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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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장갑과 목도리, 복실한 슬리퍼에, 달콤한 초컬릿과 생강차까지.
월동준비론 조금 늦었지만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2013 온빛 사진상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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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주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상” 이란다. 국내의 웬만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다 모였으니, 꽤 의미가 있겠다. 사진에 관심 있는 이들은 달려보시길.
이런 상이 진작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는 한두명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내가 만든 사이트가 이렇게 트래픽이 폭주한 건 처음… 은 아니고 두 번째다. 아주 오래 전 제1회, 2회 한국대중음악상 사이트를 만들었다. 지금은 꽤 자리를 잡았지만 그 땐 예산이 없어, 온라인투표 등의 기능을 만들어낸다고 제로보드를 뜯어고치며 씨름하느라 날밤 새며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온빛상도 그와 같이, 그 이상의 권위 있는 상으로 발전하길.
(작업자의 이 바람직한 자세! 흐흐)

 

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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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일이 쓸쓸함을 더하는 일이 되는 나날이다.
이럴 땐 가능한 만남을 가지지 않으려 하지만 그게 여건상 쉽지만은 않으니,
내 방 안에 들어오기 전, 그러한 쓸쓸함을 툭툭 털고 끌고 들어오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듯 하다.

문득 떠오른 어젯밤 꿈 속엔 내가 투명인간이 되었다. 투명인간이 되어가다 마침내 완전히 이 생에서 사라질 것인데, 누구에게나 똑같이 안보이는 게 아니라 친밀도에 따라 다르다는 설정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제일 가까이  친밀하게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내가 보이는, 죽음이 임박해 있는 시점에서 잠이 깨었다.
죽는다는 것이 언젠가처럼 슬프거나 아쉽지도 않았으며 상쾌했다.
현실에서의 죽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자신이 죽는 꿈은 대단한 길몽이라는 해몽이 나와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재산이 늘어날 길조  매사가 즐겁고 자신을 이끌어 주는 귀인(연인)을 만나는 꿈으로 해몽이 됩니다, 라고. ㅎ

그나저나 보이차를 마시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강권하더니, 며칠 째 혼곤한 꿈에 허우적대고 있는 건 뭐여. 흥.

앱추천-보이스 피싱, 스팸 전화 차단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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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타면서 가장 뿌듯하게 사용하고 있는 앱 “후후”다.
스팸전화에 대한 정보를 이용자가 등록하여 데이타베이스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클라우드 서비스.
하는 일의 구조상 모르는 전화번호도 안받기가 좀 어려운 나에겐 스팸전화가 골치였는데
이 앱을 깔고 난 후론 스팸전화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만큼 스팸전화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고 있다는 거고, 그리하여 이미 많은 데이타를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엊그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2013 대한민국모바일앱어워드’에서 기업서비스분야 우수상도 수상했다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디 누구의 암울한 예견처럼 자신의 근간을 파괴하는 우울한 미래(수익모델을 고심하다가 돈을 받고 특정 업체의 정보를 삭제해주는)로는 가지 않게 되기를.

전화가 오면 이런 화면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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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화를 “생까는” 쾌감이 있다.
안드로이드 온리.

파워가 필요해 위로도.

또다시 하드디스크 하나가 맛이 갔다. 운나쁘게도 작업하고 있는 모든 데이타가 담겨있는 하드다.
다행히 이전거는 백업본이 있어 올해 몇 달간의 데이타만 유실된 걸로 보인다.
업체에 보내놓긴 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예측이다.

벌써 두어달 만에 세 개째인데도 아직까지 대책을 안세우고 작업하고 있었다니 어이를 상실하고 자학모드에 멘붕인 상태로 하루를 보내며 이래 저래 알아본 결과..
내가 수년간 쓰고 있던 천궁 빙산 파워가, “컴덕이 가장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는” , “뻥궁”이라고도 불리는 엄청난 것이란 걸 알아버렸다.
그래픽 카드를 날려버리고 메인보드를 불태워버리는 일도 다반사라는데, 뻥 폭발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디자인도 이렇게 촌스러운 걸 가지고, 하드를 여러 개 연결해서 쓰고 있었으니…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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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도대체 왜 선택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다나와 최대 히트 상품에, 중소기업의 혼이 담긴 제품!이라는 등의 리뷰가 작용했을 것을 것이다.
으아…
유실된 데이타가 진행중인 서너 개 쯤의 일에 어떤 난관으로 작용할 지는 굳이 생각 안하려 하고 있다.
요즘엔 워드프레스로 작업을 해서 디자인 작업이 그리 헤비하진 않았으니
어쩌면 그리 많은 데미지가 아닐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려 노력중이다.

휴. 어쨌든 이젠 정말 이런 일을 처리하기엔 내 파워가 딸리는구나.
다른 영역에 데미지가 전이되기 전에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가보다.
하드를 좀 떼어내야할까?
울고 싶다.

다행인 아침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하며 깨어나는 아침이 있다.
어지러운 꿈에서 벗어나 다시 멀쩡히 삶을 이어갈 수 있음에 안도하며, 주어진 하루가 반가워지는 그런 아침.
그러한 기억이, 감각이 얼마 못가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 느낌을 – 기억은 말고-잡아둘 수 있다면, 오늘 하루가, 삶의 태도가 훨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연일 꿈이 어지럽다.
날아가버리는 꿈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희미한 여운으로 내 안의 시스템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무언가가 툭, 걸려 있다고 짐작한다.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서 건강을 위해 다시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를 보내왔고, 내 속을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나는 무심히 문자를 지운다.

 

아이와 결핍과…

며칠 전 어느 출판 기념회 뒷풀이 자리에서 만났던 사진가 N에게 축하인사를 보낸 건 그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계획엔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당연히도 환한-아마도 기쁨과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섞인- 미소가 역력했고,
그런 그에게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용기인지에 대한 감탄과, 어떻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용기를 내는지에 대한 놀라움을 표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하나의 인생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라고 감탄을 하곤 하는 나는, 당연히 그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오늘 접한 이런 글을 보면, 가령 이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란 어떤 걸까, 부모란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http://blog.naver.com/knit21?Redirect=Log&logNo=50181822520

(들리는 얘기론 이 부자간의 관계가 결코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데, 어쨌든  DVD가 나오면 꼭 사봐야겠다.)
이 포스터는 꽤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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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랑 바르트는 호모섹슈얼리티를 성정체성으로 가지고 살았던 사람으로 이성애적 가족 시스템의 바깥을 살았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어머니외에는) 그러한 통상적 의미의 가족이나 아이가 없었다.
이러한 그의 동성애적 삶의 경험이, 제도화되고 코드화된,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 너머를 지향하는 탈코드적이고 비폭력적인 사유를 전개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건 쉽게 추측이 가능한 일이다.
한데, 그의 저서 곳곳에 남겨져 있는, 사회 공동체의 존속에 이바지할  “자손을 생산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언급에는 마음이 짠한 데가 있다.
(그러한 뛰어난 업적을 가능케한 조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도 그러한 사실이 어떠한 결핍이었을까? 를 헤아려 보게 하는.

* * 며칠 전 TV CGV 채널에서 본 옛 영화 <The Help>를 떠올려보면, 당대 그 사회를 공고하게 지배하던 인종차별 패러다임의 바깥을,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그 지배적인 가치의 “결핍”을 가진 사람임이 쉽게 확인된다. 피억압계층인 흑인은 물론이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애, 졸부, 부르조와적 교양이 부족한 여자 등등.
그러나 그러한 결핍이 내면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는 있어도, 실제 그 실천에 이르는 건 정말 정말 요원한.. 엄청난 일임은….. 지금의 나 자신을 들여다 보아도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흐흐. (이건 또 무슨 자폭모드란 말인가…  )

그래비티를 보았다.

한동안 불규칙적인 생활로 늘어진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서니 깜빡 놓쳐버린 몸의 리듬을 찾은양 쾌적했다. 조금 쌀쌀해진 아침공기를 흡입하니 천을 파는 곳에서 8천원을 주고 산 스카프가 흡족하다. 간지럼도 많이 타고 목이 답답한 걸 참지 못하여 추위를 많이 타 면서도 이런 걸 잘 안했었는데, 한 일년쯤 지독한 목감기로 여러 날을 고생하다보니 평생의 습관도 바뀌어 간다.

그저 습관이었단 말이지. 약간의 배신감도 스친다. 그리고 이걸 일깨워준 Y선배에게 고마움이 생긴다. 다음에 만나면 고맙다 말해줘야지. 술자리에서 한 말이니 기억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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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예매해놓은 조조영화를 보았다.
<그래비티>. 아찔하게 멋진 영화다.
영화는 “이게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듯, 영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힘을 한껏 보여주며 강렬한 영화체험을 선사한다.
소리, 수다의 영화이고, 끈, 관계, 기억, 두 발, 땅, 흙, 몸의 영화이며, 이 모든 것들이 중력이 되고 구원이 되는 영화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우주와 지구의 눈부신 광경은 물론이고)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작렬하는 환상적인 연기와 함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몇 안되는 관객들의 대화가 두런 두런 들렸다.
“음, 영화 끝내주는데”라든지, “이런 영화를 예매해주고, 자알 했어”하는.
뒷좌석의 총각이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뒷말을 들었을 땐 옛생각이 났고, 나도 맘속으로 스스로에게 얘기해줬다.
“오늘 선택은 정말 자알 했어”라고.
맷을 잃은 라이언(산드라 블록)이 그러했듯이.
아름다운 우주를 유영하는 건 아니어도, 그저 이 혼탁한 세상을 느릿느릿 먼지처럼 부유할 뿐일지라도, 이런 수다가, 기억이, 나날이 크고 작은 재난인 현재를 구원해줄 거라 믿으며  믿어볼까, 하며.

오늘은 토요일

8972883328“재미”라는 면에서 크나큰 기대를 가지고 주문하여 어젯밤 도착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호어스트 에버스, 작가정신)는, 할 일이 마구 밀려 있을 때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일거리를 생각해려고 용을 쓰는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적어도 양심의 채근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한데 사실상 이건 내게는 너무 익숙한, 그래서 사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풍경으로, 나는 오늘도 신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싶지 않으면서 양심의 채근을 피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실행에 옮겼다.
오늘 같은 날 좀 더 쾌적하게 늦잠을 자기 위한 커튼 만들기다.

일전에 가지고 있던 천을 재활용 하느라 만든 게 반쪽짜리 밖에 안되었던 지라 나머지 반쪽을 만들면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 종일 수축방지를 위한 세탁을 하고 다짐질을 해서 드드륵 미싱을 돌린 후 커튼클립을 꽂아 의자위에 올라가 낑낑대며 커튼을 걸었는데…

휴, 맘에 안든다. 주문했던 천이 품절되어 아예 다른 색깔을 달았던 게 실수였다. 온라인 주문을 하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미스가 있는데 이번건은 오차가 컸다.  다 만들어 걸고 나니 이리 눈에 거슬릴 건 또 뭐람.

젠장. 아무래도 이건 오늘의 뻘짓으로 인정해줘야할 듯 하다.
차라리 이 재미있는 책을 읽을 걸.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양심의 가책이 덜할 거 같아 커텐을 선택했드니만…

어쨌든 이렇게 하루가 갔고, 내가 해야할 일들의 목록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내일 아침엔 예매해놓은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영화를 예매하면서, 지금 해야할 일들을 잠시 외면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구실은 물론 만들어놓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바로 나를 끌어 당겨줄, 그래서 여기 이생에서 튕겨 나가버리거나 헤매이지 않게 나를 구원해줄 중력(그래버티)이잖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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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자야겠다.
참 양치질과 세수도 하고 자야지.
그런데 나 이렇게 게으르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 ….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있는 걸까?)

한희정, 이 노래를 부탁해

옛날 옛날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할머니의 할머니 아득한 먼곳에 이야기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녀가 살아낸 고통의 생은
백 년전 혹은 어제의 사건
세상은 변함없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바쁠테니

이 노래를 부탁해
끊이지 않는 비극
너와 나의 무관심을 노래해줘

이 노래를 부탁해
침묵으로 얻은 평화
또 망각을 위한 망각을 노래해줘

옛날 옛날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할머니의 할머니 아득한 먼곳에 이야기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녀가 살아낸 고통의 생은
백 년전 혹은 어제의 사건
세상은 변함없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바쁠테니

우리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이 노래를 부탁해
끊이지 않는 비극
너와 나의 무관심을 노래해줘

이 노래를 부탁해
침묵으로 얻은 평화
또 망각을 위한 망각을 노래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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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내가 안 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