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주춤한 토요일이다.

맹렬했던 무더위가 주춤하기 시작하니 더위와 싸우느라 뾰족했던 표정들이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진다. 쇼핑몰에서 날아오는 광고성 메시지에선 아직 더위가 많이 남았다며 할인이 들어간 여름 계절용품 구매를 충동질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을맞이 모드다. 기록적인 무더위를 잘 참고 지나온 것을 자축하며.

오랫만에 들어와본 블로그는 여름이 시작되었던 무렵, 집나간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엄살에 멈춰져 있다. 기나고 보니 겨우 세 달, 몸고생, 마음고생을 시켰던 성대와 후두이상은 지난 주 마지막 내시경 검사에서 거의 회복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자주 보아 친근해진 의사 선생님은 사실 수술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여서 수술여부를 고민했었다며, 치료를 잘 따라주어 다행이었다 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다 다소 업된 나는 큰 제스추어로 꾸벅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직도 말을 좀 많이 하고 나면 낯선 목소리가 튀어 나오고 잠잘 때 기침으로 좀 고생을 하지만 일상생활엔 거의 지장이 없게 회복이 되었으니, 다행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일이 밀려, 활활 타오르는 발등의 불을 보며 빡세게 일하고 있던 어느 아침에 날아온 호빵맨 아저씨의 비보도 이 계절에 꽤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어떻게 “재밌고 신나게” 달라질지를 상상해보라며, 선뜻 동의해주지 않는 친구를 다그쳤던 일이 아프게 떠올랐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그의 선택에, 나의 하루하루의 삶이 한층 더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친구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의 드러난 이미지 뿐일 것이며, 그것을 좋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 테지만…   그의 해맑은 얼굴이 만화속 말풍선처럼 불쑥 떠오르면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나고, 이어 “비루함”이라는 단어가 여러 날 동안 떠나질 않아 고래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더위는 주춤하였을 뿐이며 9월말까지는 더울 거라 한다. 그러나 기록적인 열대야도 잘 견뎌 왔으니 뭐 대수냐 싶다. 세 달 전 목소리가 “불가역적으로” 안돌아올 수 있다는 의사샘의 말에 화들짝 놀랐던 나는 이젠 그러한 종류의 경고에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주었던 누군가를 잃는 일은 좀 더 지속적이고 쉽게 익숙해지 않는, 늘 새로운(상실의 대상은 늘 새로울 수밖에 없으니..)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역시 지나갈 것이며 나의 비루한 삶은 이렇게 또 하루를 이어갈 것이다.

목소리

묵언의 대화중에 오래 전 보았던 영화 <HER> 가 떠올랐다.

포스터를 찾아보니… 배우의 표정 변화가 대단하다. ㅎ

 

묵언의 대화를 해야했던 건 목감기로 시작된 후두염으로 인해 성대손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열악한 태생적 신체적 조건들에 비해, 그래도 목소리는 괜찮은 편이라 생각했던 지라…
주사, 항생제 복용이 한달여가 지속되자 날아온 의사의 경고 – 성대 손상, 변화가 불가역적이 될 수 있다는- 는 꽤 쇼크로 다가 왔다.
하필 목소리가…  라는 투정에 친구는 그래도 다른 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 했지만 별 위로가 되거나 불안이 줄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장 닥칠 생업의 위기는 어쩔거며,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 등을 받은 스파이트 존즈 감독의 <Her>는, 무엇보다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출연만으로 로마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으로 많이 회자되었다.  그녀가 연기한 사만다는 그 달콤하기 그지 없는 매력적인 목소리만으로 영화속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상 존재 자체가 목소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묵언의 대화에 필요했던 수첩을 보니, 나는 내 목소리가 내 정체성,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는 말이 적혀 있다. 사실 어릴 적부터 누가 이상형을 물으면 “첫번째로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곤 했는데, 그래서 과거 나한테 반했던 남자가 그 얘길 전해 듣고, 성대 수술을 할까요?  했다는 … ^^;)

한데 이번에 후두내시경을 찍고서는 좀 놀라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 저 작고 단순해 보이는, 지금은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는 저 성대라니.
저 구조만으로 어떻게 그토록 천문학적으로 다양한, 저마다의 고유한( 고유하다고 생각했던) 차이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보는 HER에서는 주인공 테오도르어의 직업이 편지 대필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런 직업을 가진 그가 무의미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목소리로 다가온 사만다에 순식간에 열정적으로 매료되는 설정에는, 문자언어의 한계와 목소리의 힘 혹은 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보이기도 한다.

집 나간 목소리가 그립구나..

인어공주는 두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었다는데, 나는 무엇을 댓가로 목소리를 잃었나를 생각해보니 첫번째로 떠오르는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가지고 있는 평상을 가진 카라반과 앞뜰 사진을 보내온 이의 호출에 호응하여 우루루 몰려갔던 악양에선 하루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그 그림같던 풍경속에서, 그 빗소리를 들으며, 밀양 사는 이가 만들어오는 풍성한 안주와 세 종류의 막거리를 섞어 마시는 동안 감기 바이러스는 서서히 … 자세히 보기

사무실 수다

이사한지 몇 달이 되어가는 합정동 사무실, 이제 익숙해진 얼굴의 사람들이 수다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중 가만가만, 타인과 시선을 잘 맞추지 않고 조용히 지나치던 젊은 처자는 한 번 말을 나누기 시작하자 엄청 수다스러워진다.

10년 동안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적질을 끈질기게 해대던 대학 남자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이제는 니가  그렇게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시대가 아니야. 정신 차려라.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10년 동안 줄기차게 그랬다면, 그렇게 애써 괴롭혔다면,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했더니 옆의 다른 친구가 말한다.
그런 남자들이 있어요. 괜히 그런 데서 쾌감을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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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추억

저장만 해두었던 칼럼을 하나 찾아 읽는다.  좋아하는 김진영 선생의 글이다. 편리한 기기와 웹환경 덕에 언제든 바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들이지만 이 분의 글은 느린 속도로 읽어야 하는 글, 이라는 생각에 링크를 저장해두고 읽는다. 저장했다는 사실을 흔히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글 발표를 잘 안하시니…

원래 강연을 좋아하신다고, 잠깐 근무하던 직장에서 뵈었을 때 듣기도 하였으나, 근래엔 또 건강이 많이 안좋으셨던 모양이다.  투병소식과 함께 페북에 올라온 사진에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하였는데… 얼른 회복하시어, 오래 오래 그 매력적인 내면의 사유를 멋진 필력으로 많이 펼쳐주시면 좋겠다.

*예술을 “추억” 한다는 제목이 붙은 건, 예술의 몰락을 전제하는 표현이겠다. 미투 운동, 특히 예술제도권내 “음란폭력의 난장”을, 강자의 매커니즘을 내면화한 현대사회의 현실과 함께, “권력의 시녀가 되어 강자의 폭력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몰락한 예술의 현실로 설명한다. 세이렌의 텍스트를 통해.

 

[김진영, 낯선 기억들] 예술을 추억하면서

김진영 , 철학아카데미 대표

미투의 홍수가 세상의 가면을 벗기고 있다. 그동안 위선의 가면 아래서 약자의 성을 짓밟고 유린했던 음란폭력의 민낯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제도권도 있지만 추세로 보아 그 속살 풍경을 들키는 일도 시간문제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특별히 주목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그건 예술이라는 고상한 제도권이 알고 보니 가장 헐벗은 음란폭력의 난장이었다, 라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오래된 전설 하나를 기억해 보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세이렌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반은 새이고 반은 여자의 형상을 지니는 조류인간 세이렌 자매는 인간의 두 원초적 감정인 매혹과 공포를 다 같이 상징하는 존재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그녀들은 매혹적이지만, 그 노래에 취해 뱃길을 벗어난 항해자들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치명적 공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신화 안에는 오늘 그 맨얼굴이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폭력의 내밀한 관계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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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처음 보는, 거미의 거미줄 치기.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와 움직임, 리듬에 끌려, 자꾸 보게 된다.

경칩

경칩이다. 어젯밤 뉴스에 하도 놀라서, 오늘은 새삼 별로 놀랄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이리 어리석을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는데, 권력이란 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올해 초 S선생님의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읊던 그는 분위기만으로 작년과 꽤 달라보였다. 이전엔 그래도 나름의 지향이 뚜렷하고 패기있어 보였던 그의 추모사는 어딘가 모르게  자의식 과잉의 독백 같은 불안한 낌새가 느껴졌다고, 돌아와 친구와 앉은 술자리에서 토로하긴 하였으나… 이런 충격적인 뉴스를 보게 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환부가 작지 않을 것으므로, 큰 진통과 상처, 후유증과 파장이 우려되지만…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오듯 또 새로운 기운이 이 낡고 썩은 것들을 대체해 갈 것이다. 그 환절기가 너무 길지는 않기를 바란다.

릴레이 전시

얄님의 전시가 내년 2월에 있을 예정이란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림 팔아서 다음 사람을 지목해 개인전을 지원해주는 것. 릴레이 형식”이라 하니,  같은 길을 가는 동지들간의 그 연대가 멋지다.
2월 13일 오픈. 기억해놓았다가 놓치지 말아야겠다.

드레인, 회귀

우리 뛰어노는 동안 해 저물고
우린 마지막을 함께해

네가 날아가는 동안 나는 걷고
우린 마지막을 함께해

* 그랬으면 좋겠다.  뛰어노는 동안, 그 동안에 해가 저물고…

흔들리는 풍경은 그저 
우리들의 이야기 되고 
다가오는 폭풍은 그저 
또 하나의 노래가 되네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나봐…

한가로운 연휴 아침,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라는 프로를 보다가 깜놀.
반려견 행동전문가라는 직업이 그러한 것인지 강형욱이란 개인의 능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문제되는 집을 방문하자마자 단번에 문제점을 간파해내고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사실상 반려견 뿐 아니라, 가족-인간 행동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집의 문제는 덩치 큰 세 남자-삼부자의 일상적인 거친 행동들과 작고 여리고 관계의존적인 성향의 엄마에 대한 무관심 혹은 부족한 배려, 그 결과로 이어진 엄마의 개에 대한 집착(엄마는 개를 마치 갖난 아이인양 안고 먹이고 재운다. 아들들이 갖난 아이였을 때 그러했듯이)이 촉발한, 그야말로 가족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전의 훈육으로 스트레스가 있던 감수성 예민한 개는 이 상황에서 엄마의 보호자를 자처하여 다른 가족을 공격하고, 엄마에게는 완벽한 갓난아이가 되어 집착하고 의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처방 역시 개 행동 교정 팁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관계 개선을 위한 지침을 포함한다. 엄마에게는 먹이고 안고 만지는 것을 금하고 세 남자에게는 거친 말과 행동을 금하고 부드러운, 상호존중의 태도를 주문하여 균형을 꾀한다.
그 결과는 자못 놀랍다. 단 한 번의 상황극만으로 반응을 보이던 카스라는 이름의 개는 일주일만에 “착한 개”로 변한다.
물론 그 상황이 지속, 고정화될 수 있을 지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한 번의 상황극, 일주일간의 태도 변화만으로도 변화되는 개와 달리 인간은 잘 변하지 않으므로. “나쁜 개는 없”을지 모르지만 교정되지 않는 “나쁜 인간”도 있으니. 그러한 저항성, 비결정성이 어떤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좋은 인간”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요즘 같이 무기력해진 때에는, 누가 날 좀 교정시켜주었으면,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으면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