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보고나서 나머지 시간을 방정리로 보냈다.
이사를 하게 되니 '살림살이'가 이삿'짐'이 된다.
서랍들이랑 구석의 책꽂이, 박스 같은 것들만 정리를 하였는데도 반나절이 다 가고 쓰레기도 많이 나왔다.
진작 버려도 될 것들을 이리 많이 껴안고 살았다는데 놀라고, 쓸데없이 많은 사무용 집게와 포스트잇과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의 클립들(펭귄 모양의 클립이 제일 이쁘다), 압정들의 양에 경악한다. 무어 간직해놓을 것들이 많다고 여기저기 많이도 모아 놓았는지.
펜들도 참 많다. 갖가지 연필, 색연필, 형광펜과 샤프. 네임펜, 매직...
쓸 것도 별로 없으면서 말이다.
이젠 정말 펜을 들이는 건 절제해야겠다. 잉크도.
보관상태도 별로 안좋은 슬라이드 필름들과 네가 필름들은 이번 이사에도 살아남을 것 같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인색한 공간에 살림살이를 꾸리다보니 늘 갈등이다.
잊어먹고 살다가 이사할 때에만 들여다보고, 다시 덮어버리니,
두어번 끌고 다니면 그 갈등도 끝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렇게 먼저 떠나보낸 꽤 많았던 엘피판들과, 어쩌다 생각나 찾으면 보이지 않아 아쉬웠던 책들과, 지금은 꽤 값이 나간다는 얘길 엊그제 들은 모 문학지 창간호 같은 것들이 잠시 아쉽게 스쳐간다. 아주, 잠시.
그래도 새로 이사하는 집은 공간이 좀 더 넓어 좀 더 넓은 책상을 주문한 게 생각나니 신이 난다.
사실 몇 해 전에는 선물로 받은 꽤 크고 튼튼한, 유명 브랜드의 값나가는 책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어쩌다 갑자기 좁은 원룸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들어갈 곳이 없어진 녀석을, 마침 트럭을 몰고 나타난 친구가 제 아파트 베란다에 보관해주기로 하고, 싣고 가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이사를 하게 된 집 역시 그리 넓지 않은데다 옵션으로 작은 책상이 있어서 찾아오지 못하게 되었고, 어쩌다 생각이 나면 엄하게 남의 베란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책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더랬다.
그래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전화를 했는데 친구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어, 그 책상 아주 고맙게 잘 쓰고 있다야. 이사 간다구? 그럼 좋은 걸로 골라라. 내가 그건 사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 친구가 선물로 생각하고 고맙게 잘 쓰고 있는 동안, 나는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에 내내 미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창제 이 자슥, 진작 말해줄 것이지..
어쨌거나 마음이 후련하다. 몇 해 동안 '짐'이 아니라 제 구실을 잘 하고 있었다 하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봉천 7동에 이사와서 이년을 살았고, 그 동안 동 이름은 낙성대동으로 바뀌었다. 달 동네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봉천동 동명개정에 대한 구의원의 발언은 비장했다.
(동이름 때문에!) 딸들이 시집을 못 가겠다고 하소연 한다 하고, 봉천동이라는 회사 주소를 보면 고객의 얼굴이 바뀐다고 했다.
지역에 대한 애착과 함께 지역의 브랜드 가치와 주민의 자기 존중감도 언급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
이 동네를 찍은 내 사진을 보던 누군가는 봉천동이 재미있는 동네라며, "인간이 되지 못한 웅녀가 술 마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표현했던 기억도 난다.
그 말을 들은 즈음부터 이 동네엔 술집이 많이 생겼다. 포장 마차 같은 컨셉의 작은 주점에서부터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갖가지 체인점들, 세련된 비어 팩토리, 분위기 있는 자그마한 바까지. 그러고 보니 집 뒷쪽의 모베터 블루스라는 이름의 뮤직바에서 하는 재즈 공연을 꼭 보고 싶었는데 가지 못한 게 생각난다. 언젠가 이 곳이 그리워지면, 공연 보러 한 번 와봐야겠다.
내일은 책들을 좀 정리하고 먼지들을 닦아내야지. 먼지가 많았던지 눈이 뻑뻑하다.
먼지는 도대체 어찌 이리 쌓이게 되는 건지 신기하지만,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우주에서 날아온 무엇이라는 경이로운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시인은 정말 위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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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누군가에게 "저지를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은 걸 저지르며 살아볼려구요 " 라는 말을 날린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사소한 것부터 그리 가볍지 많은 않은 것도 포함해 서너 가지는 저지르는 걸 한 것 같다.
그 저지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미리 염려하고 기회비용을 생각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다.
지난 날 저지르지 못하여 비껴 가거나 놓쳐버린 소중하거나 아쉬운 것들,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회한 같은 게 있다면 그도 후욱, 날려버리고, "네가 무엇을 의지하든 그것의 영원회귀를 의지하는 그런 방식으로 그것을 의지하라."고 한 니체의 실천적 명령을 가슴 한 편에 담아두기로 한다.
슈퍼에서 "꽃귤 한 봉지에 이천원" 이라고 씌여있는 알이 아주 작은 귤 한 봉다리를 사가지고 왔는데 먹어보니 참 달다.
역시 작은 것이 맵기도 하고 달기도 한 모양이다.
꽃귤. 이름도 차암 이쁘다.
(그런데 껍질 까는 게 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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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os250 2010/03/03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 겨울도 다 보내지 않은 듯 한데 벌써 9월 가을날을 기다려보는 일은 아마 처음이지 싶습니다. ^^
말씀하신 공간, 사람들, 먹을 거리, 그 모든 빛깔과 향기가 예사롭지 않을 듯 하니, 마음도 몸도 잘 닦아두고 준비하여야겠습니다. 이사가서 여건이 되면 전 부치는 것도 연습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저야 언제든 술 한잔 기쁘고 감사한 맘으로 콜입니다.
다만 손목이 아직 편치 않으신 것 같아....
그래도 이제 겨울 찬바람 가시면서 그 계절이 남겨놓은 흔적도 상처도 모두 안고 가버리면, 모든 것이 편안하고 평화로워질 거라고.. 믿~ 씁니다. ^^
100년 고택! 언젠가는 저도 그런 멋진 "저지름"을 감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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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내용은 여기로 ->>

후유증이 길었던 지난 부산행에서 찍혀진, 몇 안되는 사진을 이제야 꺼냈다.
노순택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던 고은 미술관은 느낌이 좋았고, 전날의 과음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천장이 거울로 된 1층 까페에서 마신 카페라떼는 달콤했다.
그리고 함께 했던 고마운 일행들과 그곳에서 마주쳤던 반가운 여러 사람들.
기억량은 많지 않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즐거웠던 기억들이다.

이 선배가 내 카메라를 가져가 찍어주고 흡족해한 사진. 내가 찍히는 일이 좀 민망했지만, 타인의 사진을 찍어주려할 때 이 선배는 정말 그답다고 느껴진다. 위의 삐뚤어지고 어지러운 내 사진과 정말 비교가 된다...ㅎㅎ 사실 그 덕분에- 이 선배가 이전에 어떤 분의 가족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준 덕에- 우리 일행은 그 전날 근사한 부산 호텔의 와인맛을 볼 수 있었다는 거.
그래서 나도 찍어줬다. 더불어숲 출판사 이승혁 대표님.


며칠 전, 그 즈음에 부산에서 필름이 끊겼다는 누군가와 술마시다, 부산이 원래 그런 곳일 게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곳의 화사한 하늘빛과 부드럽고 훈훈한 해운대 바닷바람에는 멀쩡한 사람도 감전시켜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있는게 틀림 없다. 조그만 아파트에서 해가 뜨는 바다를 보며 눈을 뜨는 일을 잠시 동경했었으나 아무래도 부산에서 사는 일은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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