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 시민이 되었다

 
장마가 길었다. 기후변화가 만든 역대급 장마라 했다. 그 지루했던 긴 비의 끝자락에 이삿짐을 쌌다. 태어나고 자란 도시, 서울로의 귀환을 위해서였다. 
 
떠나온 곳은 강이 흐르는 청정지역이었다. 이름을 대면 누구든 젊은 날의 추억 하나쯤 쉽게 소환해낼 수 있는 곳. 강을 따라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지는, 고개를 돌리면 아무렇게나 이어져 있는 산책길이 꽤 좋았던 그곳에서의 3개월은… 그러나 끔찍했다. 
 
 
한 달여 간의 입원 생활로 심신이 약해져 있던 시점에서 그런 결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집 앞까지 찾아와 집요하게 들이대던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는 꽤 컸다.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조건으로, 건강도 되찾으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일하게 해주겠다던 약속은 첫날부터 와르르 무너졌고, 근로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계약서 사인 후 진짜 오분도 안 되어)  극심한 적자 상태이니 몇 달 동안은 퇴근 시간도 없고 주말도 없고 최소한의 수면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명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오너’라는 말을 자주, 힘을 주어 말하곤 했다. 오너라는 것은 절대권력을 갖는 것이어서 직원은 오너의 철학과 비전, 속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도전 정신을 가지고) 맞추는 것이 직원된 자세이며 도리라고 했다.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거나, ‘철학과 비전’이 자신의 것과 다르거나, 그 “위계질서에 승복”하지 않으면, 혹은 재무 상황이 어려워지면 누구든 언제든 당장 해고할 수 있고 그것이 오너가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라 했다. 그렇게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줄줄이 해고되는 것을 목격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즐겁게 수다를 떨던 동료가 퇴근 시간 임박해서 해고되어 떠나가는 식이었다. 21세기에 그러시면 안 된다고, 위험한 일이라 말했다 되돌아온 말이 놀라웠다. 해고된 직원이 더 일하게 되면 불편할까 봐, 그에 대한 배려였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평생 지극히 정상적이던 혈압이 심하게 올라 약을 먹게 되었고  매일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옆의 동료에 비하면 약과였다. 타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심리상담사였던 동료는 심한 스트레스로 심각한 원형탈모에, 심장 기능 이상과 이명까지 경험한 후에 사직서를 냈다. 해고된 다른 동료는 심한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의사의 권유로 항의성 문자를 오너측과 동료들에게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년째 해오던 프로젝트도 정리하고 송별회도 여기 저기 하고 이사를 와버린 나는…  되돌리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한 달쯤 된 시점에서 그의 제안으로 한 차례 딜이 있었다. 내 일자리를 걸고 3개월 후의 목표성과를 약속하면, 즉 3개월 후에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내겠다 약정하면 내 속도를 존중하며 업무에 관해 전권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3개월 동안 최대치를 뽑아낸 다음에 해고하려는 뻔한 심산임을 모르지 않았으나 수락했다. 건강 문제로 그대로는 더 일할 수 없는 상태였고 수행업무에 대한 윤리적인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한 달도 안된 시점에서 도달해야 할 그 성과 목표치에 가까워지자 그는 돌변하였다. 3개월을 기다리면 안 되겠다 생각했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홍보영상 마무리 작업 중에 전화를 받았다. 할 얘기가 있으니 까페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까페가 다소 시끄럽다며 잠시 주저하던 그는 기다리라 하고 돌아서더니 핸드폰을 만졌다. 이어 나온, 180도 달라진 가식적인 표정과 말투로 보아,  후탈이 없게, 그리고 내 말에 꼬투리를 잡아 근거로 들이밀 수 있도록 녹음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의 특기이자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 유발 요소인 궤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실장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계속 일을 하시는 마음이 뭔지 모르겠어요. 뭐가 제일 큰 가치신지…”
“이렇게 스트레스가 엄청 많으신데 이 일을 계속할 때에 뭐가 본인에 대해서 성취를 느끼시는지… “
 
이 맥락 없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를 묻자 그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며 본색을 드러내었다. 이사비용만 부담해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리고 자신이 하려는 일은 너무나 고귀하고 위대한 일이어서, 그만한 개인의 희생쯤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기가, 교활한 그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진 나는 결국 승복하였고 그렇게 나의 청평 생활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적자가 심한 비상상황이라며 동료들을 해고하고 나의 노동력을 심하게 착취했던 그곳에서, 다른 도시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업장과  또 하나의 공장을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냥 운이 나빴다고 털어버리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몸이 상했고 마음도 그러했다.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해버린 것이, 정말 ‘생살에 소금 뿌린 듯이’ 아팠다.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할 수 없었고, (그와 20년 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지인도 전혀 몰랐다며 놀라와  했다) 그곳의 불합리와 비상식이, 그의 폭주가, 어떤 식으로든 저지되고 응징되어야 한다고 토로하던 우리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또한 아프고 화가 났다. 
 
장마와 이어진 폭염과 코로나 시국에 이사를 하고 모든 정리를 마쳤다 싶었을 때 몸살이 났다. 의사의 권유대로 며칠을 쉬고난 후, 몸살이 난 게 당연하다며 다독여주던 친구가 <친절한 금자씨> 얘기를 해주었다. 금자씨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라,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 복수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와 같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아니니… 나의 삶을 바쳐, 삶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그들을 응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적 의식 속에서 그를 응징하는 것도 대나무숲의 효용처럼 실제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내 안 어딘가의 딱딱하게 긴장된 근육을 스르르 이완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기자인 한 선배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를 응징하여 세상이 쫌이라도 좋아진다면 어떤 출혈을 감내하면서라도 시도해볼 만하겠지만, 그러기엔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그러니 나를, 내 삶을 잘 추스르는 편이 낫다고.
 
어쨌거나 그의 폭주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놔두어도 그 자체의 본질적인 ‘옳지 않음’으로 지금도 자멸의 길로 가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부조리한, 불합리한 세상일지라도 그의 폭주가 쉬이 성공할 만큼은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런 세상이라면 살기가 너무 싫어지지 않겠는가. 
 
 
박완서 선생의 <박원서의 말>(p78)에는 이런 문장이 있단다. 
 
“가령 너무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고 쳐요. 인간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해준 것도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번 그려보겠다 하는 복수심 같은 거죠. (…)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킬 수 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도, 거기서 구원이 됐던 건 내가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번 써야지 하는. (…) 불행의 제일 밑바닥에서도 그것이 불행감을 조금 덜어주고 그래서 아주 뼛속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내게는 소설을 쓸 재주가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헤어나기 힘든 궁지에 몰리거나 불행의 제일 밑바닥에 처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 몫의 불운을 어느 정도 소진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후욱 지나간 몸살처럼 이 후유증도 곧 사라져줄 것이다. 그 시간을 당기고 싶은 마음에 오래 방치해둔 내 블러그를 찾아 간단히 적어둔다. 여기 나의 대나무숲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