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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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회를 핑계로 맛난 걸 먹으러 나오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오랫동안 벼르던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이 나는 건 새삼스런 일은 아니긴 하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항하는 답답하고 지난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만남과 낙관적 연대를 안단테로 따라가던 영화가 갑작스레 비극적 결말을 들이밀자, 눈물과 함께 비명 같은 소리가 내 심장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 당했어…이 지독한  “낙관적인 비관론자” 같으니라구….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이 빌어먹을 사회를 향해 남긴 마지막 인간 선언.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 안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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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수다.
벼랑 끝의 케이트를 오열하게 했던, 너를 위해 책장을 만들고 있었다는 말의 감동은 당연히도 목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니,
역시 목수는 멋있다는 결론.
이 생에 목수 되기는 진작 글렀고, 저 나무로 만든 물고기를 하드한 가죽으로나 만들어 볼까나… 
 
*사실 도깨비를 보면서도 눈물이 났었다.
한데 농도나 온도는 좀 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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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을 받고 좋아라 하던 조카 녀석들이, 드라마 도깨비 얘기가 나오자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단호하게 그런 드라마가 싫다고- 나이든 아저씨들이 그걸 보고 자기도 19살하고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싫단다-는 누나에게 동생은 말했다.
“누난 너무 비관적이야”라고.
그들의 풋풋한 대화를 재밌게 듣던 나, 그런 내용만은 아닌데… ” 하며 말을 꺼냈다 줄였는데,
언젠가는 이 녀석들과 이런 얘기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모가 생각하기에 이건 기억에 관한 얘기이기도 한 것 같어.
망각은 신의 배려라 하는데, 망각의 기회가 주어져도 어떤 인간들은 끝내 기억을 선택하잖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 생에서 다음 생에 이르도록 끈질기게도.
그리하여 자유의지로 빛나는 자신의 생을, 살아있는 시간을 사는 거지… 
 
** 지금 보니 이 포스터는 브레송의 패러디 or 오마쥬?…
 
*** 케이티가 성노동을 선택한 것에 대한 다니엘의 신파적 반응이 살짝 불편했는데 그에 대해 언급한 기사를 발견했다.
오마이유스의 “‘인간 존엄’ 말하는 켄 로치 감독, 그가 놓친 ‘성 노동’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놓쳤던 물음에 관하여(이선욱)” 이란 제목의 기사다. … 

 
“(…..) 만일, 성 노동을 하게 된 케이티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신뢰하는 조력자 다니엘이 “네가 어떤 일을 하든 내게 너는 똑같은 케이티야”, “너의 수고로 아이들에게 신선한 과일을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성매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잠시 뒤로 하더라도 케이티가 느꼈을 비참함은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다니엘처럼 케이티 또한 열심히 살았고, 성심껏 이웃을 도왔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니엘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저녁을 대접하고 자신은 손이 떨리는 허기를 감내하며 굶는다. 나는 타인의 도움을 인식하고, 이를 고맙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돌려주려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것. 그것이 밑바닥 삶 속에서도 그녀가 지키려는 자존심이다. 다니엘은 그녀의 배고픔을 알면서도 기꺼이 호의를 받아들인다. 그녀의 자존심을 먼저 배려하는 그 태도가 왜 성 노동을 선택한 상황에서는 지켜지지 못했을까?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를 개봉하면서 “가난은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다. 성 노동을 ‘이런 일’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성 노동자에게는 잔인한 일이다. 영화 속 다니엘의 말처럼, 힘겨운 삶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우리한테는 -비록 선의에 기댄 것일지라도- 편견이나 평가, 심판의 말 대신 그저 기대어 쉴 바람이 필요할 뿐이다. 나와 당신이 서로에게 그 바람이 되어 줄 때, 비록 나쁜 정부가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 …
 
–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7816

 
상당히 일리있는, 실은 전폭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긴 한데, 이 대목에서 켄 로치 감독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80세 할아버지가 아니신가…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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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드라마 ‘도깨비’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전부터 좋아라 했던 (인스탄트 커피를 마시게 되면 대체로 카누를 선택한다. 루카스는 맛이 없다) 공유의 멋짐이나, 상큼하기 그지 없는 김고은의 어여쁨과 그 둘의 달달한 연애가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과거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다.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며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주로 이런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주는데, 한쪽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슬픈 도깨비이고, 다른 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다. 가슴에 박힌 칼을 열쇠로 풀려나갈 도깨비의 사연이라든지, 전생에 지은 죄로 저승사자가 된 자의 이야기는, 숨막히게 전개되는 가히 초현실적인 오늘날의 사태 속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환타지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슬픈 저승사자가 두루마리 그림을 보게 되는 씬이다. 그림 속에서 한 여인의 얼굴을 맞닥뜨린 그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과 함께 ‘닭의 똥’같은 뚝뚝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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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로써 기억은 삭제되었지만 그가 인식하는 기억과 상관없이 과거는 실재하고, 한 여인의 그림으로 인해 촉발되고 호출되어 그의 지각에서 현재화되는 순간이다.
여인의 그림은 (바르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살아 움직이고, 그는 과거로의 모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