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절반을 살다.

diary 2009/07/02 10:04

옛날 어떤 사람이 꿈에 미인을 봤다. 너무도 고운 연인이었으나 얼굴을 반쪽만 드러내어 그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 반쪽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병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보지 못한 반쪽은 이미 본 반쪽과 똑같다'고 깨우쳐 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울결이 풀렸다.
이용휴, <제반풍록>중에서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에서 이 구절을 적어놓고,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라고 적었고,
나는 '2009년이 절반이 지나갔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이미 산 반년과  똑같은 것일까?' 라고 흉내내어본다.
2009년 상반기. 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힘들고 고통스런 일도 있었고,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일도 꽤 있었고, 즐거웠던시간도 행복했던 순간도 더러 있었다.
그래, 이미 지나온 반쪽만 같아라, 싶다가... 아니다, 싶은 일들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이 놀라운 망각과 자기최면의 능력! )

어쨌거나 수고했다. 매일매일 길고 긴 주행을 하고 있는 지구도, 그 위에서 먼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들도. 
남은 절반의 2009년의 시간들을 위하여 몇 가지 원칙들을 세워보아야겠다.

이제 펴보기 시작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의 서문엔 이런 말들이 적혀있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했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 p7

그래도 그 텅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로 이어지는 글이었지만,
난 이 작가가 텅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온 십대와 이십대의 삶이 부러웠다. 
지난 날의 나, 사랑이 내게 오려해도 용기가 없어 달아난 일이 많았고, 아파야만 하는 것엔 너무 자주 불평했으며,  이 생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서러워하기도 했으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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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2 10:04 2009/07/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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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diary 2009/06/29 11:27
출근길 전철 승강장을 올라오니 커다란 거울이 눈에 띄었다.
의류매장에 걸려있을 법한 다리가 길~어보이는 거울이었다. 믿음 교회였나, 그런 이름이 아래 씌여 있었다.
호감을 주어 홍보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런 거울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믿음을 줘야하는 믿음교회에서 왜곡된 상을 보여주다니! 재미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해 노순택씨는 "외면하고 싶지만, 봐야만 하는 거울" 이라고 했다.
그 글은 내게는 또 하나의, 반성을 요하는 거울이었다.
다리가 길어보이는- 착시를 이용해 단점을 가려주는 거울이 있고, 보기 싫은 상처나 흉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있으며, 내가 모르고 있던 어떤 디테일을 섬세하게 끄집어내주는 (매크로?) 거울이 있다.
보는 것으로 행복해지는 거울이 있고, 고통을 안겨주는 거울이 있으며, 자주 보고 싶으나 아껴 봐야할 것도 있고, 어떤 건 자주 보지는 않더라도 끝내 품고 가야할 거울인 것이 있다.

우리 삶에 거울을 안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많고 다양한 거울을 만나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착시효과가 진실인 줄 믿게 되거나, 내 삶이 상처투성일 뿐이라고 믿고 살면 곤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그 거울을 보는 일 자체가 나를 만들어가는, 내 삶의, 희노애락의 한 부분일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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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11:27 2009/06/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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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스락 2009/06/29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 종류의 거울을, 자주, 반복해서, 뚫어지게 보아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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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른

diary 2009/06/28 21:19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카 석윤이가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이모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언제 와. 태권도 하는 거 보러 가야하는데.. 뭐 이런 소소한 대화.
지인과 저녁을 먹고 있던 중이라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들어와서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석윤이가 전화를 했네, 했더니. 언니왈.
학교에서 주말 숙제를 내줬는데 '집안어른께 안부전화 드리고 그 내용을 일기장에 두 바닥 쓰기" 란다.
헉 내가 집안어른이란 말야? 까르르 웃어댔더니 언니가 준엄하게 말한다.
그럼 니 나이가 몇인데 집안어른이 아니고 뭐냐.

한동안 이런 저런 일들로 마음이 분주해 조카들을 만나지 못했다.
언니 표현으로 요즘 "반짝반짝 날리고 있다"는 우리 사랑스런 조카들을 보러 조만간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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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21:19 2009/06/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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