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와 근기, 에고이즘과 나르시즘

슬기는 온기(溫氣)를 향해 낮아진다. 그것은 합리주의가 필연적으로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양보다. 그 지혜는 에고이즘과 나르시즘을 동시에 제어하며 그 사잇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희생’이다. 알다시피 그 모든 희생은 좋은 사잇길을 타야하는 기술-이상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자면 근기(根氣) 역시 온기로 향한다. 근기가 무의식의 생산성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되 그것은 결코 기계적 무의식이어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  김영민, <봄날은 간다> 중에서  

자기 전

잠이 들기 전에 겔포스를 짜먹는다.

이것이 쓰린 속을 달래주고 편안한 잠을 가져다 주리라 믿진 않지만, 그리해주길 바라며.
내일은 꼭, 그간 손에 잡히지 않던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폭염주의보 내린 날을 폭풍작업으로 채우기 위해, 오늘은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잠을 서둘러 청한다.
이 시간 잠들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편안한 잠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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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공원

생각보다 데미지가 크다.

아니, 이런 종류의 일은 당연히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 게 맞는 것인 게지.

혼수상태 같은 짧은 잠. 혼미한 꿈을 꾸고 나니 온 몸이 무겁다.

틈만 나면 꼬물꼬물 파고드는 생각의 파편들을 몰아내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꽂히거나 엎어지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보름달과 풀프레임.

달이 꽉 차있나 싶었더니 역시나 보름이다.

보름달을 보며 생각했다.
어제 H의 조언처럼 이젠 나 자신의 것으로 가득찬, 풀프레임의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이젠 풀프레임이다. 흐흐.  

장마

슬그머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합정동 “끼”에서 만든 “장마시작 기념 부추전”은 결국 먹지 못했고, 나는 카메라 기변을 결심했다.
인터넷 서핑중에 마주친 “니콘, 힐링을 부탁해” 따위의 문구에 넘어간 건 아니다.
그저, 인간사의 번뇌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고.. 막연히 고집해온 무언가를 청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들에게 이유가 필요하다.
“어떻게 변할 수 있니?”가 아니라, “왜 고집스럽게 안 변하고 있니?” 라고, 세상은 묻는다.
정체, 고집 혹은 아집이라는 질타가 따르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은 변하고, 혹은 변해야한다는 전제 앞에서, 지속을 전제하는 모든 것들, 관계들은 취약하기 그지없다. 쓸쓸한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기변을 결심했다. 물론 결심만 했을 뿐, 실행은 언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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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콘 따위에 힐링을 부탁하는 건 정말 너무 쓸쓸한 일이다.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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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도 없는 집들이의 선물을 먼저 받았다. 내 전 생에서 소유해 본 것 중 가장 우아한 화분일 뿐더러 가장 우아한 집들이 선물이다.

집을 알아보다가 연남동의 어느 볕 잘 드는 집에서 보고 욕심이 생겼더랬는데, 집들이 선물을 생각해보라는 말에 냉큼 받아먹었다.
집들이때 요리로 보답하겠다고는 했는데, 가능할지.
화분 하나로 공간이 이리 바뀔 수 있다니 놀랍다.
인간이,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불가능하겠지. 흐.

검은깨 버섯 오트밀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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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걸 만들다니, 하면서 연일 나의 능력에 놀라는 나날들이다. ㅋㅋ
입맛 까다로운 파인애플이 흡족하게 먹어줬으니, 맛도 머 그리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이 참에 요리를 배워볼까.

레시피 소개하는 란에 이렇게 덧붙였다. 좀, 간지럽다.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한 그릇의 죽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진 음식인지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을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홀로 앓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지요. ^^

날은 덥고, 인생이 왜 이렇게 꼬여가는지 모르겠고, 나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는지, 언제 오기나 할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 같은 날, 한 그릇의 죽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기로 합니다.

인라인의 추억

오래 전 어설픈 연애를 했더랬다. (뭐 누구는 한 때 안그랬겠냐마는.^^)

만나면 영화를 보거나 고작 용산을 어슬렁거리던 우리가 어느날 손잡고 찾아간 곳이 인라인샵이었다.
발크기를 재고 발에 맞는 인라인을 신고선 샵을 어기적 어기적 걸어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랑 산에 기어오르기 말고는 완전 잼병인 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머, 당연히 쉽지는 않았으나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맘 먹고 스케이트 짊어지고 상암정도는 가줘야 하는 게 좀 귀찮았을 뿐.
그렇게 그와 인라인을 타러 다닌 게 몇 번.
어느날 내가 말했다. “나 넘어지려할 때 왜 안 잡아줘?”
운동신경이 나보단 훨 나아 진도가 좀 빨랐던 그가 대답했다.
“같이 넘어질까봐. 그래서 당신이 더 다칠까봐.”
그의 우려와 달리 나는 별로 넘어지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라인 때문이 아니라 그의 부모님에 의해 내가 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나대로의 이유로 먼저 손을 놓자 하였으나, 그의 이유는 “같이 손잡고 있다가 당신이 더 다칠까봐” 바로 그거였다.  
그가 가고 남은 인라인 스케이트는 가볍지 않았다. 3종 보호대와 헬멧까지 끼워져 있는 배낭에 고이 들어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라인을 보다가 퍼뜩 짊어지고 상암으로 향했던 게 오늘처럼 더운 여름날이었다.
상암 월드컵 공원에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앉아 스케이트를 신던 때가 꽤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케이트의 끈을  하나 하나 꿰어 조이던 일, 그리고 혼자 일어설 때의 비장함 같은 것이.
그렇게 한동안 인라인을 탔다. 열정적으로 무료 강습을 해주던 강사들이 있는 동호회를 기웃거리다 한 수 배우기도 했고 그들과 줄줄이 기차대열을 만들어 한강을 넘어 먼 길을 달리기도 했다. 한강 옆을 달릴 때 스치는 바람이 참 좋았다.
나는 더 이상 인라인을 타지 않는다. 여태 가지고 있던 인라인은 이번에 이사올 때 처분해버렸다.
이제 제대로 도전해보려는 건 자전거다.
얼마 전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고래 동생이 서울을 떠남으로 인해, 혼자 길을 찾아야 한다.


잊고 있던 옛날 일들이 생각난 건 조금 전 오랫만의 산책길에서다. 어떻게 자전거를 끌고 나올까 고민하다 안전하게 한강에 이를 수 있는 루트를 발견한 것이 홀로 대견했던 때문이다. 혼자 인라인을 짊어지고 나갈 때처럼 비장할 필요도, 이유도 물론 없다.  
가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번 주내로 출정을 나갈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대체로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보다 혼자 익히는 것을 잘 하는 것 같다.
타로점에서 “sword”패가 왕창 나와 점을 봐주던 신통한 이가 놀라워했던 게 생각난다.
그 어떤 것도 몸으로 부딪히며 상처받고 그러면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고?

그런데 요즘엔 진짜 인라인 타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신기한 일이다.


 
이런.

노래를 올리고 보니, 그 때가 떠오른 게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있던 때문이었군. 크.

청양고추

그냥 고추를 먹고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 전적이 있는 내가 요즈음 청양고추를 즐긴다.

다분히 그 맛을 가르쳐준 친구 J의 영향일 것이다.
거의 모든 음식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는가 하면, 심지어 C삼촌네 가게에 가서도 셰프의 요리에 감히 청양고추를 얹어달라 요구하기도 한다.(물론 삼촌의 눈치를 좀 보기는 한다.)
고추는 잘 못먹었지만 스트레스가 있을 때 매운 걸 찾는 건 역사가 꽤 오래일 뿐 아니라,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며, 쉽게 타인의 공감을 얻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맵다고 느끼는 감각은 맛이 아니다.”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픔의 감각인 통각”이라는 것이다.
고추에는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입 안에 들어가 통각을 자극하면 몸에서 이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생리적 마약’을 분비하게 되고, 따라서 기분이 좋아지게 되니, 사람들이 고추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매운 고추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엔돌핀, 즉 ‘생리적 마약’ 중독자들이라 할 수 있다.
– <미각의 제국>

그러니까 스트레스로 매운 걸 찾는 일은, 고통을 잊기 위한 고통을 유발하고 또 이 고통을 잊기 위해  ‘생리적 마약’을 분비하게 하는, 고통의 연쇄작용을 통해 고통을 상쇄하기 위한 몸부림쯤이 되겠다. 가여워라.

그러나 ‘생리적 마약’ 중독자가 되더라도 매운 맛을 통한 이 방법은 편리하고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아니하며 경제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으므로 위염, 위궤양 같은 게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 않는 한 근절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내 몸은 지금 무슨 고통을 잊고자 연일 청양고추를 요구하는 것일까?

바라보며 배운다

“… 겪어봐야 할 일들을 충분히 겪어봐야 삶이 메마른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화이모님께서 오늘 올리신 포스팅의 몇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힌다. 한동안 다소 뾰족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성찰적 태도가 우리네 삶에 왜 필요한지, 다시 되새기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며, 이렇게 늘 배운다. 감사한 일이다.
이럴 때 (지리학적으로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견지에서) 먼 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인터넷 세상이, 나는 고맙다. 그걸 기반으로 하는 나의 일과 내가 가진 기술에 자부심 같은 것도 살짝 생기려 한다. 심지어!  

성산동 문방구

친한 후배 녀석은 작가로 등단한다 하고, 언니네는 십년 넘게 끌고 오던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려 들떠 있고, C삼촌은 포기할 수 없는 까페의 꿈을 합정동의 “끼”라는 주점에서 펼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남은 생을 안착하려는 마음으로 이사를 하고, 또 누군가는 접어두었던 듯 보였던 결혼을 한다고 한다. 또한 몇몇 지인들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는데, 여기엔 나도 끼일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꽤 다른 풍경속을, 다른 온도로 살아보려 하는 지금은 바야흐로 환절기.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그러하듯, 그 풍경 또한 지나온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으나, 필시 그러할 테지만,
어쨌거나 환절기엔 감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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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동

아이들에겐 엄청난 매혹의 대상일 동네 문방구 풍경.
지금 나를 매혹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다 사들고 들어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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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들고 있는 동안은 정말 딴 생각이 안나게 해주었던 누가바다.
얼마 전 이사온 성산동은 내게 저 문방구의 이미지를 닮았다.
한동안 일 때문에만 누르던 셔터를 들이대고픈 매혹적인 이미지들을 예기치 않게 마주친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이 뭐 얼마나 된다고,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이미지든, 만남이란 것이 필히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라고 항변하며 오늘도 미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