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심윤경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었다.
소설가 이명원이 극찬했던 바 그대로,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한동안 닥터하우스니, 그레이스 아나토미 같은 메디칼 드라마에 빠져, 등장인물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내놓는 상처들 (대개는 신체적인 상처뿐 아니라 보다 심각한 정신적인 것들이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폭력이 얼마나 우리의 육체와 삶의 조건들을 망쳐놓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과 갈등을 지켜보느라 다소 우중충하던 마음에 “입 안에 박하사탕을 넣은 것처럼 화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책장을 덮고나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생각나기도 했다. 마지막장에 묘사된 “아름다운 정원”과의 이별 장면은 확실히 제제가 마음 속의 “노래하는 작은 새”를 날려보내는 장면과 유사하다.
어린 시절 누가 볼 세라 이불 속에 엎드려 눈이 퉁퉁 붓도록 펑펑 울면서 보았던 이 소설을 몇 년전 뮤지컬로 보았을 때, 내 기억속에 그렇게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고 통째로 들어와 있다는 데 놀라기도 했었지. 아마 그 시절에 이 소설을 보았다면 마찬가지로 눈물을 쏟아냈을 것이다.

이렇게 건조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나, 내 어린 시절에 있었던 몇 가지의 사건들과 혼란들로 미뤄볼 때 “정신의 성장통” 이라면 남들 못지 않게 겪었을 터인데, “정신적 성장” 혹은 “성숙”과는 거리가 멀게 속절없이 나이만 먹고있는 건 좀, 슬픈 일이다.

이명원의 찬사대로, 소설의 문체는 정말 아름답다.
모든 수식어들은 흡사 고유형용사인 듯 자연스럽고,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랑스러운 소년의 심상은 은은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그가 만났던 소년과 “그 모든 소년의 심성을 삶 속에서 직접 보여준 사랑하는 나의 남편”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데, 그러한 심상을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시선과 더불어 그 마지막 대상에 대해선 살짝 부러움이 일기도 한다.

<Long Beach>

새,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 이름에 바쳐졌던 수많은 찬사와 노래와 의미들을 생각한다.  
새는 저기 저렇게 멀리 창공을 배경으로 날고 있을 때 아름답다.
그래서 공원 바닥이나 해변을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인간의 손에 앉아 먹이를 먹거나 새장속에 갇혀있을 때는 비둘기나 앵무새나 갈매기, 카나리아  등의 구체적 이름이 보다 적절해보인다.
(그 모두가 인간이 무작위로 붙여놓은 이름임에는 다르지 않지만)

삶이나 사랑, 인간 같은 것들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멀리 추상적인 명사로 존재할 때와,
내 안에 내 옆에 구체적 형상과 무게를 지니고 개별적인 이름으로 불리울 때,
그 의미가 전혀 다른 층위의 것이 되는 것 말이다.

닥터 하우스, 그의 매력에 푹 빠지다.

닥터 하우스에 푹 빠져 지낸 지 며칠.
빠져나오기 힘든 그의 매력 때문에 애써 정상화되려던 낮과 밤이 다시 바뀌어가고 있다.
그의 독선과 교만, 그로 인한 고독과 상처, 그들을 감내하는 방식, 냉소로 표출되는 인간에 대한 서늘한 이해와 연민, 슬픈 한 마리 야생의 짐승같은 푸른 눈동자(흐흐), 고집스런 입술, 피아노를 연주하는 섬세한 손가락…
휴~~ 정말 숨막히게 멋진 캐릭터를 그는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정말 고되겠지만, 나도 캐머론처럼, 그로 인해, 늘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오픈 기념으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이 여긴데 곧 유료화 될 듯.
http://club.a3box.co.kr 에서 “맨살클럽”에 가입하면 볼 거리가 많다.
단 무지하게 느린 다운로드 속도를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우스>는 명탐정 셜록 홈즈에서 이것저것을 살짝살짝 빌려오고 있다고 한다. 하우스라는 이름은 홈즈의 철자가 Holmes이지만 집을 나타내는 영어 명사 home의 복수형인 homes와 발음이 같은 것에 착안하여 만들었으며. 거의 유일한 친구인 종양전문의 윌슨은 셜록 홈즈의 친구 왓슨 박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라고…
** 메디칼 드라마, 란 것이 하나의 드라마 장르이긴 하지만, 삶과 죽음이 엄청난 중량으로 혼재하는 병원만큼 드라마틱한 공간도 또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냈던 기다림의 시간들이 많았기도 한 지라, 이런 저런 생각이 나기도 했고 꿈을 꾸기도 했다.
사람의 육체가 무슨 기계처럼 열어서 도려내고 잘라내도, 그 고통을 다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싯구도 생각이 났다.(뭐 드라마랑은 아무 상관은 없지만 ^^)

종합병원 복도를 오래 서성거리다 보면 / 누구나 울음의 감별사가 된다//(.) // 그러나 이 복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 울음소리가 들려도 뒤돌아보지 말 것,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것처럼 앞으로 걸어갈 것 (나희덕, 이 복도에서는)    

카메라를 꺼내들다





오랫만에 카메라를 들고 가까운 길을 나섰다.

#1 – 한쪽 작은 갤러리에서 지역의 사진동호회 전시가 열리고 있던 코닥 랩.

#2/3 – 재패니스 타운에 있는 Japanese American National Museum.
엔젤 아담스의 전시회가 있다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도착했는데
요란한 일본작가 전시에 묻혀 젤 구석에 위치해 있었고 작품수도 적어서 다소 실망.
그래도 이 대가의 사진을, 오리지널 아날로그로 마주해보는 건 좀 흥분되는 일임에 틀림없다.
요즘 사진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즈만 무지하게 늘린 허전하고 밋밋한 사진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에,
고심해서 스파팅(인화시에 먼지 등으로 인해 하얗게 보이는 점 등을 교정하는 것)한 흔적까지 보이는 사진들은 단단하고 깊어보였다.
음 역시 사진은 이맛이야 싶다가, 사진에 대한 열정인지 뭔지를 품고 있을 무렵의 추억들-암울했던 암실이며 처분해버린 카메라며, 픽서의 지독한 휘발성 냄새와 인화지를 건져올릴 때의 뽀드득한 감촉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 생에 그런 열정을 다시 호출해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 4/5 – 진짜 내 근황사진. 오랫만에 찍힌 내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헤 아직 볼살이 탱탱하네 뭐..
주름이 좀 늘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망가지진 않았군.

당분간 사진을 좀 찍어봐야겠다. 풍경과 친해지는 일. 이 낯선 도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렇게 시작해보려 한다.

땡스기빙데이에 영화를 보다

지금 미국은 땡스기빙데이 휴가철. 나흘정도의 빅 할리데이 시즌이다. 함께 놀러가자는 동생네의 회유와 클라이언트 가족의 칠면조 요리의 초대도 마다하고, 비지니스상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영어를 연습한다는 핑계로 방안에 틀어박혀 다운받은 영화를 보고 있다.
사실 마이클 무어의 발음은 정확하고 낭낭해서 시디로 구워 영어공부한다는 인간들에게 나눠줄까 생각도 해본다.

다시 보는 Fahrenheit 911, Bowling for Columbine이 또 새롭게 느껴지는 건 지금 거하는 곳이 미국땅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911-Loose Change2.
특히 “Bowling for Columbine”이 언급하고 있는, 대다수 미국인들을 무시무시한 힘으로 사로잡고 있는 “fear”의 존재에 대해선, 이곳 사회를 조금이라도 체험했다면 전폭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낮에도 다운타운 아니면 걸어다니거나 집밖에 나와있는 인간이 없고,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을 때 받은 키 중에는 주차장을 열 수 있는 리모컨과 아파트 전체의 대문-생긴 건 현관문-과 엘레베이터를 여는 열쇠도 있다. 그걸 꽂아서 돌려야 엘레베이터문이 열린다. )
그 공포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확대 재생산하면서 큰 이득을 보는 이들이 있다는 건 뭐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가 제기한 질문에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다수의 미국인들, 특히 화이트 어메리칸들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시나리오에 대책없이 (과연)순진하기만 한가. 그들은 왜 명징한 증거들과 목소리들에 귀 막고, 부시 일당들이 전하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 따위나 듣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재능있고 매력있는 감독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이구나, 하는 것.
(그의 인상이 딴지일보의 김어준을 닮았다, 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좀 진지해진 김어준!  얼마전 북핵에 대한 김어준의 발언에도 부시의 정책과 공포에 대한 게 있었다. 핵의 존재가 중요한 건 공포를 통제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일단의 사악한 무리들을 향한 신랄해보이는 비판의 근저에 흐르는 건, 역시 미국민중들을 앞에 세운 미국, 에 대한 애정이다.
당연한가. 나로 말하면 911에 대한 다큐들을 보고 소름이 돋거나 화가 나거나 가슴이 갑갑해지긴 해도,  그 오래 전 광주에 관한 영상들을 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숨막힐 듯 뻑뻑해지거나 눈물이 차오르거나 하진 않으니까. 물론 전하는 메시지나 전하는 방식이나 상황이 다르긴 하다. 또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에 대해서도 ….

지금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라디오 스타를 다운 받는 중.
12월에나 볼 거 같았는데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봤다가 야호~ 쾌재를 불렀다.

한국서 보내준 조병준씨의 새책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는 고국의 아름다운 풍광들과 때때로 숨 쉴 만한 신선한 ‘바람’이 되어주던 지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켜 Homesick 비슷한 증상을 가져왔었다. 그걸, 이 영화로 달랠 참이다.

그나저나 조병준, 이 사람은 참 부럽기 짝이없는 인간이다.
저 좋아하는 친구들과 좋아지내는 걸로 책들을 내고, 그걸로 자유의 냄새가 나는 시원한 바람을 흘려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책을 덮고 나면 세상에 대해 까칠했던 시선도 좀 차분해지고 순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 쉽고 편한 그의 글에 그런 힘이 있는 건 사실이나, 때론 한숨이 나게 하고 그처럼 훌훌 떠남을 결행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이 좀 더 남루해보이게도 한다는 거 역시 사실.

어쨌든 돌아가면 이 아름다운 고국의 땅들로 잦은 떠남을 감행해봐야지. 내 인생이야말로 바람같은, 붙잡는 처자식이나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둥지가 없는 인생이 아닌가 말이다. -,.-
그를 위해 당장은 라디오 스타로 향수를 달래고, 프리젠테이션 준비나 마무리 해야겠다.

그나저나 땡스기빙데이. 왜 이렇게 긴가 모르겠다. 진행하던 일도 다 일시정지니.
그리고, 땡스기빙데이 유래를 보면 주빈으로 나오는, 아메리칸들의 초기 정착을 성심껏 도와주고 그들의 땅을 내어줬던 인디언(여기선 네이티브 어메리칸이라 부른다)의 위상이, 인디언 보호지역에서 관광상품으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거나 미국 전역의 빈민가에 살면서 미국사회를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 쯤으로 전락한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재밌게 살자.

Photo by Shin

잠시 거하는 곳이 재미가 없다고 너무 투덜거렸나보다.
내 작은 낌새에도 근심스런 목소리로 장시간 비싼 국제전화비를 감수하는 그녀로부터, “거긴 왜 갔어요?” 란 물음을 두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뜨끔하니 반성도 좀 하고, 엄살이 폴폴 배어버린 몸과 마음을 추스려 살아보자 마음을 다잡아본다.
삶의 자세를 재정비하는데는 육체의 고통이 가장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
며칠 앓고 난 일이 도움이 되었다.
감기 등의 잔병치레를 하고 나면 훌쩍 훌쩍 성장하는 아기들과 다르지 않다.

멀리 동부에 사시는 신선배님이 보내준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숲을 세 시간 달려나오면 뉴욕이 나오는 곳이란다.
나무숲의 바다. 저기 사스콰나라는 긴 강이 흐르는 곳.
이런 곳에서 살아보는건 또 어떨까.
건축을 하는 K군과 미국 건축양식의 특성을 얘기하다가, 기후와 풍토 이런 것들이 주택구조와 생활 양식을 얼마나 많이 규정하는가에 새삼 놀라와했다.
사람이 居하는 곳이 사람의 氣를 결정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큰 폭으로 적용되는 듯 싶다.

신선배님과 오랫만의 엠에센을 통한 짧은 대화.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인가봐요” 라고 하자, “글쎄.. 스트레스에 좀 약하다는 표현이 ..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는 대답을 던지시곤 “나도 그렇고” 라는 말을 덧붙이시는데, 그 말이 참 반갑다.
어떤 일이건 상관없이, 잠시라도 어떤 사람과 같은 류로 동일시 된다는 게 즐거운 이들이 있다. 그도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재밌게” 살라는 주문.

음.. 빨리 운전을 익혀서 이런 풍경을 일주해볼까나.
한국에서 한 번에 면허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이면 여기서 카레이스를 해도 된다 하시는데, 사실일까.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같이 가자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라는 걸 받아보고 있는데 오늘의 제목은 “같이 가자”이다.
무의식적으로 가끔씩 취하게 되는 웅크린 자세가, “타인의 부재속에서 홀로 몸의 ‘접촉면적’을 최대한으로 넓히기 위한, 외로운 인간이 선택하는 무의식적 자세/강력한 밀착과 연대를 자가 발전해내는 일종의 생존본능” 이라니, 허허 웃음이 나온다.
외로움과 생존본능…  
외로움만큼 인간에게 친숙한 감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휘리릭~

일주일 동안 배수관 공사 때문에 9시부터 5시까지 단수가 되는 바람에 올빼미 생활을 중단하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더니, 간만에 맞는 이른 아침 햇살이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된다.
한국은 많이 춥다던데,  
같이 가자, 서로 껴안고 있는 이 그림을 보면 더 추워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Let’s Free Hug!
이런 모토로, 좀 덜 추운 겨울나기 하시길.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는 이 곳에서 볼 수 있고 멜로도 받아볼 수 있다.
http://www.mindprism.co.kr/room/03pictureNessay/list.asp

지윤이와 석윤이


                                          (2006년 봄, 일산호수공원)

예전에도 여행을 떠날 때면 조카들의 사진을 몇 장 들고 가곤 했다.
조카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길에서의 내 삶이 온전히 단절된 건 아니라는, 그런 안도감이 들곤 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joon6078/30010292802

조병준 블로그에서 위글을 보자 내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어져
호수공원을 함께 뛰놀던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니
며칠 정신없는 일과로 까칠했던 얼굴이 절로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길위에서의 내 삶이 온전히 단절된 건 아니라는 안도감”
내가 이 착하고 어여쁜 아이들에게서 느끼던 그 애틋한 감정에도 이런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먼 거리를 떠나와도 증폭되어져만가는 이 쪼고만 애들의 존재감은 얼마나 큰 것인지.
문득 좀 근사한 이모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모락모락.    

박양희, 나무

산이 좋다는 얘길 했더니, 누군가가 산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는 산을, “드라이브”하고 들어왔다.
산에 간다는 의미를 보통 자동차를 타고 구경하는 정도의 의미로 쓰는 이들에겐,
산에 “들어간다”는 게 보다 가까울 수 있는 우리의 산행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그걸 얘기해볼려다 말았다.
나 또한 산에 가본지가 꽤 되어 자신이 없어졌으므로.
한국서 날아온 시디, 박양희의 “나무” 를 계속 듣는다. 참 좋다.
인도로 떠났던 이 사람,
그곳에서 그들의 음악에, 깊숙히, 스며들듯, “들어가려” 했나보다, 란 생각.

* 이 노래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하레- 당신을 찬양합니다 / 당신도 그처럼 되시옵길 / 나 또한 그러하리니..
크리슈나와 람은 인도의 3대 신 (브롬하, 비쉬누, 쉬바) 중
가슴에 계시는 사랑의 신, 비쉬누의 화신입니다.
예수나 부처님도 그의 화신이라 하지요.

근황

그루브 몰
말하자면 한국의 명동이나 일산 등의 “로데오거리”라고 이름 붙혀진 젊은이들의 쇼핑센터쯤 되는 곳.
다른 점이라면, 대공원의 코끼리열차 같은 게 다닌다.
에버코롬비 매장의 입구엔 언제나 ‘몸이 아주 좋은’ 청년이 웃통을 벗고 청바지만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누구나 와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옥주현… 이런 애들도 얼마 전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고 한다. 특이한 고객 서비스다. 재미로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 영 그림이 안나올 것 같아 참았다.

그곳에 있는 대형 서점, 반즈 앤 노블 BARNES & NOBLES
이곳에서 에셔의 달력을 샀다. 너무 예뻐서 2007년 달력인데도 벌써 책상옆에 붙여두었다.
4층 정도 되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이곳은, 교보나 영풍 같은데 비하면 한산하기 그지없어서 구경하기는 참 좋았다.

무슨 초컬릿 포장 같아 보이는 이것들이 사실 책이다. 특이하고 이뻐서 한 권 사볼까 했으나 조금 비쌌다.
이곳엔 책이 정말 비싸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스에 운송비까지 잔뜩 붙어서 정말 만만치 않은 가격이 나온다.

임양이 내 최근의 사진이 보고 싶다해서 찾아 올린다. 사진을 많이 안찍혀봐서 그런가, 난 내 얼굴사진이 늘 낯설다.

_ 올리고 보니 근황은 아니나, 이거밖에 사진이 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