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about1-1

듣기에 영 거북한 목소리로 4차 산업을 외쳐대는 후보가 여기 저기 출몰하는 이 때에, 3차 산업은(혹은 우리는 -,.- ) 이제 글렀다며 2차 산업(혹은 1차 산업)으로 가야한다던 지인(나름 IT계의 브레인이었던)의 말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 상황에, 누가 볼세라 꽁꽁 숨겨두듯 했던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개비하며 슬라이드 이미지를 찾다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끄집어 내었다.
벌써 아득해진 수년 전, 동생이 부탁한 일로 겸사겸사 LA에 갔다가 1년을 살게 되면서 만났던 풍경들이다.
그 풍경들을 가능케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 급하게 거기를 떠나올 때 고맙다는 인사나 제대로 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만나지지는 않더라고, 그 고마움은 간직하며 살아야지 하며, 그 때의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을 첫화면에 건다.
http://sidle.net/

*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게 또 쉽지 않은 법이다. 큰 사고나 상처 같은 것 뿐 아니라 작은 우연으로도, 별 거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일로도 멀어지거나 어긋나 지기도 한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런 것이다, 사는 게.

** 나를 설득하려던 그의 노력은 실패하였고, 그렇게 고민하던 일을 정리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편두통이 물러갔다. (“동명이인” 같던 몸과 마음이 이제 정말로 하나가 되려는 건가). 그의 선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기 위해, 위대한 자기서사의 조연으로 끊임없이 타인을 호출하고 소비하는 그의 계속되는 말, 말들은 나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는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와 손을 잡는 것이 그의 말대로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일로 판명이 난다 하여도… 나는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모양으로 살지, 하여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질 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너무 칙칙하다.
술렁이는 이 땅의 각종 소식들과 남쪽 지방의 화창한 봄날 안부를 들으며…
라면이나 먹어야 겠다. MSG가 필요한 시간이다.

김밥 먹다 눈물을 흘리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와서 김밥천국(김밥지옥이라고 부른다며?) 김밥을 먹다가 눈물이 난 건 순전히 매운 고추 때문이다.
잘 먹지는 못해도 고추를 좋아하는 나로 하여금 이렇게 폭풍 눈물을 쏟게 하다니.
재료를 만드시다가 청양고추를 잘못 보고 넣어버린 게 틀림없다. 
(다음에 가서 물어보니 원래 청양고추가 들어간단다. -,.-)

002 

싱글 라이프를 소재로 하는 티비 리얼 프로그램에도  나온 적 있다는 망원동 김밥천국에서는 먼저 단무지를 챙겨주는 법이 없다. 
달라고 해야 한봉지 넣어주는데 한 봉다리 안에는 달랑 3개가 들어 있다.
이게 서운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직원 교육을 그렇게 시키나보다, 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밥을 팔면서 단무지를 먼저 챙겨주지 말라고 하는 사장님을 상상해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므로. 
직원이 마시는 믹스 커피를 아까워하는 출판사 사장님도 있다는데 뭐.

 그나저나 김밥천국의 스페셜 정식을 만수르 정식이라고 부른다는 게 재밌다.
아랍에미리트 석유재벌로서 축구 구단을 막 사들이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알 나얀의 이름을 딴 거라는데,
34조 이상의 재력을 갖춘 이의 이름을 별명으로 갖고 있는 김밥천국의 스페샬 정식이라니! 
언제 한 번 먹어봐야지. 

냉장고에 쟁여놓은 메로나 하나를 먹고서야 눈물이 그쳤다. 
담엔 치즈김밥이나 먹어야겠다. 
 

근간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이제 멀미가 날 거 같은 워프 화면에 질려서 오래 미뤄놓은 명함을 끄적거리다가, 어제 배송되어온 이문재 시인의 시집을 펼쳤다.
서평에 혹해서 주문했던 시집인데, 아, 첫 시부터 눈이 커진다. 

 

사막
                                                               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001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은)

이 시가 더 반가웠던 건, 끄적이고 있던 내 명함이 이런 거였기 때문. 

003

이전 작업을 하는 걸 보았던 사무실 동료가 이 글씨도 신선생님 글씨냐고 물어서 , “어찌 이런 사소한 일로 바쁘신 선생님을 괴롭히겠냐”고 대답을 했더랬는데,  그 타임에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신선생님이 주례를 서시느라 고단하신 걸 보며 “그래서 귀찮게 해드릴까봐 결혼을 안할려구요.”라고 말했던 일.
암. 내 사는 게 남루할 지라도, 최소한  귀한 일 많이 하시는 분들 괴롭히지는 말고 살아야지.  

시들을 두 어 편 읽다가 맘이 짠해져서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는 오랜 벗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멋진 시집을 보내주겠으니 주소를 달라고. 
보내자 마자 총알같이 날아온 반가운 답문자들.
이만하면 뭐 벗으로서도 괜찮은 사람 아닌가, 라는 자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