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종족이다.

오랫만에 김규항 블러그에 놀러갔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오늘 프레시안 창립5주년 기념식장에서 김종철 선생을 만났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선생은 앞쪽에 지정석이 마련되어있는데도 부러 뒤편에 앉아있다. 그는 내 종족이다. 선생에게 농을 건넸다. “선생님, 녹색평론 15주년 기념식 한번 하시죠.” “에이, 그런 거 안 해요.” “선생님이 빠지시면 되잖아요.” “하~” 선생은 파안대소한다.

“그는 내 종족이다.” 이 한 문장이 너무 표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애정과 신뢰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곳에서 만난 P군은 내가 비주류 혹은 주변적인 것에 시선이 가 있어서 좋고 그래서 동류의식을 느낀다고 했는데, “철이 안든 어른” 을 좋아한다던 J양도 얼핏 그런 얘길 듣더니,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나의 비주류 냄새 때문이라는 고백의 멜을 날려왔다.  

이들이 보여주는 호감과 동류의식과 애정 역시 저 부러운 한 문장과 비슷한 것일 수 있겠지만…
나의 그러한 성향이, 의지적 선택이나 일관된 삶의 결과로 체득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역사 전체가 폐허나 야만상태에 처해지더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신의 추락한 영혼을 구원하는 끈질긴 관성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며, 어처구니없게도 자꾸만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명원,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중에서 

물욕이 생기다.

(출처: http://strida.co.uk/)
갖고 싶다……..
가볍게 살기로 마음을 먹은 이래 첨으로 물욕이 생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가볍고 멋진 접이식 자전거를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네 개나 된다.
1. 이 상품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은 2007년부터이다. — 한국은 역시 빠르다. (http://strida.co.kr )
2. 메뉴얼상 탈 수 있는 신장이 160-193cm, 내 키를 살짝 벗어났다.
3. 비싸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

이런 폰트

이런 폰트가 있네. 잊혀진사람체란다.

샌디에고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정신을 어찌하든 추스려볼 요량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인디언의 기를 받아올 수 있다는 성지를 돌아볼 계획을 짰다가, “언닌 우릴 안좋아하나봐” 라며 서운해하는 동생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어가 기어이 함께 샌디에고행을 나섰다.
멕시코 국경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 샌디에고는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의 결과로 미국령이 된 해항도시이며 관광지.
그닥 눈길을 잡아끌거나 매료시키는 대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런 여행도 있구나 싶게, 잘 먹고 잘 쉬었다. (동생부부는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그들과의 행보는 늘 배부르고 등따숩고 럭셔리한 것이 된다.)
그래도 여행, 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심심하고 허전하니, 난 아직은, 젊은 모양, 이라고 생각하다가,
해안도로의 오르막길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안간힘으로 오르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나도 언젠가는….




이 즈음에서 나는 제주도 풍경이 몹시도 그리웠다.  

럭셔리한 호텔방에서 바라본 야경


젊은 연인들,  공중화장실앞.

아담하고 한적했던 어느 호주 작가의 전시회장. 다분히 여성적인 그림들속에서 발견한 이 작품… 토토로가 생각났다.
해변의 가로등 위를 자세히 보면 가느다란 철침이 비좁게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쇼핑센타의 간판에서도 이걸 보고 의아하여 물어보았었는데 새가 앉지 못하게 하는 장치라고 했다. 아무리 새똥이 보기 싫어도 그렇지 해변에 이런 걸 박아놓다니, 해변이야말로 새들의 고향이 아닌가.
‘참 못됐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퇴역한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꾸며서 만들어놓은 해상박물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Honor the legend”할 수는 없다며 입장대열에 빠져서, 동생부부가 전쟁의 유물과 전쟁시물레이션을 즐기는 동안 항구를 어슬렁거렸다.
(박물관시설은 나름 신경을 쓴 모양이어서 동생은 신나는 얼굴로 출구를 나와 내게 기프트샵에서 산 선물을 건네주었다. 언니가 길을 잘 잃으니까.. 하며 건네준 나침반은 내게 정말 유용한 것이었으나, 전투기폭격장면이 들어있는 안의 사진은 아무리해도 떼낼 수가 없다. -,.- 한국에 두고온 내 앙징맞은 나침반이 아쉬운 중… )

* 덧붙임

평론가 이명원이 선호하는 문체라 소개했던 김윤식의 글에 여행에 대한 것이 있다.
“벗이여,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들의 들판 헤매이기를 세 번 반복하기. 바야흐로 등불이 켜지고 있는 마을을 함께 지켜보기. 아득한 울림이자 선연한 헛것 속에 함께 서 있기.”

뭐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능력은 내게 없지만,
나도 한 때 이런 “선연한 헛것” 속에서 아득하게 공명해보기는 했었지, 언젠가는 또 이런 들판 헤매이기를 해볼 수 있겠지,  하는 가벼운 자기위안과 꿈꾸기.  

미안함

(J군과 통화중)
J- 왜, 내가 제시한 방법이 맘에 안들어?
> 아니. 선택의 여지가 뭐 있나뭐… 그냥 기분이 안좋아서 그래.
J- 왜 안좋은 일 있어?
> 그건 아닌데.. 미안해야할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게 편치 않아서. 좀 처량하기도 하고.
J- 뭐가 미안한데?
> 도움을 받아야만 상황이 자꾸 미안해지게 만들잖아.
J- 뭐가 미안해. 우린 암치도 않아요. 자꾸 볼 수 있어 좋잖아. 미안한 맘이 들었다면 미안해요.
>  -,.-

(그래 니맘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도움을 받는 일이 미안해지고 그 미안함 때문에 맘이 자꾸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암만 도움을 받아도 미안할 필요없고 맘편히 요구할 수도 있는 그런 관계가 이럴 땐 좀 아니 많이 아쉽다. 쩝… )

가을, 추석,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날씨에 목이 칼칼해져 긴팔 티와 가디건을 하나씩 샀다.
반폴라티는 스몰을 샀는데도 우리 미디엄 사이즈고, 가디건은 주니어용이다.
한국에선 내가 그리 작은 줄 몰랐는데.. 하면 주위에선 꼭 한마디씩 한다.
뭐 한국에서도 작긴 했을 거구만, 하고.

사소하게 쓸쓸해진 기분에 참새 방앗간 같던 블러그들을 오랫만에 돌아보다, 쌀쌀해진 한국의 가을 날씨 소식과 내복 장만기 등을 접한다.
아, 벌써 시월이니 꽤 서늘해졌겠구나 싶어지면서,
가을이란 계절의 변화가, 한 때의 출처를 알기 힘든 방황과 우울함과 쓸쓸함에 그럴 듯한 면책사유가 되어 주었음을 생각한다.
가을을 타는 구나… 하면,
그 모든 불안정한 감정의 변화에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가는 것인양 너그러워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빨리 돌아와서 지리산에 같이 가요.. 하던 임양의 전화목소리가 길게 길게 여운을 남긴다.
대학 때 단짝 친구가 날린 멜의, “예전처럼 산행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시간도, 함께할 벗도 예전같을 수 없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라는 푸념에도 한국의 가을냄새가 묻어온다.
그들의 달콤한 메세지가, 호출이, 문득 내게 다행스럽다.

한국에서 쓰던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문자만 인터넷상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해놨더니 간간히 추석인사가 들어온다.
이 추석에 내가 아는,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더없이 넉넉하고 즐거웁기를,
(발딛고 있는 곳은 미국일지라도 같은 달일지니)
그들이 달을 보며 갖는 바램이 모두 이뤄지기를 기원하려 베란다문을 빼꼼 열고 나갔다가,
보름달에 한참 못 미치는 허전한 형상을 한 달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내가 정말 먼곳까지 날아왔구나, 하고.

에드몽


에드몽은 스페니쉬이고 카펫까는 일을 한다.  
작업실로 마련한 공간에 카펫을 깔러 나타났을 때 한손엔 연장통, 한 손엔 자그마한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가 들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작업하는 데 필수용품이라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흥겹고 나른한 스페인음악은 그들의 작업스타일과도 비슷했다.
라디오 음악에 맞춰 연신 흥얼거리며, 성급함이 없이, 스스로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인 마켓이나 식당의 종업원, 블루칼라 업종의 대부분은 멕시칸을 비롯한 스페니쉬가 도맡아하는데, 주중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고 주말엔 성대한 파티를 열어 즐긴다고 한다.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 대개가 저축을 하지 않고 다 써버리므로 대다수 한인들에겐 한심한 민족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나, 그들의 낙천성과 유유자적한 삶의 패턴엔 삶을 향유할 줄 아는 멋스러움이 있고, 타인에 대한 스스럼없고 우호적인 태도는 아이들의 천진함을 닮았다.

……

오랫만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심한 밤에 혼자 음악을 듣고 있는 것.
며칠 팍팍해졌던 가슴팍이 넉넉해지며 쭈글쭈글해졌던 심장이 다시 링클프리로 펴지는 느낌이다.
나에겐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이런 시간들이,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며칠 전 이번 엘에이행을 결심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가졌다.
하이클라스 백인들만 산다는 동네를 지나 도착한 곳은 높은 빌딩만 빼곡한 Century Park East.
맘씨 좋은 택시 운전사 아저씨의 화이팅을 뒤로하고 빌딩을 올려다보니, 낯설기만한 풍경속 빌딩 로비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스타벅스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자, 참 이렇게 낯선 도시에 내가 왔구나 실감이 났다. 온통 회색빛 빌딩만 가득한, 은하철도 구구구에 등장할 법한 낯선 별에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한 후에 들어선 사무실안 풍경은 흔한 허리우드 법정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유사해서 오히려 친근했다. (이곳은 꽤 큰 규모의 로펌. 클라이언트 정보를 보니 큰 규모의 관공서들과 이름이 친숙한 허리우드 스타들이 즐비하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그 안에 심히 뻘쭘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

나를 맞이한 변호사 P는 6살때 이민을 온 한국교포. 그의 한국말은 커서 노력해서 다시 배운 것이라 했는데, 쉬운 단어를 고르거나 영어로 바꾸느라 내머릿속은 분주해졌고 말은 느려졌다.
그러다 곧 이런 저런 사람들의 빠른 템포의 유창한 영어가 내 귀에 쏟아져 들어오자… 각오한 일이었긴 해도…  나는 다시 낯선 별에 불시착해 외계인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

P씨의 친절은 감동적이어서, 대충 그러저럭 일을 진행시켜 준 것은 물론,언어소통의 문제가 심히 고민이라는 내게 조언을 해주고 용기를 주려 하다가 급기야는 나의 영어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노라며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해서 P씨의 친구들과 만난 곳은 단성사. (코리아 타운의 단성사는 주점이고 피카디리는 당구장 이름이다. -,.-)  변호사와 포토그래퍼였던 그들과의 대화는, 절대적인 시간과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대화내용의 양이 아주 부족했던 지라,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기억 나는 것이라곤, 한국과 일본을 전혀 모른다는 한국인,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두 친구가 벌였던 재미없고 별 내용도 없으면서 치열했던 민족 감정의 논쟁. 심심해진 내가 소주 한 잔을 홀짝거리며 멀뚱하니 그들을 지켜보다 던졌던, 행복하냐는 질문 하나.

문득 그리워졌다. 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한강이 한 줄기 반짝거리는 빛을 발하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일산 내방 창가.
그곳에서 책상 위 자그마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의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만 같았다.

나흘 동안의 아이보기

꼬박 나흘 동안을 아침엔 “장금이”(제부의 바쁜 한의원일을 돕느라 부지런히 약을 짓는 걸 일컬어 앞집 애기엄마가 붙여준 호칭)로, 이후부터 취침시간까지는 다섯살 아이의 눈높이로 살았다.

핼로키티와 돈을 최고로 아는 아이에게 “이웃집 토토로”와 “아이스에이지”, “몬스터주식회사” 등을 보여주었고(놀랍게도 아이는 흔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하나도 본 적이 없다했다. 대신 엄마가 보던 무슨 김희선이 나오던 드라마 비디오를 보며 줄거리를 내게 설명해주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선물을 사달라고 졸라서 들어간 핼로키티 점에선, 이미 집에 있지 않은 상품을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 ),아기자기한 어린이 컴퓨터게임, 그림그리기, 숫자 글자 공부도 하였으며, 함께 뛰어놀고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었다.

아이는 엄마도 별로 안찾고 잘 먹고 잘 자고, 자다깨도 이모를 찾았다. 다행한 일이었고 기특한 일이었지만, 이 어린 아이와 내가, 완강한 가치관의 차이에 부딪히는 건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아이는 발음이 약간 불안한, 그러나 근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돈은 정말 중요한 것이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야”
“옷을 예쁘게 입는 건 정말로 중요해. 밉게 입으면 사람들이 안좋아해. 이모는 옷이 몇 개야? “

아이의 가장 큰 취미 생활을 옷을 골라서 바꿔 입고 거울 앞에서 폼잡기, 두 번째 취미는 여러개나 되는 자기 지갑을 열고 돈 세어보기이며, 아이의 가장 큰 애정표현은 1불짜리 지폐를 선물하는 것이다. 나도 한 네 번쯤은 1불 지폐를 받았다.

또한 아이는 지갑이든 가방이든 남의 집 서랍장이든 뭐든 열어보고 꺼내보는 취미를 가졌다. 그리고 맘에 드는 걸 “선물” 이라는 이름으로 강탈하기. 나쁜 버릇이었으므로 야단을 쳐보기도 하였으나 허사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엄마가 이걸 지적 호기심이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오전에 가는 유치원에선 친구가 없다. “그곳 아이들이 수준이 낮아서 아이들과 못놀고 선생님하고만 말을 해요” 라는 떠들썩한 엄마의 자랑을 열번도 더 들었다.

선물을 사달라고 졸라서 들르는 신발가게, 옷가게, 선물가게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골라대는 모습은 강박증 환자 같고 타인의 물건, 특히 옷과 신발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어, 앞집 돌 된 아기의 옷까지 마구 꺼내어 입어볼 정도였다.
그리고 야단을 칠라하면 뻔한 거짓말을 해대곤 해서 나를 슬프게 했다.

아이의 이런 행동엔 그의 엄마가 되풀이 해대는 어떤 말들과 행동들에, 인과관계가 너무나 뚜렷한 선이 찌익 그어졌다. 이 아이를 맡아 돌보면서, 나는 종종 암담해져 한숨이 나왔고, 김규항씨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도 했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토토로를 보며 함께 낄낄거리고 불쌍해, 귀여워, 환호해대는 걸 보면 분명 영낙없는 다섯살 아이인 것을,
도대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자격으로,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말이다.
 
기도원에서 돌아와 아이와 떠들썩하게 애정을 확인한 후 내게 고맙다고 “기도원식으로” 포옹을 해대는  그녀를 맞이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웃음은 부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이제 끝이다. 난 최선을 다했으며 이젠 좀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다짐도 한다.
이젠 내 일에 매진해야지.

휴. 온몸이 욱신욱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