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이색 도서관

`전직 은행강도 대출해 주세요` [중앙일보]
– 헝가리에 이색 도서관

책 대신 사람 빌려줘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경험해보고 싶다면 헝가리의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에 가면 된다고 독일 dpa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이 도서관은 매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문화 축제인 ‘시게트 페스티벌’ 행사의 한 프로그램이다. 대출을 신청하면 그에 해당하는 특성.직종의 인물을 한 시간 동안 빌려주는 방식이다.

이 도서관의 ‘소장 목록’은 레즈비언, 전직 은행강도, 집시(스스로는 ‘로마’라 부름), 여성운동가, 유대교 랍비 등이다. 유럽연합 공무원 등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외 계층이거나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도서관 설립자인 로테문드 안테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며 “우리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선 자신들이 빌려주는 사람을 ‘책’이라고 부른다. ‘독자’들이 다른 인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책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운영 5년째인 올해의 경우 범법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전직 은행강도가 ‘최다 대출 도서’가 됐다. 매년 시게트 페스티벌을 찾는 40여만 명의 방문객 중 절반 정도는 헝가리인이 아닌 외국인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서관 측에서 필요할 경우 ‘사전(통역자)’도 빌려주기 때문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고, 시인들은 노래했었다.
일시적인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긴 해도, 그 낭만적 은유를 현실화한 헝가리 행사가 재밌고,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려는 설립목적도 의미있어 보인다.
이러한 일들이 여기, 우리 가운데 이뤄진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책들을 대출하고 싶어질 것이며, 과연 누가 나를 대출해갈까?
그리고…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살아있는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은 과연 ‘엄격하게’ 지켜질 수 있는 걸까. 어떤 짧은 독서-만남도, 살아있는 책-인생엔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일 터인데 말이다. 미미하거나 혹은 치명적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