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열·손병휘 – 조율(c:한영애)

어제 청계광장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 영상이 있으면 좋으련만, 찾지 못했다.)
조금 다르게, 다른 상황에서 듣는 “조율”이 너무 적절하여 절절했다.
특히나  이정열씨의 깊은 목소리가 “잠자는 하늘님이여… 있다면… 있다면… “하고 외치는 대목에선 아, 하고 탄식이 났다. 
진짜, 대대적인 조율이 필요한 세상이다.

안녕, 베타

간밤에 베타가 숨을 거두었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기운이 없어보여 비타민3종 세트 처방까지 해주었는데 한 이틀쯤 먹이를 먹지 않더니 조용히, 무심히 가버렸다.  수족관 사장님 말대로 우울증에 걸린 걸까? 그의 말대로 어항 한 대를 더 들여 나란히 놓아주어야 했을까? 기질상 혼자 살아야하는 애라고 하여 덜컥 데리고 왔는데, 혼자 외로워 우울증에 걸린 것이니 마주 볼 수 있는 어항 하나를 더 들여놓으라는 뻔한 상술이 얄미워 주저하고 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정말 외로워, 자발적 죽음을 택한 거니?

아침 일찍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항을 정리하고서 성미산에 올라 녀석을 묻어주었다. 명복을 빌고 미안하다, 용서도 빌었다. 오래 전 토끼를 묻을 때만큼 가슴이 아프거나 눈물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두 손에 쏙 들어오던 토끼와 달리, 눈으로만 녀석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 때보다 나이를 많이 먹고 가슴에 굳은 살도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이제 수족관은 쳐다보지도 않으련다. 늦은 밤, H의 꾐에 빠져 맥주 한 잔 마시고 함께 걸어오다가 발견한 수족관 불빛에 끌려, 그 불빛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며 혜엄 치던 열대어에 홀려서 욕심을 낸 죄로…  아름다운 건 그냥 멀리 두고 봐야 하는 것을.  
미안하다, 베타야…  

밀회, 몸, 발의 말,

 

슬쩍 슬쩍 보아온 드라마 “밀회”가 끝이 났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그다지 비극적이지 않은, 뻔한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꽤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혜원이 인생의 크나큰 터닝포인트가 될 재판을 앞두고 찾은 선재의 방에서 나눈 대화가 여운을 남긴다.    

“지금 이 시간은 이 차 맛으로 기억해둘께. “
“풋. 뭘로 기억한다구요… 차는 무슨… 몸으로 기억해야지.”

재벌가의 우아한 노예로 살면서 부르조아적 교양으로 무장해온 혜원이 말하는 “차맛”이란 실상 선재의 “몸”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마지막 장면에서 선재의 독백과 함께 등장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던 혜원의 몸의 실루엣은 얼마나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이던지!
(전반적으로 촬영이 정말 감각적이었다고 생각되는 드라마다.)

이러한 육체성, 육체의 감각만이라도 온전히 살아있는 세상이라면, 지옥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가령, 침몰하는 배에 갇혔던 아이들의 몸을 떠올리고 그에 감응할 수 있었다면, 어찌 이리 끔찍한 방향으로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에 동조하거나 방기할 수 있었을지.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올라 옮겨보는, 김연수의 단편 “푸른 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 나오는 조금 긴 단락.

…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기즘은 중앙대학교로 바뀐 서라벌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학기 초 첫 시간이면 으레 클레스에서 제일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 남학생을 불러세워서는 ‘네 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얘기해봐라’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 ‘발성을 냈습니다’처럼 재치있게 대답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대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듯 머뭇거렸지여. 그러면 나는 그 학생의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긴 뒤에 눈을 감으라고 말했어요. 나는 인질범이고 너와 나 사이에는 외나무다리 하나뿐이다. 우리는 지금 100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 서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 난간 같은 건 없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너는 죽는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그 외나무다리를 건너오지 않으면 잡고 있는 인질을 죽이겠다고 해서 너는 말성이는 참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굴 인질로 잡고 있어야 너는 목숨을 무릅쓰고 그 다리는 건너오겠는가? 그런 뒤에 예시를 하나하나 듭니다. 과 친구? 다들 아니라고 합니다. 애인? 반반 정도죠. 형제나 자매? 이번에는 좀 많구요. 부모님? 더 많죠. 눈을 감은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면 외나무다리 위를 걸어오라고 말하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제 네 발이 뭐라고 말하는지 얘기해보거라. 그러면 학생들은 힘을 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 발 시려, 저 사람은 그만큼 널 사랑하지 않아 등등. 내가 들은 답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건 울음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울었습니다. 왜나하면 그 학생의 발은 그녀에게 목숨을 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삶을 이해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귀 코 입만으로는 부족해요. 온몸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때로는 발이 어떤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p163)

반성과 회한의 나날들. 
연일 꿈이 어지럽다.
잠을 줄여야겠다. 
날씨는 왜 이렇게, 눈물나게 화창한지. 

얼굴

이 빌어먹을 나라 대통령의 어색한 연기(안산 분향소 방문시) 때문에 SNS가 들끓고 있는 걸 본다. 
슬픔을 위장하려 하였으나(정말 그랬을까?) 유체이탈, 사이코 패스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되어버린 이 얼굴은 다시 보아도 좀 섬뜩하다. 
 

유가족이 공개를 요청했다는, 세월호의 마지막 15분짜리 동영상속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소리를 들으며 깔깔대며 장난을 치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 를 얘기하는 아이들의 어여쁘고 말간 얼굴들은 이제 우리에게 차마 있어서는 안되었던, 엄청난 슬픔을 지시한다.  

 

코 앞에 쌓인 일들을 하려 모니터앞에 앉아 있다 집중이 안되어 한참 전에 N씨가 보내주었던 영화를 꺼내보고, 다시 큰 슬픔의(큰 슬픔을 연기하는)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끔찍한 슬픔과 고통의 얼굴을(그러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차마 표현할 수가 없어, 그저 먹먹하다고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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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erson – Hymn To Free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