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이 걸었다.
운동부족이었던 다리를 조금 절룩 거리며 들어와서는 허한 속에 맥주를 집어 넣은 건, 치뤄야할 미션이 있어 고단한 하루를 보낸 이유도 있지만, 전철안에서 잠깐 읽은 책에서 언급된 조개 시체와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하는 농민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도 영향도 컸다.
새만금 갯벌의 개발로 바닷물이 막혀 목이 타들어간 뻘 속 조개들이, 내리는 비에 일제히 바깥으로 나와 몸에 맞지 않는 빗물을 받아먹고 죽어간 이야기와, 한 해 이천명이 넘는 농민 자살자들에게 이용된다는 제초제 그라목손의 효능 - 의식이 명료한 가운데 호흡곤란증으로 서서히 죽어간다는- 에 대한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갈증의 신호를 보내고, 슈퍼에서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와 마시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홈 패인 차별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고, 시민권이 거부되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이주노동자이며, 삶이 불안정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곳에서 우리 모두는 농민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에서 우리 모두는 새만금의 조개입니다... (고병권 /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중에서)
오늘, 나는 이 사회의 어떤 무늬의 홈에 의해 잠시 고단했고, 언제나 모든 곳에서 훨씬 선명하고 깊숙한 홈들로 고통받는 소수자들의 고단함을 생각하곤 숙연해지고 답답해졌다.
그 갈증, 맥주 캔 두 개로 해소되지 않고, 오늘도 잠은 오지 않는다.
큰 일이다. 미션이 끝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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