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사

아노말리사 (Anomalisa,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감독, 2015)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놀라운 디테일 속에서 뜻밖의 싸늘한 리얼리티를 맞닥뜨리게 되는 영화.
제니퍼 제이슨 리(리사 역), 톰 누난과 데이빗 듈리스(마이클 역)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지만, 주인공 마이콜이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얼굴과 목소리로 인식하는 (프로골리 증후군이라 한다지) 설정 속에서, 목소리를 그 자체로 타인과 맺는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매개하는 주요한 장치로 사용한 배치가 놀랍다.
목소리 외에도 (가면속의) 표정이나 몸짓 등의 장치들도 매우 인상적인데, 실사가 아니어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디테일이, 실사가 아니어서 생략된 정보가, 더욱 생생한 캐릭터와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불편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대체로 부드러운 시선으로 영화를 음미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형식 자체의 미덕과 숨은 장치들의(을 통한) 배려일 듯.

크랜베리스, 돌로레스 오리어던

아일랜드 얼터너티브 록 밴드 크랜베리스 (The Cranberries)의 리드 보컬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이 지난달 15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이웃블로그에서 접했다. 신규앨범을 준비하던 그녀의 나이는 46세.
애잔하면서도 영롱한 결을 지닌 노래를 이어 들으며 추모의 마음을 모아본다.

크랜베리스의 노래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건 <Dreams>일 것이다.
아득히 오래전 자신의 컬렉션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선물로 주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안에 이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컬렉션이 맘에 들어, 테이프가 늘어져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할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와 함께 갔었던 신촌전철역 뒷쪽의 “놀이하는 사람들” 이나, 어쩌면 종로의 “라커스” 같은 데서도 그녀의 노래들을 신청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스라한, 그래서 참 좋았던 시절의 기억이다.

이렇게 목소리로 남는 음악이란, 인생이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고 또 경이로운 것인지…
Rest in peace Dolores…

목소리.

오랫만에 페북에 접속해보니 며칠 전 뉴스룸에서 보았던 최영미 시인의 폭로에 대한 파장이 여전하다.
하나 방송 직후에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주어 보게된, “저급한 젠더의식”을 너무 적나라하게, 뻔뻔하고도 심히 너절하게 드러내었던 이승철 같은 부류의 반응은 논외로 하더라도, 며칠의 간격으로 발화된 서지현 검사와 최영미 시인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이 사회의 태도엔 간과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약자로서 비명을 지르는 일에 있어서도 그 비명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사회적으로 잃을 게 많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상 약자가 아닌-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상 한 때 명성이 높았던 시인의 말도 그러할 진대…

* 연이은 불면의 밤에 돌려보는 평창 올림픽 하이라이트가 예상외로 재밌다.
반전의 드라마에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숱한 고통을 감내한 도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몸짓에 감동하여 뭉클해지기도 한다.
눈부신 설경 혹은 빙판을 배경으로 자유자재로 몸의 중심을 이동하며 균형을 지켜내는 젊은 신체들은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중심의 자유와 균형을 얻기 위해 그들이 통과해온 강도 높은 시간들,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다음 생 같은 건…

‘이 생은 틀렸어’ 라는 말이 자꾸 빠작거린다고 하니 P가 말했다.  다음 생 같은 건 없어, 라고.
그 단호함에 슬쩍 서운함이 스미어, 드라마 도깨비에선 세 번은 살 수 있다 하던데… 툴툴대고 있는데 그의 다음 말이 도착했다.
“그러니 남은 생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그 말의 여운으로 오늘 호출해보는 문장.
“(…)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 – 고병권, 추방과 탈주, p194

다시, 걸어봐야 하겠다.
잔뜩 소심해지고 무기력해진 몸을 일으키어.

오늘의 윈도우 배경으로 만나게 된 이미지 (누가 나도 저리 잡아 끌어주었으면 싶은! -,.-)

권력을 주지 않는 방법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는 타인에게 “권력을 주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로 인해 가벼워질 무게를. 홀가분함을.
어떠한 이유로든 내 손을 떠난 권력을 회수하는 일은 쉽지가 않으므로.

콜트 기타

혹한의 날씨에 찾아온 독감으로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오랫만의 기타를 꺼내 들었다.
오래 전 지인 결혼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받은 콜트 Earth 200GC라는 이름의 기타다.
인내심과 끈기가 현저히 부족한 나는 그 오랜 시간 손끝의 굳은 살을 만드는 일을 여러 차례 실패하였고, 지금도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좀 더 편한 작은 기타로 바꿔볼까 시도하였다가, 작은 기타의 소리를 들어보고는 바로 마음을 바꾸고, 내 기타를 토닥이며 사과를 건넸다. 잠시 딴 맘을 먹어 미안해 하고.

지금의 콜트 기타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고 하는데 이 녀석은 국내 콜트 장인들이 수공으로 생산했다는 시기에 나온 것이다. 콜트 기타의 명성을 만들었다는 그 기타 장인들은 많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악랄한 부당해고로 길고도 힘든 싸움을 거쳐 뿔뿔히 흩어졌고… 저력 있던 국내 기타 브랜드가 그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사실 생김새나 소리도 나쁘지 않은 이 기타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에는 콜트라는 기업의 이러한 행보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하나 이전에 콜트 장인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하니… 앞으론 좀 더 어여쁘게 봐주기로 한다.

핑거스타일 연습곡으로 Cannon을 몇 차례 뚱땅거리고나니 벌써 손끝이 얼얼하다.
한데 그 얼얼하고 쓰라린 느낌에 묘한 쾌감이 있으니, 아무래도 이번엔 급하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육체적 습관적 단련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내가 가장 취약한 이 것에 성공하면 당당히 업그레이드해줄 기타도 찜해 놓았다.  테일러 GS MINI 다.
(가격이 꽤 세다. 육체적 단련만이 아닌, 또 다른 변화 혹은 성취가 필요하겠다. -,.-)


독감이 너무 오래 가는 바람에 신체기능도 떨어지고, 많은 것들이 부질없어지면서 생의 감각이 퇴보하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감각의 복원을 위하여 패러글라이딩을 해보자고 친구들을 꼬드겨 보았는데 아무도 동조해주는 이가 없으니, 당분간은 손끝의 감각-통각이나 일깨워 정신을 차리는 걸로…

블러드문

“달이 평소보다 크게 보이는 ‘슈퍼문’, 한 달에 두 번 뜨는 ‘블루문’, 개기월식으로 인한 블러드문”을 35만 9307㎞가 떨어진 지구, 서울 은평구 건물 옥상에서 지켜보았다.
개기 월식도 신기하긴 하였으나,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점점 사위어 가던 달이 어느 순간 다시 붉은 빛으로 빛나는 걸 보는 건 보다 인상적이었다.
찾아보니 해의 장파장이 지구의 겉을 돌아 달에 도착해서 생기는 현상이란다.

가리워져 지워지고 사라진 후에 멀리 돌아온 다른 빛으로 다시 빛난다는 “블러드문”을, (그 섬뜩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머나먼 우주에서 은밀하게 보내온 다정한 메시지로 수신해보는 멜랑꼴리한 밤.

슬기로운 2018년을 기원하며.

청소를 하고 칼(과도와 가죽용의 물리적인 칼)을 갈고, 결방이 안타까웠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재방을 이어 보며 새해의 소망을 품어본다.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재활이 쉽지 않은 난관이 닥쳐 오더라도 김재혁의 오른팔 같은 선택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를…

김애란, 바깥은 여름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不在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熱이다. -108p, 침묵의 미래

 

오래된 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어색한 듯 자명하게 서 있다. 정확히 어떤 색이라 불러야할지 모를, 1970년대 때깔 혹은 낙관적 파랑을 등에 인 채, 코닥산 명도, 후지식 채도에 안겨 있다. 어느 때는 너무 흐릿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 오래전 어머니가 손에 묵직한 사진기를 든 채 나를 부른 소리, 삶에 대한 기대와 긍지를 담아 외친 “정우야”라는 말은, 그 이상하고 찌르르한 느낌, 언젠가 만나게 될, 당장은 뭐라 일러야할지 모르는 상실의 이름을 미리 불러 세우는 소리였는지 몰랐다. -132pm,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나왔다. -152p, 풍경의 쓸모

 

남편을 일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 소리, 내가 쓰는 물 소리, 내가 닫는 문 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거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 떠다녔다. – 199p,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딕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 199p,

 

#바깥은 눈부신 가을. 나는 계절과 시간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불박

ss

한 생을 살다간 한 생명체의 외피였던 가죽위에 뜨거운 기계로 “불박”을 찍는다.
저마다 다른 가죽의 특성에 꼭 맞는 온도와 시간의 조합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고투할 때면 오래 전 필름을 현상하면서 온도와 시간을 맞추던 일이 생각난다.
찾아낸 조합이 또 늘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어서 찍기 전에 쪼가리 가죽으로 꼭 테스트를 해보지만
그럼에도 살짝 모자라거나 과한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래도 실패의 확률은 조금씩 줄고 있고, 시행착오의 축적이 대체로 정직하게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만들어진 이 무늬를, 혹은 화인을 (특히나 이런 야심한 밤에)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상념들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살면서 나는 과연 적절히 뜨거웠는가.
뜨거워도 좋을 때에 턱없이 차갑고, 냉정을 지켜야할 때에 대책없이 달아올라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닌가.
적당한 온도로 만난 대상도 너무 빨리, 미리 이별해버리거나
떠나야할 것들을, 버려야할 것들을 껴안고 있다가 지지직 타버리고 사그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사는 일도 시행착오만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식의.

지난 여름은 그리 무성하지 못하여 꽤나 서늘한 가을을, 추궁기를 지나고 있다.
몇 가지 일들이 좌절되었고, 몇 가지 오해가 생겨났으며, 그럼에도 몇 가지는 시도되었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적당히 당당하게”