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묵언의 대화중에 오래 전 보았던 영화 <HER> 가 떠올랐다.

포스터를 찾아보니… 배우의 표정 변화가 대단하다. ㅎ

 

묵언의 대화를 해야했던 건 목감기로 시작된 후두염으로 인해 성대손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열악한 태생적 신체적 조건들에 비해, 그래도 목소리는 괜찮은 편이라 생각했던 지라…
주사, 항생제 복용이 한달여가 지속되자 날아온 의사의 경고 – 성대 손상, 변화가 불가역적이 될 수 있다는- 는 꽤 쇼크로 다가 왔다.
하필 목소리가…  라는 투정에 친구는 그래도 다른 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 했지만 별 위로가 되거나 불안이 줄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장 닥칠 생업의 위기는 어쩔거며,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 등을 받은 스파이트 존즈 감독의 <Her>는, 무엇보다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출연만으로 로마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으로 많이 회자되었다.  그녀가 연기한 사만다는 그 달콤하기 그지 없는 매력적인 목소리만으로 영화속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상 존재 자체가 목소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묵언의 대화에 필요했던 수첩을 보니, 나는 내 목소리가 내 정체성,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는 말이 적혀 있다. 사실 어릴 적부터 누가 이상형을 물으면 “첫번째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곤 했는데, 그래서 과거 나한테 반했던 남자가 그 얘길 전해 듣고, 성대 수술을 할까요?  했다는 … ^^;)

한데 이번에 후두내시경을 찍고서는 좀 놀라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 저 작고 단순해 보이는, 지금은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는 저 성대라니.
저 구조만으로 어떻게 그토록 천문학적으로 다양한, 저마다의 고유한( 고유하다고 생각했던) 차이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보는 HER에서는 주인공 테오도르어의 직업이 편지 대필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런 직업을 가진 그가 무의미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목소리로 다가온 사만다에 순식간에 열정적으로 매료되는 설정에는, 문자언어의 한계와 목소리의 힘 혹은 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보이기도 한다.

이어폰을 장만하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선 종종 중고물품거래가 이루어진다.
다들 얼리어댑터 기질이 강한데다 (아이팟이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취향도 비슷하고 선량하여 서로에 대한 신뢰도 크다보니 자연스레 발생하는 일이다.
어제는 나도 이에 처음으로 동참하여 막내 개발자의 뽐뿌를 받아 물품 하나를 들였다.
고음이 시원한 이어폰.
늘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는데, 일반형은 자꾸 귀에서 빠지고 수년 전에 장만했던 커널형은 바깥 소음이 너무 차단되어 산만한 내게는 다소 고민을 안겨주던 터에(전철에서 그냥 지나치거나 지나는 차를 가까스로 피할 때) 오픈형에 귀에 잘 밀착이 되는 이것은 딱 내게 맞춤한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조경옥의 “날개만 있다면”을 귀에 꼽는 순간 가슴을 꽉 채우는 느낌으로 울려퍼지는 그 청아한 목소리의 매혹은 거부하기 힘든 것이었다.

얼마전, 내가 허스키한 목소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너무 매끈하고 고운 목소리보다는 조금 빈 듯하고 떨림이 있는 목소리, 낮고 편안한, 때로는 어눌하기도 한 목소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던 듯도 한데..
이제는 새 이이폰의 도움을 받아 고음도 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 음폭을 넓혀 귀를 귀울여봐야겠다는 생각.

어제 저녁엔 나에 대한 시선이 따스한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하나가 잔잔히 여운을 남긴다.

낮게 깔려있던 삶의 음자리를 높여보아야겠다는 생각.
한 옥타브쯤은 아니어도, 한음 혹은 반음쯤이라도..
아니면 모든 오선이 아니더라도 한 두 음이라도 #을 붙여보아야겠다는.

김연우

해야할 일-이삿짐 싸기-을 하기 싫어서, 낼 떠나보내야하는 헤드폰 앰프를 테스트한답시고 여기저기 엠피쓰리를 뒤져서 듣고 있는 중.
김연우의 목소리가 좋은 건 기교나 힘이 들어가있지 않아서인 듯.  그래서 담백하고 편안한 그의 노래는 쉽게 스며든다.
그러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그렇듯이. .
(난 사실 사람의 목소리로부터 그의 심성을 파악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안고쳐진다. 고쳐야할까. -,.-)

재미없는 사람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어떤 유형으로 규정해버리는 걸 극히 조심하는 편이지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가 아니라 저게 그 사람, 이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정말 꺼려지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큰 소리로 자신을 주장하는 사람.
모름지기 사람의 장점이란 스스로 주장을 해서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마련.
큰소리로 주장을 해야 한다는 건 이미 근거나 실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물론 큰 목소리를 내야할 때 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멋지다.
게다가 그것이 그 안의 고귀한 신념에서 나온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이라면 존경과 매혹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그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설명하기 위한 것일 때, 필시 그는 청자의 목소리를 묵살하기 쉽고 그런 사람과의 대화속에서 소통을 기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은 그런 뜻에서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아주 좋은 대화 상대다.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을 줄 알고, 타인의 내면의 것들을 끌어내어 공감의 향연을 벌일 줄 안다.
소위 평탄하거나 (우리끼리의 표현에 의하면) 심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지난 삶의 경험 속에서 그녀의 그런 장점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고,
우리 사회의 안녕과 세계평화를 위해 아쉬운 일일 수도 있다.ㅎㅎ
지구 반바퀴를 돌아 날아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음의 평온을 퍼뜨리는 향기가 있으니 말이다.

사실 지금 그녀의 주위엔 사람들이 보인다. 눈 맑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 그 덕으로 그 향기를 알아보는 것이리라.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어서… 라는 그녀의 말을 나는 자꾸 엄살이라고 타박한다.
(사실 그녀가 그런 얘기를 자기 블로그에 쓰거나 말로 할 땐 좀 천진스럽고 귀엽다. 확실한 건 진짜 친구가 없는 사람은 그런 얘길 스스로 하진 못한다는 것.)

나의 소박한 결론.
모름지기 인간은 향기로 말해야한다. 큰 목소리로 자신을 잘 났다 하는 사람만큼 재미없는 사람도 없다.
그런 면에서 고래씨. 당신은 재미없는 사람은 못된다우. 쉽게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도 아니고.(쉽던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