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을 다녀오다

멀리, 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나름의 삶의 이력으로 통상적인 관혼상제의 네트웍에서 살짝 비껴있는 탓에,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그 형식이 잘 익숙해지지도 않는 일이다.
가족과 조용히 보내려하니 멀리서 명복을 빌어달라고 소식이 온 터라 살짝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 녀석의 심성 때문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상주의 얼굴에 드러나는 반가움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상주는 말했고, 성당 교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이 처음 보는 내게 건넨 “식장은 크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없어~” 라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와중에 다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정신없을 와중에 보내온 내용에 마음이 흔들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긴 문자를 보낸 걸 나중에 확인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죽음만큼 누구나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저마다의 삶에 이미 준비된 죽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리고 맞닥뜨리는 것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죽음을 미리 마주하고 있노라면 함께 마주한 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확인되기 마련이다. 상주의 위치에서든 문상객의 위치에서든.

친구생각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들었다.
오래 병상을 지키고 있었으니 맘이 많이 아리겠구나 싶었는데, 기운이 다 빠져나간 목소리가 귀에 울리고 상복을 입고 문상을 지키고 있을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힌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삶의 고비 마다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큰 힘이 되어주던 친구였는데, 이런 때 훨 날아가 손잡아주지 못하는 건 정말 속상한 일이다.
해마다 보내주던 연하장에 적힌 그녀의 영롱한 낱말들은 또 한 해를 내딛는 발걸음에 효과 만빵인 비타민이 되어 주었는데…

그래서 예쁜 여자 좋아하는 후배에게 문상 좀 대신 가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가, 그런 건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하는 거라는 말과, 전지현도 상복 입으면 별로더라, 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 친구는 정말 이쁜데, 대한민국에서 미모와 지성과 착한 성품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착한 성품을 유지하는데 있어 미모는 확실하고 강력한 방해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친구는 그걸 모두 가졌다. 경이로운 일이다.)

문상객을 맞는 게 어떤 건지를 묻는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떤 거냐면 말이지…
저기서 문상객이 저벅저벅 걸어오잖아.. 그러면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내게 어떤 비중의 존재였는지가 깨달아지는 거지.

확언컨데, 문상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결혼식은 안가더라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문상은 꼭 간다는 그의 처신은 현명한 것이다.

오늘이 발인이겠다.
벌써 끝났을려나. 날씨가 안추워야할텐데…
꽁꽁 언 땅에 삽집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차가운 대지에 소중한 이의 육신을 묻고 돌아오는 길은 더 쓸쓸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