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샀다

이번에 이삿짐을 싸고 정리를 하면서 다시는 뭔가를 방 안에 들여야 하는 도전이나 시작은 절대 하지 않으리라 그리 다짐했건만…  새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된 거였다는  핑계와 생일을 앞둔 적절한 타이밍과 어제의 꿀끌했던 상황을 결정적인 계기로 하여 새로운 지름 아이템이 도착했다. 이번엔 물감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엔 새 물감을 사야한다는 말을 못하고 굴러 다니던 튜브물감을 모아 팔레뜨에  짜서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이건 아예 이렇게 팔레뜨에 끼워서 쓰게 만들어진 고체물감이란다. 

작다는 말을 듣긴 하였으나, 받아보니  진짜 조그많다. 물감 하나는 밀크 캬라멜보다도 작은 크기이고 참 이쁘게도 생겼다.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윈저앤뉴튼? 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어여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난 디자이너이므로. ㅎ

겉모습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색상도 참 이쁘다.  이걸로 무채색의 펜 크림들에 색을 입혀갈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레인다. 
물감을 써 본 게 중고등학교 시절일 테니 너무 아득한 일인데,  이걸 장만할 생각을 한 건 12색을 가지고도 엄청나게 많은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색연필이나 마카(이건 비싸기도 하더라)가 가지지 못한 미덕이다. 
마치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풍부한 내면과 그 가능성처럼. 

이제 물감질을 시작해봐야겠다.  몇 해 전 스쳐갔던 더블린의 이 풍경부터. 
그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특별한 0.1프로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걸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