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이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든지, 시력이나 치아 등 육체적 기능의 약화를 호소하는 일이 늘어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머지 않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목이나 시력이 중요한 작업을 하는 처지에서, 또 그러한 불편함을 함께 감내하고 보완해줄 수 있는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 맞닥뜨리게 될 그러한 육체적 변화를 감당하는 일은 꽤나 만만찮은 미션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보다 두려운 건 그러한 약화, 혹은 퇴화의 조짐이 육체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대체로 알콜의 힘으로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돌발되는 상황이지만, 도대체 어디에 꼭꼭 숨겨져 있었는지 모를 날 것의 감정들과 뾰족한 언어들이 약간의 히스테리적 정서를 동반하고 출몰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나의 퍼스낼러티를 만들어온 너그러움과 해맑음?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대체적인 타인들의 평가였는디…. -,.-)은 도대체 어디로 실종되어 버리는 것인지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사태다.
그것들을 어떻게 보아야하는지, 묵은 감정의 찌꺼기로 여기고 치워버려야하는지, 내 안의 비명소리로 귀기울여야하는 것인지 아직 감이 안잡히지만,
막연한 불안 속에서도 뭔가 모르게… 아주 미미하나마 생의 본질 하나에 다가서고 있는 느낌이 있다.
이전엔 감지하기 어려웠던, 그 끝에서야 파악될 수 있는 어떤 본질, 혹은 비밀.  

* 어쨌거나 이러한 불편한 상태를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약간의 지름이 동반되는 이런 조치엔 고래동생과의 통화가 한몫을 했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결국은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하는 것일지라도,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리기보다  마음을 기울여 준비해서 맞이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판단.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흑, 말이 씨가 되었다. 
눈이 계속 뻑뻑해서 병원에 갈까 말까하다 이가 시려 용기를 내 치과에 갔더니 엄청난 견적이 나왔다. 
내 신체 중에서 그나마 우성이라 자신할 건 치아밖에 없던 사람인데… 평생 충치 하나 없었고 사랑니 뺄 때랑 친구 따라 스케일링 두어 번 하러 갈 때 빼곤 치과 근처에도 안갔던 사람인데…  
충격이 크다. 

그나저나 나는 정말 감각이 무딘 사람일까, 잘 참는 사람일까.
어느 쪽이라도 내 육체를 잘 돌보아주지 않은 건 확실하다.  
그래서 감지가 되었을 땐 이미 크게 일이 벌어진 경우가 종종.
이건 어쩌면 엄마를 닮은 모양이다. 소화가 안된다며 자꾸 사이다를 드시다가 순식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내 엄마.

이렇게 고작 이빨 한두개 때문에 툴툴거리던 나,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까지 멍해진다.
차가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엄청난 추위와 끔찍한 공포를 온 몸으로 견디고 있을 아이들.
부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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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164p

아… 그랬냐.

아, 그랬냐… 이게 꿀꿀했던 기분을 순식간에 휘발시켜 버렸단 말이냐…  

베타의 플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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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늦은 퇴근 길, 사무실 동료의 손에 이끌리어 들어간 수족관에서 나와 눈이 맞아 동거하게된 Betta라는 이름의 물고기다.

얘는 특히 지느러미가 반달모양으로 펼쳐진다 해서 하프문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녀석과의 동거를 할 용기를 내게 된 건 순전히, 어떤 환경에도 까다롭지 않게 적응을 하고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강한 아이라는 수족관 쥔장의 말 때문이다.
베타 수컷인 경우 같은 종과 같이 있게 되면 하나가 죽어나갈 때까지 싸우기도 하여서 투어로 이용되기도 한다는데,  다행히 내가 선택한 녀석은 암컷이라 좀 온순해보인다.
어느 것이든 일단 같은 종끼리 한 공간에 넣으면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공격성을 드러내며 자기과시를 하는데, 이를 플레어링이라고 부른단다.

재밌는 건 스트레스를 받아 취하는 이러한 행동-플레어링이 지느러미를 잘 간수하도록 해주고 궁극적으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
그리하여 베타 사육시에는 하루 10분 이상씩 거울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타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날, 나를 수족관으로 이끌었던 사무실 동료와 맥주 한 잔믈 마시고 들어왔다.
나보다 한참이나 큰 키에 서글서글한 미모를 가지고도 마음이 여린 게 역력한 이 친구와 공유한 오늘의 이슈는 거절을 잘 해야 한다는 거. 그래야 산다는 거.
낮에 N씨와 전화 통화를 한 영향도 있었겠다. 그래야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거절을 잘 못하는 인간들을 포함하여,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어설퍼 인생이 고단한 사람들이 있지.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때로 육체의 고단함을 넘어 영혼까지 잠식해오지만…

그래도 이리 생각해보기로 한다.
때로는 정말 버거운, 타인의 존재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 베타라는 열대어가 취하는 플레어링의 경우처럼- 나의 오늘을 유지하는데, 나의 건강에 한 몫을 할 거라고.
아마 필시 그러할 것이다.

(원래는 더 예쁜 푸른색과 오렌지색을 띠고 있는데,  첫날 한 잔하고 들어와 폰카로 찍은 사진이라 이 모양이다.  플레어링 하는 모습으로 예쁘게 새로 찍어보려 했으나 어찌나 귀찮은지…  -,.- )

泰安의 Never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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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泰安)의 바다와 Nevermind 까페.
마음이 무거워질 때, 끝없이 하강하는 마음을 잡아 살포시 띄워줄 무언가가 필요할 때 찾고 싶은 곳.

또 하나의 약속, 이사, 그리고 멍게

간밤의 꿈탓이었을까.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이나 힘든 하루였다.
꿈 속에서, 나는 또 이사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져 있었다.
누구못지 않게 많은 이사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꿈을 꾸고 난 날은, 온 몸이 무척이나 고단하다.

<또 하나의 약속>을 보았다.
언제부터 봐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동행이었던 녀석을 꼬드겨 상상마당엘 들어서니 오늘이 마지막 상영이라고 하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눈이 퉁퉁 부어, 왜 그렇게 우느냐는 말을 들었다.

오후엔 얼마 전에 구축한 사이트의 운영교육을 위해 사이트 관리자를 만났다.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이런 교육은 언제나 쉽지 않다.
세 시간 이상을 친절 맥시멈의 모드로 전수를 해주고 나니 맥이 좀 빠졌는데,
마침 사이트 관리자가 촬영을 가야한다며 미안해했다.
한데, 프레시안 기자였던 그가 촬영할 강연의 강연자가 이진경씨라는 말에 귀가 솔깃.
기어이 그를 따라 나서고 말았다.

책으로만 접했던 이진경씨의 대중강연은 무척이나 친절했다.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를 쓰는 그가 이렇게나 쉬운 언어로 대중과 소통한다는 건 약간은 의외였다.
아주 상식적인 수준으로, 어쩌면 실로 상식적인 것에 대해 말할 때에도 그의 언어엔 신선한 힘이 있었다.
자유에 대해 말하던 그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예로 들었을 때는 이 사소한 일치에 반가웠고
어젯밤에 이 블로그에 그의 글을 옮겼던 것도 떠올랐다.
“나로부터의 유목” 이 한 마디가 오래 오래 여운을 남기고 있던 참이었으므로.

“자유의 조건의 하나로서의 감각의 능력/ 자유란 부족한 능력을 행해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무능력지대를 능력의 지대로 바꾸는 것이라는 것/ 지성이 족쇄가 되는 것은 안주할 때이며, 지성의 모험적 사유를 통해서만 자유의 도구가 된다는 것/ 부정의 부정, 즉 두 번의 부정(나쁜 것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긍정에 도달할 수는 없으며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정신으로 (익명의 대의를 쫓아) 살 수 있을 뿐이라는 것/ 한 번의 긍정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선택으로 인한 고통까지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두 번째 긍정을 위해서는 안목있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 능력은 창조를, 권력은 부정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과 같은, 오늘 입력된 단어들도 그 여운이 오래갈 거 같은 예감.

자주 먹을 기회는 없지만 멍게를 좋아했었다. 멍게의 삶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멍게의 상쾌한 향과 맛은 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안주를 위해 뇌를 먹어치우고 눌러 앉는다는 멍게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보고나니 멍게를 예전처럼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나저나 내가 이사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 건, 단지 이사이력이 많은 때문일까?

(정말 술이 약해졌다. 맥주 한 잔에… 요즈음 나는 왜, 술을 마시면 이리 말이 많아지는 건지. 쓰잘 데 없이.)

이진경, 나의 유목과 나로부터의 유목

예술가는 어떻게 유목하는가?: 나의 유목과 나로부터의 유목
이진경

이미 상투어가 된 감마저 있지만, 그런 만큼 지금이 ‘유목의 시대’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어딜가나 만나지 않기가 힘든 ‘글로벌’이란 말은 그 유목의 범위가 이젠 지구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명시한다. 물론 밝은 빛은 언제나 어두운 그늘을 만들기 마련이듯이, 글로벌한 이동은 더없이 강력한 절단기계를 감추고 있다.
자본은 지구 전체를 아무 장벽없이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이동하고, 자본의 증식을 위한 ‘고급인력’ 또한 그에 근접한 양상으로 이동하지만, 글로벌 도시의 물질성을 유지하는 ‘저급노동력’은 국경의 벽을 넘어도 매일 일상적으로 덮쳐오는 치안과 차별의 벽에 의해 절단되며 이동한다.

예술가들이 타고 있는 이동의 흐름 또한 전에 없이 빨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20세기 초, ‘현대미술’이 시작된 시기부터 미술은 어느 것보다 빠른 이동의 속도와 유목의 강도를 갖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마리네티의 시는 프랑스의 <피가로>지에 게재되었고, 슈츠킨의 콜렉션은 ‘촌뜨기’ 러시아 화가들로 하여금 가보지도 못한 파리의 새로운 미감을 체험하고 새로운 예술을 시작하게 했다.

취리히, 레닌이 살던 집 건너편에 있던 카바레 볼테르는 처음부터 ‘이방인’들이 모여 밤새 요란하게 ‘해체’를 진행하던 국제주의적 난장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다다의 국제주의는 다시 프랑스, 미국 등을 하나로 묶는 이동의 경로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내 주변의 ‘별 볼일 없는’ 친구들까지 걸핏하면 로마와 런던, 이스탄불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고 전시를 한다. 이런 국제적 이동의 회로는 이제 이런저런 기금과 ‘레지던스’ 등으로 충분히 안정적으로 제도화된 듯하다.

들뢰즈/가타리가 ‘노마디즘’에 대해 말했을 때, 이런 양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바디우가 세기란 책에서 장소 바깥, 법 바깥에서의 방황이나 이동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바시스’란 말로 20세기를 명명했을 때, 그가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느 것이 이토록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면,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이나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진 이라면, 그 빛의 이면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자신에 필요한 것을 찾아 부지런히 이동하는 ‘이주민’과 대비하여 ‘유목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적 정의를 제시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게다. 필요한 것을 찾아 이동하지만 그게 다 떨어지면 그 땅을 버리고 떠나는 이주민과 달리, 유목민은 불모가 된 땅에 달라붙어 거기서 살아가는 법을 창안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목이란 보따리나 낙타, 비행기나 여권이 표상하는 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앉아있어도 끊임없이 탈주와 변이의 선을 그리는 내적인 강도를 뜻하는 것이 될 게다.

유사하게도, 바디우는 ‘아나바시스’란 제목의 시를 썼던 두 시인을 언급하면서, 유목과 방랑의 상반되는 두 극을 보여주려 한다. 한 사람은 프랑스 외교관이 되어 ‘이동’하는 삶을 살았지만 나치 점령 이후 미국에 망명했고, 나중에 노벨상까지 받은 생-존 페르스(Saint-John Perse)고, 다른 한 사람은 모친을 처형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프랑스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며 살다 결국 자살한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선량한 외교관이었고, 자신의 ‘조국’과 결별하여 서구의 거대한 평원에서 벌어지는 서사적 사건을 다루는 고상한 방랑자였던 페르스는 장대한 스케일의 유목을 말하지만, 그것은 “제국의 꿈이 지닌 천국 같은 방랑적 힘”이었고, 그가 말하는 방랑적 박애는 ‘우리’라는 말로 ‘나’를 확장해가는 것이었다.

반면 첼란은 장대한 평원 대신 벽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간다. 그 길에서 보이는 가슴 밝히는 미래가 진실인 한 그것은 불가능한 어떤 것일 거라는 절망 속에서 방황하지만, 아무도 항해하지 않은, 누구의 것도 아닌 바다를 끌어들이며, 나도 우리도 없는, 아무나 하나로 묶어주는 ‘함께’라는 말로 ‘천막’을 친다.

외교관 페르스의 이동과 유목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면, 시인 첼란은 외부적 요인에 따른 것이었고, 전자에게 국경이란 넘어야 하고 넘을 수 있는 문턱이었다면 후자에게 국경이란 넘고 싶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전자에게 유목이란 국경을 넘어 다른 세계를 탐색하며 자기를 확장해가는 즐거운 여행이었겠지만, 후자에게 유목이란 국가적 관계 때문에 배워야 했던 러시아어나 독일어,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했던 외국어들처럼, 외부에서 자기 안으로 밀고 들어오며 ‘나’를 해체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자에게 ‘우리’란 나의 확장이었지만, 후자에게 ‘함께’란 “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천막”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동이나 유목이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이지가 결정적이라곤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의로 시작한 여행 속에서 뜻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의 벽이 와해되며 외부에서 오는 것에 의해 침윤되는 이도 있고, 타의에 의해 시작되었기에 두려움 속에서 방어기제를 발동시켜 자아의 벽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며 매일밤 떠나온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이도 있다.

블랑쇼가 유리 가가린에 의해 시작된 ‘우주여행’을 지구라는 대지, 인간의 고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을 때,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비록 소박한 공상 속에서였겠지만, ‘우주여행’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는 가능성에 열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행이 발 디딜 대지 없는 세계에서 나의 삶, 인간의 삶은 대체 어떻게 달라질까를 탐색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영토를 우주로 확장해간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 한, 그 가능성이란 ‘나’의 확장으로서 ‘우리’를 이해하고, ‘내 땅’의 확장으로 ‘지구’나 ‘우주’를 이해하는 제국적 팽창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마음은 대지로부터 멀어질수록 대지로 강하게 되돌아온다.

영화 <그래비티>에 대한 많은 이들의 찬사는 이런 제국적 우주여행의 관념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었던가를 역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지구를 떠나면서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극도의 그리움, 발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느끼는 중력의 한없는 아쉬움, 이를 단지 우주여행에만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뒤샹이 오래 전에 분명하게 해준 것처럼, 이미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대결하는 지점이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는 지점이다. 예술은 언제나 지배적인 것과 대결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기억할만한 예술가란 그 대결의 지점에서 탈주선을 그린 이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술은 유목을 그 본질로 한다. 하지만 이 때 유목이란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다. 주어진 영토를 떠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지배적인 양식에서, 지배적인 관념에서 떠나는 것이다.

말레비치와 타틀린은 이를 지배적인 감각에서 떠나는 것, 감각을 전복하고 ‘혁명’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예술가의 유목이란 근본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떠나 다른 감각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자신의 감각적 표현형식에서 떠나 다른 감각적 표현형식을 창안하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새로운 감성의 체제를 창조하는 것이고, 그런 감각으로 대중을 촉발하는 것이며, 그 감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난관은 그 다음에 온다. 새로이 창안된 양식이, 새로운 종류의 감각이 설득력을 가질수록 그것은 더 빨리 자신의 영토를 만들게 된다. 대게 ‘성공’의 표지를 달고 있는 그 영토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출현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그래서 아방가르드조차 어느새 앞서 치고나가는 게 아니라 새로이 출현한 것들을 저지하고 쳐내기 십상임은, ‘입체주의자’인 메챙제 등에 의해 쫓겨난 뒤샹의 사례가 아주 잘 보여준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보스’가 된 앙드레 브르통이 ‘이단심판’을 하듯이 아르토나 다른 예술가들을 추방했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번의 넘어섬, 한 번의 떠남은 유목을 정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유목이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음’이고, 지배적인 어떤 것으로부터도 떠날 수 있음이며, 그렇기에 영원히 반복하여 떠날 수밖에 없음이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이다.

이런 떠남과 이동은 무엇보다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 ‘내’가 떠나고 돌아다니는 여행이란 장사하는 상인의 여행이고, 나의 동조자를 규합하며 나의 확장된 버전인 ‘우리’를 만드는 팽창적 여행이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가는 제국적 여행이다. 예술의 본질에 부합하는 유목민이란 차라리 반대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대면하게 된 외부, 그 타자들을 통해 자신을 떠나는 자, 그렇게 내게 밀고들어오는 것을 통해 나를 변이시키고 내게 섞여들어온 그것을 변형하는 자, 그럼으로써 누구보다 자신의 감각에서 떠나며 감각적 혁신을 반복하는 자. 낯선 것들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영토를 비워두는 자,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것과 섞여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창안하고 재창안하는 자.

그는, 앞서 인용했던 첼란의 싯구를 다시 빌면, 내가 “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자일 것이다. 쉽게 볼 수 있던 것을 떠나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된 자일 것이다. 그런 해방을 반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워서, 텅 빈 천막처럼 존재하는 자일 것이고, 들어오는 모든 것과 섞이며 변성되는, 비인격적이고 비인칭적인 ‘함께’라는 접속의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장소 없이 떠돌기에 가는 곳 모두가 장소가 되는 ‘갤러리’가 되어 다른 이의 작품을 받아들여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예술가,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건 속에서 사실은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와 변이의 선을 그리는 예술가가 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서, 다른 이가 떠올랐다.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찾아가 텐트(천막)를 치고, 텐트 안에서 연극으로 그 사건을 담으면서 다른 사건으로 변성시키며, 그럼으로써 자신 스스로의 감각을 반복하여 바꾸어가는 일본의 연극인들이(극단 이름도 멋있다: ‘바람의 여단’, ‘야전(野戰)의 달’).

이런 이들이야말로 예술가들이라면 이동할 때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강력한 촉발자들이다. 예술가에게 걸맞는 유목이란 ‘내가’ 이동하는 것이나 내가 떠나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떠나고 나로부터 이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미술세계> 2014년 2월호

이강영, 불멸의 원자

…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는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불멸성을 아는 물리학자라고 해도 죽음을 접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은 현재 우리의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물리학자도 역시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그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세상 어디엔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의 죽음은 아직도 슬프고, 아프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 새벽에 문득 눈을 떴다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망연자실하곤 한다.

이강영, 불멸의 원자 中 (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directURL=/myboard/read.php%3Fid%3D3%26Board%3D0018)

누군가의 강추로 읽게 된 아티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유한한 생을 살아오면서 부딪히는, 혹은 비껴가는 수많은 타인들의 존재와 부재가 남긴 흔적들 혹은 상처들을 향해, 부드럽게 토닥토닥 건네는 위로같다.

* 웹상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진 속에 내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감 확실하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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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진바다)

좋아서 하는 밴드, 천체사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 바닷바람을 맞으러 가는 기차 안에서 이 노래를 만났다.
참을 수 없는 현재의 얄팍함에 진저리 치다가 만난 별빛 같은 노래를 듣다
그만 눈물이 났다.

의미 없는 너와 나의 어제오늘이
먼 훗날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을까
우린 오늘도 아주 작은 별이 된다
먼지 같은 빛을 내려 몸부림친다

가을방학, 첫날밤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렇게나 쑥스런 얘기를 이렇게 상큼하게 하다니…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