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영, 불멸의 원자

…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는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불멸성을 아는 물리학자라고 해도 죽음을 접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은 이를 생각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은 현재 우리의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물리학자도 역시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그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세상 어디엔가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의 죽음은 아직도 슬프고, 아프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서, 새벽에 문득 눈을 떴다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망연자실하곤 한다.

이강영, 불멸의 원자 中 (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directURL=/myboard/read.php%3Fid%3D3%26Board%3D0018)

누군가의 강추로 읽게 된 아티클이 긴 여운을 남긴다.  유한한 생을 살아오면서 부딪히는, 혹은 비껴가는 수많은 타인들의 존재와 부재가 남긴 흔적들 혹은 상처들을 향해, 부드럽게 토닥토닥 건네는 위로같다.

* 웹상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 사진 속에 내가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감 확실하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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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진바다)

좋아서 하는 밴드, 천체사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 바닷바람을 맞으러 가는 기차 안에서 이 노래를 만났다.
참을 수 없는 현재의 얄팍함에 진저리 치다가 만난 별빛 같은 노래를 듣다
그만 눈물이 났다.

의미 없는 너와 나의 어제오늘이
먼 훗날 아름다운 사진이 될 수 있을까
우린 오늘도 아주 작은 별이 된다
먼지 같은 빛을 내려 몸부림친다

가을방학, 첫날밤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렇게나 쑥스런 얘기를 이렇게 상큼하게 하다니…

예쁘다.

사진 워크숍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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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다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꽤 지치고 있다.  왜 유독 이런가 가만 생각해보니, 모두 갑을 관계가 아닌 갑을병, 혹은 갑을병정의 관계다.
일의 규모와 상관없이 관계가 복잡해지면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끼어든다.
모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에 두고 사안들을 재배치하고 위계를 내세워 관철하려하니 말이 많고 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너무 애쓰지 말자. 좀 덜 친절해지자. 오늘 정한 나의 대처방법이다.
어느 소도시의 우체국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규칙적인 노동을 끝내고 남는 시간을 오로지 나자신을 위해 오롯이 활용하는 그런 심플한 생활을 새삼 다시 동경한다.
이번 생엔 진작에 틀려버린 그런 삶.(아, 이젠 정말 너무 많은 게 틀려버렸다, 이번 생엔. 젠장!)
며칠 전 누군가의 스카웃 제의를 살짝 흘려 들었었는데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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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주문했던 건 순전히 N씨의 말 때문이다.
“아직 사춘기인가 봅니다. 좋은 일이지요. 괴로운 일이기도 하고…. “라는 페북 메시지.
잠들지 않는 갈증에 맥주캔을 홀짝거리고 나서, ‘사람들은 이 달콤한 소멸에의 욕망을 어떻게 견디는 건지 모르겠다”는 따위의 센치한 말을 페북에다 끄적거려 놓았었는데,
그걸 보고 남긴 말이었을 것이다.
몸안의 알콜이 좀 희석되어 상태가 나아지고 나니 창피한 느낌이 들어 페북의 상태글은 곧 삭제했다.
한데 그로 인해 들었던 ‘사춘기’라는 말은 계속 머릿속에서 빠작거렸고, 나의 사춘기라 여길 만한 시절이 떠올랐고, 그리워졌고, 눈에 띈 이 책을 주문해버렸다.
수전 손택의 14세부터 서른까지의 일기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제목에, 박하사탕의 “나 다시 돌아갈래”가 자꾸 오버랩된다.
맥락상으로 전혀 다른, 거의 상반되는 의미의 발언이다.
(아마도) 환희에 가득한 긍정과 절망적인 부정.
다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정말 사춘기인가보다.
(무슨 사춘기냐, 갱년기 우울증일 게다, 라고 하지는 말아주시길)

설날 선물

오만원권 지폐가 나오면서 조카들의 세배가 부담스러워진 이 이모 or 고모는 강력히 추천합니다.
아이들 세뱃돈 눈높이 마구 올리지 마시고 대신 이런 선물을 함께 나누며,  따뜻하고 의미있게 보내심이 좋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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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기어이 핸폰을 바꾸었다. 동생이 갈쳐준대로 잠시 부지런을 떨었더니 중고로 팔고도 흑자다.
단지 가격 때문에 선택했던 삼성폰은 어찌나 손에 안익고 밉던지.
그게 단지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의 문제인지, 삼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내 취향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인지는 정말 의문이다.

수년을 솜이불 없이 겨울을 났었는데(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오늘 솜이불을 들였다.
올겨울 들어 자주 등이 시리다 느끼고 있는 중에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겨울이불 40%” 할인 이란 거에 낚여서 저지른 지름이다.
한데, 택배를 개봉하니 테두리에 들어가 있는오렌지색이 거의 핑크에 가까운 색이다.
이전 같으면 왕복택대비를 부담하고 환불할 건인 이유는, 내가 칼라에 민감하고(직업병이려니 한다.) 핑크색을 유독 싫어하기 때문인데,
이번엔 기꺼이  핑크를 (삼성폰과 달리)품어주기로 했다.
레드에 가까운 핑크색이어서 그렇게 밉지도 않지만, 색에 대해 전보다 유해지 것도 사실.
어떤 취향은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고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오늘 본 이 기사는 그분의 일관성 있는 취향에 대한 얘기 정도 되겠다.  그 취향을 이용하자는, 대통령 사용법.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01071154322&code=990100

일리가 없지 않다. 어떤 취향에 있어선 너그러워지기도 하는 나지만 아직도 어쩌다가 누군가가 정말 싫어지게 되면, 질리게 되면,
정말 아무런 타협도 안되고 목소리조차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으니까.
물론 그런 일이 내 전 생애를 통해 많지는 않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 오늘 그의 전화는 정말 참느라 큰 호흡을 해야했다.
그래도 침착하게, 정말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고 전화를 끊고 나서 실소했다.
뭐야, 정말 후진 인간이잖어, 하고.

가을방학, 가끔은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이별의 충격이 다 가시고 나서도 이따끔씩 작은 지진처럼 일상을 흔들어놓는,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관한 노래입니다.”  -정바비

난 원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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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꺼내놓는 이야기의 중심은 아이교육 문제와 아파트였다.
집들이에서 꺼내놓는 결혼 사진, 신혼여행 사진들 만큼이나 서로 닮아있는 뻔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화제를, 지난 날 많은 기억을 공유했던 이들에게서 듣는 상황은 언제나 좀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점차 비싼 아파트에 살며 다른 가치를 향유하게된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간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거주자들은 시민사회를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소비자가 됐다. 시민들이 모두 소비자가 되는 데 아파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떤 공동체의 질적 가치를 판단할 때 얼마나 좋은 공동체인가가 아니라 아파트의 가격을 따지게 됐다. 시민주권 대신 소비자주권의 비중이 높아졌다.”
(경향일보, [뉴 파워라이터](11)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중에서)

그렇게 재미없고 피곤했던 아파트에 관한 책을 지금 막 주문했다. 일과 관련한 어떤 계기와 다음과 같은 로자의 리뷰 때문이다.

“…. 20세기 후반기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성장 신화는 바로 이 중산층의 성장 신화였다. 하지만 이제 그 신화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 이르러 박해천은 이 신화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아파트 게임의 이면이면서 세대론의 이면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저마다 4.19 세대, 유신 세대, 386 세대 등을 자임하면서 권력에 항거했던, 곧 ‘아버지’에 맞섰던 자신의 청춘을 예찬한다. 하지만 이는 가족 로망스의 1막에 불과하다. 그들도 곧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밥벌이에 나서야 하는 아버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때 시작되는 가족 로망스의 2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파트이다. 아파트를 한국 중산층의 ‘무의식’이라고 해야 할까.

모두가 아파트 매매의 시세차익을 노리며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동안 간과된 것은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이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회적 부는 복지 제도를 통해서 배분, 환원되어야 했지만 한국사회는 그것을 투기장의 경품으로 만들었다. 이 무지와 무관심은 막대한 사회적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게 돼 있다. 아파트 게임의 2막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는 셈이랄까. 자못 코믹한 아파트 이야기가 ‘호러’로 바뀌는 지점에 우리는 와 있다. 아파트 게임은 무서운 게임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6770797 )

“가족 로망스의 2막”, 꽤 의미심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고, 그것이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세상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는 신화이며 집단 무의식이라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어쩌면 지난 날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내 부족한 에너지를 소진케 했던 그들에 대해서도, 그 이해를 도와줄 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hr]
아파트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미래에도 절대 아파트엔 안살아, 라는 말도 내뱉었던 내게도 아파트에서 산 시절이 있었다.
하나의 방, 원룸이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주거형태가 되어버린 내 인생에선 정말 찰나의 시간처럼 까마득한.

아주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은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살았던 제법 큰 단독이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버지가 집을 팔고 잠깐 전세로 나와 이사갈 집을 보고 있는 사이 집값은 엄청나게 뛰어 올랐고, 우리 가족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셋집을 전전해야했다.
어린 아이 넷을 거느리고 셋집을 구하려 다니던, 몸이 약했던 어머니에겐 무척이나 고단했을 세월이었고, 어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다 간신히, 겨우 장만했던 집이 석계역 앞의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건 아버지와 재혼을 했던 이가 그 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만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직 어렸던 동생들과 언니는 친척집으로 나갔고 나는 친구집 등을 전전해야했던, 지금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좀 꿀꿀한 이야기가 생각난 건 문득 이런 의문이 들어서다.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독차지하고 싶은 그런 감정상의 이유로 우리를 내보냈다고 어린 우리들은 생각했었지만, 실상 그녀의 욕망의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파트가 아니었을까 ?

어느쪽이었든 참으로 아쉬운, 안쓰런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불시에 쓰러져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면서 이년 여 만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므로.

*책과 음반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참 좋다. 주문한 책이 올 때까지 어여 급한 일을 마무리 해야겠다.
한동안 일에만 콕 박혀 있었더니 미치는 줄 알았다. 정신이 왜소해지다 못해 건포도처럼 쭈글쭈글 말라 비틀어지는 느낌이었다.
안먹던 배달음식까지 시켜 배를 채워주어도 (당연하지만) 정신의 허기는 어찌할 수가 없이 까무룩 가라앉았다. 숨이 찼다. 이럴 땐 한모금씩 마시는 와인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있는 것들, 마구 가라앉으려 할 때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고 잘 챙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잘 살진 못하더라도, 올바르게  혹은 멋있게 살진 못하더라도, 건강하게 살아야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새해초부터 또 비장하네… 쓸데없이. )

응원

이전부터 남달라 보이드만 역시 멋지다.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요즘 따라 더욱 애쓰고 계시는 노… 아버님들 많이 계시는데 노동자 최상남역을 연기한 배우로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이란 문장 속, “노”와 “아버님들” 사이의 그 짧은 간극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젊은 배우들의 등장이 반갑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연말의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버린 시상식이 참 뻔한 결혼식만큼 재미가 없어서 일하면서 틀어놓고 듣다가 꺼버렸는데, 이런 수상자도 있었다는 걸 페북에서 보았다.
한주완이라는 배우. 그의 응원을 지지하며, 그 또한 무럭무럭 자라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