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을 떠나며

살고 있던 망원동이 뜨면서 너무 시끄러워져 훌쩍 이사를 감행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응암동에 와서 몇 해를 살았다.  이마트가 가까이 있어 편했고 적당한 (나름의) 맛집이 있었으며 불광천이 지척에 있어 나쁘지 않았다. 바람 좋은 날엔 북한산 둘레길이나 서오릉 산책길도 좋았다.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기분이 심히 꿀꿀할 땐,  조금 떨어진 곳의 친구가 기꺼이 와 주어  벙구갈비나 스시냥의 단백질을 흡입하고 맥주를 마셨다. 맛있는 수제 맥주집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웠지만 브릭하우스의 ‘은평맥주’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마지막 천변의 까페에선 메뉴엔 크래프트 맥주라 써놓아 기대를 북돋우곤 IPA 캔맥주를 내주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천변이라 너그러이 봐줄 수 있었다. 

이사는, 일이 많다. 쓸 데 없이 품고 살아온 온갖 것들을 정리하는 게 가장 큰 일이다. 가장 먼저 안 읽는 책들을 절반 이상 처분했다.  이사할 일을 생각하니 들어올 때에 비해 1/3 이하로 줄어든 책이 뿌듯하다.  부피도 부피지만 책은 정말 무겁다는 걸, 원래 나무였다는 걸 다시 상기한다.  이사해주시는 아저씨들에게 “힘드실까봐 책장 속의 책들을 다 정리했어요.” 라고 생색을 내야겠다. 빈 책장은 이사 들어오는 취준생을 위해 남겨놓을 것이다. 먼지 쌓인 상자 속에서 오래 된 손편지며 깜짝 놀랄 만큼 풋풋한 지인들의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그 중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들을 카톡으로 보내주니 반응이 즐겁다. 그래, 우리 모두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잡지 객원(사진)기자를 할 때 찍었던 송혜교의 고2 때 심히 풋풋한 사진도 나온다. 이러다 시간은 훌쩍 자정을 넘는다.

이사업체를 고르는 것도 일이다.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그 안에 채워 넣은 짐은 통상적인 정도를 넘으니 살림 규모가 애매해서 업체마다 견적 차이도 크다. 첫 번째 업체는 “우리는 경험 없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가지 않습니다.”라고 했고, 두 번째 업체는  “우리는 외국인을 보내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며, 세 번째 없체에선 “제가 직접 갑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세 번째 업체를 택했다. 

다음 정착할 곳은 신도림이다. 오래 전에 그 곳에 정착했던 J의 도움이 컸다. J의 말에 따르면 싱글라이프에 최적인 곳이란다. 과연 극장이며 마트, 공원, 도서관, 아트 센터, 구청 등등 필요한 모든 것이 지척에 있다. J 뿐 아니라 H도 그곳에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조금 느슨한 네크워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