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늙어갈 때 느슨한 인간관계가 필요해요”

“혼자인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간관계만큼이나 느슨한 인간관계가 절실해요. 느슨한 인간관계는 노후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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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그리 우려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어. 

근래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아침이나 자기 전 가벼운 요가를 한다.  유튜브의 “요가소년”이나 “요가은”이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준다. 
특히 자기 전에 까먹지 않고 해주면, 수면 진입이 훨씬 수월해진다. (물론 자주 까먹는다.)

요가 마지막에는 “송장 자세”라고 불리는 걸 한다. 
편안히 누워서 몸 전체를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이전의 요가 동작이 고단할 수록, 신체의 긴장이 클수록,  이 시간은 편안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수면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상당한 쾌감이다. 

실제 송장이 되는 일도, 죽음에 이르는 일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삶의 고단함과 긴장에 비례한 편안한 휴식이, 달콤한 안식이, 보상처럼 주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문상을 다녀오다

멀리, 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나름의 삶의 이력으로 통상적인 관혼상제의 네트웍에서 살짝 비껴있는 탓에, 꽤 오랫만이기도 하고 그 형식이 잘 익숙해지지도 않는 일이다.
가족과 조용히 보내려하니 멀리서 명복을 빌어달라고 소식이 온 터라 살짝 고민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건 그 녀석의 심성 때문이라는 판단은 옳았다. 상주의 얼굴에 드러나는 반가움은 그 사실을 확인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북적이지 않아 가까운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상주는 말했고, 성당 교인으로 추정되는 어르신이 처음 보는 내게 건넨 “식장은 크고 좋은데 손님이 너무 없어~” 라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와중에 다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정신없을 와중에 보내온 내용에 마음이 흔들렸나보다. 주저리주저리 횡설수설 긴 문자를 보낸 걸 나중에 확인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죽음만큼 누구나 강력하게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저마다의 삶에 이미 준비된 죽음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하여 누군가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떠올리고 맞닥뜨리는 것 또한 피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 죽음을 미리 마주하고 있노라면 함께 마주한 이와의 마음의 거리가 확인되기 마련이다. 상주의 위치에서든 문상객의 위치에서든.

여름이 지나가고, 은교를 보고,

유난히 더웠던 날씨 탓에,  거절할 때를 놓치고 어느새 말려들어 수족이 고단해지는 못난 성격 탓에, 많이 그을리고, 많이 땀 흘리고, 그리하여 많이 쪼그라든 채 툴툴대던 여름이 가고 있다.

신기한 건 나이가 들수록 점차 정직해지는 얼굴.
나이가 들면서 차곡 차곡 쌓아가는 삶의 이력 뿐 아니라, 내가 지금 삶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얼굴을 손바닥만한 거울로 들여다보다가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체득해가는 삶에 대한 통찰은 이 정직해져가는 얼굴 덕분이 아닐까, 하고. 그렇다면 잡티 하나도 용납하지 말자는 안티에이징 화장품 광고의 구호는 오늘날 반성없는 우리 사회의 피폐함을 조장하는 것인 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리 정직해져가는 얼굴이 반가울 리는 없다. ‘늙음이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라는 항변이 큰 공감을 얻는 이 사회에 붙박혀 살고 있으니. 이젠 땡볕에 바위산을 기어오르고 다닐 땐 귀찮아도 썬크림 같은 건 잘 챙겨 발라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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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받아 놓았던 영화 <은교>를 이제야 보았다.
원작소설은 별로였다는 얘길 지인들한테서 들었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다.
이제까지의 우리 영화중 ‘늙음’이란 것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 영화, 라는 누군가의 평에 대체로 끄덕끄덕.
영화 바깥(의 삶)을 보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 라는 기준에 따른다면, 그런 면에선 꽤 괜찮은 영화라는 결론이다.  
영화 뿐 아니라 전반적인 우리의 시선이 언제 늙음에 대해 제대로 진지하게 생각해봤겠는가.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안과 밖 어디서나 공존해온 ‘늙음’을 부정하거나, 삶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질병 혹은 악으로 치부하고 외면해왔던, 그리하여 결국은 ‘나의 죽음을 나로부터 소외’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니.
   
점차 내 안에서 늚음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노후와 죽음을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보험사와 상조사의 광고전화에 시달리는 요즈음, 한 편으로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늙음과 죽음에 대한 긍정만으로도 멋져 보이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많이 편안하고 풍요롭고 평화로워질 것인가, 하고.

(포스터 이미지를 찾아봤더니 별로 맘에 드는 게 없다. 영화속 장면 장면은 멋진 게 많았는데! 특히 김고은이라는 배우는 내 보기에도 숨막힐 듯 예쁘더라는. 훌륭한 캐스팅! 저 마지막 사진은 어렸을 때 본 <러브레터>의 한 장면 같다.)

* 포스터 이미지 올리려다 발견한 오래 전 그림파일 하나. 다시 봐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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