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복병이 많은 이사였다.
비 올 확률 90%라는 예보에 간신히 시간을 조금 늦추었는데, 사다리차가 들어서야 할 딱 그 자리에 주차된 차 주인은 공항엘 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다리차를 좀 눕혀 주차된 차위로 나르기 시작하자 계속해서 차가 들어와 계속 사다리차를 빼주어야 했다.
욕심 많은 건물 관리인이자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이웃이었던 남자는 꼼수를 부렸다. 내가 받고 나가야할 돈을 자기 통장으로 입금시켜 놓고 말도 안되는 중개수수료를 줘야 주겠노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눈앞에서 덩치도, 얼굴도 커다란 남자가 내가 평생 들은 말 중에서 가장 큰 볼륨으로 소리를 지르니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 쫄을 수 없는 나, 당당히 맞서 항변을 했고 결국 그를 굴복시켰다. 논리적인 주장 보다 '당신이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굳이 자기 통장으로 입금하게 만든 사실을 집주인의 전화를 통해 들었으며 , 그 이유도 알고 있다'고 말한 게 유효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전화로 미안하다 했고, 사실 매번 이런 일을 겪는다고 고백했다. 그 말인즉슨 그렇게 큰 소리로 겁을 주어 먹히는 사람에겐 돈을 뜯어냈다는 말일 게다. 나 같은 사람에겐 어림 없었지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친구말처럼 그런 일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짐을 올리는 사다리차에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옆집의 방만하게 뻗어 있는 거대한 나무의 잔가지들이 사다리차에 계속 걸렸던 것. 그걸 계속 투덜거리던 이삿짐 센타 아저씨 역시 또 하나의 복병이었다. 책이 많고 무겁다고 계속 툴툴거리고 도와주는 친구도 없냐고 비야냥 거리더니, 점심을 시켜달라, 담배를 사달라, 저녁값까지 챙겨갔다. 이런 관행은 오래 전에 근절된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으나 좀전의 승리에 고무된 나는 기꺼이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이런.
그리하여 이제사 겨우 잠잘 수 있는 환경이 된 방. 방이 좀 좁아지고, 문제가 생긴 오래된 칼라박스들 땜에 정리가 안된 책들이며 다른 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이전보다 좀 낡고 꽤 더러워 청소할 일이 정말 막막하긴 하지만, 그러나 좋다. 이유는 큰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이다.
이런 촉감의 바람을 내가 참 좋아했지, 라는 생각이 퍼뜩 스쳐갈 때, 여러 해 전 한강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었던 게 생각났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라는 구절을 읽고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내 대답은 "더 이상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길고 길었던 하루 동안, 폭력적인 언사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한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나 아직 살아있네!)했고, 살아 있으므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집에서 맞이할 어떤 빡센 날들에도 바람을 느끼줄 아는 감각이, 몸의 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를,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휴~ 청소는 언제 하나..
어쨌든 지금은 단잠을 잘 수 있겠군.
자기 전에 맥주 캔 하나를 딸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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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식 알고 있었는데 짬이 안나 들르지 못하고 있었어요. 잠도 잘 못자는 폭풍 작업중에 이사를 하게 되니 오늘 같은 날은 다리가 좀 풀리면서 정말 누가 '어부바'해줬으면 싶더라니깐요.^^
좀 새로운 작업이라 궁금하네요. 이전 작업들과 별반 다르진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지만요.
짬 나는 대로 들를 게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 --> 힘든 이사 전쟁 중에 획득한 소중한 전리품 하나!
고생 많으셨어요, 누나!
저, 아직도 숨 쉬고 있어요.....
호오, 오랫만 ^^
아직도 숨을, 아주 의지적 숨을 힘차게 쉬며 살고 있는 거지?
이사짐 정리하다 잠시 거기 지내던 증거가 나와 잠깐 회상에 잠겨더렸는데.
반갑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