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살자.

Photo by Shin

잠시 거하는 곳이 재미가 없다고 너무 투덜거렸나보다.
내 작은 낌새에도 근심스런 목소리로 장시간 비싼 국제전화비를 감수하는 그녀로부터, “거긴 왜 갔어요?” 란 물음을 두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뜨끔하니 반성도 좀 하고, 엄살이 폴폴 배어버린 몸과 마음을 추스려 살아보자 마음을 다잡아본다.
삶의 자세를 재정비하는데는 육체의 고통이 가장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
며칠 앓고 난 일이 도움이 되었다.
감기 등의 잔병치레를 하고 나면 훌쩍 훌쩍 성장하는 아기들과 다르지 않다.

멀리 동부에 사시는 신선배님이 보내준 사진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숲을 세 시간 달려나오면 뉴욕이 나오는 곳이란다.
나무숲의 바다. 저기 사스콰나라는 긴 강이 흐르는 곳.
이런 곳에서 살아보는건 또 어떨까.
건축을 하는 K군과 미국 건축양식의 특성을 얘기하다가, 기후와 풍토 이런 것들이 주택구조와 생활 양식을 얼마나 많이 규정하는가에 새삼 놀라와했다.
사람이 居하는 곳이 사람의 氣를 결정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큰 폭으로 적용되는 듯 싶다.

신선배님과 오랫만의 엠에센을 통한 짧은 대화.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인가봐요” 라고 하자, “글쎄.. 스트레스에 좀 약하다는 표현이 ..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는 대답을 던지시곤 “나도 그렇고” 라는 말을 덧붙이시는데, 그 말이 참 반갑다.
어떤 일이건 상관없이, 잠시라도 어떤 사람과 같은 류로 동일시 된다는 게 즐거운 이들이 있다. 그도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재밌게” 살라는 주문.

음.. 빨리 운전을 익혀서 이런 풍경을 일주해볼까나.
한국에서 한 번에 면허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이면 여기서 카레이스를 해도 된다 하시는데, 사실일까.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같이 가자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라는 걸 받아보고 있는데 오늘의 제목은 “같이 가자”이다.
무의식적으로 가끔씩 취하게 되는 웅크린 자세가, “타인의 부재속에서 홀로 몸의 ‘접촉면적’을 최대한으로 넓히기 위한, 외로운 인간이 선택하는 무의식적 자세/강력한 밀착과 연대를 자가 발전해내는 일종의 생존본능” 이라니, 허허 웃음이 나온다.
외로움과 생존본능…  
외로움만큼 인간에게 친숙한 감정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휘리릭~

일주일 동안 배수관 공사 때문에 9시부터 5시까지 단수가 되는 바람에 올빼미 생활을 중단하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더니, 간만에 맞는 이른 아침 햇살이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된다.
한국은 많이 춥다던데,  
같이 가자, 서로 껴안고 있는 이 그림을 보면 더 추워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Let’s Free Hug!
이런 모토로, 좀 덜 추운 겨울나기 하시길.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는 이 곳에서 볼 수 있고 멜로도 받아볼 수 있다.
http://www.mindprism.co.kr/room/03pictureNessay/list.asp

지윤이와 석윤이


                                          (2006년 봄, 일산호수공원)

예전에도 여행을 떠날 때면 조카들의 사진을 몇 장 들고 가곤 했다.
조카들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길에서의 내 삶이 온전히 단절된 건 아니라는, 그런 안도감이 들곤 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joon6078/30010292802

조병준 블로그에서 위글을 보자 내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어져
호수공원을 함께 뛰놀던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니
며칠 정신없는 일과로 까칠했던 얼굴이 절로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길위에서의 내 삶이 온전히 단절된 건 아니라는 안도감”
내가 이 착하고 어여쁜 아이들에게서 느끼던 그 애틋한 감정에도 이런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먼 거리를 떠나와도 증폭되어져만가는 이 쪼고만 애들의 존재감은 얼마나 큰 것인지.
문득 좀 근사한 이모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모락모락.    

박양희, 나무

산이 좋다는 얘길 했더니, 누군가가 산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피스 천문대가 있는 산을, “드라이브”하고 들어왔다.
산에 간다는 의미를 보통 자동차를 타고 구경하는 정도의 의미로 쓰는 이들에겐,
산에 “들어간다”는 게 보다 가까울 수 있는 우리의 산행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그걸 얘기해볼려다 말았다.
나 또한 산에 가본지가 꽤 되어 자신이 없어졌으므로.
한국서 날아온 시디, 박양희의 “나무” 를 계속 듣는다. 참 좋다.
인도로 떠났던 이 사람,
그곳에서 그들의 음악에, 깊숙히, 스며들듯, “들어가려” 했나보다, 란 생각.

* 이 노래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하레- 당신을 찬양합니다 / 당신도 그처럼 되시옵길 / 나 또한 그러하리니..
크리슈나와 람은 인도의 3대 신 (브롬하, 비쉬누, 쉬바) 중
가슴에 계시는 사랑의 신, 비쉬누의 화신입니다.
예수나 부처님도 그의 화신이라 하지요.

근황

그루브 몰
말하자면 한국의 명동이나 일산 등의 “로데오거리”라고 이름 붙혀진 젊은이들의 쇼핑센터쯤 되는 곳.
다른 점이라면, 대공원의 코끼리열차 같은 게 다닌다.
에버코롬비 매장의 입구엔 언제나 ‘몸이 아주 좋은’ 청년이 웃통을 벗고 청바지만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누구나 와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옥주현… 이런 애들도 얼마 전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고 한다. 특이한 고객 서비스다. 재미로 나도 한번 시도해볼까 하다 영 그림이 안나올 것 같아 참았다.

그곳에 있는 대형 서점, 반즈 앤 노블 BARNES & NOBLES
이곳에서 에셔의 달력을 샀다. 너무 예뻐서 2007년 달력인데도 벌써 책상옆에 붙여두었다.
4층 정도 되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이곳은, 교보나 영풍 같은데 비하면 한산하기 그지없어서 구경하기는 참 좋았다.

무슨 초컬릿 포장 같아 보이는 이것들이 사실 책이다. 특이하고 이뻐서 한 권 사볼까 했으나 조금 비쌌다.
이곳엔 책이 정말 비싸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스에 운송비까지 잔뜩 붙어서 정말 만만치 않은 가격이 나온다.

임양이 내 최근의 사진이 보고 싶다해서 찾아 올린다. 사진을 많이 안찍혀봐서 그런가, 난 내 얼굴사진이 늘 낯설다.

_ 올리고 보니 근황은 아니나, 이거밖에 사진이 엄다.. -,.-

소포


자꾸만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찾는 일이 많아져 다이어리를 장만하기로 했는데, 스테이플, 오피스디포 등을 다 뒤져봐도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 좀 뻔뻔하고 귀찮은 부탁을 임양에게 했었고 어제 소포가 도착했다.
아파트 오피스에서 두툼한 소포를 받아오면서, “항공편으로 보내니 요금이 비싸잖아, 선편으로 보내라고 얘기해둘 걸.. 하는 생각을 하던 나,
소포를 열여보고선 많이, 오래 행복해지고 말았다.

바로 내가 고파하던 책과 시디, 손글씨 엽서, 연필 세자루까지.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심플한 다이어리는 담백한 그녀의 성품을 닮았다.
(그녀는 내가 맘에 들어할까 몹시 염려했는데, 그녀의 선택, 혹은 나의 선택-그녀를 선택한-이 탁월했음을 다이어리는 입증해주었다.)
다이어리에다 한국서 쓰던 휴대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들을 다운받아 깨알같이 출력해서 딱풀로 붙이고, 여기서의 중요한 일정들을 입력했다.
이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좀 줄어들겠지, 기대하면서.

간밤엔 슬픈 꿈을 꾸었다.
기억은 가물한데,
전화소리에 깨고보니 내가 눈물을 흘리며 훌쩍 훌쩍 울고 있었다.
아주아주 어린 시절 곧잘 그랬던 것처럼.
그 많은 시간 동안 나의 사고는 전혀 성숙하지 못한 거 같아,
내가 살아온 시절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시 행복하려 한다.
탁자위에 펼쳐놓은 선물들,
그리고 다시 손에 넣게 된 작은 스피커, 님지.
(한국서부터 끌고 온 이것에 나는 애착이 많았는데, 며칠 전 동생집을 나와 이사하면서 고장이 나버린 듯. 바닥을 공명시켜 아름다운 음악을 전해야하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잡음만을 전하는 “님지”가 나는 몹시도 슬펐었다.)

고독

고독

혼자일 때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늘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살아야만 할 때도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고독하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고독하다.
출처 :
http://gyuhang.net/

* 나도 시방 고독할 기회를 빼앗아가는 주변환경 때문에 심히 고독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 속에서 함께 대화할 때도 동시에 나의 내적 음성과도 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드물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정말 즐겁고 소중하다.

인터넷 생각

훔쳐쓰던 무선 인티넷이 갑자기 안되어서 하루 종일 접속을 못했다. 신문에 낼 광고를 보낼 일이 있어 놋북을 들고 아파트안을 두루 돌아다니다 간신히 데이타 전송에 성공.
기어이 인터넷을 신청하면서 속도를 물어봤더니 하이 스피드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 6메가란다.
나의 경악스런 반응에 담당자가 묻는다.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셨나봐요. 네. 속도 얼마인 걸 쓰셨는데요? 100메가요.
헉. 여기선 그 정도 쓰려면 한달에 천불은 주셔야해요. 어쩔 수 없지요. 여긴 미국이니까요.

한국에서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건 밀집한 아파트의 공이 크다고 했다. 핸드폰 품질도 마찬가지. 지역이 워낙 방대한 미국에선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적 가치가 본질적으로 “질” 보다는 “양”에  방점을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든다. 뭐든 풍요롭지만 좋지는 않은.
그리고 극단의 양극화. 여긴 뭐든 좋고 비싼 것과 질 낮고 싼 것이 있고 그 차이가 현격하다.

얼마 전 여기 인터넷 소프트웨어 쪽의 엔지니어를 만난 자리에서 속도에 대해 얘길 했더니, 그래도 첨단 인터넷 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건 미국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기업이나 좋은 동네에선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쎄. 그 쪽 사정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진정한 웹의 정신은 공유와 평등 지향이 아니겠냐는 내 궁색한 항변과 가까스러운 동의.

좋은 건 빨리 익숙해지는 법이어서 모뎀시절이 수십년 전인듯(하긴 컴터와 친해진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고 모뎀시절은 별로 겪어보지도 않았다) 느린 속도에 적응하는건 쉽지가 않다. 어쩌거나 난 인터넷 빵빵한 한국이 좋다. 

그는 내 종족이다.

오랫만에 김규항 블러그에 놀러갔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오늘 프레시안 창립5주년 기념식장에서 김종철 선생을 만났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선생은 앞쪽에 지정석이 마련되어있는데도 부러 뒤편에 앉아있다. 그는 내 종족이다. 선생에게 농을 건넸다. “선생님, 녹색평론 15주년 기념식 한번 하시죠.”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선생님이 빠지시면 되잖아요.” “하~” 선생은 파안대소한다.

“그는 내 종족이다.” 이 한 문장이 너무 표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애정과 신뢰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곳에서 만난 P군은 내가 비주류 혹은 주변적인 것에 시선이 가 있어서 좋고 그래서 동류의식을 느낀다고 했는데, “철이 안든 어른” 을 좋아한다던 J양도 얼핏 그런 얘길 듣더니,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나의 비주류 냄새 때문이라는 고백의 멜을 날려왔다.  

이들이 보여주는 호감과 동류의식과 애정 역시 저 부러운 한 문장과 비슷한 것일 수 있겠지만…
나의 그러한 성향이, 의지적 선택이나 일관된 삶의 결과로 체득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역사 전체가 폐허나 야만상태에 처해지더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신의 추락한 영혼을 구원하는 끈질긴 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처구니없게도 자꾸만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명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