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박

ss

한 생을 살다간 한 생명체의 외피였던 가죽위에 뜨거운 기계로 “불박”을 찍는다.
저마다 다른 가죽의 특성에 꼭 맞는 온도와 시간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때면 오래 전 필름을 현상하면서 온도와 시간을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
찾아낸 조합이 또 늘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어서 찍기 전에 쪼가리 가죽으로 꼭 테스트를 해보지만
그럼에도 살짝 모자라거나 과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실패의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고, 시행착오의 축적이 대체로 정직하게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만들어진 이 무늬를, 혹은 화인을 (특히나 이런 야심한 밤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상념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살면서 나는 과연 적절히 뜨거웠는가.
뜨거워도 좋을 때에 턱없이 차갑고, 냉정을 지켜야할 때에 대책없이 달아올라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닌가.
적당한 온도로 만난 대상도 너무 빨리, 미리 이별해버리거나
떠나야할 것들을, 버려야할 것들을 껴안고 있다가 지지직 타버리고 사그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는 일도 시행착오만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식의.

지난 여름은 그리 무성하지 못하여 꽤나 서늘한 가을을, 추궁기를 지나고 있다.
몇 가지 일들이 좌절되었고, 몇 가지 오해가 생겨났으며, 그럼에도 몇 가지는 시도되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적당히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