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은, 너를 팔아 사과나무를 산다

너를 팔아 사과나무를 산다

                                 – 천 혜 은 –

네가 버리고 간 오후를 줍는다

버림받은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손톱으로 꾹꾹 눌러

구겨진 시간을 피고 길을 만든다

너는 가고 낡은 광주리에 담겨있던

네 그림자를 내다 팔기 시작한다

네 다리를 한 짝 내어주고

길 위에 심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산다

네 남은 다리 한 짝을 마저 주고

사과나무 여린 잎의 그늘을 산다

다리 없는 너를 안고 나무 아래 누워

네 차가운 배를 어루만지고

네 눈알을 만진다 팔과 머리통도…

길 밖에서는 해가 진다

저녁도, 밤도, 이곳에는 없다

네 눈을 팔아서 아침을 사고

따스했던 네 두 손을 팔아

사과나무 뿌리를 적실 이슬을 사고

해피 뉴이어…

메리와 상관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해피와 상관없는 새해를 코앞에 두고 있다.

감기탓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며 버티기에도 힘이 겨우니, 회사 회식 빼고는 망년회 한 번 제대로 못했다.(내가 떠나보내지 않아도 역시 시간은 간다. 광석이 형의 노래처럼)
이번 감기는 정말 대단하다. 계속되는 기침과 두통으로 여러 날 잠을 제대로 못자다 보니, 소망을 이야기하는 새해를 앞둔 이 시점에서, 살기가 싫다고 탄식하게 만드는 위력이다.  
오늘은 정말 암 것도 하지 말고 푹 쉬고, 감기와 이별을 시작하리라, 작정한다.
그 끔찍한 목소리로 한 일 중에는 꽤 여러 차례의 면접이 있었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아가씨가 자꾸 맘에 걸린다. 여리한 외모에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그녀는, 함께 일할 동료들의 간절한 뜻을 접수하여 다른 지원자를 미는 바람에 탈락이 되었다. 탈락 소식을 전하니, 많은 걸 물어봐준 면접 시간이 자신을 돌아볼 좋은 계기가 되어서 감사하다는 답멜을 보내왔다.
그녀가 이 회사에 들어온다고 해도 기대한 만큼 설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겐 아쉽게 놓친 좋은 기회로 남겠지. 우리가 가지려 했으나 놓쳐버린 일들에 대해  대체로 그러하듯 안타까웁게.  
어쨌거나 미안하다.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그녀의 이력서를 따로 저장해놔야겠다.

Merry Christmas!

슬픈.

슬픈 소식들이 자꾸 들려오고, 이 고약한 시스템에서 소모되고 희생되는 목숨들이, 모든 삶이 눈물겹다.

이 땅 위에서 삶을 향유하는 것과 목숨을 부지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 것인지.    
* 직장인이 되고나서 몸이 좀 불었다. 소홀히 하던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데다 잦은 술자리 때문이다.(울 사장님은 술을 자주 마셔야 회사가 잘 된다고 믿는다.) 그래봤자 1~2키로 차인데도, 태어난 이래 가장 무거워진 몸을 데리고 다니려니 숨이 가쁘다. 체감되는 중력이 늘어난 건 몸무게의 증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몸무게 외에 여러 가지 무게를 주렁주렁 끌고 다니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그러니 걸음은 느려지고 쉬이 지치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없어지는 것. 그러다가 그 무게에 짓눌려 꼬꾸라지기도 하는.

묵언수행은 깨지고.

묵언수행을 하자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문자가 왔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박근혜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순간 짜증이 확.
선거 전날, 당일날에도 문자며 전화가 몇 통이나 왔었다.
도대체 날 뭘로 보고!
난 적어도 사유능력이 있는 인간이란 말이다!  
묵언수행을 하자 한 건 사실 감기로 인한 후두염 때문.
자꾸 말을 하면 지금의 바람소리+쇳소리로 평생 살아야 될 수도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협박이 있어서인데,
방금 온 전화로 가볍게 깨졌다.
워드프레스 기반의 홈피 작업을 해주고 한 시간여의 교육과 문서도 만들어줬던 업체인데 관리가 영 어려운 모양.
모른 척 하자니 참 마음이 갑갑하다.
하나 어쩌라, 내 코가 석자이고 시국이 이리 암담한데.
아, 우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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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선거일

선거결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나와 목소리가 닮았다는(사무실 옆자리 동료의 말이다.) 그녀의, 당당하고도 짠했던 목소리가 떠올라 마음이 좀 흔들린다.
오늘 그 동료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의 제목이<불가능성의 가능성>.  
“미래가 뻔히 보이는 파국일지라도, ‘불가능성의 가능성’에 실존적 결단으로 나를 연루시킬 때만 가까스로 그 도래를 예감할 수 있다”는 그 코뮤니스트적 비전을 생각하며, 나는 내일 (고작) 투표소에 갈 것이다.
날씨가 추우면 젊은 친구들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지만,
유니클로 매장에 히트텍 내복을 사러 어마어마하게 줄을 서 있던 이십대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낙관적 전망도… ^^;;
* 울회사는 오늘도 출근이었으나, 일도 제껴놓고 투표상황에 코를 박고 실중계를 해주며 마음을 졸이는 어린 친구들을 보며 종일 가슴이 뻐근하고 눈시울이 젖었더랬는데… 알고보니 감기인듯. 콧물에 재채기에..
어쨌거나… 부디 그 끔직한 결과만은 피해가기를.  
** 특정 후보를 비호하는 댓글 달았던 아저씨, 죄송.
    제 답글 수정하려다 잘못해서 아저씨 댓글이 삭제되었어요.
    그런데 그런 농담 안하시면 좋겠어요. 날씨도 추운데. -,.-

문득

울고 있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나서 마음을 졸이다가 문득, 나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함께 한 세월이 내 생의 사분의 일 밖에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겨운 존재.  

note.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2012 한국방문 인터뷰 중)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시작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베게트)
* 엊그제 마신 술의 후유증이 너무 크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후회와 반성에 주말의 기상도는 계속 먹구름.
한동안 알콜은 입에 대지도 못하겠다.
그런데 연말이고, 먼 곳에서 날아온 친구도 있고, 일하는 동네의 상황도 그렇고, 대선이 닥쳐오고…
오늘의 반성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참 쉽지 않다. T.T
출국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서야 한시름 놓고, 마지막 대선 후보자 토론을 보면서 멘붕상태를 약간 벗어났다.
좀 싱겁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가 명쾌한- 뻔한 토론이었다는 생각.
그런데 디자이너 출신이라 시각적으로 예민한 나, 두 후보 화면이 같이 나온 화면에서 화면 크기가 다른 게 계속 눈에 거슬려 자로 재보았는데 가로 비율이 9:9.5 이다. 이거 문제 아닌가? , 라고 얘기했더니 회사에서 동영상 담당인 친구는 한 쪽만 계속 어깨를 걸어 찍었다는 말을 한다. 풋.

김창완, 투표하러 가야지

눈 온다아~

눈이 오니 세상이 조용하다고, 회사동료가 말했다.

쌓인 눈이 도시의 소음을 흡수했다는 뜻이겠지.
늘 이어폰을 끼고 영상편집을 하고 있는 그가 내뱉은 말이라 이렇게 이해된다.  

내 등뒤에, 의자에 앉은 내 등의 높이에 있는 창문으로 조용해지고 차분해진 세상을 본다.
시끄럽게 자기 존재를 주장하던 온갖 사물들이 부드럽게 겸손히 배경으로 물러난 느낌이다.
모두가 배경이 되니 멋진 풍경이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점심시간에 가서 가져올려다, 대화를 요청하는 동료가 있어 거절하지 못했다.
나와의 대화가 별 도움이 못되는 걸 그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쉬운 대로 등 뒤의 창밖 풍경을 흘깃거린다.  
이중창의 하나를 벗겨내니 약간의 한기가 느껴지는 내 등 뒤로 내리는 눈. 내 등 뒤로 쌓이는 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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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가 만든 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