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울진의 2006’여름

뜨거웠던 울진의 여름, 밤바다, 회우당, 익숙한 얼굴들



재미있게 삽시다!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많아 정신없는 하루였다.
발밑의 불 정도를 끈 후에 전화가 왔다.
나간지 몇 달은 된 일산 인라인 동호회에서 세 번 정도 안면이 있는 후배. 공연소식을 알리는 웹페이지를 만들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엠에센으로 말을 걸어온 갑군은 또 노동력 착취 당하러 나가야한다는 내 말에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지” 라며, 짐짓 나를 위해주는 말을 던졌다.

요청 받은 일을 들어보니 인디밴드들의 심장병어린이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깔루아커피를 마시면서 공연준비의 고충과 인디밴드들의 생활고를 듣다가, 그를 찾아온 그의 학교동아리 후배 둘을 만났다.
틈틈히 일어날 기회를 엿보던 나는, 온통 아파트와 생활고(몇억대 아파트를 가져도 생활고를 겪는건 마찬가지인 모양 -,.-)밖에 없는 그들의 대화에 지루한 표정을 숨기려 노력하다, 사진동아리 인연이라는 그들이 점차 안쓰러워지고 있었다.

생활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다 그렇지요, 라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그렇더라도… 사진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한 때 애정을 품은 대상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누었던 이들이 수년 후에 만나 고작(!) 부동산 이야기나 나누는 것은… 쓸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때 흥겹거나 빛나던 것들을 반납하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단조로운 일상과 재미없는 대화 속 어디메쯤에 행복이란 게 있는 것인지 의아해졌다.

헝가리의 이색 도서관

`전직 은행강도 대출해 주세요` [중앙일보]
– 헝가리에 이색 도서관

책 대신 사람 빌려줘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경험해보고 싶다면 헝가리의 ‘살아 있는 도서관(Living Library)’에 가면 된다고 독일 dpa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이 도서관은 매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문화 축제인 ‘시게트 페스티벌’ 행사의 한 프로그램이다. 대출을 신청하면 그에 해당하는 특성.직종의 인물을 한 시간 동안 빌려주는 방식이다.

이 도서관의 ‘소장 목록’은 레즈비언, 전직 은행강도, 집시(스스로는 ‘로마’라 부름), 여성운동가, 유대교 랍비 등이다. 유럽연합 공무원 등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외 계층이거나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도서관 설립자인 로테문드 안테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라며 “우리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선 자신들이 빌려주는 사람을 ‘책’이라고 부른다. ‘독자’들이 다른 인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책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운영 5년째인 올해의 경우 범법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전직 은행강도가 ‘최다 대출 도서’가 됐다. 매년 시게트 페스티벌을 찾는 40여만 명의 방문객 중 절반 정도는 헝가리인이 아닌 외국인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서관 측에서 필요할 경우 ‘사전(통역자)’도 빌려주기 때문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우리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고, 시인들은 노래했었다.
일시적인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긴 해도, 그 낭만적 은유를 현실화한 헝가리 행사가 재밌고,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려는 설립목적도 의미있어 보인다.
이러한 일들이 여기, 우리 가운데 이뤄진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책들을 대출하고 싶어질 것이며, 과연 누가 나를 대출해갈까?
그리고… “빌려간 ‘책’은 반드시 원상태로 가져와야 한다”는 살아있는 도서관의 엄격한 규칙은 과연 ‘엄격하게’ 지켜질 수 있는 걸까. 어떤 짧은 독서-만남도, 살아있는 책-인생엔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일 터인데 말이다. 미미하거나 혹은 치명적이거나.  

쐬주, 김소진

아아, 쐬주병의 비어버린 밑바닥을 맨정신으로 보는 일만큼 쓸쓸하고 또 소름끼치도록 비참한 경우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밑바닥을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일만큼 비겁한 일도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쐬주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것은 연약한 비명을 질러야하는 사내의 혀를 마비시킴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단련시킨다.
그래서 비명 대신에 일순간이나마 함성을 지르게끔 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사내의 가슴을 통과한 쐬주는 본디 그대로의 투명한 빛깔로 남모르게 재생되기도 한다. 그게 거시기 두 쪽만 달랑 찬 사내들에게 내일을 견디는 힘이 돼주는 유일한 밑천임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 그리고 속삭임이 있다. 미치는 것보다는 취하는게 백 번 낫다고. 나을 것도 없지만… 혹 덧없는 사랑 때문에 혹 권태 때문에 혹 허영 때문에 속세를 저주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쐬주만한 친구도 더 이상 없을 성 싶었다.
                                          – 김소진 소설집,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 >중에서  

* 오래된 노트들을 꺼내들었다. 다 채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끌고다닌 노트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 안의 메모들은 얼마나 체계없이 산만하고 잡다하던지.  
그들에게 폐휴지로 재활용 되는 기회를 하사하고자 정리를 결심하고서 하나 하나 넘겨보는데, 어떤 것들은 무지 반갑거나 그립고, 어떤 것들은 유치하기도 하며 어렵고 낯설기도 하다.

김소진. 내가 그의 소설을 발견하고 한참 그에 빠져 있을 무렵 그의 부고를 들었다. 생을 마감한 나이나 시기, 내게 있어서 그 존재의 비중 같은 면에서 가수 김광석의 죽음과 유사한 슬픔이 나를 통과해갔다.
그 즈음 나는 술을 (지금과 비교해서) 꽤 많이 마셨는데, 소주잔을 들고선 ‘내가 들은 소주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바로 이거야’ 하면서 ‘비명을 질러야할 때 함성을 지르게 하는 게 소주라잖아’ 며 그의 글을 읊어대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소주를 마셔본지도 꽤 되었다. 비명을 질러야할 일이 더는 없어지거나 충분히 단련되어서 이러한 소주의 힘 혹은 은총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은 물론 아닌데…  아마 좀 비겁해져서일 것이다. 소주를 마시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건강에 대해서뿐 아니라 그 비어버린 밑바닥, 나의 밑바닥을 맞닥뜨릴 수 있는(혹은 내 안의 비명에 귀기울일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포장마차의 불빛과 산낙지와 소주 한 잔. 뭐 그런 게 생각나는 밤이다.  

추상충동

온통 지형이 사막이었고 나일강의 잦은 범람으로 자연과 적대적이던 이집트 사회에선 추상충동이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중권씨의 말을 들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세계를 점차 단순화시켜 보고 싶어하는 욕망 역시, 인생의 지형으로서의 세계가 (나와 친화적이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점차 적대적이 되어감에 따른 추상충동이 아닐까 하는…. 쓰잘데 없는 생각.

보름달

늦은 밤 귀가길 오피스텔앞 포장마차를 지나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주머니가 산낙지를 도마위에 철썩 올려놓자, 새하얀 낙지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의인화된 캐릭터 마냥 도마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발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경쾌한지(실은 필사적이었을 것인데), 마치 유캔 댄스 프로에 출연한 댄서의 화려한 퀵스텝을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정신없이 구경하다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쳐 멋적게 웃고 돌아서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내가 쓰윽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게 산낙지의 경험은 그냥 한 번 어렵게 “성공”을 해본 정도에 불과한데 말이다.
희한하구만.. 하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열어보는데,
문자가 하나 와 있다.
“교교하기 그지없는” 보름달의 출현을 알리는 내용이다.
아하!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
그러니까… 교교한 보름달빛의 기운이 내 안의 있는 야생성을 한껏 북돋은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흐흐
왠지 그 팔팔한 산낙지를 먹으면, 이 무더위에 천근만근 쳐진 몸이 팔팔하게 살아나 훨훨 날 것만 같은….  

송영규, 耳鳴




… 이 울고 있는 귀 이야기는 타인과 세계를 지향하고 의식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결정짓고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 자신에 대한 우화다. 많은 경우 사람은, 타인들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한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절해고도에서 조차도, 아마 나는 타인에 대한 부질없는 자긍과 근거 없는 모멸 따위의 피로한 상상을 통해서만 남은 생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수줍은 창문이라고 완고하게 결정 지워져 있던 울기 전의 내귀 처럼, 나는 타인을 바라보고, 반응하며, 상처받거나, 고무됨으로써만 내 존재의 선명함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나의 욕망이라 믿었던 것은 결국 내게 드리워져 있는 타인의 음영이었으며, 나는 타인의 규범과 의무와 요구와 금지들로 촘촘히 엮인 관계의 그늘 안에서만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소리를 외부세계와 공유하지 않으며 호젓이 듣고 있던 ‘우는 귀’의 발견은, 관계의 연쇄로부터 이탈해 있는 나를 확인하고 긍정하고자 하는 나의 작업에 요긴하게 쓰일 은유가 될 것이다. 아울러, ‘울고 있는 귀’는 내게 엮여있는 무수한 관계의 망을 하나하나 지워나감으로써, ‘관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롭게 된 나의 페르소나가 되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들은 대부분 ‘자화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전시가 맥을 대고 있는 앞선 두 번의 개인전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발견과 만남, 그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상처와 불안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제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자화상들은 혼자남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타인은 결코 들을 수 없는 耳鳴이 그러하듯, 타인으로부터 분리된 자화상들은 오직 자신만이 번역할 수 있는 낯선 언어로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송영규, < 耳鳴 >의 작가의 말 중에서..


아까운 전시를 놓쳤다. 정말 고대하던 전시여서 아쉬움이 컸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뻔뻔스런 욕심을 내어, 작가로부터 우편으로 도록을 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독자에게 호의를 베푼 작가에게 감사를)

인간은 관계로 규정되는 존재라는 말에 크게 고개 끄덕이던 때가 있었고,  
존재론적 삶을 벗어나 관계론적 삶을 사는 이들에 말할 수 없는 존경을 바치며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충분조건으로 여겨오던 것이 또 긴세월이었다.  
타고난 그릇이 작아 그런 가치들을 실천하며 살지는 못했어도, 그것들이 내 사고안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명제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개인의 삶을 사회통념이나 획일적인 가치나 상식으로 규정해버리거나, 혹은 저마다 다른 뽀족한 잣대를 들이대는 타인의 시선 (혹은 그것들을 내재화한 내 안의 “타인의 음영, 타인의 욕망”)이 거북하게 느껴지면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염원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관계로 인한 상처와 불안”의 경험들이 내 안에 축적되어가면서 부터일 것이다.
“관계의 연쇄로부터 이탈해 있는 나를 확인하고 긍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이 치열한 작업은 그래서 나와 크게 공명한다.
고요 속에 혼자 남아, 타인의 시선과 세계와 분리된(어차피 온전한 분리는 불가능할 것이지만) 울고 있는 내 귀의 울음에 귀기울리는 것이 내 존재의 확인과 긍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내 온 삶을 통해 느끼고 있었음을, 그의 작업이 너무나 명료한 그림과 언어로 께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은유의 힘에 대해 감탄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직설의 미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수식에 대한 강박’으로 보이는 것들에 지루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무궁무진한 독해의 대상으로 경이로워 보이던 세상이 그 매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난 이 그림들이 너무나 좋다.
이 그림들을 보여주겠다고 (내 그림도 아니면서 ^^) 내가 생색을 내었던 후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링크를 덧붙여둔다. 

http://kalos250.com/zeroboard/zboard.php?id=lounge&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97

컴퓨터의 부활

이 위력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하루 한 두번씩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어젠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작에 백업을 해두고 포맷을 하려 맘을 먹었으나 게으른 몸이 이성의 권고를 무시하여 방치를 해온 것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불가능해진 포맷은 제껴두고 무작정 케이스를 열었다.
언제 쌓였는지 신기하기만한 먼지들을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긁어내고
실로 무력해보이는 몇 개의 팬들과 파워 서플라이를 바꿔줘야하나 하고 잠시 째려보다가
문득 오래 전의 경험이 뇌리를 스치면서 두 개의 램을 뽑아 힘차게 다시 꽂아주었다.
(그 오래 전 그 때에 이런 짓을 하면서 투덜거리던 것도 생각났다. 여자들 보고 컴터에 무능하다고 한심히 여기는데, 램 하나 꽂는 것도 이렇게 힘이 필요한 걸 어쩌란 말이야.. 하고.)
그리곤 반대편의 뚜껑도 화알짝 열어둔 채 그 앞에 선풍기를 들이대고 전원을 켰더니.. 아 기특하게도 컴터가 살아났다. 휴~ 

컴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컴터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끔씩 조각모음을 해줄 때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해줄 때도 그렇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맷을 확 해버리면 멀쩡해지는 걸 볼 때도 그렇다.
여름잠을 자버리고 싶은 요즘엔 리셋 기능까지 질투가 나고,
오늘은… 내 안의 뚜껑을 확 열고 선풍기를 들이대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린다.
(내 머리와 가슴과 심장과… 여러 곳의 쿨러가 제 기능을 못해 과부하가 된 것만 같아서… )
마구 혹사시킬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

아무튼… 오늘 일기의 목적은 이거다.
다음에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나면 오늘의 일을 기억할 것.
그러니까.. 점차 버거워지는, 그럼에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나의 메모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희경이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라지는게 맞는 거래. 우리가 느끼는 세월의 빠르기는 기억의 양에 비례한다는 거야. 그러니 나이가 들면 기억하는 양이 적어져서 세월이 빨리간다고 느낀다는 거지.”
맞아 맞아 손뼉치던 우린 그날, 친구 신랑이 사준 오리고기를 배터지게 먹고선 스무살 때 사소한 얘기들을 꺼내놓으며 오리고기의 “회춘” 효능을 감탄했었지…


* 함께 “회춘” 했던 친구 희경이와 진이…

파주 출판단지를 가다


“구름이 너무 예뻐서” 라는 이유를 대고 내 집까지 당도한 황군의 단호한 호출을 받고 전날의 과음으로 부시시한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공사중이던 때에 슬쩍 지나가보기만 했던 파주 출판 단지는 파란 하늘 화사한 구름 아래서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저마다 다른 다양성의 잔치로 보이는 건축물들 어디서 봐도 그 파란하늘이 스며들어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까지 보였다는 것이고, 놀라웠던 건 이리 쨍한 날씨에 찍은 내 사진 중에 흔들려 보이는 것이 발견된다는 것. 너무 오래 카메라를 놓고 있었나. 아니면 풍광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가..

온라인상으로만 알고 지내던 푸른고원님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만남과 관계에 무척이나 소극적이던 내게는 특기할만한 일입니다. 그곳 풍경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 풍경의 일부인 듯한 사람, 이라고만 적겠습니다.
조만간 카메라와 나의 손떨림을 보완해줄 트라이포드를 메고 파주에서 혹은 일산에서 다시 조금 더 긴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흐흐

오랫만에 이런 생각 새삼스레 해보았습니다.
세상엔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참 많이 남아있고, 그 길에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사람과 사물, 미지의 대상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 (얼마전 국민연금에서 보내온 고지서를 보고 가지게 된 “국민연금이 60살부터 나온다니 오래 살아야겠어” 라는 깨달음의 연장선인 듯도..)

링클프리의 심장을 꿈꾸며

내 몸을 치료했던 Nerve Specialist는 치료를 끝내며 이런 저런 당부끝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축되었던 심장을 판판히 펴놓았으니 한 두달간만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하는 일을 피하면 다시 수축되지 않는 심장을 갖게 될 거라구요.
두 달간.. 짧을 수도 있지만 길 수도 있는 시간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엠군 왈, “링클프리가 되면 되잖아”  

링클프리의 심장.. 괜찮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름이 없도록 형상기억처리된 것이 아니고, 주름이 아예 지지 않는 것도 아닌(굴곡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름을 허용하되 주름을 안에서 녹여내어 다시 주름에서 자유로워지는 심장.

세상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도 링클프리가 되어
어떤 양지와 음지도 영속적이지 않고,
어떤 삶의 시련도 쓱싹쓱싹 비비다보면 훌훌 펴져 다시 뽀송한 아침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부지런해지는 스팸글의 공격에 자극받아, 드디어 삼년 반 동안의 http://kalos250.com 시절을 마감하고 블로그란 걸 시작합니다. 이전의 칙칙한 분위기를 버리고 가볍게 나름 화사한 노란빛으로 집단장했습니다.
언젠가 적었듯이 내게 노란빛은 언제나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때로는 황금빛 밀밭을 서성이는 어린왕자처럼,
때로는 해질녘 동네 놀이터에 남겨진 아이처럼,
내 안의 나와, 내 안의 당신과, 혹은 당신 안의 내가 즐거이 혹은 아무렇게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