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병에 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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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사은품 이벤트에 쉽게 낚이는 건, 알라딘이 사은품을 잘 만들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이번 보온병 역시.. 감기로 오래 고생중인 나를 위해 마련된 선물인 듯하니, ㅗ너무 쉽게 말려들고 말았다.
(이벤트 대상 상품을 꼭 포함시켜야 주는 조건은 없었으면 좋으련만. 목표 금액을 채우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 그것 땜에 쇼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
그리하여 오늘 당도한 책들.

<밥벌이기의 지겨움>의 라면 버전인가  싶었던 김훈의 산문은, 꼭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작가의 말)으로 추려서가 아니더라도  이젠 그 문장들이 꽤 친숙해져 편안하게 읽혀질 것 같다.

두 권의 책에 “우울”이 들어가 있다. 근대 들어 자꾸만 부딪히게 되는 단어다.
이유야 어떻든, 계기가 무엇이든, 한번 쯤 숙고해봐야할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파리의 우울은 책이 자그많고 가볍고 예쁘다.
몇 달 전, 서동진의 <변증법의 낮잠-적대와 정치>를 받아들었을 땐 자그마한 활자에 대해 노안이 어쩌구 하면서 투덜댔었는데, 막상 집을 나설 때 가방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미덕에 비해서는 작은 활자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런 책이 반갑다. 몇 정거장 되지 않은 전철을 오가며 읽기엔 더없이 좋을 것이다.

배수아의 에세이는 처음이다.
소설로 만났던 그녀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여행기라는 형식에서 어떻게 발현될 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여행기를 읽고서 여행의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추천글에 끌렸다.
따라해볼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충동질을 하지 않는, 참으로 안전한 여행기인 셈이다.

찬란한 시간

계좌를 만들러 은행에 갔다가 110세 보장 금융상품 광고가 크게 걸린 플랭카드를 보았다.
110세를 (110세까지 사는 걸) 보장해준다는 말처럼 들리네… 하는 생각을 하며, “110세 보장 상품이 있네요…” 했더니
남양 아쿠르트를 쥐어주던 직원이 말한다.
“그러게요. 얼마 전까지만해도 100세였는데 말이죠.”
오랫만에 맛보는 야쿠르트의 달콤함에, 오래 가는 감기로 무뎌졌던 감각이 살아남을 느끼며, 늘어난 수명이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에 대해 생각했다.

L선배의 갑작스런 죽음이 예상보다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문득 문득, 새록 새록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들이, 전철을 기다리다, 걸음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끼어든다. 심적으로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알고 지낸 시간들이 길었고, 무엇보다 고마운 일들이 많았다.
그가 보여 주었던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해보지만, 갚을 기회를 주지 아니한 어떤 일은 내 남은 생 내내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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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우려와 절박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자연 치유를 찾았던,
그리하여 너무 서둘러 생을 마감했던 그가 선택했던, 보여주고 싶었던 마지막 모습이 이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는 이렇게, “앓는 시간도 찬란한 시간”일 수 있다는 메세지를 던지며 의연하게 (110세 보장 상품이 나오는 시대에는 너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닐까?

종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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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 슈퍼문이 예고되고 있던 즈음에, 종이달을 보았다.
그리고 근래 들어 더 자주, 생생하게 듣게 되는 행복하지 않음, 우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선배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오늘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표현인양, 때로 푸념을 넘어, 한탄을 넘어 신음처럼 들려오는.

은행에 들어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친구도 생각났다.
그곳이 은행이 아니었더라면 친구의 오늘은 조금 달랐을까? 조금 덜 우울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지금은 종이달이 슈퍼문이 되어 우리네 삶의 소망을 모두 삼켜버린 시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

맺힌다는 것

“자, 여기 술잔을 잡아봅니다.

여기에 왜 맺히는 지 압니까? 이것은 온도 차이 때문입니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질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요, 술을 마십니다.

규호는 피존의 말을 마치고 남은 생맥주를 모두 마셨다. ”

(김중혁, 가짜팔로 하는 포옹 11p)

양평, 수종사, 두물머리

양평, 수종사와 두물머리를 오랫만에 찾았다.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상쾌한 바람과, 등과 다리에 전해지는 따땃한 햇살이 참 좋았다.
디테일은 부드럽게 뭉게어져 아련해진 기억들도 무심한 바람인양 스쳐가고…

블로그를 오래 방치한 탓에 방문자도 많이 줄고 하니, 이참에 슬쩍 사진 몇 장 올려보기로 한다.
나이 한참 든 후 적적할 때 볼라고.
“언니는 늘 남들 사진을 찍어만 주고 안찍혀봐서 그런지, 지난 번 사진 보니 꽤 어색하더라. 그러니 자꾸 찍혀 봐야지.. “하며 등 떠밀던 지숙이가
이번엔 표정 좋았다고 칭찬해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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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장지숙  (양순과 함께)

나이가 들어갈 수록 원색이 좋아진다는 얘길 들은 지가 한참인데 이제서야…
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 김창완 아저씨 콘서트 보고나서, 빨강 티셔츠가 잘 어울리던 아저씨를 따라 빨강색 옷을 입기로 했었는데 이제서야 실천에 옮기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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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참 좋아했더랬는데, 어느새 스타크래프트에서처럼 솟아오른 아파트 빌딩들은 어찌나 낯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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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두물머리에서 길 가던 사람에게 부탁한 단체사진.
까다롭게 주문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위에 나뭇가지가 좀 나오게 찍어주세요” 하고) 정말 그대로 제대로 찍어줬다.
2015년 대한민국 사람들이 죄다 이렇게 사진을 잘 찍으니 사진 찍는 걸로 먹고 살기로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