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


자꾸만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찾는 일이 많아져 다이어리를 장만하기로 했는데, 스테이플, 오피스디포 등을 다 뒤져봐도 맘에 드는 게 없었다. 그래 좀 뻔뻔하고 귀찮은 부탁을 임양에게 했었고 어제 소포가 도착했다.
아파트 오피스에서 두툼한 소포를 받아오면서, “항공편으로 보내니 요금이 비싸잖아, 선편으로 보내라고 얘기해둘 걸.. 하는 생각을 하던 나,
소포를 열여보고선 많이, 오래 행복해지고 말았다.

바로 내가 고파하던 책과 시디, 손글씨 엽서, 연필 세자루까지.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심플한 다이어리는 담백한 그녀의 성품을 닮았다.
(그녀는 내가 맘에 들어할까 몹시 염려했는데, 그녀의 선택, 혹은 나의 선택-그녀를 선택한-이 탁월했음을 다이어리는 입증해주었다.)
다이어리에다 한국서 쓰던 휴대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들을 다운받아 깨알같이 출력해서 딱풀로 붙이고, 여기서의 중요한 일정들을 입력했다.
이제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좀 줄어들겠지, 기대하면서.

간밤엔 슬픈 꿈을 꾸었다.
기억은 가물한데,
전화소리에 깨고보니 내가 눈물을 흘리며 훌쩍 훌쩍 울고 있었다.
아주아주 어린 시절 곧잘 그랬던 것처럼.
그 많은 시간 동안 나의 사고는 전혀 성숙하지 못한 거 같아,
내가 살아온 시절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시 행복하려 한다.
탁자위에 펼쳐놓은 선물들,
그리고 다시 손에 넣게 된 작은 스피커, 님지.
(한국서부터 끌고 온 이것에 나는 애착이 많았는데, 며칠 전 동생집을 나와 이사하면서 고장이 나버린 듯. 바닥을 공명시켜 아름다운 음악을 전해야하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잡음만을 전하는 “님지”가 나는 몹시도 슬펐었다.)

고독

고독

혼자일 때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늘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살아야만 할 때도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고독하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고독하다.
출처 :
http://gyuhang.net/

* 나도 시방 고독할 기회를 빼앗아가는 주변환경 때문에 심히 고독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 속에서 함께 대화할 때도 동시에 나의 내적 음성과도 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드물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정말 즐겁고 소중하다.

인터넷 생각

훔쳐쓰던 무선 인티넷이 갑자기 안되어서 하루 종일 접속을 못했다. 신문에 낼 광고를 보낼 일이 있어 놋북을 들고 아파트안을 두루 돌아다니다 간신히 데이타 전송에 성공.
기어이 인터넷을 신청하면서 속도를 물어봤더니 하이 스피드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 6메가란다.
나의 경악스런 반응에 담당자가 묻는다.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셨나봐요. 네. 속도 얼마인 걸 쓰셨는데요? 100메가요.
헉. 여기선 그 정도 쓰려면 한달에 천불은 주셔야해요. 어쩔 수 없지요. 여긴 미국이니까요.

한국에서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건 밀집한 아파트의 공이 크다고 했다. 핸드폰 품질도 마찬가지. 지역이 워낙 방대한 미국에선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국적 가치가 본질적으로 “질” 보다는 “양”에  방점을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은 든다. 뭐든 풍요롭지만 좋지는 않은.
그리고 극단의 양극화. 여긴 뭐든 좋고 비싼 것과 질 낮고 싼 것이 있고 그 차이가 현격하다.

얼마 전 여기 인터넷 소프트웨어 쪽의 엔지니어를 만난 자리에서 속도에 대해 얘길 했더니, 그래도 첨단 인터넷 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건 미국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대기업이나 좋은 동네에선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글쎄. 그 쪽 사정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진정한 웹의 정신은 공유와 평등 지향이 아니겠냐는 내 궁색한 항변과 가까스러운 동의.

좋은 건 빨리 익숙해지는 법이어서 모뎀시절이 수십년 전인듯(하긴 컴터와 친해진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고 모뎀시절은 별로 겪어보지도 않았다) 느린 속도에 적응하는건 쉽지가 않다. 어쩌거나 난 인터넷 빵빵한 한국이 좋다. 

그는 내 종족이다.

오랫만에 김규항 블러그에 놀러갔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오늘 프레시안 창립5주년 기념식장에서 김종철 선생을 만났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선생은 앞쪽에 지정석이 마련되어있는데도 부러 뒤편에 앉아있다. 그는 내 종족이다. 선생에게 농을 건넸다. “선생님, 녹색평론 15주년 기념식 한번 하시죠.”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선생님이 빠지시면 되잖아요.” “하~” 선생은 파안대소한다.

“그는 내 종족이다.” 이 한 문장이 너무 표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애정과 신뢰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곳에서 만난 P군은 내가 비주류 혹은 주변적인 것에 시선이 가 있어서 좋고 그래서 동류의식을 느낀다고 했는데, “철이 안든 어른” 을 좋아한다던 J양도 얼핏 그런 얘길 듣더니,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나의 비주류 냄새 때문이라는 고백의 멜을 날려왔다.  

이들이 보여주는 호감과 동류의식과 애정 역시 저 부러운 한 문장과 비슷한 것일 수 있겠지만…
나의 그러한 성향이, 의지적 선택이나 일관된 삶의 결과로 체득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역사 전체가 폐허나 야만상태에 처해지더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신의 추락한 영혼을 구원하는 끈질긴 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처구니없게도 자꾸만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명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중에서 

물욕이 생기다.

(출처: http://strida.co.uk/)
갖고 싶다……..
가볍게 살기로 마음을 먹은 이래 첨으로 물욕이 생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가볍고 멋진 접이식 자전거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네 개나 된다.
1. 이 상품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은 2007년부터이다. — 한국은 역시 빠르다. (http://strida.co.kr )
2. 메뉴얼상 탈 수 있는 신장이 160-193cm, 내 키를 살짝 벗어났다.
3. 비싸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

이런 폰트

이런 폰트가 있네. 잊혀진사람체란다.

샌디에고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정신을 어찌하든 추스려볼 요량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인디언의 기를 받아올 수 있다는 성지를 돌아볼 계획을 짰다가, “언닌 우릴 안좋아하나봐” 라며 서운해하는 동생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어가 기어이 함께 샌디에고행을 나섰다.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 샌디에고는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의 결과로 미국령이 된 해항도시이며 관광지.
그닥 눈길을 잡아끌거나 매료시키는 대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런 여행도 있구나 싶게, 잘 먹고 잘 쉬었다. (동생부부는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그들과의 행보는 늘 배부르고 등따숩고 럭셔리한 것이 된다.)
그래도 여행, 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심심하고 허전하니, 난 아직은, 젊은 모양, 이라고 생각하다가,
해안도로의 오르막길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안간힘으로 오르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나도 언젠가는….




이 즈음에서 나는 제주도 풍경이 몹시도 그리웠다.  

럭셔리한 호텔방에서 바라본 야경


젊은 연인들,  공중화장실앞.

아담하고 한적했던 어느 호주 작가의 전시회장. 다분히 여성적인 그림들속에서 발견한 이 작품… 토토로가 생각났다.
해변의 가로등 위를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철침이 비좁게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쇼핑센타의 간판에서도 이걸 보고 의아하여 물어보았었는데 새가 앉지 못하게 하는 장치라고 했다. 아무리 새똥이 보기 싫어도 그렇지 해변에 이런 걸 박아놓다니, 해변이야말로 새들의 고향이 아닌가.
‘참 못됐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퇴역한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꾸며서 만들어놓은 해상박물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Honor the legend”할 수는 없다며 입장대열에 빠져서, 동생부부가 전쟁의 유물과 전쟁시물레이션을 즐기는 동안 항구를 어슬렁거렸다.
(박물관시설은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이어서 동생은 신나는 얼굴로 출구를 나와 내게 기프트샵에서 산 선물을 건네주었다. 언니가 길을 잘 잃으니까.. 하며 건네준 나침반은 내게 정말 유용한 것이었으나, 전투기폭격장면이 들어있는 안의 사진은 아무리해도 떼낼 수가 없다. -,.- 한국에 두고온 내 앙징맞은 나침반이 아쉬운 중… )

* 덧붙임

평론가 이명원이 선호하는 문체라 소개했던 김윤식의 글에 여행에 대한 것이 있다.
“벗이여,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들의 들판 헤매이기를 세 번 반복하기. 바야흐로 등불이 켜지고 있는 마을을 함께 지켜보기. 아득한 울림이자 선연한 헛것 속에 함께 서 있기.”

뭐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능력은 내게 없지만,
나도 한 때 이런 “선연한 헛것” 속에서 아득하게 공명해보기는 했었지, 언젠가는 또 이런 들판 헤매이기를 해볼 수 있겠지,  하는 가벼운 자기위안과 꿈꾸기.  

미안함

(J군과 통화중)
J- 왜, 내가 제시한 방법이 맘에 안들어?
> 아니. 선택의 여지가 뭐 있나뭐… 그냥 기분이 안좋아서 그래.
J- 왜 안좋은 일 있어?
> 그건 아닌데.. 미안해야할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게 편치 않아서. 좀 처량하기도 하고.
J- 뭐가 미안한데?
> 도움을 받아야만 상황이 자꾸 미안해지게 만들잖아.
J- 뭐가 미안해. 우린 암치도 않아요. 자꾸 볼 수 있어 좋잖아. 미안한 맘이 들었다면 미안해요.
>  -,.-

(그래 니맘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도움을 받는 일이 미안해지고 그 미안함 때문에 맘이 자꾸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암만 도움을 받아도 미안할 필요없고 맘편히 요구할 수도 있는 그런 관계가 이럴 땐 좀 아니 많이 아쉽다. 쩝… )

가을, 추석,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목이 칼칼해져 긴팔 티와 가디건을 하나씩 샀다.
반폴라티는 스몰을 샀는데도 우리 미디엄 사이즈고, 가디건은 주니어용이다.
한국에선 내가 그리 작은 줄 몰랐는데.. 하면 주위에선 꼭 한마디씩 한다.
뭐 한국에서도 작긴 했을 거구만, 하고.

사소하게 쓸쓸해진 기분에 참새 방앗간 같던 블러그들을 오랫만에 돌아보다, 쌀쌀해진 한국의 가을 날씨 소식과 내복 장만기 등을 접한다.
아, 벌써 시월이니 꽤 서늘해졌겠구나 싶어지면서,
가을이란 계절의 변화가, 한 때의 출처를 알기 힘든 방황과 우울함과 쓸쓸함에 그럴 듯한 면책사유가 되어 주었음을 생각한다.
가을을 타는 구나… 하면,
그 모든 불안정한 감정의 변화에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가는 것인양 너그러워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빨리 돌아와서 지리산에 같이 가요.. 하던 임양의 전화목소리가 길게 길게 여운을 남긴다.
대학 때 단짝 친구가 날린 멜의, “예전처럼 산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시간도, 함께할 벗도 예전같을 수 없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라는 푸념에도 한국의 가을냄새가 묻어온다.
그들의 달콤한 메세지가, 호출이, 문득 내게 다행스럽다.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문자만 인터넷상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해놨더니 간간히 추석인사가 들어온다.
이 추석에 내가 아는,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더없이 넉넉하고 즐거웁기를,
(발딛고 있는 곳은 미국일지라도 같은 달일지니)
그들이 달을 보며 갖는 바램이 모두 이뤄지기를 기원하려 베란다문을 빼꼼 열고 나갔다가,
보름달에 한참 못 미치는 허전한 형상을 한 달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내가 정말 먼곳까지 날아왔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