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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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드라마 ‘도깨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전부터 좋아라 했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게 되면 대체로 카누를 선택한다. 루카스는 맛이 없다) 공유의 멋짐이나, 상큼하기 그지 없는 김고은의 어여쁨과 그 둘의 달달한 연애가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다.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며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주로 이런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주는데, 한쪽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슬픈 도깨비이고, 다른 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다. 가슴에 박힌 칼을 열쇠로 풀려나갈 도깨비의 사연이라든지, 전생에 지은 죄로 저승사자가 된 자의 이야기는, 숨막히게 전개되는 가히 초현실적인 오늘날의 사태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환타지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가 두루마리 그림을 보게 되는 씬이다. 그림 속에서 한 여인의 얼굴을 맞닥뜨린 그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과 함께 ‘닭의 똥’같은 뚝뚝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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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로써 기억은 삭제되었지만 그가 인식하는 기억과 상관없이 과거는 실재하고, 한 여인의 그림으로 인해 촉발되고 호출되어 그의 지각에서 현재화되는 순간이다.
여인의 그림은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살아 움직이고, 그는 과거로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선유도, 2016′ 봄

[vc_row][vc_column width=”1/1″][vc_gallery type=”nivo” interval=”3″ images=”5910,5908,5909,5919″ onclick=”link_image” custom_links_target=”_self” img_size=”full”][/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vc_column_text]주말의 드라마 재방.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말한다. “당신은 괜찮지 않죠?….   괜찮을 거예요. 초기니까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남자가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으며, 그러나 서둘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거라고, 이 짧은 대화를 이해한다.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한 그와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본 적 있는 맑은 얼굴의 그의 아내도 그의 옆에서 저리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의 고통을 다독이며, 의연하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겠지.
이런 게 “옆에 있다”는 것의 그 묵직한 무게일 수 있겠다는 생각.
어두운 고통의 상황이든, 일상의 크고 작은 생채기를 달래는 상황이든.

밝은 에너지를 가진 H한테 끌려나가 한껏 봄바람을 맞고 왔다.
봄바람 살랑이는 선유도는 기억 속의 그것과 너무 달라 어쩐지 좀 낯설기도 하였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말의 불가능, 기억의 불가능

살아남은 자는 언어의 문제에 무기력하다. 그는 사건과 증언 사이의 분열, 기억과 언어 사이의 배반을 감당해야 한다. 기억하는 자는 말의 불가능이라는 막막한 경험과 마주하며, 말하는 자에게 문제는 기억의 불가능이라는 사태이다. 기억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둘러싼 완료된 시간이며, 언어는 항상 어긋나고 뒤늦게 찾아온다. 살아남은 자의 말하기와 글쓰기는 발화의 고통과 침묵의 무게 사이에서 진행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는 절망 사이에서 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발화가 고통스러운 것은 지상의 언어로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고통의 실재적 과정을 차단함으로써 시작되고, 그 언어가 실재를 붙잡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렵다. 이 세계의 언어들은 이미 충분히 상투적이고 부정확하며 말할 수 없는 자의 침묵을 끝내지 못한다…

이광호, <남은자의 슬픔> (팽목항에서 부는 사람, 현실문학) 81쪽

그래비티를 보았다.

한동안 불규칙적인 생활로 늘어진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니 깜빡 놓쳐버린 몸의 리듬을 찾은양 쾌적했다. 조금 쌀쌀해진 아침공기를 흡입하니 천을 파는 곳에서 8천원을 주고 산 스카프가 흡족하다. 간지럼도 많이 타고 목이 답답한 걸 참지 못하여 추위를 많이 타 면서도 이런 걸 잘 안했었는데, 한 일년쯤 지독한 목감기로 여러 날을 고생하다보니 평생의 습관도 바뀌어 간다.

그저 습관이었단 말이지. 약간의 배신감도 스친다. 그리고 이걸 일깨워준 Y선배에게 고마움이 생긴다.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 말해줘야지. 술자리에서 한 말이니 기억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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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예매해놓은 조조영화를 보았다.
<그래비티>. 아찔하게 멋진 영화다.
영화는 “이게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듯,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힘을 한껏 보여주며 강렬한 영화체험을 선사한다.
소리, 수다의 영화이고, 끈, 관계, 기억, 두 발, 땅, 흙, 몸의 영화이며, 이 모든 것들이 중력이 되고 구원이 되는 영화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우주와 지구의 눈부신 광경은 물론이고)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작렬하는 환상적인 연기와 함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몇 안되는 관객들의 대화가 두런 두런 들렸다.
“음, 영화 끝내주는데”라든지, “이런 영화를 예매해주고, 자알 했어”하는.
뒷좌석의 총각이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뒷말을 들었을 땐 옛생각이 났고, 나도 맘속으로 스스로에게 얘기해줬다.
“오늘 선택은 정말 자알 했어”라고.
맷을 잃은 라이언(산드라 블록)이 그러했듯이.
아름다운 우주를 유영하는 건 아니어도, 그저 이 혼탁한 세상을 느릿느릿 먼지처럼 부유할 뿐일지라도, 이런 수다가, 기억이, 나날이 크고 작은 재난인 현재를 구원해줄 거라 믿으며  믿어볼까, 하며.

기억

누군가 나를, “짧은 머리에, 힘들어하지 않고 산을 잘 오르던 사람” 이라고 기억해준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그 말 전해듣고 우쭐 우쭐하다가, 길어진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졌다.

주문했던 하이킹화가 어제야 도착해서 오늘 첨으로 신고 나갔다.
탄탄한 바닥으로 딛는 땅이 좀 더 단단해 보였다.
산타 아니타 루프.. 처음 도전해볼 캘리포니아의 산 이름이다.
저산소증이 장난 아니라고, 나를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을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