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엽수

날이 많이 풀렸지만 나는 아직 영혼의 수축을 겪고 있다.

쪼그라드는 영혼의 비명을 외면하기 어려우니
토닥이는 내 안의 말들이 소란스럽다.  
툭, 털어버리고싶은 욕망…

그대 한 그루 활엽수여 그 둥근 입새같은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오

뽀족한 아픔들이 돋아나네 뽀족한 아픔들이 자라나네 그대여 더 늦기 전에

생각의 여름, 골목바람

생각의 여름. ‘생각의 봄’을 치칭하는 사춘기(思春期)의 다음 시기를 가르킨다 한다.

여름볕,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로서는 그 이름이 좀 더 반갑다.
코스모스 사운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반가워하던 직장동료가 소개해주었다.
참으로 오랫동안 듣던 음악만 줄창 들었다가

진짜 오랫만의 업데이트. 좋다.

아래는 코스모스 사운드의 최윤석과 함께.  

살아있음의 낌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블린


내 방 안의 작은 화분들이 이상하다.  
실내가 너무 건조해서인지 한참 전부터 잎이 푸르스름한 외양을 한 채로 바싹 말라 있다.
도대체 살아 있는 것인지, 죽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너희들은 정체가 뭐냐’ 궁시렁대면서 바스러질 듯한 식물들에게 계속 물을 준다.

예전의 어떤 애들은 며칠 잊어먹어 축 처져 있다가도 물을 주면 순식간에 팔팔해지면서 하늘 높이 팔을 올려보여 응답을 해주었더랬는데. 도대체 아무 반응이 없는 얘네들은 무심해 보이다가 애처로워 보이다가… 어떤 때는 그 생기 없음이 꼭 나 같아 보여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녀석들의 생기를, 살아있음의 낌새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래도 감기는 다 떠나보냈다. 하긴 감기나 숙취만큼 몸의 생존력을, 자정작용을 쉬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없으리.
이번엔 그리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삼년 째 내 감기를 목격한 알렉스로부터 미리 독감주사를 맞으라는 얘길 듣고 독감주사에 대해 의사선생님에게 물었다가 들은 대답.
“보건소에 있을 때 보면 독감주사를 맞으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게 줄을 서시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찬바람 맞다가 오히려 몸살을 앓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생각해볼 만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