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이다. 부지런한 온라인 마켓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생일쿠폰을 보내온다. 덕분에 충동구매가 두어 건 발생했고 생필품도 몇 가지 쟁여 놓았다.
당일날 제일 먼저 도착한 축하메시지는 영낙없이 먼 미국땅으로부터다. 헤아려보니 벌써 10년이다. 나는 한 번도 그들의 생일축하를 챙긴 기억이 없는데(어쩔 수 없다. 생일을 안 가르쳐준다. ) 매년 빼먹지 않고 보내오니 고마운 일이다.

오늘 받은 축하에는 마음이 더 흔들렸다. 함께 했던 엘에이의 아드모어 하우스와 당귀주가 그립다는 말에, 그 때 참 좋았지.. 라고 답을 보내면서는 코끝이 찡해왔다. 그때를 통과할 때는 삶이 온통 뿌연 안개 같았는데… 돌아보니 늘 쨍하던 그 땅의 하늘처럼 꽤 청명한 시절이었던 것만 같다.

오늘 받은 그곳 사진.  언제든 놀러 오라 하였다. 언젠가는 가야겠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접속했다. 이사를 계획하다 여건상  좌절하면서 알라딘 중고책 판매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되어 구매만족도 100%의 골드셀러가  되었다. 정산금액도 생각보다 쏠쏠하다.  한 달이 안되었는데 벌써 50만원이 넘었다. 책을 등록하고 포장해서 보내는 일은 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일이긴 하나  재미도 있다. 오래 끌고 다니던 오래된 책을 반가이 찾아주는 이가 생기면 보람도 느낀다. 판매평가 코멘트 게시판에 글이 등록되면 답도 꼬박고박 단다. 고맙습니다, 라는 짧은 말에 진심이 실린다. 쇼핑몰에서 저가의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들의 노고도 생각하게 되어, 상품 구매후에는 구매확정을 빨리 하고 별점도 남긴다.

천장에 가까운 긴 책장 하나를 낑깽대며 복도로 끌어내고 들어왔을 때는 한층 훤해진 방 안이 너무 좋아, 진작 맘 먹을 걸 후회가 되었다. 그처럼 책을 쌓아둔 게 호기심이었든 허영심이었든 무엇이든 간에…  이제 비우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사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젊은 친구- 페미니즘책을 열심히 읽고 취미로 랩을 하는-가 새로 산 책을 보여주는 타임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한창 책을 읽을 나이군. 나는 이제 버리는 때라. 흐흐 ”  머 가진 게 얼마 된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아직 더 길을 가야하고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위험신고를 보내고 있으니.

오늘은 맛난 거를 먹기로 하였다. 알라딘에서 정산한 금액을 환전 받을까 하다가.. 조금 아껴두기로 한다. 책 팔아 먹는 거로 탕진하기에는 왠지 찔리는 느낌이 있다, 아직은.

Ólafur Arnalds – Particles ft. Nanna Bryndís Hilmarsdóttir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이가 찍어온 사진들을 넋 놓고 구경한 이후부터 아이슬란드 뮤지션들의 음악을 종종 듣는다.
아름다운 그곳의 풍광에 어울리는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음악들은, 이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더없이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느라 극도로 피로해진 심신을 다독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Ólafur Arnalds 가 여러 명의 아이슬란드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통해 내놓은 곡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먼 이국땅에 대한 동경을 단단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이슬란드 사진을 보여준 이는, 자연이 아름다운 아이슬란드가 여행하기 좋은 곳이긴 하나 너무 심심하여 살기엔 적합하지 않다 단언하였는데, 이들의 음악 역시 누군가는 “수면음악”이라 할 만큼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멜로디가 반복되는 단조로움과 멜랑꼴리한 나긋함이 있다.  심심할 지 모르나 치명적일 수 있을 매혹이다.

어지러이 돌아가는 배경이 높은 등대 내부라는 말을 듣고 나니, 저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보컬 Nanna Bryndís Hilmarsdóttir (발음하기가 어려워..)가 눈 감고 노래하다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아 영 불안하다.

무더위가 주춤한 토요일이다.

맹렬했던 무더위가 주춤하기 시작하니 더위와 싸우느라 뾰족했던 표정들이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진다. 쇼핑몰에서 날아오는 광고성 메시지에선 아직 더위가 많이 남았다며 할인이 들어간 여름 계절용품 구매를 충동질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을맞이 모드다. 기록적인 무더위를 잘 참고 지나온 것을 자축하며.

오랫만에 들어와본 블로그는 여름이 시작되었던 무렵, 집나간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엄살에 멈춰져 있다. 기나고 보니 겨우 세 달, 몸고생, 마음고생을 시켰던 성대와 후두이상은 지난 주 마지막 내시경 검사에서 거의 회복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자주 보아 친근해진 의사 선생님은 사실 수술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여서 수술여부를 고민했었다며, 치료를 잘 따라주어 다행이었다 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다 다소 업된 나는 큰 제스추어로 꾸벅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직도 말을 좀 많이 하고 나면 낯선 목소리가 튀어 나오고 잠잘 때 기침으로 좀 고생을 하지만 일상생활엔 거의 지장이 없게 회복이 되었으니, 다행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일이 밀려, 활활 타오르는 발등의 불을 보며 빡세게 일하고 있던 어느 아침에 날아온 호빵맨 아저씨의 비보도 이 계절에 꽤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어떻게 “재밌고 신나게” 달라질지를 상상해보라며, 선뜻 동의해주지 않는 친구를 다그쳤던 일이 아프게 떠올랐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그의 선택에,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한층 더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친구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의 드러난 이미지 뿐일 것이며, 그것을 좋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 테지만…   그의 해맑은 얼굴이 만화속 말풍선처럼 불쑥 떠오르면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고, 이어 “비루함”이라는 단어가 여러 날 동안 떠나질 않아 고래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더위는 주춤하였을 뿐이며 9월말까지는 더울 거라 한다. 그러나 기록적인 열대야도 잘 견뎌 왔으니 뭐 대수냐 싶다. 세 달 전 목소리가 “불가역적으로” 안돌아올 수 있다는 의사샘의 말에 화들짝 놀랐던 나는 이젠 그러한 종류의 경고에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주었던 누군가를 잃는 일은 좀 더 지속적이고 쉽게 익숙해지 않는, 늘 새로운(상실의 대상은 늘 새로울 수밖에 없으니..)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역시 지나갈 것이며 나의 비루한 삶은 이렇게 또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