하여 글래스락이라는 것을 싼 값으로 세트구입을 했는데, 유리처럼 튼튼한 락앤락 유사품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정말 유리였고, 유리는 정말 무거웠으며, 마침 손목이 부실해진 지라 휴~ 나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노릇 하면서 살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생필품 외에 그 ‘존재이유’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거나 절실하지 않은 것들도 솔직히 꽤 있다. 슬쩍 들여다본 벤야민의 노트들이 그런 행태들을 돌아보게 한다. “자기가 사는 방에 개인적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강렬한 성향에서 비롯된 실내의 환상”에 대한, 그 허구성 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들. 상품 생산 사회가 만들어내는 그러한 환등상 속에서 인류는 영겁의 벌에 처해진 것처럼 보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그 흔적에 대한 욕망이 각종 커버 케이스의 고안, 접촉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는 벨루어 천과 플러시 천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흔적을 조사해 실마리를 더듬어가는 탐정소설이 발생했다는 지적은 신선하고 재밌다. 철골 건축과 아케이드에 대한 분석에서도 잘 드러나는 그의 이 디테일하고 생생한 감각은, 지금 읽어도 그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 듯하니 놀랍다.
디자인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
상품에서 사용가치를 배제시키고 그리하여 인간과의 직접적인 연관을 끊어내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무기물에 자연을, 우주를, 인간을 끌어들이는 그랑빌의 예술과 같은 것은 현대 디자인이 상당히 선호해왔던 것이고 오히려 “인간적”이고 자연적이라 하여 이상화하고 지향해 온 것들인데, 그렇다면 분명 그 연장선상에 있을 인간공학이니 에코 같은 개념이 들어가 있는 디자인들, 브랜드에 인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지금의 트랜드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지루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흥미롭다. 더 읽어봐야겠다.
 

그런 사람이길.

그런 사람이길.
그리하여 승리하길.

해품달 마지막회

한쪽 손목이 영 나아지질 않아 기어이 정형외과엘 다녀왔다.

치료 안하고 오래 방치해 매우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힐난에,

가만 냅두면 괜찮아서요.. 라는 변명을 하고서,

엑스레이 찍고, 엉덩이 주사랑 혈관주사 맞고,  

희안한 치료를 서너 가지는 받고 왔드니…

더 아프다. T.T

일반적인 치료를 해보고 획기적으로 좋아지지 않으면 MRI 찍자는데

아무래도 병을 더 키운 다음 MRI를 찍게 하고, 그 담에 치료하려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의사의 조심스런 어투로 보아 그 역시 나의 불신을 모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바야흐로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모두가 서로를 불신하는 불신의 시대.

그로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불신지수 같은 이름(정말 있을 것 같다!)으로 환산해본다면 정말 엄청나지 않을까?(단적으로 그 엄청난 보안비용을 보라)



짧아진 뉴스가 끝나고 지금은 해품달 마지막회를 앞두고 있는 시간.

지금 여기의 시공간을 벗어나고 주술까지 해결사로 위력을 발휘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환타지는 안전하게 달콤해서 한동안 즐거웠다.

파업으로 짧아진 뉴스와 해품달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 건강 정보 같은 건 넘 지루해서 기다리기가 고역이었지만,

파업 때문에 우수한 인력들이 우수수 빠져나가 그랬을 테지.



얼른 씻고 푹 퍼져 해품달을 볼 준비를 해야겠다.

혈관에 들어간 액체 때문인지 온 몸이 나른하다.

선물

“씩씩하고 당당하게. 쫄지말고..”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울컥 깨달았다. 내가 쫄고 있었다는 걸.

땡볕에 나서기도 전에. 아직 꽃샘추위 가시지도 않았는데.
* 보이스 피싱 전화로 아침을 시작했다.
잠 깨자마자 듣는 검찰청, 사건에 연루… 뻔한 소리에 ‘보이스 피싱이군요’라고 한 마디 했더니 낯선 억양의 여성은 순식간에 엄청난 욕을 쏟아붓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폭력. 사람 동네가 어쩌다 이리 되어 버렸을까. 끔찍하다.
얼마 전에 들었던, 직접 피해자가 되었던 그녀가 감내해야했을 여러 갈래의 감정들, 맘고생들이 다시 헤아려지니 안쓰럽고 화가 난다. 어여 훌훌 털어버리길. 먼지 한 톨 남김 없이.
 
** 벼락치기로 뚝딱 밀린 일 해치우고 의기양양한 나.  
이런 생산성을 조금씩만 더 길게 유지하고 살았다면 사는 모양이 훨 달랐을텐데.
벼락치기에 이력이 붙을 수록 게으름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심해져가서
벼락치기로 진입하는 모드전환이 점점 지연되니,
이젠 삶의 너무 많은 일들이, 아니 대부분의 일들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통탄에 젖어있다 불현듯 장만한 자그만 모래시계.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했다는 부모들의 후기를 보며 좀 찔리며 주문을 했더랬는데.
스르르 빠져나가는 시간의 알갱이들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자니 애초의 의도는 사라지고,
모래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나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착시효과마저 드니.
이 궁여지책은 실패임이 역력하다.
그래서 결국 심히 유치한 발상으로 장난감을 마련한 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예쁘구나. 이 보랏빛 시간의 알갱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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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데이라고 사탕을 받았는데, 예쁜 포장에 든 사탕은 미안하게도 맛이 없다.
초콜렛이 훨씬 좋긴 하지만 사탕중에도 바이오후르츠, 애니타임, 호두마루, 체리마루, 통아몬드 같은 건 얼마나 맛이 좋은가. 나는 예쁜 포장보단 실속이 중요한 아줌마….. 사람.
건네준 이에겐 너무 미안하지만 이게 초컬릿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있구나, 달콤한 게 생각나는 야심한 밤에.
(물론 그 안에 실린 마음이야 감사히 접수!)
**** 또 하루가 이렇게 빠져 나간다.
내가 시간에 대한, 삶에 대한 전략을 바꾸기로 하거나 말거나에 아무런 관심 없이. 무심하게.
 
티켓몬스터에 올라온 거 보고 궁금해진 거.
잠들지 못하는 아가를 기적처럼 재워준다는 미라클 블랭킷은 어른한테는 소용이 없을까?
기적이어서 어른에겐 통할 수가 없는 건가… -,.-
음 아무래도 뭔가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거 같다. 치료제가 필요하다.  

음악은.

(J.S. Bach- The Musical Offering Part1, Jordi Savall)
나는 M에게서 언어를 배우는 대신에 음악을 배워야만 했었다. 혹은 M을 위해서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현악기 연주를 했어야만 했었다. (……) 우리가 언어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점점 내가 아니었고 M은 점점 M에게서 멀어져갔다. 우리가 음악으로만 대화했다면 일은 다르게 진행되었을지도 몰랐다. 음악은, 그것이 무엇에 바쳐졌건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한없이 용서하면서 동시에 무시하고 능가한다. 음악은 불만과 결핍과 갈증으로 가득한 인간의 내부에서 나왔으나 동시에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을 응시한다. 혹은 인간의 너머를 응시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인간이 그것에 의해서 스스로 응시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 언어와 음악은 그렇게 공통적이다. 그러나 음악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입을 다문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점차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에 대해서 인간은 단지 ‘나는 음악을 듣는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뿐이다. 나를 사로잡을 무렵, M이 나에게 말한 대로,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 배수아, 에세이스트의 책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