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며칠 전 술자리에서 변영주 감독의 팬이라고 발언했던 걸 실천하기 위해 충무로까지 가서 <화차>를 보았다.
클로즈업이 많아 맨 앞자리가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 또한 노안의 증상인가 담부턴 맨앞자리는 피해야겠다 ) 영화는 재밌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강렬하니 좋았다.
그래, 그런 때가 있지. 나 아닌 딴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해질 때가.
나로 살면서 행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고 나를 견고하게 가두고 있는 내가 견디기 어려워질 때는, 그러다 자기연민에 질척거릴 때면, 차리리 죽음을 갈망하게 되기도 하지.
(영화속에서 경선이 살해한 선영은 경선과 많이 닮은 모습이라 자기 파괴처럼 보이기도 하더라는)
 
사실상 내가 나로서 행복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행복이란 걸 손에 넣기 위해선 이런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이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제시하는 온갖 화려한 이미지들로부터 아무리 자유로을 수 있다해도, 근원적인 인간 삶의 유한성은 또 다른 삶을 갈망하게 만들 테지.
엊그제 실컷 먹은 고기 덕분인지 머리카락이 또 많이 자랐다. 평소 식단이 소박해서 그런지 고기라도 맘껏 먹은 날이면 금방 표가 난다. 주로 쓸데 없는 단백질이라는 머리카락과 손톱이 쑤욱쑤욱.
그리하여 꽤나 자주 잘라내는 머리카락, 손톱, 욕망, 연민, 회한, 감정과 생각의 찌꺼기들…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많은 나의 부분들이 잘려지고 버려지고 잃어지고 있으니 엄밀히 말해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먼 저 곳의 다른 삶을 꿈꾸고, 그러다 그렇게 지워버린 과거의 나는 어느새 슬그머니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가기도 하고…

* 얄씨의 블로그에서 광대나물 이야기를 읽다가 씩 기분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살면서 뭔가에 매혹되어 저지르고 마는 온갖 헛발질들에 대한 다정한 옹호를 보는 듯하여.

뱅쇼

반성할 일을 자꾸 만들어 반성이 익숙해지는 행태에 대한 격한 반성중.

봄바람 때문일 거야, 라고 우기고 싶지만… 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반포의 까페베네.
새누리당 당선자의 플랭카드가 내다보이는 이층 창가다.
저녁 약속을 앞두고 중간에 시간이 비어 뱅쇼 한 잔을 시켜놓고 휴식을 즐기려 하였으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도 팻 매쓰니의 음악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막을 수가 없다.
신랑, 아버님과 어머님, 도련님의 찌질함에 대한 성토, 누군가의 결혼이 깨질 거라는 단호한 예언, 타자에 대한 거침없고 폭력적인 재단이 여기 저기 무리들을 지어 꽤 널찍한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옆에서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여학생이 신기하기만 하다. 저 아주머니들도 한 때는 이 여학생과 같은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저렇게 큰 소리로 저런 얘기들을 쏟아놓고 나면 후련할 지, 공허롭지는 않을지, 나는 물론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친구와 함께 나타났던, 여기서 태어나고 살고 있다는 후배의 말도 떠오른다. 여기 사람들은 거의 이사를 안가 서로의 집안 내력도 훤히 알고 있으며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외부인이나 새로 이사오는 이들에게 너무나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인데, 어른들 뿐 아니라 학생들, 초등학교에서조차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 사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뭐 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이런 동네라면 새누리당 몰표가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겠다.
이 근처에서 있었던 미팅은 나쁘지 않았다. 시켜만 봤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인 이런 시스템의 서브디자인은 많은 노가다가 예상되지만, 소개시켜준 이의 성의와 기본은 되는 조건과 선량해뵈는 담당자들의 인상과 친절함에 홀랑 넘어가 계약을 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 역시 사무실 근처를 둥둥 떠다니며 스치고 지나가는 봄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두 달여는 꼬박 일에만 매달리고, 그렇게 연료가 좀 채워지면 다음 두 달은 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에 매진해야지, 하고 모처럼 시간 계획이란 걸 세워본다. 그땐 봄이 다 가고 더운 바람 훅 끼치는 여름이 또 가고 가을 바람이 또 시작되겠지. 그렇게 인생은~  
* 여기 뱅쇼는 좀 별루다. 그저 달고 정말 무알콜인지(무알콜 레드와인?) 그 효능 봄바람보다 못하다는 거.
커피 전문점에선 역시 커피를 마셔야한다는 거.

버스커 버스커, 벚꽃 엔딩

봄이다. 봄바람 불고 벚꽃 휘날리는.

봄바람 부는데, 어떤 문턱이나 경계가 있으리.

나는 도구의 인간.

현대인의 삶을 사는 나 역시 많은 도구를 쓴다.

도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보다 컴퓨터. 그 안에는 수많은 소프트웨어가 있고, 그 프로그램들 속에도 tool이라 불리는 것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매일, 지금 이 순간도 그것들을 이용해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그런데 요즈음 내게 감탄을 일으키는 건 이런 도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을 좋아해 단골메뉴인데, 간편하게 절단된 김은 다 간이 되어 있어서 담백한 김이 먹고 싶어졌다. 문제는 이걸 굽는 게 꽤 번거롭다는 것. 그러다 이 망에다 김을 굽는 사진을 발견하고 냉큼 슈퍼에 가서 사가지고 왔는데… 히야… 이게 정말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쾌감을 선사한다.  
이제야 식생활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서 주섬주섬 접하게 되는 그 효용이 확실한 각종 주방기구들은 때로 경탄스럽고, 이젠 식수마저 필터 처리를 해서 각종 경비와 수고와 자원낭비를 줄이려 시도하는 중이니, 바야흐로 호모 파베르의 후예로 거듭나는 기분이다. 흐흐.

……

페북에 올라온 오랫만의 신선배님의 글.
“피와 살을 내주고 뼈를 얻었다
얻은 성과가 내실이 있고 조합이 좋다.
게다가 자만하지 않고 긴장하게되었으니…
당장은 위로가 안되겠지만
괜찮다 괜찮다”
– Chaeho Shin

멀리서 보내는 저 잔잔한 메시지를 수신하며 여러 사람들이 위안과 힘을 얻겠구나, 싶다.

잠시 한 직장에서 일을 했음에도 기회가 별로 없어 그 깊은 속내 잘 알지 못하지만, 뵌 지도 너무 오래 되었지만, 멋진 사람임에 틀림없는 이, 안녕하신지. 그러고보니 올해는 달력을 못 보내드렸다..

이상엽씨의 페북에 올라온 사진과 글들엔 가슴이 좀 아리고,
홍세화 선생님, 변영주 감독의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많이들 아프고 힘들겠구나.
그래도 그 고통을 기꺼이 견디어 내는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겠으니,
마음속으로나마, 마음 모아, 응원을 보낸다.

거기에 덧붙여진 홍세화 선생님의 글을 오랫만에 다시 읽었다.
 
“남을 설득해본 사람은 안다. 남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늘날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이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사회진보가 어렵고 느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만큼 사회진보를 도모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이 주입한,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의식화나 계몽 대신 나는 ‘탈의식’을 주문한다. 지배세력에 의해 주입되고 세뇌된 의식을 벗고 발가벗은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벗어내고 존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운동권에서 흔히 ‘의식화’를 말하지만 여기엔 중대한 잘못이 있다. 첫째 잘못은 사회구성원들을 아무런 의식을 갖지 않은 자 혹은 중립적 의식의 소유자인 양 보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잘못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가 관철돼 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봄맞이, 그리고…

** 이제 그만 기대를 접고 티비를 끄고 컴터도 끄고 잠을 청할 시간.
그나마 마지막 심상정씨의 승리 소식은 얼마나 다행인지.  
힘껏 싸웠던 이들의 실망이, 혹여 절망이 크더라도, 오래 가지 않기를.
오늘의 아쉬움, 점차 눈덩이처럼 무럭무럭 증식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를.  -.-;;
* 개표가 느리다. 딴짓을 하면서도 기다리기가 지루하다.
노회찬, 심상정의 선전은 반갑고 또많은 이들의 접전 소식엔 가슴이 졸여진다. 정당지지를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 3%를 지향하는 내 한 표는 아직 소식이 없다…
그런데 강용석이 5%라니. 3%냐 5%냐를 놓고 사무실 사람들과 내기를 했다는 친구가 안됐다. 1위를 해서 내가 공언대로 이사를 가야하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5%도 너무 했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최종 득표율은 4.3%로 마감)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트앤스터디 블로그에 이런 게 올라왔다.

다이어트의 목적에 무엇을 놓든, 어쨌든 자신의 욕망을 전시해놓자 하는, “정신보다 앞서 생각하는 육체 즉, 체화를 막기 위한 동력이 타인의 시선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이기보다는 좀 더 건강하고 유니크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제안에 끄덕끄덕.
 
나도 그런 다이어트에 도전해서 올 여름에 비키니를? 이라 말하는 건 물론 농담.
그러나 어찌 다이어트뿐만이랴.
이 봄에 발동중이거나 발동하려는 모든 욕망의 동력이 무엇으로 세팅되어 있는지를 냉철히 되돌아보고 점검해보아야할 일.
윗글 마지막 스파르타인의 저 말은 내게도 큰 울림이다. 새겨놓아야겠다.  

기대수명

절취선 뜯겨졌나 투표관리인 도장 제대로 찍혀있나 확인하고, 투표용지 세로로 접고… 무효표되지 않도록사람들이 염려하던 걸 상기하며 정신 차리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투표를 하고 왔다. 기표소 안에는 접으라는 얘기도 없고 투표함 슬쩍 들여다보니 안접힌 투표용지가 보이던데 괜찮을까 걱정도 되고, 인증샷 찍으려는 커플들 V자 그리지는 않나도 염려되고.

그런데 왜 이래야하지? 생각이 드니 좀 어이 없다. 기본적인 권리 행사하는 게 이리 아슬하니.
   
* 기대수명이라는 걸 나도 따라 해봤더니 내 수명이 23년, 8395일이 남은 걸로 나온다. 예상보다는 숫자가 크지만, 요즘 체감하는 세월의 속도로 감안한다면 결코 길다 할 수는 없는 시간이겠다. 뭐 100살이상 살 것이니 미리미리 대비해야한다고 불안감을 조장하는 보험광고에 휘둘리지 않아도 될 정도니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조심조심 건강하게 산다면 그 때까지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결코 그러고 싶진 않지만.^^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향후 기대 수명에 대한 통계적 의견”을 근거로 한다는 문항들을 들여다본다. 이런 것들이 “보편적”으로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에 대체로 끄덕끄덕.
그러나 우리 삶에는 그런 보편적 인과를 넘어서 얼마나 많은 의외성이 존재하며, 그게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료할 것인가? 그로 인한 뻔한 삶의 무료함과 권태는 인간에게 저주에 가까울 터. 23년이든 그보다 훨 짧거나 길거나(길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의 남은 생이 수많은 의외성으로 가득하기를.  알 수 없는 우연의 사건들, 마주침들 속에서 그로 인한 기대와 불안을 견디며, 그렇게 터득한 삶의 지혜로 자유로워져 마침내 훌훌 가벼이 떠날 수 있기를.  

친구와 투표

@pspdkks  투표율에 목을 맨 상황이라 막 간다. 내일 투표안하는 넘 더이상 친구 아니다. 투표 안하고 했다고 거짓말 하는 넘 다신 안본다. 투표도 안하고 뻔뻔하게 안했다고 하는 넘. 넌 죽었다

어제 트위터에서 이걸 보고선 씨익 웃음이 나오고 옛 생각이 났다. 비슷한 전력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대선에서 너무나 천연스럽게 투표를 안 했다고 말하는 친구가 어이없어서 머라 했는데, 그게 좀 세었던지 그 친구로부터 절교를 당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잠시 다니던 디자인대학원에서 만났던 친구…라고 하기는 거리가 좀 있던 덩치가 산 만했던 그녀는 사실 이름도 생각이 안 난다. 내 두 배쯤은 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치 여고생같은 포즈로 “우리 친구하자”고 다가왔던 그녀는, “우리 나이에 어떻게 선거에 그리 무심할 수가 있냐. 우리가 투표는, 투표만이라도 해야하는 거잖아” 라는 내 힐난에 풀이 죽어 “여태까지 내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단 말이야…”라고 변명을 하더니, 다시는 내게 말을 건네기는 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천진하고 여린 그녀는 내게 상처받았다는 암시를 마구 보내더니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물론 이거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다.) 먼저 떠났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실상 그녀와 친구하고픈 의지가 별로 없었던 내게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그녀의 상처를 방치한 것에 대한 약간의 미안함이 남았다.  
오늘 그녀는 투표를 할까? 어쩌면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씨익 웃으며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을런지.

사람들은 대략 끼리끼리 모이기 마련이므로 이런 당혹스런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런데 수년 전에 선거날 만났던 후배가 ‘정치엔 별로 기대가 없어서’ 투표를 안했다고 했을 때는 잠시 꽤 당황했었다. 내게는 위의 전력이 있었던 데다 그 후배와는 그때 그녀와는 달리 꽤 친밀감을 공유하기 시작한 때였기 때문이다. 뜻밖의 상황에 잠시 “어…” 하던 나는 “오늘은 봐준다. 다음부턴 꼭 해야 돼..” 하면서 함께 맛난 밥을 먹었고, 지금 그녀는 누구못지 않게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꼼꼼하게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그녀의 이러한 면면은 그녀에 내재한 성향일 것이다. 다만 조금 늦게 발현된. 그래서 다행스럽다.  

지난 번 선거 때는 티비가 없어 아프리카 방송으로 소식을 듣느라 꽤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 후유증으로 장만한 조그만 티비가 있으니 편하게 소식을 접할 수 있겠다. 기분 좋은 소식을…

그리고, 어쨌거나 나와 친구로 간주할 수 있는 관계이거나 친구이고 싶은 이들은 어여 투표장으로 향하시라. 흐흐.  

2012년 제19대 총선 투표!



드디어 내일이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twitpic.com/9863a6 
어제 올렸던 허리우드판 투표독려영상보다  세다.
4분 52초짜리 동영상보다, 한순간의 사진 한장의 힘!

노트 끄적끄적

“벤야민의 저작은 철학적 직관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직관을 고무하는 인지경험은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철학적 직관은 일상적인 의미에서 ‘발전(develop)’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감광판처럼 ‘현상(develop)’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윤곽과 명암은 뚜렷해지지만, 감광판에 찍혀 있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거기 있던 그것이다.”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서문을 들쳐보다가 위 문장을 보고 빠작거리는 생각.  
그러한 철학적 직관 뿐 만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있지.
결코 ‘발전(develop)’ 하지 않고 ‘현상(develop)’할 뿐인 사유, 정서, 감정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뚜렷해지는 이미지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거기 있던 그것일 뿐인.
때로는 네거티브인 채로.
* 아무도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은 채로 만우절이 지나갔다.
그리하여 아무런 약속도 없이.
** ‘권태와 무기력에 잠식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늘상 가지고 있다는 시인의 말에는 마음이 놓이게 하는 위로같은 게 있다. 그래, 시인도 그렇단 말이지. 시인도 그러하다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중얼거리다 보면 그리 끔찍하던 내 권태와 무기력마저 좀 다르게,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시인이니까.  
*** 엊그제 들여온 히야신스에서 꽃이 피니 당황스럽다. 봄이고, 원래 꽃을 피우는 종자인데도!
찾아보니 무지하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녀석이구나.
저 단단한 구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포즈가 공작이 펼쳐놓은 우아한 꼬리같다.
**** 밤늦게 동갑 친구와 해장국에 술 한 잔 하다가 ….
‘우린 이젠 요절하기에도 너무 늦었단 거지. 그러니 남은 생을  열심히 사는 수 밖에 없다는 거지.’  -,.-;;
***** “지식인과 예술가는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래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여기까지는 괜찮다고 알려줘야 한다.” 라는 건 공연 연출가 탁현민씨의 말.
드라마 더킹을 보면서, 그런 견해로는 드라마도 예술이구나, 라는 생가을 했다.  
아직도 색깔론이 뻔뻔하고 당당한 지금, 드라마 더 킹에서 남과 북의 경계를 넘는 하지원의 발걸음은 얼마나 가뿐하며, 이승기가 던지는 “빨갱이”라는 말은 얼마나 상큼하고 사랑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