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야일 개인전

얄님의 전시가 내일이다. 큰 사고를 겪고 나서 하루 11시간씩 매달려 그린 그림이라니 안 볼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 증상도 부지런히 쉰 덕에(쉬는 일도 부지런해야 할 게 있더라) 수그러지기 시작하니, 내일이든 모레든 오랜만에 인사동 나들이를 갈 수 있겠다.
인사동 가보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하니,
지난 추억들이 밀려들어 살짝 콧날이 시큰해진다.
얼마 전부터 자꾸 맥락없이 눈물이 나 당황스러운데,
얄님의 그림 앞에서 또 눈물이 나면 어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온이도 보고 싶고 오프닝에 가는 게 좋을 것인데..
조용할 때 슬쩍 다녀오고 싶기도 하고…

낼 상태봐서 결정해야겠다.
오늘은 열심히, 부지런히 쉬고.

바다를 건너는 법,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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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야일, 바다를 건너는 법

가지런히 개켜져 차곡차곡 쌓여진 이불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저런 이불을 내가 사는 집에서 본 적이 언제일까, 기억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친숙한.  
오랜 세월 인간의 살과 맞닿아 때를 입고, 트롬 같은 최신 세탁공법기술이 아닌 수동 혹은 구식 세탁기와 자연건조를 거치며 연륜을 더해, 좀 눅눅하고 달큰하고 심히 부드러울, 마치 인간의 피부인양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그런 이불이다.
터무니없이 큰 저 이불들을 흔들리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머리에 얹고 바다를 건너는 이는 어머니, 라는 이름의 사람일까?
저 망망한 바다 위, 막막한 섬이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곳으로 등을 곧게 펴고 걸어가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의연하다.  
이 아슬아슬한 긴장과 무게를 견디며,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저 숭고한 어깨가 낯설지 않다.
두터운 외투에 가방을 들고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은 아들? 노모?
(작은 그림으로는 잘 판단이 되지 않지만) 가방의 무게만으로 뒤뚱거리는 그에게 저 이불은, 앞선 이의 저 어깨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또한 저렇게 건너야 하는  바다는?

여기까지 주절주절 적고서 얄님의 그림을 올려보려고 다운을 받아보니 파일명이 “연평도이불_출품작-7″로 되어 있다.  
아, 연평도구나. 순식간에 삶의 터전에 위협을 받고 맨 몸으로 바다를 건너야 했던 이들.  
진득한 저 그림이, 바다의 망망함과 이불의 무게가, “바다를 건너는 법”의 의미가 새로이 읽힌다.
원본 그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