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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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날짜가 2013년 9월 25일인 따끈따끈한 책. 

꽤 여러 날을 감기로 인하여 내 아이폰과 같은 블랙아웃 모드, 혹은 혼수 상태 모드로 지내느라 아직 하나도 읽지 못했으나, 저자에 대한 신뢰만으로 추천할 만한 책.
저자가 서두에 밝힌 바처럼 글과 사진들이 꽤 훌륭한 퀄러티로 적절하게 배치되어, 사진에 관심이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사진이미지로 넘쳐나는 이 시대를 사는 누구라도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목차>

1. 사진가의 시선, 작가의 윤리

즐거운 환영: 한성필 <파사드>
‘빛그림’으로 환생한 오브제 식물: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
생명주권을 빼앗긴 야생인류의 생태학: 노순택 <좋은, 살인>
무기력한 국가의 가련한 초상: 강용석 <동두천 기념사진>에서 <한국전쟁 기념비>까지
기호의 경연(競演): 노상익 <캔서>
아름다움에 관한 어두운 진실: 김규식 <플라워즈>에서 <카니발>까지
‘우연’이 인도해준 세계의 입구: 최봉림 <우연의 배열>

2. 우리 사진의 풍경과 역사

1920~1930년대, 사진가들은 근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문화 다원주의 시대의 한국 사진, 어디로 갈 것인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진의 지형도
분단문제, 특수한 사안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무한 변신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향방
칠실파려안(漆室??眼)에 비친 다산 시대의 자연

3.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아마추어 사진가의 미래
사진으로 축소된 세계: 여행사진의 탐욕
B급 작가에 대한 생각
유명 사진전, 언제까지 수입만 할 것인가?
포토저널리즘의 미래
중간 이상의 예술
사진상(賞)과 작가 지원 제도의 문제점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사진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진과 초상권
사진저작권과 소유권
‘타인의 고통’과 사진 찍기의 괴로움

* 대학 신입생이던 때인가,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라는 시집 제목을 두고,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인지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인지, 즉 “가끔은”이 뭘 수식하는 지에 대해 친구와 함께 왈가불가 했던 일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혼동의 여지가 없이 “전성시대”에 수식어가 붙었다.
<우울한 사진가의 전성시대>였으면 어땠을까?

어제 저녁, “이제 우리 나이에는 잘 먹어줘야 감기도 낫는다” 면서  후하게 제공해주는 “남의 살”을 실컷 얻어먹은 덕분인가, 저녁 무렵부터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긋지긋하고  기분 나쁘게 지속되던 두통이 한결 나아지니 한결 살만해졌다. 뇌세포가 까무룩 죽어가는 기분으로 불안도 하고 좀 우울했는데, 내일 아침엔 감기를 앓고 난 후의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가뿐하게 깨어날 수 있기를.
제껴놓은 일도, 해야할 일도 많으므로.  부디.

핸드폰 주소록 백업에 신경을 안 쓰고 있다가 아이폰이 맛이 가니 연락처를 저장해놓은 게 하나도 없어 암담했는데, 몇 가지 번거로운 단계를 거쳐 500여개의 전화번호를 무사히 옮기는 데 성공! 중간에 데이타가 자꾸 유실되어서 서식을 맞추다가 들여다 보니 낯설어진 이름이 참 많다. 그래도 작금의 처지상 버릴 수 없는 이름들.  나 역시 많은 이들의 연락처에서 그같은 위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
내 핸폰이 죽어 있던 며칠 동안, 뭔 일이 있나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는 내 소중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모락모락.

핸드폰 부재중, 나는 감기 투혼중

하필 연휴가 시작되는 날에 핸폰은  맛이 가고 나는 감기에 걸렸다. 그리하여 내 핸폰도 내 감기도 나도 제 기능을 되찾는데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다행히 감기는 어제 문을 연 동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빠르게 호전, 겨우 살만해졌는데(으…아픈 건 넘 싫어…) , 아이폰은 담주 금욜 이후에나 개통이 될 것 같다.

대책없이 내 핸폰이 통신 네트워크상에서 사라져버리자 내 존재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어느 누가 호출을 해도 응답할 수 없는 나는 부재중인 존재일 뿐.  나의 모든 관계가 얼마나 핸폰에 의지하여 유지되고 있었는지 확인되는 순간이다.

오래 전 핸폰이 없던 시절, 집 전화의 자동응답기에 “저는 지금 부재중입니다. 언제 돌아올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따위의 메시지를 녹음해놓고 좋아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족, 형제들이 다 떠나버린 집에서 혼자 병든 아버지를 돌보아야했던, 그래서 늘 어딘가로 떠나 꼭꼭 숨어버리고 싶던 욕망이 무성했던  젊은, 아니 어린 시절의 일이다.

맘 먹으면 그리 무리하지 않고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지금도 그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아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지만, 이젠 그런 메시지를 녹음하는 대신 집에 있는 인터넷 전화로 착신전환을 해놓는다.  문자는 받을 수 없지만 음성전화는 되고 번호가 남으니 급한 연락은 받을 수 있게.   생각해보니 휴대폰 말고도 연락을 취할 방법들이 없지 않다.

어쨌거나 휴대폰이 블랙아웃  되어 있던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지만 않았어도 그 조용한 시간을 훨 느긋하게 보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추석의 보름달도 보지 못했다.
내가 이 시점에서 빌어야 마땅할 소원들은 어찌하나…

궁서체와 굴림체, 태양

오랫만에 덩야핑님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언제나 궁서체로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올바른 삶을 추구하면서”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웹 분야의 누군가가 굴림체에 향수를 느낀다고 말하는 걸 본 기억도 난다.
디자인의 주요한 요소인 폰트가 어떤 컨셉과 색깔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것이나,
손글씨가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엔 그를 대체하는 폰트가 이전보다 좀 더 광범위하거나 디테일한 맛, 혹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굴림체를 못견뎌하는 나도 언젠가는 그에 향수를 느끼게 될까?)

* 블로그를 새단장하면서 너무 많아 아리송하던 접속자수가 현저히 줄어드니 호젓한 곳으로 이사를 한 느낌이 드는데,
단 블로그내에 남겨두었던 링크들이 다 사라져, 마실 다니며 기웃거리던 이웃들에게 갈 길이 끊겨 버린 게 살짝 서운타.
음 온갖 인맥이 중요한 네트웍 시대를 이리 굳이 철저한 개별자로 살 필요는 없는데. -.-;
고래 동생이 댓글로 남겨준 링크마저 에러를 잡느라고 뒤엎으면서 사라져버리니 다시 물어보기도 미안코.

이웃이라 여기시는 분들, 오다 가다 혹 내키시거들랑 댓글이나 멜로 주소링크 하나 남겨주셨으면…

 

** 내게도 방공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
내게 달려드는, 혹은 매달리는, 그리하여 내가 끌려다니는 귀신 같은 존재들을 뿅 하고 사라지게 해줄.

어쨌거나 태양, 태공실을 응원한다. 마구 정이 가다 못해 감정이입까지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개개인은 뿌리 없음을 자신의 고유한 경험에서 인식한다. …… 그러나 그 뿌리 없음이 자신의 정서로 된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소위 말해서 ‘대상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발 밑의 지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외적 요인 때문에 그들을 둘러싼 현실의 품안으로부터 배척되었거나, 아니면 그들 자신이 의식적으로 이처럼 기만적으로 인식된 현실과 담을 쌓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실험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들은 소위 말하자면 더 치열하게 실존하고 있다.” – 빌렘 플루서

체코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아우슈비츠 등에서 온 가족을 잃고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해야 했던 플루서가 자신의 미완성 자서전- 제목이 <설 땅 없음>(Bodenlos>이란다.- 에서 남겼다는 구절에 눈이 머문다.
그가 디지털 시대 선구적 미디어 이론가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문화의 패러다임 교체를 필생의 과제로 연구했던 것은 이러한 뿌리 없음의 태생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태생적 조건을 실존적 자유의 조건으로(!) 체험했던 플루서는 사진기술 속에서 20세기말의 문화의 위기를 성찰하면서 ‘정보화 사회-탈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과 디지털 기계장치의 변증법적 관계를 해명하는 ‘사진의 철학’에서 그 자유의 가능성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진의 철학은 사진적 실천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데 필수적이다. 사진적 실천 속에서 탈산업적 콘텍스트 일반에서의 자유에 관한 모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진의 철학이 해명해야 하는 사실은 인간의 자유는 자동적인, 프로그래밍되는 또는 프로그래밍하는 장치의 영역에서는 그 여지가 없다는 점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자유를 위해서 어떤 여지를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의 철학은 자유의 이와 같은 가능성-을 장치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 속에서 메타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이 장치에 의해 지배당하면서도 죽음이라는 우연적 필연성에 직면해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에 대해 메타적으로 숙고하는 것이 의무이다.”

 

지리산

기상변화가 많은 나날들이다. 내게도, 그리고 여기의 우리 무두에게도.
이 날들을 통과함으로 인해 보다 단단한 근육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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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만에 찾아서였을까.
산은 그대로일 터인데, 풍경은 많이 변해 있었다.

화려한 색깔들을 뽐내고 있는 건 쑥부쟁이니 구절초 같은 꽃들이 아니었다.
등산객들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빼곡하게 장식한 라푸마와 노스페이스 등의 고가 의류와 배낭, 번쩍이는 스틱들은 나의 기억 속에 입력된 지리산 풍경과 너무나 틀린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변함없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엘리시움에 침투한 지구인처럼 보였을지도.

그렇게 차려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의 높은 데시벨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몹시도 시끄러운 풍경은, 산 속에서 눈 크게 열고 조용히 귀기울이던 경험을 아득한 기억으로 호출하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나누던, 조용히, 가만가만 건네는 인사도 실종된 지 오래. 하산 직전에 만났던 단 한 팀의 사람들이 건넨 인사는 멸종직전 천연기념동물의 그것처럼 반갑고 귀해 보였다.

어쩌면 당분간은 이런 류의 “등산”이란 건 안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는 산보다 들을, 사람 사는 마을을 걸어야 할 나이가 된 것인지도.

다행히도 반나절쯤 걸었던 둘레길은 호젓했다. 꽤 깊은 숲길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바람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내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희안하게 저 아래 마을에서 개짓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제주도 올레길이 갖지 못한 걸 지리산 둘레길은 갖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좋았다.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짧은 여행은 절반쯤은 예상과 다르게 채워졌다.
뭐 여행이란 게, 삶이란 게 그렇게 의외성으로, 갖은 우연과 인연으로 엮어지는 것인 게지, 하면서도 남는 아쉬움과 반성과 다짐 혹은 각오가 있다. 이것이 나를 좀 더 강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 되어야겠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 다운로드 받은 앱이 유용했다.
“지리산 둘레보고”라는 것인데, 둘레길 뿐 아니라 등산로, 숙박과 음식점을 비롯한 관광정보가 꽤 튼실하게 채워져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둘레길 모든 코스와 등산로를 표시해주고 내 위치를 표시해주는 것. 길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너댓번이나 경로를 이탈했다가 얘 도움을 받아 제자리를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이 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때 돌아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경로 같은 거 신경 안쓰고 하릴 없이 걸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인적 없는 산길은 나같은 길치에겐 그리 만만치 않으므로.
지리산 가시는 분들 참고하시면 좋겠다.
https://itunes.apple.com/kr/app/jilisan-dullebogo/id569385507?mt=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