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갔다.
몇 통의 안부전화를 받았다.
어떤 전화 통화 후에는 순돌이 아빠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랫만에 펼쳐본 시는 잘 읽히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갖고 싶었던 지구본을 드디어 장만했다.
꼬마 전구가 들어있는 자그만 지구본에 전원을 연결하면 은은하고 따뜻한 오렌지빛이 난다.
보고 있으면 지구가, 온 세계가, 불 밝힌 창 안으로 보이는 풍경처럼 아늑해 보인다.
간밤엔 전원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웬만하면 생일은 부득이 혼자 보냈다.
병이 들면 무리를 떠나 홀로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야생동물처럼(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고독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자는 생각이 깔린 행태이다.
오늘도 나는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밀린 일을 해치우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였으나...
아쉽게도 엊그제 울진의 올레길을 걸은 후유증으로 다시 쓰러져 늦잠을 자버렸고, 그 결과 아직도 일을 부여잡고 모니터 앞에 박혀 있다.
많은 문자를 받았다. 생일을 부지런히 챙겨주는 네이트온의 친절함 덕분이기도 하지만 지인들로부터 받은 문자들은 반갑고, 특히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아온 옛 친구들의 축하에는 늘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수의 문자는 안경점, 병원, 쇼핑몰, 펜샵, 이동통신사, 보험회사, 마트 같은 데에서 왔다.
그 중 대다수가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표시로, 행복한 생일을 기원하며 할인쿠폰을 보내왔는데, 아쉬운 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건 이중 그 어떤 할인쿠폰으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뭔가 "귀 빠진" 날을 기념하고 싶어, 처음으로 "빠진 귀"에 걸린 것을 바꿔었다. 술김에 동네 지인들에게 끌려 갔던 귀걸이샵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굉장히 낯선 공간이던 그곳에서 귀걸이를 고르고 바꾸는 굉장히 낯선 일도 친절한 언니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해냈다. 뭐든지 두 번만 해보면 된다는 나의 지론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덜 귀찮고 편안하다는 지인들의 조언대로 고른 "원터치 귀걸이"가 들어갈 때는 약간의 비명이 나왔고, 친절한 언니가 강권해준, 이전 것보다 조금 크고 빛나는 귀걸이는 아직 낯설긴 했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 때쯤이면 내 귀에 냈던 '상처'는 더 이상 덧나지 않는 완전한 구멍의 '무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살면서 부딪히고 긁히면서 생겨나는 온갖 생채기들이 이러저러한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흉터가 되고 마침내 삶의 무늬로 나타나듯 그렇게.
더러는 귀 뚫고 오래 지난 후에도 몸이 안좋아지면 덧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도 기억해두어야겠다.
우리 삶에서도 때로 우리의 심신이 약해질 때면 불현듯 복병처럼 나타나 우리를 뒤흔드는 지난 상처의 존재를 감내해야할 때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듯이.
* 임상 실험 결과 편두통은 귀뚫는 시술 이후 급격히 감소하였음을 알려드림.
두통이 오더라도 약 없이도 오래가지 않으며 횟수도 급격히 줄어들었음.
근거는 전혀 알 수 없으나... 나처럼 때로 '편두통만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분이라면 강력 추천해 드림. 물론 효과는 장담할 수 없음.
부작용에 유의.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역시 알 수 없으나 기분 좋은 side effect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음.
키보드를 틱틱거리며 열심히 코딩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시티 카드인데 삼성이 엄청난 흑자를 소비자에게 돌려줄려고 하니(허, 웃긴다.) 삼성과 제휴한 카드를 만들란다.
삼성과 관련된 건 안한다고 했더니 대응할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지 잠시 침묵.
그럼, 고객님은 삼성에 관심이 없는 거에요? 라고 그가 묻고,
나는, 아니요.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서(정말 신경을 써야한다. usb 메모리 하나를 사더라도!) 불매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럼 수고하세요,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소극적이고 사소한 실천. 뭔가 나름의 저항같은 걸 한 것 같아 기분은 좋다. 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