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문득 징징거림 많은 이 블로그가 좀 창피해져 지난 포스팅을 둘러보며 세어보다 아차 하는 실수를 발견했다. 몇 번 댓글을 달아주신 분을 아는 후배로 착각해 답변글을 달아놓았던 것. 남우선배 죄송해요. 아 너무 정신이 없다. 좀 전에도 뭔 말을 하다가 내가 이 말을 그 좀 전에도 하지 않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까마귀 몇 마리를 보긴 하였지만 까마귀고기를 먹은 일은 없는데. -,.-

이성복, 숨길 수 없는 노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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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노래2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 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이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 덧붙임 : 사랑이 채우지 못하고, 서러움도 채울 수 없게 된 부재는, 그렇게 ‘견딜 수 없게 된’ 부재는
시간에 마모되듯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지워갈 것이라는 생각.

* 덧붙임2 : 김형경의 천개의 공감을 알라딘에서 주문해놓고 깜빡해버린 탓에 샘터서림에서 또 사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이없는 사태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누구 줄 사람이 없을까를 고민하는데, 이 책을 함께 읽고 “공감”해줄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권유하고 싶은 사람이 꼭 하나 있지만, 아마도 화를 낼 것이다. 비누를 선물하면 “내가 세수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 하고 화내는 사람처럼.
그 몇 개의 공감의 부재가, 잠깐 쓸쓸해지기도…

몇몇 블로그들을 기웃거리다 읽고 싶은 SF 소설을 발견했는데, 한국서 주문하는 책이 두 배는 비싼 데다 한국판이 또 두 권으로 나와 몇배가 비싸 버리는 통에, 아마존에서 주문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The Book of Skulls – Robert Silverberg / Contact – Carl Sagan
아, 물론 내 영어실력을 생각하면 이 만만찮은 SF소설을 원서로 읽는 건 어이 없는 일임에 틀림없으나, 내 경제적 사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만 것이다. 과연 이 책들을 얼마만에 끝낼 수 있을 건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

중앙역







중앙역이라는 브라질 영화가 있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따뜻한 소통이 있었던 영화.
우리로 치면 청량리역이나 서울역쯤이될 엘에이 유니온 역은
황혼의 인생, 지친 여행자의 모습들이 나른한 햇살과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면서,  
바로 그 중앙역을 생각나게 했다.
조만간 좀 장거리의 기차여행을 해보리라 다짐.

마지막 사진의 그녀는 화가라 했다.
얼마전 고래양에게서 들은 오리를 그리는 화가친구가 생각나면서,
깃털 장식의 모자를 쓴 이 처자는 무슨 그림을 그릴까가 궁금해졌다.

With a bottle of Miller

Longbeach Acuarium

이제야, 비로소, 나는 바닥에 도달한 거 같아요.
지금 내 발바닥이 사뿐히 딛고 있는 것이 바닥임을 알겠어요.
조금씩 추락하고 있을 때의 불안과 현기증을 생각하면,
더 내려갈 깊이가 없다는 건 조금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군요.
많이도 버둥대고 숨가빠했던 시간 동안 질끈 감았던 눈도 조금 열려
시야가 조금 넓어진 듯도 해요.
그래서 비로소 바닥이 보이는지도 모르겠지요.
이제 이 바닥을 딛고 힘껏 오를 일만 남았군요.

그렇지만 지금은, 깊은 바다 물고기처럼,
소리없이 미동도 없이 바닥에 웅크려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어요.
내가 혹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오래 오래, 너무 오래 있거들랑,
어느날 문득 우연히도 내 지난 날의 낡은 미소가 당신의 기억 속에 떠오르거든,
잠깐 모닝콜을 부탁해도 될까요?

눈물

나날이 체험하는 감정의 성분속에 신파성이 부쩍 증가하면서 눈물이 늘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도 속절없이 울고, 이런 저런 슬픈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버리니
이젠 체액을 방출하기 위해 뇌속에서 슬픔의 핑계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게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얼마전 얼마 안되는 양의 술을 마시고 내방안의 기둥에 머리 한 쪽을 세게 쿵 박아버렸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뇌검사를 받아볼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눈물이란 건 참 신기하다.
기분학적인, 심리학적인 원인으로 인해 육체적인 물리학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인풋되어 물, 이라는 물질이 계속 계속 아웃풋될 수 있다는 것,
그러고도 담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며 얼굴이 오히려 퉁퉁 불어난다는 건, 정말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디오스타를 보다.


오래오래 기다리던 영화, 라디오스타를 봤다.
과연 “안성기의 관록, 박중훈의 내공, 이준익의 저력(박평식)” 이 반짝 반짝 빛을 내는 영화,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것이 많이 미안한 영화다.
나이의 충격을 비롯한 몇 가지 주관적 정세로 인해 조금 치쳐버린 마음에
따뜻하고 달디단 코코아처럼 스며들어 닭의 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개봉 당시에 이준익 감독의 인간적인 매력을 라군에게서 들었던 터라, 
영화에 대한 매혹은 감독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그가 보여주는 생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좋다.
멋지다, 이 남자!

또 우린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면 두드러기가 나요. 웃풍이 확 좀 불어줘야, 쏴 해서, 긴장이 싹, 닭살이 싹, 돋으면서. (웃음) 그런 거 아냐? 인생이? 등따시고 배부르면 그땐 곪는 거야, 신김치밖에 더 돼, 그게?

우린 당수없어. 다 아나키스트야. 개별적인 존재들의 거대한 방향성은 존재하지. 근데 그것이 뭐 어떤 목표지향형은 아니야. 주어진 환경지향이지.

괜찮아. 야, 나이 먹은 것은 훈장이야.

글쎄. 나는 뭐 열등한 게 자랑이거든. (웃음) 열등한 게 불안하지 않아. 그게 행복해. 왜, 메울 게 있잖아. 그게 에너지고. 콤플렉스가 나에겐 큰 에너지기 때문에 이제 그게 서서히 없어져서 불안해. 콤플렉스를 더 만들어야 돼, 빚이 콤플렉스였는데 빚도 없고. 옛날엔 공부를 못해서 아는 게 없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영화 찍다보니까 사극 같은 거 하나 찍으려면,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래야 아귀를 맞추지. 거짓말도 앞뒤가 맞아야 하지. 그러다보니까 이제 콤플렉스를 더 찾아내야 돼. 나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 나의 에너지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콤플렉스나 열등의식으로 불안한 게 아니라 그게 있으면 든든해. 그게 없어지면 불안해. 안 그러냐? 나만 그런가?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왜 싫어하냐. 위선 부리면서 위선 아니라고 거짓말하니까 싫어하지.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좋아해, 난. 이해가 되냐? 난 위선자 좋아한다니까. 위선자라고 말하는 사람. 거짓말쟁이가 싫어, 난. 말이 안 되나?

나 잘 져. 이기면 상대방한테 미안하잖아.

                                                                — 씨네21,. 영화감옥 이준익 인터뷰 중에서.

오늘,

이글루 블로그가 몽땅 안 열린다.
아는 거 많은 추박사의 말에 의하면,
대만에 지진이 나서
아시아-태평양 해저 광케이블이 절단나 해외접속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한다.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곳에 접속이 안되니 아쉽다. 쩝

이명원의 이전 저작을 읽는데, 임양의 말대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성역과 금기를 타파 하느라” 문장이 다소 건조하고 호흡이 거칠다가,
뒷부분에 와서 주어가 일인칭이 되거나 어떤 대상에 대한 “정신의 편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분에 이르면, 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시선이 그대로 살아난다.
여기 내가 아는 몇 사람들이 한국말을 할 때랑 영어로 말할 때 목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 만큼이나 그 차이가 현격하다.
내 욕심으론, 우리 사회의 타파해야할 학계나 문단의 권위주의 같은 부조리가 다 사라져서
그가 아름답고 유쾌한 글쓰기-특히 시평- 등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소개하는 시 한 자락.

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 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 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 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 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취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받다 버림받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 이 시에서 따뜻한 비관주의를 발견한다는 그가 시 마지막 부분에 대해 덧붙이는 코멘트는 이렇다.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제 스스로 아름다운 다음과 같은 전언이란!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기를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열렬한 사랑이 삶을 충만케 할 것이다.
다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버림받지 않고도 아픈 사랑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떠나간 막배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아프게 이 삶을 껴안게 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덧나는 상처와도 같은 삶.

강물, 소주

….아침의 강가에는 찬란한 돌들이 가득하였으나, 그 중 몇 개만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강물에 둥글게, 둥글게만 다리를 모으던 닳아 빛나는 물빛.

… 이곳에서의 추억이라면, 산다는 일의 엄숙함이며,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예의이며, 침묵한다는 것의 은밀하고도 신중한 배려이며, 꿈꾸는 일의 고독함에 대한 인정이며, 맑게 흔들리고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마음자리에 대한 공경같은 것에 대한 순간적인 교감이었을 듯.

황사의 날들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소주는 드시지 마십시오.

이명원, <청평에서> 中

* 연말을 앞둔 생체달력은 어김없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발딛고 살던 자리를 멀리 떠나와 맞는 연말이다 보니, 조금 더 먼 곳까지 돌아봐지는 것도 같습니다.
과거 어느 한 때에는 나도 흘러가는 강물앞에서, “산다는 일의 엄숙함”이랄지 “시간에 대한 예의”, “고독함에 대한 인정”,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마음자리에 대한 공경” 비스무리한 사색에 젖어 사뭇 골똘한 표정으로 서있었던 듯도 합니다.
또, 아련한 추억들은 바다보단 강에 얽혀 있음도 발견합니다.
그 아스라한 풍경들과 함께, 코끝 시린 아침 강가의 안개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강물, 안개, 소주, 이 모든 습한 것들이 모두 그립습니다.

소주는 내몫까지… 드시진 마시고 (^^) 아껴두었다가 함께 마십시다.
여긴 소주와 백세주 가격이 같거든요. 

노래 하나 새로 준비했습니다.
내가 떠나와서, 혹은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멀어져 간 모든 그리운 것들을 생각하며 쓸쓸해진 가슴에 흘려줘보는 노래,
Blackmores Night의 <Wish you were here>입니다.

친구생각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들었다.
오래 병상을 지키고 있었으니 맘이 많이 아리겠구나 싶었는데, 기운이 다 빠져나간 목소리가 귀에 울리고 상복을 입고 문상을 지키고 있을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힌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삶의 고비 마다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큰 힘이 되어주던 친구였는데, 이런 때 훨 날아가 손잡아주지 못하는 건 정말 속상한 일이다.
해마다 보내주던 연하장에 적힌 그녀의 영롱한 낱말들은 또 한 해를 내딛는 발걸음에 효과 만빵인 비타민이 되어 주었는데…

그래서 예쁜 여자 좋아하는 후배에게 문상 좀 대신 가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가, 그런 건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하는 거라는 말과, 전지현도 상복 입으면 별로더라, 는 말을 들었다.
(사실 이 친구는 정말 이쁜데, 대한민국에서 미모와 지성과 착한 성품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착한 성품을 유지하는데 있어 미모는 확실하고 강력한 방해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친구는 그걸 모두 가졌다. 경이로운 일이다.)

문상객을 맞는 게 어떤 건지를 묻는 후배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떤 거냐면 말이지…
저기서 문상객이 저벅저벅 걸어오잖아.. 그러면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내게 어떤 비중의 존재였는지가 깨달아지는 거지.

확언컨데, 문상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결혼식은 안가더라도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문상은 꼭 간다는 그의 처신은 현명한 것이다.

오늘이 발인이겠다.
벌써 끝났을려나. 날씨가 안추워야할텐데…
꽁꽁 언 땅에 삽집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차가운 대지에 소중한 이의 육신을 묻고 돌아오는 길은 더 쓸쓸할 것이기에.

한인 교회

많은 사람들이 오늘 한국 교회의 천박함이 사악한 목회자들(이른바 ‘교계 지도자들’이라 불리는) 탓인 양 말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한국인들의 욕망에 최적화한 교회일 뿐이다.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돈이나 물질적인 풍요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들에게 최적화한 교회다.
출처,
http://gyuhang.net/archives/2006/12/11@11:09PM.html

* 가까운 사람의 요청으로 이곳에서 제일 잘 나가는 한인교회 중 한 교회의 홈페이지 리뉴얼을 맡았다.
미팅을 위해 기존의 사이트를 열어본 순간 두 가지 점에서 헉, 하고 놀랐다.
첫째는 교회의 규모였다. 플래시 무비로 보는 교회의 규모는 정말 엄청났고, 무슨 거대한 호텔의 소개를 보는 것 같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홈페이지에 나열된 숱한 메뉴들. 특히 메인페이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메뉴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정도여서 물어보았더니 “교인들이 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헌금을 내거나 여타의 방법으로 교회에 기여한 사람들은 첫 페이지에서 그것을 확인하길 원한다는 것.
그 요구를 교회는 이렇게 철저하고 충직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만 죽어났다. 정말 일하기도 싫고 페이도 얼마 안되는데, 담당자는 다 내게 하느님의 축복으로 돌아올 거라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의 원성을 샀다.  -,.- )

내 보기에, 이곳의 한인교회들은 “한국교회의 천박함”이 극단적으로 심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물질적 풍요의 욕망을 순진할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교회는 이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가장 최적화된 모습으로 반영하면서 호황을 누린다.

* 교회 관계자를 만났다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좀 묘한 분위기의 까페에서 만난 마담언니.
오래동안 룸쌀롱을 경영하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업종변경을 했다는 그녀는 내 손을 꼬옥 잡고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줬다.
그녀에게 하나님은 타락한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주고 오늘날 남자생각(!!)도 안나게 해줌으로써 다시 그 수렁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아주는 친절한 존재였다.
그녀의 소원은 이곳에서 술을 많이 팔아 돈을 벌어서, 마침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건전한 일식 레스토랑을 차리는 것.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기에 걱정이 없단다.

** 김규항은 위에서 인용한 글의 구어버전을 다시 규항넷에 올려놨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이러한 고민과 열정은 늘 나를 감탄케 한다.

교회가 심한 게 아니라 신도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항상 대중을 추수하는 겁니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욕망이 그러니까 거기에 맞게 교회라는 틀을 만들어서 영업을 하는 거지요. 사람들이 맑고 깨끗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교회가 나쁜 목사들이 사람들을 나쁘게 만든다는 식의 비굴한 말은 우리가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 동의하지 않고 그런 교회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거기 있는 모든 신도들이 나쁜 목사들에게 붙들려서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가설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목사가 하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목사가 하는 거예요. 의지뿐만 아니라 가치관이 합일되어 있어요. 교회 개혁 운동할 때 교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러는데 조금 더 정직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요, 신도들이. 저거하고 똑같아요. ‘옛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국민들이’ 하는 이런 거짓말하고 똑같아요. 그 때 누가 신음했어, 다 자기 식구 챙기면서 잘 살았지, 신음하는 사람들 비웃으면서, “저것들 정치를 몰라서, 정치라는 게 다 그런 거지, 저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저런 바보 같은 놈들”이렇게 비웃던 사람들이 99%란 말입니다. 비웃음 당하던 사람들이 죽고 깨져가면서 민주화를 이룬 거고 이젠 비웃었던 놈이나 잡아 족쳤던 놈이나 똑같이 “옛 권위주의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아주 비굴하지 않아요? 우리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 가설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정직하고 정당하게, 욕을 먹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