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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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필요한 촬영을 위해 맑은 날을 기다리기 며칠 째.

이 도시에 도착하면서부터 눈바람 몰아치더니, 좀처럼 햇빛을 보여주지 않는 인색한 하늘이 서운해진 차에,
문득 거기의 계절이 궁금해져 소식을 기웃거리다,
비를 기다리는 당신을 위해 비오는 겨울 밤바다 사진을 꺼내 걸어본다.
가는 빗줄기를 타고도 두 뺨을 아프게 공략해오던 바닷바람은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고,  
계속되는 비바람과 일상적인 습기에 충분히 젖어, 몸은 무거워지고 발걸음은 너무 더디어졌다.
   

Summit Inn 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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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기너스에 등장하는 아서처럼. 단어 150개쯤은 너끈히 알고 있을 것 같던 능청스런 개.
이들의 동행이 꽤나 멋져 보였던 한 밤의 Summit Inn.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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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rock Station

취중독백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비행기로 열 몇 시간을 날아온 곳입니다.
많은 것이 낯설고 또 낯설지 않은 곳.
낯설다는 것이 내 한 평생을 지내온 곳에서의 삶과  다름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면, 또 낯설지 않다는 건 내가 지내온 그 곳에서 내가 겪은 불화를 해소시켜주는 무언가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에서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그곳에선 끝내 다다를 수 없었던 어떤 지경이 있어서, 그곳과 다른, 머언 어떤 곳에서 또 다른 걸 꿈꾸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당신이라면,  이곳이나 다른 어떤 곳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인, 그런 인간의 존재론적인 문제라고 얘기할까요?
놀러온 것이 아니어서 무척이나 바쁜 나날들 속에서, 문득 문득 두고 온 내 초라한 삶의 자리를 떠올립니다.
가능한 유목민처럼 가볍게 살고자 했던 젊은 날의 치기와, 그것의 실천이든,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했던 처지이든 간에, 나를 지탱하고 있던 그 깃털처럼 가벼운 삶의 무게 말입니다.

그 초라한 내 삶의 자리와 무게를, 이곳 사람들이 애용하는 표현처럼 ‘러브리’하게 떠올린다고 해서, 당신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에 대한 강박으로 너무 많은 걸 소유하려하고 그게 짐이 되고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나의 가벼움은 오히려 내 삶의 자긍이자 어떤 항변이 되기도 하니까요. 뭐 이런 삶에 상당한 버티기가 필요하다는 걸 당신이 모를리는 없겠지만요. 이런 얘길 지껄이는 게, 상당한 알콜이 체내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란 것도 당신은 알아차리겠지요? 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바닷바람 소리가 허술한 창문을 뚫고 들어옵니다.
멕시코 난류와 한류가 만나 쉴새없이 날씨가 변화하는, 하루에도 사계절이 오락가락하는 이 불확정성의 땅에서, 나는 우리네 삶의 불가해성과 그 위에서 표면장력으로 버티고 견뎌가야할 삶이라는 버거운 미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낯선 공간, 낯선 시간 속에, 그리움의 이름으로 떠올릴 수 있는 존재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Irish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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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ook at life. You live it.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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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lbeg Lighthouse in Dublin Port


햇빛과 바람의 에너지로 삶을 이어가고 세상의 빛이 되는 세상이 있다면.   

Lisa Hannigan, Little Bird

보고 있으려니… 아, 숨이 차다.

봄인가…

날이 많이 풀렸다. 나는 오랫만에 단잠을 잤다.
꿈에선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잠에서 깨어나 어렵게 획득한 작은 자유를 만끽하며 오늘이 삼일절임을 떠올린다.
이 자유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또다른 구속이 아니길.
부디 자유를 향한 것이기를.
 
여기저기 근육이 뻐근하니, 어제 어쩌다 ㅎㄱ에게 던진 얘기가 생각난다.
기대했던 근육의 발달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중요한 근육을 키울 수 있다고?
생전 근육이라고는 어디 하나 키워 본 적 없는 내가 무얼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