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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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잘 통하는 대신 모기도 잘 통하는 창가 내 자리. 
모기에 워낙 취약한 지라 구몬초를 사다 놓았는데, 뜻밖에 이렇게 화사한 꽃을 피워냈다.
“구몬초에요. 예쁘진 않지만 모기를 쫒아준다길래.” 라는 내 얘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긴 하루.

잠시 과로했던 게 영 회복이 되질 않는다.
날씨탓인가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안좋아 쌓인 일을 일찍 접고 대낮에 사무실을 나왔다.
쏟아지는 빗속에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침대에 털썩 누웠으나 잠도 안오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피로감과 열 오름과 시리게 저려오는 사지육신의 무력감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뒹굴뒹굴 허둥댔다.
이럴 때 남들은 어떤 조치를 할까? 궁금하였으나 딱히 물어볼 사람이 떠올라 주지는 않았다.
병원에 가서 링겔을 맞는단 얘기가 생각이 났지만 너무 낮설게 느껴지는 일이라 패쓰.
결국 지난 번 발목을 다쳐서 다녔던 동네 한의원이 떠올라 주어 침과 뜸을 맞고 돌아와 간신히 밥을 먹고 다시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중학교 동창이다. 
누워서, 잠겨오는 목소리로, 이런 저런 안부와 함께, 점차 쇠락해가는 육신과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과 기타 등등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는데 문득 다시 밀려오는 피로감.
한 백만년은 살고난 것처럼.
이 몸은 그 안에 백만개의 나이테를 품고 있는 것처럼 무겁구나.  

백년토종삼계탕을 먹자 해야겠다.  
 

김밥 먹다 눈물을 흘리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서 김밥천국(김밥지옥이라고 부른다며?) 김밥을 먹다가 눈물이 난 건 순전히 매운 고추 때문이다.
잘 먹지는 못해도 고추를 좋아하는 나로 하여금 이렇게 폭풍 눈물을 쏟게 하다니.
재료를 만드시다가 청양고추를 잘못 보고 넣어버린 게 틀림없다. 
(다음에 가서 물어보니 원래 청양고추가 들어간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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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라이프를 소재로 하는 티비 리얼 프로그램에도  나온 적 있다는 망원동 김밥천국에서는 먼저 단무지를 챙겨주는 법이 없다. 
달라고 해야 한봉지 넣어주는데 한 봉다리 안에는 달랑 3개가 들어 있다.
이게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직원 교육을 그렇게 시키나보다, 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밥을 팔면서 단무지를 먼저 챙겨주지 말라고 하는 사장님을 상상해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므로. 
직원이 마시는 믹스 커피를 아까워하는 출판사 사장님도 있다는데 뭐.

 그나저나 김밥천국의 스페셜 정식을 만수르 정식이라고 부른다는 게 재밌다.
아랍에미리트 석유재벌로서 축구 구단을 막 사들이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알 나얀의 이름을 딴 거라는데,
34조 이상의 재력을 갖춘 이의 이름을 별명으로 갖고 있는 김밥천국의 스페샬 정식이라니! 
언제 한 번 먹어봐야지. 

냉장고에 쟁여놓은 메로나 하나를 먹고서야 눈물이 그쳤다. 
담엔 치즈김밥이나 먹어야겠다. 
 

근간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이제 멀미가 날 거 같은 워프 화면에 질려서 오래 미뤄놓은 명함을 끄적거리다가, 어제 배송되어온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서평에 혹해서 주문했던 시집인데, 아, 첫 시부터 눈이 커진다. 

 

사막
                                                               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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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은)

이 시가 더 반가웠던 건, 끄적이고 있던 내 명함이 이런 거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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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작업을 하는 걸 보았던 사무실 동료가 이 글씨도 신선생님 글씨냐고 물어서 , “어찌 이런 사소한 일로 바쁘신 선생님을 괴롭히겠냐”고 대답을 했더랬는데,  그 타임에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신선생님이 주례를 서시느라 고단하신 걸 보며 “그래서 귀찮게 해드릴까봐 결혼을 안할려구요.”라고 말했던 일.
암. 내 사는 게 남루할 지라도, 최소한  귀한 일 많이 하시는 분들 괴롭히지는 말고 살아야지.  

시들을 두 어 편 읽다가 맘이 짠해져서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는 오랜 벗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멋진 시집을 보내주겠으니 주소를 달라고. 
보내자 마자 총알같이 날아온 반가운 답문자들.
이만하면 뭐 벗으로서도 괜찮은 사람 아닌가, 라는 자만. ^^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 이문재 시인은 시처럼 말했다.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모호해서 마치 선문답 같았다.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었다. 느림을 좋아하던 그는 사색적이었다. 그러다 술이 들어가면 비로소 말문이 터졌다. 사색이 사변이 되어 흘러나왔다. 술이 더해질수록 말수가 늘었고 술과 술 사이에는 침묵이었다. 술과 술 사이를 참지 못할 때는 낮술을 마시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술은 ‘마취제’였지만 그에게는 술이 ‘각성제’였다. 사람들이 사물의 표면을 해석하려 할 때 그는 이면에 공감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은 일종의 ‘중년물’이다. ‘사건’을 보았을 때 ‘사연’이 읽히는 것이 바로 중년이다. 단순히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연의 여백을 읽어주는 것이다. 중년이 세상을 읽는 법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시집이다. 늘 세상사에 ‘감각의 돋보기’를 들이대고 두리번거리는 시인이 온몸으로 읽어낸 세상을 접할 수 있다. 

…  이문재 시인은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참여시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그런 현실에 부대끼며 고뇌한다. 현장에 없다고 함께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뒤에 있다고 나서지 않은 것이 아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라 세계감(世界感)이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만변하는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한번 읽어볼 만하다. 거리로 나가지는 않지만 마음이 계속 거리에 머물고 시선이 자꾸 거리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00

나른하거나 남루하거나

따져 보니 십년만이었다.
직장에서 만나 잠시 함께 일했던 S선배를 다시 만난 것이.
달력을 몇 번 보내주었던 걸 빚으로 기억하는 선배가 사준 점심이 거해서, 아직도 배가 부르다. 

먼 나라에서 십 몇 년이 넘게 끌어온 생활을 접고 돌아온  S선배는 말투나 표정, 외모조차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의 “나른한” 평화스러움이나 행복 같은 것이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았단다. 

“1%도 안되는, 우리가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 외의 대개의 우리의 삶은 다 남루하지” 라고 말하던 선배가 내 안부를 물었고,
나는 발랄하게 대답했다.
 “남루하게 살고 있어요”라고.   

 

근황, 그리고

보름 이상을, (좀 과장해서) 전쟁같은 시간을 보냈다. 
까다로운 아티스트의 무리한 요구의 포격을 매일 매시간 견디느라. 또 너무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와락 동해버려 덜컥 수락해버린 프로젝트를 최단기간에 수행하느라.

전자를 거의 마무리한 상태에서(과연… 제발…) 두 번째건을 오늘 오픈하고 나니 맥이 쫙 풀리고 근래 들어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늘 그랬듯 그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의 비서 전화가 아니었다면 더 늘어져 있었을 것이다.
일하다 오밤중에 잠이 들어도 새벽에 잠이 깨고, 챙겨 먹어도 자꾸 허기가 지는 나날들.
뭔가 이상징후인 거 같긴 한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나.. 싶기도. 

어쨌든 중요한 프로젝트가 또 하나 남았다. 
신뢰가 바탕이 된 일이므로 이 역시 성심을 다할 것이다.
성심을 다해달라는 말을 그 L교수님이 했던가?
어쨌거나 이 뻔한 말이 꽤 괜찮게 들린다.  
내가 그래도 주어진 여건에선 성심을 가지고 일하는 축에 속하는 편이긴 해… ㅎ
(자기 자랑을 할 땐 표나게 하는 게 좋다고 고래동생이 그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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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막 개통한 사이트.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마니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긴 하지만(그런 면에선 최악의 프로젝트였지만) 신영복 선생님과 노순택 작가의 작품을 받아 일하는 호사를 누렸으며,
이렇게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일에, 이렇게 내 미천한 “재능”으로 미미하게나마 성심을 보탤 수 있었다는 건 … 

이제, 크고 뜨거운 마음과 열정으로 시작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제 다시  새로운 작업 모드 시작. 양해해주고 기다려준 오랜 갑 C대표에게 감사를!

 

* 허망하게도, 운영상의 문제로 인하여, 내 손으로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허물어졌고 어떤 업체의 것으로 대체되었다. 웹 작업이야 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꽤 갈 거라고 예상하고 짧은 공사기간에도 불구하고 “성심을 다해” 공들여 지었는데… 
필요한 시기에 나름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담당자로부터 위로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정말 친구따라 목공예나 배워 볼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