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규, 耳鳴




… 이 울고 있는 귀 이야기는 타인과 세계를 지향하고 의식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결정짓고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 자신에 대한 우화다. 많은 경우 사람은, 타인들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한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절해고도에서 조차도, 아마 나는 타인에 대한 부질없는 자긍과 근거 없는 모멸 따위의 피로한 상상을 통해서만 남은 생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수줍은 창문이라고 완고하게 결정 지워져 있던 울기 전의 내귀 처럼, 나는 타인을 바라보고, 반응하며, 상처받거나, 고무됨으로써만 내 존재의 선명함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나의 욕망이라 믿었던 것은 결국 내게 드리워져 있는 타인의 음영이었으며, 나는 타인의 규범과 의무와 요구와 금지들로 촘촘히 엮인 관계의 그늘 안에서만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소리를 외부세계와 공유하지 않으며 호젓이 듣고 있던 ‘우는 귀’의 발견은, 관계의 연쇄로부터 이탈해 있는 나를 확인하고 긍정하고자 하는 나의 작업에 요긴하게 쓰일 은유가 될 것이다. 아울러, ‘울고 있는 귀’는 내게 엮여있는 무수한 관계의 망을 하나하나 지워나감으로써, ‘관계’로부터 온전히 자유롭게 된 나의 페르소나가 되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들은 대부분 ‘자화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전시가 맥을 대고 있는 앞선 두 번의 개인전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발견과 만남, 그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상처와 불안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제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자화상들은 혼자남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타인은 결코 들을 수 없는 耳鳴이 그러하듯, 타인으로부터 분리된 자화상들은 오직 자신만이 번역할 수 있는 낯선 언어로 자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송영규, < 耳鳴 >의 작가의 말 중에서..


아까운 전시를 놓쳤다. 정말 고대하던 전시여서 아쉬움이 컸다.
그리하여 또 한 번 뻔뻔스런 욕심을 내어, 작가로부터 우편으로 도록을 받았다. (일면식도 없는 독자에게 호의를 베푼 작가에게 감사를)

인간은 관계로 규정되는 존재라는 말에 크게 고개 끄덕이던 때가 있었고,  
존재론적 삶을 벗어나 관계론적 삶을 사는 이들에 말할 수 없는 존경을 바치며
그것이 인간다운 삶의 충분조건으로 여겨오던 것이 또 긴세월이었다.  
타고난 그릇이 작아 그런 가치들을 실천하며 살지는 못했어도, 그것들이 내 사고안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명제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개인의 삶을 사회통념이나 획일적인 가치나 상식으로 규정해버리거나, 혹은 저마다 다른 뽀족한 잣대를 들이대는 타인의 시선 (혹은 그것들을 내재화한 내 안의 “타인의 음영, 타인의 욕망”)이 거북하게 느껴지면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염원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관계로 인한 상처와 불안”의 경험들이 내 안에 축적되어가면서 부터일 것이다.
“관계의 연쇄로부터 이탈해 있는 나를 확인하고 긍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이 치열한 작업은 그래서 나와 크게 공명한다.
고요 속에 혼자 남아, 타인의 시선과 세계와 분리된(어차피 온전한 분리는 불가능할 것이지만) 울고 있는 내 귀의 울음에 귀기울리는 것이 내 존재의 확인과 긍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내 온 삶을 통해 느끼고 있었음을, 그의 작업이 너무나 명료한 그림과 언어로 께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은유의 힘에 대해 감탄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직설의 미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어쩌면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 ‘수식에 대한 강박’으로 보이는 것들에 지루해진 탓도 있을 것이고
무궁무진한 독해의 대상으로 경이로워 보이던 세상이 그 매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난 이 그림들이 너무나 좋다.
이 그림들을 보여주겠다고 (내 그림도 아니면서 ^^) 내가 생색을 내었던 후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링크를 덧붙여둔다. 

http://kalos250.com/zeroboard/zboard.php?id=lounge&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97

컴퓨터의 부활

이 위력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컴퓨터가 하루 한 두번씩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어젠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진작에 백업을 해두고 포맷을 하려 맘을 먹었으나 게으른 몸이 이성의 권고를 무시하여 방치를 해온 것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불가능해진 포맷은 제껴두고 무작정 케이스를 열었다.
언제 쌓였는지 신기하기만한 먼지들을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긁어내고
실로 무력해보이는 몇 개의 팬들과 파워 서플라이를 바꿔줘야하나 하고 잠시 째려보다가
문득 오래 전의 경험이 뇌리를 스치면서 두 개의 램을 뽑아 힘차게 다시 꽂아주었다.
(그 오래 전 그 때에 이런 짓을 하면서 투덜거리던 것도 생각났다. 여자들 보고 컴터에 무능하다고 한심히 여기는데, 램 하나 꽂는 것도 이렇게 힘이 필요한 걸 어쩌란 말이야.. 하고.)
그리곤 반대편의 뚜껑도 화알짝 열어둔 채 그 앞에 선풍기를 들이대고 전원을 켰더니.. 아 기특하게도 컴터가 살아났다. 휴~ 

컴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컴터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가끔씩 조각모음을 해줄 때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해줄 때도 그렇고,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맷을 확 해버리면 멀쩡해지는 걸 볼 때도 그렇다.
여름잠을 자버리고 싶은 요즘엔 리셋 기능까지 질투가 나고,
오늘은… 내 안의 뚜껑을 확 열고 선풍기를 들이대고 싶은 욕망이 이글거린다.
(내 머리와 가슴과 심장과… 여러 곳의 쿨러가 제 기능을 못해 과부하가 된 것만 같아서… )
마구 혹사시킬 때는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

아무튼… 오늘 일기의 목적은 이거다.
다음에 이런 현상이 또 일어나면 오늘의 일을 기억할 것.
그러니까.. 점차 버거워지는, 그럼에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나의 메모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희경이가 며칠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라지는게 맞는 거래. 우리가 느끼는 세월의 빠르기는 기억의 양에 비례한다는 거야. 그러니 나이가 들면 기억하는 양이 적어져서 세월이 빨리간다고 느낀다는 거지.”
맞아 맞아 손뼉치던 우린 그날, 친구 신랑이 사준 오리고기를 배터지게 먹고선 스무살 때 사소한 얘기들을 꺼내놓으며 오리고기의 “회춘” 효능을 감탄했었지…


* 함께 “회춘” 했던 친구 희경이와 진이…

파주 출판단지를 가다


“구름이 너무 예뻐서” 라는 이유를 대고 내 집까지 당도한 황군의 단호한 호출을 받고 전날의 과음으로 부시시한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공사중이던 때에 슬쩍 지나가보기만 했던 파주 출판 단지는 파란 하늘 화사한 구름 아래서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건 저마다 다른 다양성의 잔치로 보이는 건축물들 어디서 봐도 그 파란하늘이 스며들어있을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까지 보였다는 것이고, 놀라웠던 건 이리 쨍한 날씨에 찍은 내 사진 중에 흔들려 보이는 것이 발견된다는 것. 너무 오래 카메라를 놓고 있었나. 아니면 풍광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가..

온라인상으로만 알고 지내던 푸른고원님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만남과 관계에 무척이나 소극적이던 내게는 특기할만한 일입니다. 그곳 풍경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 풍경의 일부인 듯한 사람, 이라고만 적겠습니다.
조만간 카메라와 나의 손떨림을 보완해줄 트라이포드를 메고 파주에서 혹은 일산에서 다시 조금 더 긴 만남을 가질 것입니다. 흐흐

오랫만에 이런 생각 새삼스레 해보았습니다.
세상엔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참 많이 남아있고, 그 길에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사람과 사물, 미지의 대상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 (얼마전 국민연금에서 보내온 고지서를 보고 가지게 된 “국민연금이 60살부터 나온다니 오래 살아야겠어” 라는 깨달음의 연장선인 듯도..)

링클프리의 심장을 꿈꾸며

내 몸을 치료했던 Nerve Specialist는 치료를 끝내며 이런 저런 당부끝에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축되었던 심장을 판판히 펴놓았으니 한 두달간만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거나 하는 일을 피하면 다시 수축되지 않는 심장을 갖게 될 거라구요.
두 달간.. 짧을 수도 있지만 길 수도 있는 시간이란 생각을 했는데,
이 얘기를 들은 엠군 왈, “링클프리가 되면 되잖아”  

링클프리의 심장.. 괜찮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름이 없도록 형상기억처리된 것이 아니고, 주름이 아예 지지 않는 것도 아닌(굴곡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름을 허용하되 주름을 안에서 녹여내어 다시 주름에서 자유로워지는 심장.

세상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도 링클프리가 되어
어떤 양지와 음지도 영속적이지 않고,
어떤 삶의 시련도 쓱싹쓱싹 비비다보면 훌훌 펴져 다시 뽀송한 아침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부지런해지는 스팸글의 공격에 자극받아, 드디어 삼년 반 동안의 http://kalos250.com 시절을 마감하고 블로그란 걸 시작합니다. 이전의 칙칙한 분위기를 버리고 가볍게 나름 화사한 노란빛으로 집단장했습니다.
언젠가 적었듯이 내게 노란빛은 언제나 그리움의 빛깔입니다.
때로는 황금빛 밀밭을 서성이는 어린왕자처럼,
때로는 해질녘 동네 놀이터에 남겨진 아이처럼,
내 안의 나와, 내 안의 당신과, 혹은 당신 안의 내가 즐거이 혹은 아무렇게나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