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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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헌에서 서로 시계자랑을 하다가 새미양이 아이폰으로 인증샷.
아래 시계는 노랑색 돌기위에 레고를 세울 수 있단다.
앙징맞다. 상큼한 그녀처럼.  
노가다성 html 코딩을 하면서 더 킹 투 하츠 마지막회를 보았다.
역시나 달콤한 남북 결혼으로 외세에 의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고 트라우마도 극복했다.
환타지이긴 해도 나름의 논리와 리얼리티 있는 소재, 의미있는 해피엔딩, 매력적인 배우들.(특히 조연들, 노래하는 은시경!)
잠시 몸살이 지나갔다.  아주 잠시 휘릭. 그래서, 삐뚤어지겠다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죽을 끓이며 되뇌었다. “내가 잘 할께. 아프지마”.(가관이다, 아주!)
자존감의 위기를 느끼는 건 나를 상대화하는 것에 기인한다는 P선생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데, 굳이 상대화해서 근거를 찾으려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인간은 반성적 주체인 것인디… 뭐 이런 항변을 해볼려다, 작금의 시기에 내게 꽤나 약이 되는 말이라 가만히 들었다. 그 말을 덜컥 복용하고 나니 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 느낌.
약효가 오래 가도록 꼭꼭 기억해두어야겠다.  
진행하는 일중 하나가 월욜마다 업무회의를 하니, 벼락치기로 마무리하느라 주말이 실종되었다.
이 좋은 봄날, 황금연휴에…. 으아…. 일하기 시러…. -,.-;;

떡볶기가 생각나누나.

전쟁같은 일주일이 지나갔다.
“전쟁같은”이라는 수식은 빡센 직장에 다닐 때에 떠오르곤 하던 단어였는데, 오랫만에 살아났다.
이런 상황이면 으례 그렇듯 속썩이는 피씨.
그동안 임시방편을 찾으며 버텼는데, 이번엔 중요한 프로그램이 아예 열리질 않으니 정말 안되겠다 싶어 포맷을 하려고 백업을 받으며, 음식드라마를 보았다.
누군가 “있으나마나한”이라고 표현한 앙징맞은 티비로 보는 드라마는, 아무 생각없이 볼 만한, 예쁘고 맛있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래서 슬쩍 시장기가 느껴지니 생각나는 건 어제 개척한 동네 떡볶이집의 맵싸하고 달콤한 맛.
나도 동행인도 한 젓가락 배어물고 맛있다 감탄사를 내뱉었던, 내게는 “신들의 만찬”에 다름 아닌 떡뽁이와 고소한 튀김!  
정직한 가게 이름-떡볶기와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마스크를 쓰고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만들어 내어주는 아저씨도 맘에 든다.
밥맛 입맛 없고 살 맛도 아니 날때 찾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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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맷 스타트!  세팅이 얼릉 끝나기를.

바리케이드, 아이

“시가전의 고전적인 시대에서조차 바리케이드는…… 물리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역할을 했다. 바리케이드는 군대의 견고함을 흔들어놓는 수단이었다. 이것이 성공할 때까지 바리케이드가 견뎌준다면 승리를 달성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1848년에서 1850년까지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칼 마르크스) 서설中

우리 시대의, 우리 삶의 바리케이드는?
* 티비를 통해본 통진당 사태의 한 이미지는 누구 말처럼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일부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왔던, 많은 이들에게는 아직도 그러할 이들이 어찌 순식간에 그리 허물어져 추락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강하던 어느 신체건 면역력이 약해지면 순식간에 암세포가 자랄 수 있는 것이니 깨끗히 도려내면 된다고 위안하기에는…   예고없이 너무나 끔찍한 MRI 사진을 받아든 느낌. 우리 신체의 일부라고 믿기 어려운, 기이하고 슬픈.  
** 처음 본 사진이 생후 한달쯤이었나? 그후로 몇 년이 지났는지 아이는 이제 소년티가 팍팍 난다. 특이하게 사진을 쌓아두지 않고 바꿔서 블로그에 올리는 아이의 아빠 때문에 아이의 지난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가 아는 얼굴인 듯 반갑다. 기억이 된 이후의 사진 이미지는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므로.
소년티, 라고는 해도 아직 마구 뽀송한 얼굴에 쪼그만 입술을 모아 비눗방울을 만드는 앳된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저 아이가 씨앗처럼 이 세상에 와서 몸과 맘을 저리 키우며 자기 세계를 만들어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 낮잠, 이 아닌 저녁잠에 곤히 빠졌다가 일어났다. 월욜 낮의 회의를 앞두고 새벽 다섯씨까지 벼락치기로 일을 하고났더니 하루를 못버틴다. 처음 해보는, 재미없는 온라인 가계부 같은 걸 만드는 일을 부여잡고 있으니 생산성이 후두둑 추락.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회의때마다 늘어나는 일의 양을 보면 다행이랄 수도 없다. 사람들이 좋아 거절하기가 어려우니.  벌써 메일링 템플릿과 모바일 디자인이 추가되더니 오늘은 사이트 이용 플래시까지 등장하기에 난색을 표했다. 플래시까지는 넘어가지 않겠다, 절대로!
 
꿈에서 그를 보았다. 내게 다가와 처음 보는 사람인양 연락처를 묻더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고는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었다. 세월을 거스른 듯 오래전 그대로 말간 얼굴이 가볍고 편안해보였다. 마음이 툭, 놓이면서 나도 편안해졌다.  
* 여러 가지 일이 겹쳐 정신이 산만하기 그지없다. 오늘도 한 번만 갈아타도 될 전철을 네 번을 갈아타고 나니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오늘은 오랫만에 내린 비 덕분인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빗소리가 미치도록 좋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자꾸만 안으로 닫히고 잠겨드는 아이를 건드리던,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타전소리나 응원의 메시지인 듯 울리던 톡톡 후두둑 쏴아아.. 하는 소리. 세상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웠던.

우울한 날

우울한 것들은 서로 친하다.

우울한 일들은 그래서 대개 연달아 일어나고 몰려 다닌다.
우울한 사람들도 그렇다.
서로의 얼굴에 화인처럼 새겨진 우울의 징표를 즉각 알아차리고 끌린다. 좋은 쪽으로든 그 반대로든.
패밀리마트에서 쵸컬릿과 딸기우유를 사서 한 입에 후룩 털어놓고도 우울의 기운 가시지 않아 음악을 들었다.
랜덤으로 뽑혀져 나온 박창근의 <푸른 바다와 그대 꿈에 관한 이야기>을 듣다보니,
바다에 가고 싶어졌다.

(서울우유에서 나온 딸기우유는 정말 제대로 딸기우유맛이다. 절대 딸기맛이 아닌 오리지날 딸기우유맛!)

어린이날.

이명수 ‏ @meprism
1)어린이날이 없으면 좋겠어, 나는. 그 날 괜히 키 작아지고, 눈물나고, 가슴에 대못 박히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부모가 있거나 손잡고 놀이공원 함께 갈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어린이날 없다고 상처받진 않잖아. 그렇담 상처받을 아이들을 먼저 배려해야.
2)어린이 인권 다시 생각해 보자는 날인데, 그것 땜에 상처받는 아이가 있으면 안되잖아. 한 명의 아이라도 마음에 상처주지 않기 위해 전면 무상급식 실시한 것처럼 어린이날 없애면 어떨까. 그날 하루종일이 내내 응달같을 아이들을 배려해서.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회라면 참 좋을 거라는 생각.

* 좀 복잡한 코딩을 해야하는데 발동이 잘 안걸린다. 일에 대한 연륜이 늘어날 수록 처리 속도는 증가하는데 엔진에 시동이 걸리는 시간이 훨 늘어나니 이게 문제다.
자전거처럼, 좀 늦더라도 시동을 걸 필요가 없는, 그래서 오래 오래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에피톤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

(……)
시청역에는 유실물센타가 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곳. 방안에서도 뭔가를 곧잘 잃어버리고 찾다찾다 4차원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는 게 틀림없어, 라고 중얼거리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일은 정말 고마운 일이고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유실물센타가 궁금해져 화살표를 따라가니, 2호선으로 들어가는 개찰구 앞에 문이 있다.

그 안에는 참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께 여쭤보니, 대부분의 유실물은 잃어버린 당역에서 되찾아주고, 주인을 찾지 못한 나머지만 이곳으로 들어온다 했다. 그렇게 들어오는 것이 하루 20점 정도. 그 중 현금이나 귀중품은 바로 경찰서로 가고 1/5 정도가 여기서 주인을 찾는다.

잃어버린 것들은 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상실이 두려워 내 것으로 가지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일도 없게 되겠지.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랑, 잃어버린 세월을 다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2000. SBS Power English)

* 먼지가 앉은 시디를 꺼내 음악을 듣다가 유실물 센타의 보관기한은 얼마일까 궁금해져 아주 오래전에 썼던 걸 찾아봤다. 그런데 기억과 달리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겠지만 굳이 찾지는 않는다.
매일 매일 들어오는 물건들을 쌓아놓으려면 엄청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니 보관기간이 분명 얼마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관 기간이 지난 그 유실물들의 운명은, 보호시설에서 얼마간 있다가 새주인을 만나거나 안락사를 맞이하는 유기견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실물 보관소”라는 이름의 단어가, 음악이 던지는 이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도, 그러한 정서에 이렇듯 흠뻑 젖게 되는 일도 없겠지.  

위 앨범에서 한곡 더.

 

……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질환.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턱 막힌다. 지난 날 그가 겪었던 일이 그에게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런 낌새를 나는 전혀 감지하지 못했었다. 내 상처만을 돌보기만도 벅차 그랬을 것이다.
 
그를 아프게 했던 건 어쩌면 죄책감이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죄책감으로 인해 느끼지 않아도 될 고통을 느끼는 섬세한 통점세포를 지닌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죄책감이 맞다면 그의 고통 나와 무관한 것일 수 없으니,
미안한 마음에 가슴 한 쪽이 아리다.
부디 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길.
혹여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나 또한 그의 고통에 대한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