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와….

요즘 시가 잘 읽히지 않는다.

띄엄띄엄 놓여진 징검다리같아, 쉽게 건너지지 않는다.
사유의 보폭이 좁아진 건지 마음이 조급해진 건지, 시가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우울해진다.
환절기 신체 컨디션이 우울해진 것에도 마음이 쓰인다.
무엇이 문제이길래 잠도 오지 않는 건지, 작금의 내 처지를, 처세를 떠올려보지만 그도 잘 헤아려지지 않는다.  
잠이 안와, 잘 읽히지 않아, 천천히, 다시 읽는 시 한 편.
        로맨티스트   – 하재연
        어제는 당신을 만났고
        오늘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까지
        이곳에서 살아있을 것이다
        햇빛이 이렇게 맑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한 친구는 자살을 했다
        장례식에서 우리는 십년 만에 만나
        소풍을 떠나는 꿈을 꾼다
        기차를, 기차를 타고
        내년 겨울 우리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어떤 나라의 겨울은 또 다른 나라의 겨울과
        어떻게 다른지
        눈이 녹고 나면 강물은 더 차가워지는지
        떨어진 벚꽃의 분홍은 어디로 갔는지
        나는 쭈글쭈글한 아이를 낳고
        그 조그만 아이를 업고서
        시장을 볼 것이다
        몇 개의 봉지들을 들고 거리에서 만나
        우리는 모든 걸 감추거나
        모든 걸 드러낸다
        햇빛이 이렇게 눈부셔서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친구들은 빅토리를 그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다
        당신도 다른 나라에서 돌아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고
        하객이거나 문상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씩 살아간다

 간신히 마지막 문장만 콕, 가슴에 박힌다.

도시락 생각

전 사원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반찬을 나눠먹는다는 어느 사장님의 이야기를 의외라는 표정으로 듣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 세대에겐 대체로 도시락에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최소한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지역에선 많은 아이들이 그랬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것은 구차한 집안사정을 까발리는 것과 다름 없었다. 먹을 것이 없진 않았어도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했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무엇의 기준이 상당히 달랐던 시절이다. 대략 단무지와 신 김치, 계란 입힌 쏘세지나 햄 간의 간격이 무지하게 넓었다.
해방후 어떤 시기에는 양철도시락을 신무지에 둘둘 말고 옆구리에 끼고 가면, 단무지와 김치의 노랗고 빨간 국물이 안정된 직장인의 표식이었던 때도 있었다지.  
이 시대 직장인들에겐 도시락이 어떤 것일까 라는 생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 어느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나가기로한 일을 앞두고 슬쩍 스쳐간다. 퇴근후 약속이 잦은 사장님에겐 하루에 한 번 사모님이 만드신 맛있고 몸에 좋은 밥을 먹을 기회라지만, 생활이 팍팍한 싱글족에게도 과연 그럴까? 점심을 제대로 사 먹는 게 하루에 한 번 잘 먹을 기회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살짝.
집안을 뒤져보니 도시락이 두 개나 나온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하나로 묶여지는 것과, 앙증맞은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신지카토 도시락이다. 도시락 쌀 일도 없었는데 왜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먹어 보고 싶다는 얘기를 누구에겐가 했던 어렴풋한 기억은 있다. 이런 생각에도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대체로 먹는 거에 무신경한 편인 것도 그러한 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되었던 방어기제가 아직도 조금은 작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도시락을 싸야한다는 건 약간의 부담이다. 도대체 도시락에 뭘 싸가야하는지 잘 생각이 안난다.
H사장님 말씀대로 참치캔을 하나 사들고 갈 판이다.
뭐 곧 익숙해지거나, 익숙해지기 전에 그래야 하는 시간들이 후딱 지나갈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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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을 첨 싸가지고 간 날, 앞에서 밥을 먹던 한 개발자는 자신의 도시락이 ‘전날의 그의 행적에 대한 아내의 성적표’라고 말했다. 바로 바로 다음날 반영이 되는 성적표!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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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에서의 이튿날, 잠깐의 아침 우중산책은 들판, 골목길, 길모퉁이, 처마 같은 다정하고도 어여쁜 말들을 상기시켜주었다. 그건 내게도 유년시절의 기억과 닿아있는 것들이어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아래 ** 님의 꼬꼬마시절 “좁은 골목들 하며 흙탕물 튀기던 길바닥”들도 있었다.
어느 담벼락 아래서는, 고인 빗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들이 경쾌했다.

무심하게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동심원들속에서 육체의 쇠락과 소멸을 묵묵히 견디어가고 있는 감 열매는 우아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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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작천의 이모님을 생각나게 한 건 담벼락의 꽃 때문일 수도 있겠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몇 자 적다 삭제한다.) 여러 가지 요소들-온도가 매우 다른-이 혼재된 아름다움이 있다.
아니면 저 길 모퉁이로부터 시작되어 멀어지는 길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 뵙는 쑥쓰러움에 슬쩍 슬쩍 바라본 이모님의 눈빛은 때로, 호젓한 길 위에서, 떠나는 사람 혹은 떠나는 것들을 홀로 오래 오래 배웅하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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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군 작천면 

정리충동

MDF 박스를 주문해 책상위에 올려놓으니 번잡한 파일들과 CD, 하드디스크들, 잉크병과 연필깎이 따위들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진작 이리 할 걸. 며칠 후 칸막이용 2단 책꽂이가 도착하면 책상옆에 쌓여있는 것들도 정리되고 사무실 분위기도 좀 날 것이다. 주거공간이자 작업공간이기도 한 멀티 스페이스이다.

이 넓지도 않은 방을, 자꾸 뭔가를 정리하고 싶은 충동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다. 두어 가지는 생각이 났지만 좀 귀찮아 포기한다.
사실 정말 정리하고 싶은 건 나의 일부, 어떤 행동들, 내가 뱉아놓은 말들임을 안다. 방심한 틈을 타 튀어나온 그것들이 어수선하게 내주변을 떠돌다 나를 콕콕 찌르고 달아나는 것 같다.  
나쁜 꿈은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세게 저으면 사라져 버린다던데… 꿈도 아닌 것들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저 감당해야할 것이다.
뱅쇼님의 블로그에서 본 새우깡이 생각난다.
지난 날 대학가의 모든 호프집의 기본안주가 새우깡이어서, 그걸 먹고(그 땐 안주가 늘 충분치 않아서 참 많이도 먹어댔었다.) 대학생들이 죄다 멍청해졌다는 오래 전 얘기가 떠올라서였을까?
누군가는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두달동안 새우깡과 소주만을 끼고 살기도 했다지.
그러고보니 새우깡을 먹어본 지도 너무도 오래.  

사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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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현재, 나를 누나라고 불러준 최연소자.

“사색적”거나, “초절정 명랑소년”인 아주 쪼그만 아이가,
물방울 구르듯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쪼르르 내게로 왔다.
그 거리가 가까워 내 렌즈는 자꾸 촛점을 잃었다.

말을 줄일 것.

특히나 내게 속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말하는 걸 삼엄히 경계할 것.
어쩌다 그 경계의 고리 느슨해지거든, 오로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할 것.  

오소영, 숲

잊혀진 오래 전의 약속
어지러우면 눈을 감으면 안돼
나쁜 기억들이 날 삼켜버릴테니  


흩어진 냄새의 흔적
물빛 요정들의 푸른 춤 속에
흔들리는 불빛
아득한 꿈의 향기

내 맘에 슬픔이 고이고 넘쳐도
내 눈물은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거야

보랏빛 안개를 거둬
어지러이 얽혀진 나무들에
지워지는 하늘
끝이 없는 오솔길

아무리 험한 길만 찾아 걸어도
내 다리는 아픔을 느끼지 못할 거야 

(from 오소영 2집, a Tempo)

* 그거 하지 마… 라고, 순간 울컥해지려는 내게 말했다.
  그러자 저만치 다가오던 숲이 달아났다. 사뿐히, 총총.    

만년필 AS

AS를 보냈던 만년필이 돌아왔다.

약간씩 잉크가 새는 바람에 외출을 하게된 오로라 입실론 디럭스다.  
고가는 아니지만(그래도 지금은 무쟈게 올랐더라), 또한 지극히 평범한 외모로 인해 간지를 중시하는 고래동생에게 너무 못생겼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내게는 최고의 필감을 보여줌으로써 만년필 중고장터를 들락거리던 걸 멈추게 하고 만년필에 대한 뽐뿌를 잠재우는 과업을 이룩한 녀석이다.
만년필 생활 수년에 AS 이용건수도 벌써 세 건. 이 또한 만년필 사용의 묘미일 것이다. 물건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삶의 파트너로 함께 가는 느낌이랄까. 잉크가 다 되어 다시 채울 때의 느낌도 그렇지만 이렇게 AS를 받아 말끔해진 걸 보면 뭔가 위로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팍팍한 상품경제 시스템 속의 일개 상품으로서 소비될 뿐만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타자로부터 욕망의 투사 대상으로 소진되고 착취되면서 고갈된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은?
 
말끔해진 만년필과 함께 딸려온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는다.
A4용지에 빼곡한 텍스트는 너무 여러 번 복사를 한 탓에 군데 군데 번져 있지만 그도 만년필의 아날로그한 감성에 어울린다 느낀다.  
가장 중요한 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세척하는 일이란다. 만년필 AS의 80%는 세척을 안 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 내가 만년필을 돌봐주는 일에 좀 게을렀구나 반성하는 김에, 세수하기 싫어하는 것도 반성한다. AS가 어려운 내 몸도 부지런히 세척을 해줘야겠다.  
그 외에 필기각 55도 지키기, 심하게 힘을 주어 쓰지 않기, 잉크 충전시 과충전 하지 않기(약간 모자라게 충전하기) 등도 기억해둔다. 내 삶의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건강한 삶을 위해 기억해둘 만한 주의사항이다.
만년필은 서양의 문화상품. 대부분의 서양권에서는 만년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설명도 덧붙어 있다. 보관시 촉이 위로 가게 하고 뚜껑은 뒤에 꽂지 않으며 안 쓸때는 잉크를 빼놓기 등인데, 이 모두가 만년필을 더 오래 좋은 상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겠다.
“만년필 안에는 또다른 우주가 있습니다. 만년필 쓰는 기쁨에 빠져 필기의 재미에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는 마지막 말은 다분히 뽐뿌용이지만, “오로라 한국 에이전트”가 던질 만한 말이기도 하겠다. 우주와 오로라니까.
이름으로 따지면 오로라는 궁극의 만년필 (말하자면 카메라계의 라이카같은) 몽블랑보다 높은 곳에 있구나. ㅋㅋ
그래도 나는 뽐뿌를… 안받을까?  응, 지금은…. -.-;;

거짓말 같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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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후의 노곤함에 귀찮아져 쌀쌀한 기운에 칭얼거리는 몸의 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자고 났더니, 하루 종일 암 것도 못하고 헤롱거리고 있다.

그악스럽게 무더웠던 여름은 어느새 완연한 가을.
계절은 늘 그렇듯 거짓말처럼 새로 오고, 그림같은 강진의 들판과 연신 비가 내리던 정안당, 그 속에서 갖가지 빛깔 고운 술을 연신 마셔대던 우리의 풍경도 거짓말 같은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참말인 것들이 대체로 비루하고 속절 없는 세상에서, 너무 좋은 것들이 대체로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