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꿈

아주 오래 전 한 때 꾸었던 꿈을 다시 떠올린다.

자그만 소도시. 자전거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이동이 가능한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꿈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초원사진관이랑 비슷한데 간판엔 <나의 아름다운 사진관>이라고 적혀 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오래 오래 담아두려 사진관을 찾고, 나는 그 순간의 그들의 눈빛과 표정, 작은 몸짓들에서 가능한 많은 삶의 디테일을 읽고 담아내고자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가 충분히 투영된 사진을 보면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신이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단한 일상에 지쳐 마음이 팍팍해지고 공허하고 쓸쓸해질 때면 그 사진을 바라보며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꽤 많은 경우 그 사진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이들, 혹은 시절을 애도하는 상황에 유효할 것이다. 크고 작은 상실을 겪는 이들-우리 모두가 그렇지만-에게 사진은 그 순간을 견디고 상실 후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데 필요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관은 그리 바쁘지 않고, 나는 많은 시간을 기타를 잡고 딩가딩가 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산책을 즐긴다. 한가해진 친구들이 먹고 마실 것을 싸들고 오면 사진관은 문을 닫고 까페로 변신을 하기도 한다. 공간이 좀 더 괜찮다면 동네 주민들이나 아이들을 위한 사진교실을 열거나 작은 전시도 열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꿈꾸었던 행복한 미래. 이제 다시 되새겨봐도… 정말 행복하지 않겠는가…
(아, 일하기 시러…)

행복이라는 게 무엇이더냐.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에 가까울 것인데 객관적인 잣대를 끌어들여, 너무 간단히 행복해지거나 불행해지거나 한다.
사는 게 다 그렇거니 하면서 쉽게 위로받고, 사는 게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 간단히 상처 받는다.
그래서 행복하여도 별로 행복하지가 않고, 불행하여도 꼭 불행한 게 아니기도 한다.
이러면서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은 점점 퇴화해가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는 얘기들을 받아들여 체념하는 게 안쓰러워,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쉽게 포기하지말라, 고 간곡하게 얘기했었지만, 글쎄, 행복에 대해, 타인이, 내가, 무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아닌 타인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
이런 문제에 있어 타인의 조언이란, 그것이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정도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나,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에,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건강해보인다.  
쓸데없이 몹시도 피곤했던 하루 혹은 이틀.

가끔씩, 뜬금 없이도, 놓아버리고 싶거나, 놓쳐버릴 것 같은 일상.
대체로 이런 때에 방심한 걸음으로 생겨나는 짜잘한 상처들로 대일밴드와 후시딘 한 통이 동이 났지만,
어느 새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가 흔적을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신통하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 ‘피로 회복제는 약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후시딘도 대일밴드도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상처를 입는 것을 걱정하거나 낫지 않을까 조급해하지 말 것.

회사

꽤 오랜 시간과 협상 끝에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어제 새벽까지도 강력하고도 징한 만류와 회유를 전해오던 상사와 사장님은 결국 내 ‘간절한 요청’을 수락하였는데, 이유는 이런 저런 주관적인 사유로 인해 “행복하지가 않다” 라는 말과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
행복하지가 않다는 말이 그리 강력한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건… 감동적이다.
그런 말을 전하였더니, 우리 회사는 무엇보다 강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게 그리 감사한 일이냐’ 는 가벼운 핀잔.
떠나는 자의 미안함과 아쉬움과 그리고…

나름 애정이 많았던,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하였던, 내게는 좀 버거웠던 회사는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아직 정리할 시간들이 여러 날 남아있기는 하지만, 회사는 이렇게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었고
나도 그래야하는 숙제가 남았다.    

……

오랫만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심한 밤에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것.
며칠 팍팍해졌던 가슴팍이 넉넉해지며 쭈글쭈글해졌던 심장이 다시 링클프리로 펴지는 느낌이다.
나에겐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이런 시간들이,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며칠 전 이번 엘에이행을 결심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가졌다.
하이클라스 백인들만 산다는 동네를 지나 도착한 곳은 높은 빌딩만 빼곡한 Century Park East.
맘씨 좋은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화이팅을 뒤로하고 빌딩을 올려다보니, 낯설기만한 풍경속 빌딩 로비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스타벅스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자, 참 이렇게 낯선 도시에 내가 왔구나 실감이 났다. 온통 회색빛 빌딩만 가득한, 은하철도 구구구에 등장할 법한 낯선 별에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한 후에 들어선 사무실안 풍경은 흔한 허리우드 법정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유사해서 오히려 친근했다. (이곳은 꽤 큰 규모의 로펌. 클라이언트 정보를 보니 큰 규모의 관공서들과 이름이 친숙한 허리우드 스타들이 즐비하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그 안에 심히 뻘쭘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

나를 맞이한 변호사 P는 6살때 이민을 온 한국교포. 그의 한국말은 커서 노력해서 다시 배운 것이라 했는데, 쉬운 단어를 고르거나 영어로 바꾸느라 내머릿속은 분주해졌고 말은 느려졌다.
그러다 곧 이런 저런 사람들의 빠른 템포의 유창한 영어가 내 귀에 쏟아져 들어오자… 각오한 일이었긴 해도…  나는 다시 낯선 별에 불시착해 외계인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

P씨의 친절은 감동적이어서, 대충 그러저럭 일을 진행시켜 준 것은 물론,언어소통의 문제가 심히 고민이라는 내게 조언을 해주고 용기를 주려 하다가 급기야는 나의 영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노라며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해서 P씨의 친구들과 만난 곳은 단성사. (코리아 타운의 단성사는 주점이고 피카디리는 당구장 이름이다. -,.-)  변호사와 포토그래퍼였던 그들과의 대화는, 절대적인 시간과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대화내용의 양이 아주 부족했던 지라,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기억 나는 것이라곤, 한국과 일본을 전혀 모른다는 한국인,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두 친구가 벌였던 재미없고 별 내용도 없으면서 치열했던 민족 감정의 논쟁. 심심해진 내가 소주 한 잔을 홀짝거리며 멀뚱하니 그들을 지켜보다 던졌던, 행복하냐는 질문 하나.

문득 그리워졌다.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한강이 한 줄기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일산 내방 창가.
그곳에서 책상 위 자그마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의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만 같았다.

재미있게 삽시다!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 정신없는 하루였다.
발밑의 불 정도를 끈 후에 전화가 왔다.
나간지 몇 달은 된 일산 인라인 동호회에서 세 번 정도 안면이 있는 후배. 공연소식을 알리는 웹페이지를 만들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엠에센으로 말을 걸어온 갑군은 또 노동력 착취 당하러 나가야한다는 내 말에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지” 라며, 짐짓 나를 위해주는 말을 던졌다.

요청 받은 일을 들어보니 인디밴드들의 심장병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깔루아커피를 마시면서 공연준비의 고충과 인디밴드들의 생활고를 듣다가, 그를 찾아온 그의 학교동아리 후배 둘을 만났다.
틈틈히 일어날 기회를 엿보던 나는, 온통 아파트와 생활고(몇억대 아파트를 가져도 생활고를 겪는건 마찬가지인 모양 -,.-)밖에 없는 그들의 대화에 지루한 표정을 숨기려 노력하다, 사진동아리 인연이라는 그들이 점차 안쓰러워지고 있었다.

생활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다 그렇지요, 라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그렇더라도… 사진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한 때 애정을 품은 대상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누었던 이들이 수년 후에 만나 고작(!) 부동산 이야기나 나누는 것은… 쓸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때 흥겹거나 빛나던 것들을 반납하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단조로운 일상과 재미없는 대화 속 어디메쯤에 행복이란 게 있는 것인지 의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