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사진전 <한강하구>를 보았다.
다음 주에 지인과 같이 가기로 약속을 잡아놓았지만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전시공간은 지난 번 지인의 친구가 운영하는 수제햄버거집 페퍼그릴을 찾아가다가 눈에 띄었던 공간415.
‘415’를 소리나는 대로 읽은 ‘사이로’는 기존의 갤러리와 새로 나타날 예술공간의 ‘사이에’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는데,
아담하고 편안해 보이는 공간의 느낌이 마침 기자들이 인터뷰하고 있던 주인장-관장님의 이미지와 닮아 보였다.
다음은 전시관련 기사와 공간415의 블로그.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433260.htmlhttp://suntag.net/1624http://www.gonggan415.com십년쯤 되었을까.
<비무장지대의 사색>이란 얄팍한 책을 교보문고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고 한참 동안 손에서 놓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강력하게 나를 관통해오던 서정적인 울림에, 서서 한 권의 책장을 다 넘기고 나서야 책을 사서 서점을 나왔던 일.
그래서 어느 읽는 이 많지 않은 월간지를 만들던 친구가 서평을 써달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이 책을 골랐더랬다.
지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는 기분으로 그저 좋은 책을 알리고픈 마음이었을 게다.
발행 부수가 많지 않긴 해도 의미가 있던 그 월간지의 격을 생각하면 당시에도 친구가 날 뭘 믿고 그런 걸 부탁했는지 알 수 없었으며 그 이후로 아무에게도 그 글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어찌하다 이 책을 들고 이 작가를 만났을 때 너그러운 작가가 고맙게도 그 함량 미달의 글을 기분좋게 보아주었던 기억이 난다.(그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나. -,.-)
이번 전시 사진도 그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모르긴 해도 그의 삶과 작업이 참 '한결같다'는 느낌을 갖었더랬는데, 그래서 작가노트에서 '결'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움은 내게 다른 말로 ‘결’이다. 세상은 결로 존재한다.... 결을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숨어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며 예술창작은 세계의 결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이 발견되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가 발견한 세상의 결, 아름다움의 결, 그가 만들어가는 그의 결을 "아름다운 서정시"에 다름 아닌 사진 뿐 아니라 작가가 마트 위에 직접 손글씨로 썼다는 텍스트(내용에서 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정말 멋지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 링크의 기사에 보면 사진작가 노순택씨가
“공안당국이 이적표현물로 문제 삼았던 이씨의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대단한 퀴즈’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봐야 그 사진들이 적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이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의 굴레를 뒤집어씌웠던 사진들을 찾아보길 권유하는데, 그건 정말 미션 임파서블일 듯.
작가노트
나의 국가보안법 재판은 검찰의 안보론과 사진가의 예술론의 격돌의 장이었다. 검찰에게 나는 예술가를 위장한 간첩이었고, 새로운 예술론은 위험한 예술론이었으며, 창작의 자유는 안보위협요소였다.
21세기로 들어서기 직전 나는 나름대로의 미학관과 예술론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사진작업에 들어섰다. 아름다움은 내게 다른 말로 ‘결’이다. 세상은 결로 존재한다. 바람은 바람결로, 물은 물결로, 숨은 숨결로 존재한다. 결을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숨어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며 예술창작은 세계의 결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이 발견되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연한 만남의 결과든 고단한 노력의 결과든 ‘내’가 결을 만들고자 할 때 결이 비로소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작뿐만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까지도 예술가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론과 실천, 창작의 삼위일체. ‘한강하구’는 그런 작업과정이 처음으로 일관되게 실현된 주제이다.
2000년, 강화도로 이사해서 한강하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이 전시는 10년 동안의 작업성과인 셈이다. 한강하구에 대해 설레던 ‘예감’은 10년을 거치며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한강하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라는 행사를 통해 남북의 국경하천이자 유라시아의 국제하천인 한강하구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간의 과정에서 사색했던 사진들을 전시하게 되니 그저 부끄럽다.
내게 사진은 90%의 이론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빚어진다. 그러나 1%를 얻기 위해 나머지 99%를 버려야할 순간을 거쳐야 사진은 비로소 즐거운 것이 된다.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고 행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즐거움에 이르러 내안의 ‘결’과 세계의 ‘결’은 비로소 화해한다. 내가 내사진에 대해 거는 기대이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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